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맞는’ 새만금 굴곡진 32년의 개발사, 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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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맞는’ 새만금 굴곡진 32년의 개발사, 왜?
  • 정인균 기자
  • 승인 2023.08.23 19:3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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잼버리 사태로 뜻하지 않은 '뭇매' 새만금 탓?
30년 이상 이어진 국책 사업, 크나큰 시련들
8개 정권에서 정치적 산물로 전락.. 최근 속도 붙어

[시사오늘·시사ON·시사온=정인균 기자]

새만금개발사업이 많은 풍파를 겪고 최근 속도를 내고있다. ⓒ시사오늘(그래픽=정세연 기자)
새만금개발사업이 많은 풍파를 겪고 최근 속도를 내고있다. ⓒ시사오늘(그래픽=정세연 기자)

전라북도의 한이 서린 '새만금개발사업'이 최근 잼버리 사태와 얽히면서 뜻하지 않은 뭇매를 맞고 있다.

 

잼버리 사태로 뜻하지 않은 '뭇매' 새만금 탓?


문제는 지난 4일에 불거졌다. 이날 개최된 '2023 새만금 세계 스카우트 대회'에서 온열 환자가 500명 이상, 벌레 물림 등의 증상으로 병원을 찾은 사람이 1000명 이상 나온 것이다.

사실 4년마다 개최되는 '잼버리 대회'에서 환자가 속출하는 현상은 비일비재하다. 직전 대회인 2019년 북미 잼버리 대회에서도 매일 1000여 명의 환자가 영내 병원을 찾았고, 2015년 일본 야마구치현에서 개최된 잼버리 대회에서도 약 3000명에 달하는 참가자가 의료진의 도움을 받았다. 이중 온열 환자도 300명가량 나왔다.

전문가들은 새만금 잼버리 대회의 문제는 온열 환자의 숫자가 아니라 미숙한 대회 운영에 있다고 지적한다. 참가자는 1만명 이상 늘어났지만 상주 의료진은 지난 대회의 절반 수준이었고, 배수 문제는 개최날까지 문제가 돼 대회 기간 내내 해충이 들끓었다.

구체적으로 따지고 보면 잼버리 대회의 운영위원회와 전라북도, 중앙 정부 등의 책임이 크겠지만, 불똥은 새만금개발사업에까지 튀게 됐다.

대회가 간척지인 새만금에서 개최된 점이 크게 부각되며 새만금개발사업 자체에도 비판이 쏠리고 있는 것이다. 새만금 고속도로와 새만금 국제공항 등을 짓는데 들어간 세금이 재조명을 받았고, 그 과정에서 어떤 정부가 어떤 편의를 봐주었는지까지도 논란이 되고 있다.

사실 새만금개발사업은 30년 넘게 진행되어 온 국책 사업이다. 공항과 고속도로 건설 또한 전체 사업 중 2단계에 해당하는 '교통 건설'과 관련된 것으로, 사업 재개 단계에서부터 예정된 것이었다.  

새만금 개발 사업은 본래 "안정적인 식량을 공급하겠다"는 취지로 시작된 '식량 보충' 사업이었다. ‘새만금’이라는 이름은 만경 평야의 ‘만’자와 김제 평야의 ‘금’자, 그리고 새롭게 확장한다는 뜻의 ‘새’자를 붙여 만들어졌다. 이름에서부터 만경·김제 평야와 같은 옥토를 만들어내겠다는 포부가 담긴 것이다.

 

30년 이상 이어진 국책 사업, 크나큰 시련들


1970년대까지 서남 해안 공사 중 하나로 치부되던 새만금개발사업이 활개를 띤 건 1987년부터다. 대통령 선거 한창이던 당시 노태우 후보 측이 '호남 달래기'의 일환으로 '새만금 간척 사업'이라는 카드를 꺼내 들었다.

노 전 대통령은 대선 운동을 하며 '새만금 종합개발사업 기본 계획'을 발표했고, 이름도 '새만금 간척 종합 사업'으로 바꾸었다. 새만금 사업은 이후 규모가 급격히 커지게 됐고, 1990년대 초반에 이르러서는 지금의 김제, 부안, 군산을 아우르는 대규모 간척 사업으로 몸집을 키웠다.

하지만 이내 실효성 문제에 부딪혔다. 정부 부처의 경제 관련 인사들이 새만금 사업의 경제적 효과에 회의를 가진 것이다. 많은 경제 전문가들은 재원 조달과 실효성 등을 문제 삼으며 '사업 추진 불가'를 선언했고, 선거 막바지까지 새만금개발에 회의적인 의견을 내비쳤다.

호남표를 포기할 수 없었던 노 전 대통령은 전문가들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선거 엿새 전 기자회견을 열고 공약을 강행할 것을 선언했다. 이것이 새만금개발사업의 시작이었다.

노 전 대통령의 기자회견으로 전북도민들의 성난 민심은 한 풀 꺾이는 듯 했으나, 당선 후에 더 큰 실망감을 떠안아야 했다. 청와대에 입성한 노태우정부가 예산 부족 등의 이유로 개발 추진을 차일피일 미루었기 때문이다. 

미루어지던 새만금개발사업은 김대중 당시 신민주연합당 총재의 건의로 다시 논의가 시작 됐고, 다시금 속도를 내게 됐다.

결국 1991년 11월28일 새만금개발사업의 시작을 알리는 기공식이 열렸고, 새만금개발은 1998년 1호 방조제를 완공하는 등 천천히 순항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순항도 잠시. 새만금의 시련은 다시 찾아왔다. 사업 6년 차에 접어들던 1996년, 간척 사업으로 조성된 경기 지역의 시화호가 '죽음의 호수'로 변하자, 환경 단체가 "새만금 또한 예외일 리 없다"며 사업의 전면 재검토를 요구한 것이다.

당시 환경 단체들의 요구는 꽤나 거세고 단호했다. 끈질긴 논의 끝에 결국 새만금사업은 법정 다툼으로까지 넘어가게 된다.

엎치락 뒤치락 하던 법정 다툼은 2001년부터 2006년까지 약 6년간 이어졌고, 결국 법원은 정부의 손을 들어줬다. 새만금개발사업의 공익성이 더 크다고 판단한 것이다.

법정 다툼이 이어진 기간은 6년이 채 안되지만, 전문가들은 이 소송으로 새만금 개발이 약 10년은 지연됐고 분석했다. 

 

8개 정권에서 정치적 산물로 전락.. 최근 속도 붙어


이른바 '호남 정권'이었던 김대중·노무현 정권에서의 새만금 개발이 환경 문제에 가로 막히며 이렇다할 속도를 내지 못했고, 환경친화적인 공법의 도입 등 개발 여건이 많이 변화했기 때문이다.

소송이 모두 마무리 되자 이내 이명박 정권이 들어섰다.

처음 이명박정부는 새만금사업에 속도를 내는 듯했다. 이명박 전 대통령은 새만금을 '동북아 경제 중심지'로 개발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했고, 당초 70%로 정했던 농업 용지 비율을 30%로 낮추고 산업 용지 비율을 늘렸다.

하지만 이명박정부의 개발 의지도 오래가진 못했다. 2009년 초 이 전 대통령이 4대강 살리기 사업을 발표하고 여기에 총력을 기울였기 때문이다. 4대강에 밀려 뒷전이 된 새만금개발사업은 이내 방수제 착공 문제가 불거지며 속도가 빨라지기는커녕 오히려 사업 속도가 지연됐다.

박근혜·문재인 정부 들어서 새만금개발사업은 본연의 속도를 냈다고 평가 받는다. 특히 문재인정부에서는 새만금 국제공항 건설사업의 예비타당성 조사를 면제해 주는 등 개발에 힘을 크게 보탰다.

현재의 윤석열정부도 마찬가지다. 지난 1년여 간 정부는 새만금 개발에 총 6조 600억 규모의 예산을 쓰는 등 개발에 힘쓰고 있다. 새만금 내부 인프라 구축에도 탄력을 붙이고 있어 올해 새만금개발사업은 속도가 더 빨라질 전망이다.

이렇듯 새만금은 30년이 넘는 세월 동안 총 8개의 정권을 거치며 수많은 풍파를 겪어왔다.

이런 저런 시련들을 이겨내고 꿋꿋이 앞으로 나아가고 있는 새만금은 2050년 완공될 예정이다.

담당업무 : 정치부 기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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