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기현께 드리는 편지…‘선거제 개편에 올인해 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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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현께 드리는 편지…‘선거제 개편에 올인해 주십시오’
  • 정진호 기자
  • 승인 2023.04.12 21:5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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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원 정수 축소 주장, 정략적 성격 강해…선거제 개편 동력 잃지 않길

[시사오늘·시사ON·시사온= 정진호 기자]

본 기사는 편지 형식의 기사입니다. 기사 형식상, 일반적 기사와 달리 존칭을 사용했음을 미리 밝힙니다. <편집자주>

김기현 국민의힘 대표의 의원 정수 축소 주장은 선거제 개편 동력을 잃게 만들 위험이 있다. ⓒ시사오늘 김유종
김기현 국민의힘 대표의 의원 정수 축소 주장은 선거제 개편 동력을 잃게 만들 위험이 있다. ⓒ시사오늘 김유종

김기현 대표님께.

대표님. 지난 4월 6일 최고위원회의에서 대표님이 국회의원 정수 감축을 주장하셨다는 기사를 읽었습니다. 국회 전원위원회에서 의원 정수 축소를 논의해야 한다면서, 최소 30석 이상 줄일 수 있다는 구체적 수치까지 제시하셨지요. 10일에는 더불어민주당을 향해 ‘300명 정수 중 10% 정도 감축하는 것이 왜 안 되나’라고도 하셨습니다.

저는 개인의 생각에 이의를 제기하고 싶은 마음은 없습니다. 많은 국민들이 그렇듯, 대표님도 의원 수가 너무 많다고 판단하셨을 수 있지요. 하지만 집권여당의 대표로서, 선거제 개편 논의가 그 어느 때보다 활발해지고 있는 이 시점에 꼭 의원 정수 감축 이야기를 꺼내셔야 했는지 의문입니다.

대표님도 잘 아시겠지만, 의원 정수 축소는 불가능에 가까운 미션입니다. 역사상 단 한 번 있었던 의원 정수 축소는 IMF 외환위기라는 미증유의 사태 속에서, 그것도 시민사회와 김대중 당시 대통령이 나서 국회를 압박한 뒤에야 가능했습니다. 그마저도 4년 뒤 총선에서는 다시 299석으로 복구됐고요. 의원 정수 축소는 현실성도, 실익도 없는 정치적 레토릭일 뿐입니다.

그럼에도 대표님이 이 주장을 꺼내든 건 아마 좀처럼 반등 기회를 찾지 못하고 있는 지지율 제고를 위함이었을 거라 생각합니다. 다수 국민이 정치를 실망스럽게 바라보고 있고, ‘이런 국회의원들이 왜 필요한가’라고 꾸짖고 있으니 거기 편승해서 여론을 정부여당 편으로 끌어오겠다는 계산이겠지요. 저는 그 역시도 정치적 전략 중의 하나일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정치권에서 의원 정수 축소를 정국 반전책으로 활용한 게 한두 번 있었던 일도 아니고요.

그러나 대표님. 부디 이번만은 그러지 않으셨으면 합니다. 이미 꺼낸 말을 주워 담지는 못하겠지만, 더 이상은 언급하지 않으셨으면 합니다. 제가 국회를 신뢰해서 그런 것도 아니고, 의원님들 일자리를 걱정해서 그런 건 더더욱 아닙니다. 의원 정수 축소라는 ‘블랙홀’에 빠져 선거제 개편 논의가 유야무야되는 것 아닐까 하는 우려 때문입니다.

물론 선거제 개편이 결코 ‘만병통치약’은 아닙니다. 제왕적 대통령제라는 권력구조, 권력자에게 줄을 서야 살아남을 수 있는 공천제도가 바뀌지 않는 이상 정치가 근본적으로 변화하기는 어렵다고 봅니다. 하지만 선거제도라도 바꾸지 않으면, 우리 사회가 겪고 있는 문제들을 해결할 실마리조차 찾을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대표님. 지금 우리나라 인구의 절반 이상이 수도권에 모여 삽니다. 당연히 국회의원 의석수도 수도권이 제일 많습니다. 지역구 253석 중 121석이 수도권이지요. 사람이 많이 모여 사니 국회의원도 많고, 국회의원이 많으니 발전도 빠릅니다. 발전이 빠르니 사람들은 더 모여들고요. 자연히 지방은 소멸합니다.

수도권은 좋기만 한가요. 좁은 땅에 사람이 넘쳐나니 경쟁은 치열해집니다. 평생 월급을 모아도 집 한 채 갖기 어려운데, 물가는 어찌나 비싼지 저축도 어렵습니다. 당장 의식주 해결이 안 되는데 무슨 결혼을 하고 애를 낳을까요. 지방소멸 다음은 인구소멸입니다. 이건 예정된 결말입니다.

지금 같은 선거제도로 이 지독한 악순환을 풀 수 없다는 건 대표님이 더 잘 아실 겁니다. 어떤 식으로든 변화를 주지 않으면 지방소멸, 인구소멸이라는 위기에 직면한 대한민국은 존립 자체를 위협받을 수밖에 없습니다. 이번 선거제 개편 논의는 단순히 지역갈등을 완화하자거나 양당제의 폐해를 개선하자던 과거와는 차원이 다릅니다. 대한민국의 미래, 다음 세대를 위해 절박한 심정으로 접근해야 합니다.

그런데 대표님이 의원 정수 축소 이야기를 꺼내는 순간. 가뜩이나 어려운 선거제 개편 논의는 물거품이 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국민 앞에 생색만 내고 줄이니 마니 싸우다가 슬그머니 사라질 의원 정수 감축 논의를 위해, 변화의 주춧돌이 돼야 할 선거제 논의가 흐지부지돼선 안 되지 않겠습니까.

당대표로서 지지율 반등 계기를 만들고 총선 승리를 이끌어야 한다는 절박감은 너무 잘 알겠습니다. 하지만 대표님. 그 노력, 선거제 개편 말고 다른 방법으로 해주시면 좋겠습니다. 제발 한 번쯤은 당리당략을 떠나 미래 세대를 위해 진심을 다하는 국회의 모습이 보고 싶습니다.

담당업무 : 국회 및 국민의힘 출입합니다.
좌우명 : 인생 짧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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