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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우주를 담은 음악 '산조'
<김선호의 지구촌 음악산책(30)> 가야금의 '남도가락'과 '충청가락'-김죽파·성금연 가야금 산조
2018년 05월 10일 15:19:11 김선호 음악칼럼니스트 sisaon@sisaon.co.kr

(시사오늘, 시사ON, 시사온 = 김선호 음악칼럼니스트)

   
▲ ⓒ김선호 음악칼럼니스트

"세계음악을 소개하는데 갑자기 무슨 뜬금없는 산조?"
이렇게 이야기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필자는 꼭 산조를 넣고 싶다. 그것은 산조가 세계 어떤 음악보다 뛰어난 우리나라 음악의 한 장르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산조 중에서도 이 시대에 꼭 한 번은 들어봐야 할 명인이 두 명 있기 때문이다. 뒤에서 자세히 설명하겠지만 우리나라 음악 중에서 판소리는 어찌 보면 오페라이면서도 랩이고, 산조는 변주곡이라고 해도 될 것 같다.

서양음악 가운데는 환상곡, 즉흥곡, 변주곡이 있다. 환상곡(Fantasia)은 시대에 따라서 다소 차이가 있지만 형식에 구애되지 않고, 작곡가가 악상이 떠오르는 대로 작곡한 악곡을 말한다. 그래서 즉흥곡(improvisation)과 비슷하나 넓은 의미에서 즉흥곡도 환상곡에 포함된다고 할 수 있다. 환상곡이 처음 나타난 것은 르네상스 시대로, 당시에는 모든 음악에 대위법이라는 엄격한 법칙이 적용되던 시기였다. 기악곡 중에서 이런 엄격한 법칙에 의해 만들어진 것을 리체르카레(ricercare)라고 불렀는데, 이와는 달리 비교적 자유롭게 작곡가의 기교와 환상을 바탕으로 해서 쓰인 작품을 '환상곡'이라고 불렀다.

그 뒤 바로크 시대에 이르러 대위법 형식과 자유로운 형식의 환상곡이 절묘하게 조화를 이루게 됐고, 고전주의 시대와 낭만주의 시대가 되면서 환상곡은 몽환적 느낌을 주는 음악으로 성격이 변모해갔다. 19세기 낭만주의 시대에는 이미 작곡가들이 형식에 얽매이지 않았기 때문에 환상곡이 처음에 지녔던 반항적이고 자유로운 형식은 사라지고 즉흥성과 몽환성만 남는 모습이 됐다. 이때 작곡된 대표적인 환상곡으로 고등학교 음악실에서 자주 들었던 슈베르트의 <방랑자 환상곡>, 쇼팽의 <즉흥 환상곡> 등이다.

변주곡은 쉽게 이야기해서 하나의 주제를 가지고 계속해서 다른 모양으로 바꾸어 가는 악곡을 말한다. 말 그대로 변주한다는 의미다. 변주곡을 듣는 즐거움은 '주제'라는 멜로디가 각 변주의 성격에 따라 어떻게 변해 가는가를 이해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초보자들에게는 앞서 언급한 즉흥곡이나 환상곡에 비해서 그렇게 쉽게 접근할 수 없는 어려움도 있다. 마치 그 소리가 그 소리같은 느낌을 받기도 하니 말이다.

특히 변주곡 중에 이 세상에서 가장 변주곡다운 변주곡 단 한 곡만 꼽으라고 한다면 바로 요한 세바스찬 바하의 'Goldberg Variations' 골드베르크 변주곡을 들 수 있는데, 이 곡은 초보자에게 거의 '고문'과도 같을 수 있다. 아리아로 시작해서 30개의 변주곡이 이어지고 끝으로 아리아 다카포로 종지를 맺는다. 이 곡은 변주곡의 역사상 금자탑으로 일컬어지며 "이 작은 곡속에 작은 우주가 들어 있다"고 말하는 평론가가 있을 정도로 대단한 곡이다. 정말로 다양하고 폭넓은 창조력을 가슴으로 느끼면서 엄청난 건축물을 귀로 듣는 곡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이와 같은 변주곡과 즉흥곡, 환상곡을 한데 묶은 한국음악이 있다면 그것은 과연 무엇일까? 바로 산조(散調)라는 우리의 가락이다. 산조는 순 우리말로 '허튼 가락', 또는 '흐트러진 가락'이라고 풀이된다. 즉 어떤 형식이나 틀에 얽매이지 않고 연주자가 자유로운 느낌에서 마음껏 풀어헤친다는 의미다. 물론 산조를 배울 때는 한 올의 가락까지도 스승이 어떻게 연주를 하던 도제식 수업으로 그대로 따라 배우지만, 그 이후에는 곡에 무조건 따르기보다는 연주자에게 훨씬 더 많은 변주의 재량권이 주어진다. 골드베르그 변주곡이 '서양의 작은 우주'라면 '우리나라의 작은 우주'는 산조라고 하고 싶다.

산조가 이렇게 변주곡의 형태를 지니게 된 것은 시나위나 판소리를 연주할 때 나타나는 즉흥적 허튼 가락을 단편적으로 흉내 내면서 연주하였기 때문이다. 시나위는 무속음악이었기 때문에 무당 굿판에서 악사들이 흥에 겨워 즉흥적으로 허튼 가락을 연주했고, 판소리 역시 상황에 따라 소리꾼이 가락에 변화를 줬던 때문에 변주가 가능했던 것이다. 산조는 이와 같은 허튼 가락의 연주를 보다 체계화하고 또 음악적인 형태로 연주함으로서 탄생하게 됐다.

물론 우리나라 산조는 악기마다 거의 각각의 산조가 있다. 즉 가야금, 해금, 대금, 거문고, 피리 등 수없이 많다. 아 가운데 필자가 꼭 일청(一聽)을 권하고 싶은 것은 가야금 산조다. 지금 가야금 산조를 들어볼 수 있는 CD는 몇 장 있지만, 그 가운데 꼭 들어봐야 할 것은 우리나라 가야금 산조의 양대 축이라고 말할 수 있는 김죽파의 가야금 산조와 성금연의 가야금 산조이다.

   
▲ ⓒ김선호 음악칼럼니스트

1911년 전라남도 함평에서 태어난 김죽파는 전라도 가야금산조의 창시자인 김창조의 손녀이다. 김죽파의 가야금 산조는 다른 가야금 산조에 비해 약간 낮은 음률이 강조돼 있다. 그래서 가만히 들어보면 어딘가 약간 탁하면서도 애절하며 우수에 젖은 듯한 코드를 읽어볼 수 있다. 때문에 저음에서는 풍부하고도 섬세한 가락의 깊은 울림이 너울처럼 가슴에 와 닿아 자리를 잡는다. 이런 특성을 지닌 김죽파류의 연주를 편의상 가야금 산조 중에서도 '남도가락'이라고 일컫기도 한다.

   
▲ ⓒ김선호 음악칼럼니스트

한편 성금연의 가야금 산조는 이른바 '충청가락'이라고도 한다. 성금연은 애초 남도가락을 배웠지만 충청가락의 원조라고 할 수 있는 이차수의 가야금 산조에 심취하면서부터 충청가락에 매료되어 버렸다. 물론 성금연은 이차수에게 직접 사사받은 것은 아니고 이차수의 제자인 박상근으로부터 사사 받았다. 성금연의 연주는 대단히 활기있고 화려하며 드라마틱하다. 때문에 소리는 대단히 영롱하고 투명해 힘차게 들려, 듣는 이로 하여금 깊이 빠져들게 만든다.

비교가 적절할지는 모르겠지만 이 두 명인의 연주를 번갈아 듣노라면 이런 생각이 든다. 캐나다의 피아니스트 글렌굴드는 2차례에 걸쳐 바하의 골드베르그 변주곡을 연주했다. 첫 연주는 1955년에 있었는데 이때의 연주는 마치 성금연의 가야금 산조를 듣는 것과 같고, 글렌굴드가 사망하기 바로 1년 전에 있었던 1982년 골드베르그 변주곡의 연주는 마치 김죽파의 가야금 산조의 연주를 듣는 것과 같은 느낌이 든다.

필자는 구성진 가락의 가야금 산조를 들을 때면, 왠지 모르게 질곡 속의 인생을 허탈하면서도 관조적으로 읊은 이백의 '사조루'라는 시가 절로 떠오른다. 여기 한 수 옮긴다. 이 시는 앞의 4행과 맨 뒤의 4행이 압권이다.

선주의 사조루에서 교서 숙운을 전송하며

나를 버리고 가는
어제는 잡을 수 없고
내 마음을 어지럽히는
오늘은 번뇌가 많다

만리 긴 바람은 기러기 떠나보내고
이런 날 높은 루대에 올라 술을 마시리
봉래의 문장 골격 강인한 건안의 문체
중간에 사조의 문장 맑고도 수려하다
탈속한 빼어난 흥취 웅장한 생각은 하늘을 날고
푸른 하늘 위  밝은 달 보고 싶었네

칼을 뽑아 물을 잘라도 물은 다시 흐르고
잔 들어 시름을 삼켜 봐도 시름은 더하네
우리네 인생살이 뜻대로 되지 않으니
내일 아침엔 머리 풀고 뱃놀이나 갈거나

宣州謝眺樓餞別校書叔雲
(선주 사조루 전별 교서 숙운)

棄我去者(기아거자)
昨日之日不可留(작일지일불가류)
亂我心者(난아심자)
今日之日多煩憂(금일지일다번우)
長風萬裏送秋雁(장풍만리송추안)
對此可以酣高樓(대차가이감고루)
蓬萊文章建安骨(봉래문장건안골)
中間小謝又淸發(중간소사우청발)
俱懷逸興壯思飛(구회일흥장사비)
欲上靑天覽日月(욕상청천람일월)
抽刀斷水水更流(추도단수수갱류)
擧杯消愁愁更愁(거배소수수갱수)
人生在世不稱意(인생재세부칭의)
明朝散發弄扁舟(명조산발롱편주)

* 중국에서는 위 시의 일부분으로 노래를 만들어 부르는 것이 있다. 
칼을 뽑아 물을 잘라도 물은 다시 흐르고
잔 들어 시름을 삼켜 봐도 시름은 더하네
우리네 인생살이 뜻대로 되지 않으니
내일 아침엔 머리 풀고 뱃놀이나 갈거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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