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영 스피커’ 된 전직 대통령의 ‘말’ [주간필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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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영 스피커’ 된 전직 대통령의 ‘말’ [주간필담]
  • 김자영 기자
  • 승인 2023.10.15 14:4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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韓 전직 대통령 행보, ‘진영’ 대표성 커
文 전 대통령, 논란 때마다 현 정부 직격

[시사오늘·시사ON·시사온= 김자영 기자]

문재인 전 대통령은 지난 9월 19일 오후 서울 영등포구 63빌딩에서 열린 9·19 평양공동선언 5주년 기념식 인사말에서 보수정부에 대해 비판적인 발언을 했다. ⓒ 연합뉴스
문재인 전 대통령은 지난 9월 19일 오후 서울 영등포구 63빌딩에서 열린 9·19 평양공동선언 5주년 기념식 인사말에서 보수정부에 대해 비판적인 발언을 했다. ⓒ 시사오늘 권희정 기자

2023년 현재 생존하는 대한민국 전직 대통령은 취임 순으로 이명박·박근혜·문재인 전 대통령, 세 분입니다. 시장을 다녀갔을 뿐인데도 이들의 행보라면 정치권에선 하나의 뉴스가 됩니다.

지난 5월, 이명박 전 대통령이 측근들과 함께 청계천을 찾은 것, 추석을 앞둔 지난 9월 말엔 박근혜 전 대통령이 대구 달성군 현풍시장을 방문한 것, 문재인 전 대통령이 지난 4월 말 경남 양산 사저 인근에 ‘평산책방’을 연 것 등입니다. 

이를 두고 범인들 사이에선 ‘정치 재개냐’ ‘어떤 역할을 할 것이냐’ 등 이야기가 나옵니다. 한때 국가 최고 지도자였기에, 그 무게감만큼 말 한마디, 행동 하나에 여러 해석이 덧붙여지기 때문입니다.

그 중에서도 문 전 대통령은 활동이 활발한 축에 속합니다. 책방 운영뿐만 아니라 페이스북·인스타그램 등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통해 자신의 의견을 자주 발표합니다. <평화의 힘>, <1950 미중전쟁> 등 책을 추천하는 도서정치, 그를 다녀간 민주당 인사가 돌아와 문 전 대통령이 한 말을 전하는 전언정치 등으로 정치권과 여론에 영향을 미칩니다. 

문 전 대통령은 세계 잼버리 대회 논란 때 “우리는 국격을 잃었고, 긍지를 잃었다”고 말했고, 홍범도 장군 흉상 이전 논란에 대해선 “이 정도 논란이 커졌으면 대통령실이 나서서 논란을 정리하는 것이 옳다. 흉상 철거 계획을 철회해 역사와 선열에 부끄럽지 않게 해달라”며 현 정부를 직격했습니다.

지난 4월 일부 공개된 다큐멘터리 영화 <문재인입니다>에서 문 전 대통령이 “5년간 이룬 성취가 순식간에 무너지고 과거로 되돌아가는 모습을 보면서 허망한 생각이 든다”고 말한 것은 민주당은 물론 보수 정당 지지자들까지 자극했습니다. 

한국에도 대통령 퇴임 후 집짓기 봉사를 비롯해 세계평화·인권을 강조하는 행보로 많은 이들에게 존경받았다던 미국 지미 카터 전 대통령과 같은 모범 사례가 있다면 좋았겠지만, 진영 간 양극화가 심해진 지금 전직 대통령의 행보는 이보다 진영의 대표로 해석되는 말들을 늘어놓는 경향이 큽니다. 

문재인 전 대통령 입장에서 진심으로 나라의 안보를 걱정해 “‘평화가 경제’인만큼 9·19 평양공동선언 이어달리기가 하루빨리 이루어져야 한다”(9·19 평양공동선언 5주년 기념식)고 말했을지 몰라도, 진영 논리가 지배하는 현 정치 상황에선 말의 의중이 다르게 전달될 수 있을뿐더러, 그의 조언이 현실화할 가능성은 극히 작습니다. 되려 기념식 이후 정부 여당 내에서 9·19 군사합의 효력 정지 주장이 나오는 상황입니다. “‘안보는 보수정부가 잘한다’, ‘경제는 보수정부가 낫다’는 조작된 신화에서 이제는 벗어날 때가 됐다”는 말도 사회 갈등을 키울 소지가 다분합니다. 

문 전 대통령을 지지했던 이들로선 더 역할 해 주기를 바라는 마음이 있을 수도 있고, 윤석열 정부 출범 이후 파헤쳐진 서해 공무원 피살 사건, 문재인 정부 통계 조작 의혹 등으로 이에 대한 공격을 방어할 필요성도 느낄 수 있습니다. 

문재인 전 대통령은 역대 대통령 중 가장 높은 40%대 지지율로 임기를 마쳤지만, 동시에 그에 상응하는 콘크리트 비토층을 형성했다는 비판을 받기도 합니다. 이 기간동안 나는 선이고, 상대방은 악으로 규정하는 선악 이분법이 강화됐다는 전문가들의 평가도 있습니다. 

일본 <교도통신> <마이니치신문> 등 보도에 따르면 최근 자민당 아소 다로 부총재가 의원들에게 “한국의 역대 대통령은 5년 임기를 마치면 대부분 살해되거나 체포됐다”며 한일 교류 지속의 어려움을 나타낸 발언을 했다고 합니다. 일본 내에서 망언 제조기라는 별명이 붙은 이의 말이라고 하지만, 역대 대통령들의 비극이 되풀이되어서 괜찮을까 하는 우려가 드는 대목입니다.

전직 대통령이 ‘진영 스피커’만이 아닌 ‘대한민국 대표자’로 존경받는 문화가 필요해 보입니다. 그들이 받는 예우는 진영이 아닌 국민세금으로 만들어진다는 것 잊어서는 안됩니다.

담당업무 : 정치부 기자입니다.
좌우명 : 생각대신 행동으로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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