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과 다른 한동훈표 자객공천…‘그때는 달랐다’ [옛날신문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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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과 다른 한동훈표 자객공천…‘그때는 달랐다’ [옛날신문 보기]
  • 윤진석 기자
  • 승인 2024.03.04 11:0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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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P‧박철언‧이기택 상대로 저격공천…결과는?

[시사오늘·시사ON·시사온=윤진석 기자]

15대 총선 당시에도 신한국당에서는 김종필·박철언·이기택을 겨냥해 신진 등을 내보내는 저격 공천을 단행한 바 있다.ⓒ시사오늘
15대 총선 당시에도 신한국당에서는 김종필·박철언·이기택을 겨냥해 신진 등을 내보내는 저격 공천을 단행한 바 있다.ⓒ시사오늘

 

한동훈 국민의힘 비대위원장은 22대 4‧10 총선을 앞두고 친명(이재명) 심판론, 86운동권 특권 청산론을 내왔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있는 인천 계양을에는 대선주자급인 원희룡 전 국토교통부 장관을 내보냈다.
 

전대협 출신의 더불어민주당 정청래 의원 지역구인 마포을에는 운동권 특권을 비판해온 함운경 민주화운동동지회 회장을 공천했다.

 

모두 자객 공천인 셈이다.

 

15대 국회의원 선거인 1996년 4‧11 총선에서도 자객공천이 화제를 모은 바 있다. 그때는 자객 공천이라는 용어 대신 저격 공천 등으로 지칭했다. 

 

하지만, 요즘식 자객공천과는 사뭇 다른 분위기다. 어떤 점이 다를까?

 

김종필 겨냥 육사 후배 이진삼  


15대 총선을 앞두고 신한국당은 김종필(JP) 자민련 총재를 겨냥했다. JP 아성인 충청남도 부여에 이진삼 전 체육청소년부부장관을 전격 공천했다. 이 전 장관은 JP가 타지에서 고등학교를 나온 점을 지적하며 자신이 본토박이 부여고 출신임을 어필했다. 

JP와 이 전 장관은 고향 선후배 사이였다. 육사에서도 선후배 사이기도 했다. 왕래도 하는 사이였다.

이 때문에 자민련은 이 전 장관이 출마한다는 소식을 듣고 불쾌한 반응을 보였다고 알려져 있다.  
 

“자민련은 고향후배를 내세워 김 총재에게 상처를 입히겠다는 불순한 의도라며 민자당(신한국당으로 당명 바뀌기 전)과 이 씨를 맹렬히 비난했다. 안성열 대변인은 논평에서 ‘정치테러 혐의로 실형까지 살았고 상무대 사건에 연루돼 장기간 해외도피까지 했던 사람을 조직책으로 임명한 것은 무슨 속셈이냐’고 따졌다. 다른 인사들도 ‘말 안 듣는다고 잡아넣어 길들인뒤 선배에게 도전하도록 하는 것은 정치도의상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일제히 성토했다.”
- 1995년 9월 21일 <동아일보> 기사 중-

 

박철언 맞상대로 경북고 후배 이원형 


신한국당은 대구 수성갑에도 저격 공천을 단행했다. 

자민련의 박철언 부총재의 맞상대로 같은 경북고 10년 후배인 이원형 전 시의원을 공천했다. 이 전 시의원은 바닥 스킨십을 넓히며 박 총재를 압박했다. 당원 배가운동에 열중했다. 대구시의원과 구청장 선거 등 수차례 지역을 다져온 점을 강점으로 내세웠다. 

6공의 황태자인 점을 집중적으로 공격하겠다는 뜻도 분명히 했다.
 

“유권자의 동정과 눈물에 기대어 복권을 꿈꾸는 부패한 황태자를 위해 또다시 우리 수성구민이 희생양이 되어서는 안 된다.”
-1996년 2월 27일 <조선일보> 기사 중-

 

 

“이기택 이기라”, 김운환 설득 


부산 해운대‧기장갑에서는 중진의 이기택 민주당 상임고문이 딱 버티고 있었다. 신한국당은 이 의원도 겨냥했다. 이번엔 자당의 김운환 의원을 내보냈다.

김 의원 경우 처음엔 망설였다고 전해진다.

이런 그를 설득한 이는 김영삼 당시 대통령이었다. 
 

“김 의원은 애초 이 고문과의 격돌을 피하려 했으나 김 대통령이 직접 전화를 걸어 ‘반드시 맞대결해 낙선시라’고 지시하는 바람에 정면대결하게 된 것으로 전해졌다. 신한국당은 지금도 김 의원이 다소 앞서나가고 있지만 선거전이 본격화하면서 이 지역 선거를 ‘김영삼 대 반 김영삼’ 구도로 몰아가 압승한다는 방침이다.”
-한겨레신문 1996년 3월 5일 기사 중-


저마다 처한 환경이나 역량은 다르지만, 이진삼‧이원형‧김운환 모두 거물들을 이기려 출마한 자객들인 점은 비슷하다.  

총선 결과 명운은 엇갈렸다. 이진삼‧이원형은 각각 JP‧박철언을 꺾지 못하고 고배를 마셨다. 김운환은 이기택을 이기고 원내 배지를 달았다. 

김운환이 이긴 데에는 부산을 정치적 고향으로 둔 YS의 영향이 컸기 때문으로 보인다. YS vs 반YS로 구도를 만들어 이기자는 여권의 전략이 통했다고 분석된다. 

단적으로 15대 총선 때를 예로 든 것이지만, 훑어보면 공통점이 있다. 당대표급의 거물들이 출마하는 곳에는 체급상 비교하기 어려운 약체 후보들이 나섰다는 것이다. 

정세운 정치평론가는 관련해 “그것이 옛날식 자객공천의 특징”이라고 전했다.

즉 “특징을 보면 거물들이 나오는 곳에는 상대 당에서 체급이 약한 후보를 내보내는 등의 약간의 예우를 해준 측면이 있었다”며 “지금처럼 계양을에서 맞붙는 ‘원희룡 vs 이재명’과 같은 강대강 빅매치의 경우는 찾아보기 힘들었다”고 말했다. 

그렇다면 언제부터 강대강 빅매치 대결판이 시작됐을까?

정 평론가는 “거슬러 올라가면 2010년 성남분당을 보궐선거에서 혈투를 벌였던 손학규‧강재섭 두 전직 대표 간의 빅매치부터였을 것으로 본다. 당시 손 전 대표가 분당을에 출마하자 한나라당에서는 강 전 대표를 내보낸 바 있다”며 “그것이 지금의 한동훈식 자객공천 흐름으로 이어져온 것이 아닐까 싶다”고 가늠했다. 

담당업무 : 정치부 기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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