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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망하고 씁쓸한 노회찬의 마지막
<기자수첩>진보정치의 거목, 자신의 광장을 잃다
2018년 07월 23일 16:01:43 김병묵 기자 sisaon@sisaon.co.kr

(시사오늘, 시사ON, 시사온=김병묵 기자)

서울동작을 재보선이 열렸던 2014년 7월도 올해처럼 폭염이었다. 국립 현충원 깊숙한 곳에서 노회찬 후보가 선거 유세 중이었다. 워낙 더운 날이라 사람들이 얼마 없어 노 후보는 금방 인사를 하고 발길을 돌리려 했다. 도저히 다시 걸어서 내려갈 엄두가 나지 않았던 기자는 염치불구하고 입구까지만 차를 좀 태워달라고 부탁했다. 흔쾌히 “그러세요”라고 말한 노 후보는 옆자리에서 특유의 농담을 들려줬다.

“아이구, 이렇게 더운데…정치도 취재도 다 먹고 살자고 하는 일 아닙니까. 살자고 하는 일인데 죽도록 하면 어떻게 해요. 하하.”

그렇게 말하던 그가 오늘 세상을 떠났다는 소식이다. 살자고 하던 정치, 하지만 불법 정치자금과 연루되면서 스스로 몸을 던졌다.

한국 진보정치의 한 축을 이루고 있었고, 현역 원내 정당의 원내대표였던 그의 마지막 치고는 너무도 허망했다.

고인은 부산 출신으로 1973년 경기고등학교 1학년 재학 중 유신독재에 반대하는 유인물을 제작, 배포하면서 민주화운동을 시작했다. 이후 노동운동가로 활동하다가 2004년 제17대 국회에서 비례대표로 처음 원내에 입성했다. 심상정 의원과 함께 현 정의당의 축대를 세운 인물이다.

제도권 정치인으로서도 파란만장한 길을 걸었던 그다. 제18대 총선 낙선 이후 2012년 제19대 총선서는 압승과 함께 원내에 돌아오지만, 삼성X파일을 폭로한 뒤 이로 인해 의원직을 상실했다. 제20대 총선에서 다시 당선되면서 유이(唯二)한 진보정당 3선의원이 됐다.

최근까지도 활발한 방송활동을 벌여온 노 의원은 걸출한 입담을 앞세워 대중들에게도 높은 인지도를 쌓은 스타정치인이기도 했다. 민주당의 한 중진 의원은 지난 2016년 노 의원을 가리켜 “우리 당에 있었으면 지금 5선은 했지”라고 추켜세우기도 했다.

그러나 노 의원은 진보정당에서의 정치를 고집했다. 지난 2016년 본지 인터뷰에선 다음과 같은 생각을 털어놨다.

“개인적으로는 험난한 길이 맞다. 예를 들면 실력을 쌓아서 큰 회사에 취직하면 될 일을, 취직은 안하고 작은 회사를 창업하겠다고 하니 힘들지 않을 수 있겠나. 그런데 이게 개인을 위한 창업이 아니고, 한국 사회를 위한 과업이다. 우리 사회가 발달하려면 훌륭한 정치인도 많이 나와야겠지만, 구조적으로 소외된 사람들을 더 많이 대변하는 진보정당이 필요하다. 내가 국회의원을 한 번, 두 번 더 하는 것보다 진보정당이 뿌리내리는 일이 내가 바라는 사회가 빨리 오는 길이다.”

그러던 노 의원은 불법 정치자금을 받았다는 혐의를 쓴 채 떠났다. 그리고 유서로 추정되는 서한에 이를 긍정하는 글을 남겼다. 이로 인해 노 의원의 죽음은 단순한 한 정치인의 부고(訃告)가 아닌, 한국 진보정치에 큰 상처로 남게 됐다. 자신이 평생을 걸고 쌓아온 탑의 귀퉁이를 스스로 허무는 꼴이다.

불법 정치자금은 한국에서 정치인으로 살아가다 보니, 노 의원도 피하지 못하고 맞닥뜨렸던 흔한 유혹일 수도 있다. 하지만 그는 잘못된 선택을 했고, 아무도 그의 선택을 감싸 주진 못한다. 더군다나 이젠 해명을 듣고 싶어도 들을 길이 없다. 그가 기자에게 했던 말처럼, 무엇이든 ‘살자고 하는 일’이었는데 일단 살았어야 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든다.

같은 날 소설 <광장>을 쓴 한국 문학계의 별 최인훈 작가도 세상을 떠났다. 그의 대표작 <광장>의 마지막에 주인공은 그가 원하던 광장을 찾지 못하고, 바다에 몸을 던진다. 진보정치의 대부와 부정에 물들어 실패한 정치인 사이에서, 노 의원도 자신의 광장을 찾지 못한 것일까.

충격 속에서 당분간 그를 향한 아쉬움, 그리움, 그리고 책망의 목소리가 나올 전망이다. 하지만 노 의원의 공과(功過)를 논하는 과정에서 그가 한국 진보정치의 거인으로 걸어온 발자국마저 지울 수는 없을 것 같다. 그래서 더욱 씁쓸하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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