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주 받으며 태어난 아이들이 지금 나라의 허리가 됐다 [이순자의 하루]
스크롤 이동 상태바
저주 받으며 태어난 아이들이 지금 나라의 허리가 됐다 [이순자의 하루]
  • 이순자 자유기고가
  • 승인 2023.04.29 20:45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당대를 보듬지도, 미래를 준비하지도 못하는 국가는 죄인

[시사오늘·시사ON·시사온=이순자 자유기고가)

정부의 산아제한 정책은 강경했다. 

둘째 아이를 임신했던 1978년 배가 불룩해 있는 내게 보건소 여자 직원이 두 명 찾아왔다. 

이미 첫 아이가 있는데 왜 또 아이를 낳으려 하냐면서 주먹으로 턱을 치받으며 윽박질러댔다. 

그 당시 대한민국 곳곳의 관청 문 위에는 ‘하나만 낳아도 삼천리는 초만원’ 이라는 표어가 크게 써 붙어 있었다. 

아기를 낳는 한국의 어머니들은 모두 죄인 취급받았다. ‘하나만 낳아도 삼천리는 초만원’이라는 표어는 결국 아이를 한 명도 낳지 말라는 말과도 같았다. 

그래도 한국의 어머니들은 악착같이 아기를 낳았다. 나 역시 이듬해인 1979년에 아이를 한 명 또 낳았다. 그리하여 아이는 모두 3명이 됐다. 

끝내 더 이상 묵과할 수 없었던 보건소에서는 반강제로 어머니들을 봉고차에 태워 산부인과로 데려갔다. 아이를 낳을 수 없게 하는 복강경 수술을 받게 하려는 것이었다. 어느 집은 부인 대신 남편들한테 정관수술을 받게 했다. 그 역시 시술 후에는 아이를 낳을 수 없게 만들려는 것이었다. 

산아제한 정책은 1960년대 시작해 90년대 중반에서야 끝났다. 30여 년 넘게 유지되다 겨우 풀려났다. 

이 기간 국가로부터 갖은 멸시와 구박을 받으면서도 어머니, 아버지들은 아기를 낳고 길렀다. 그렇게 천대받으면서 태어난 아이들이 지금의 40·50대·60대들이다. 가장 중요한 나라의 허리가 됐다. 

국가는 그 시대, 온갖 압박 속에서도 아기를 낳고 기른 엄마·아빠들에게 고마워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아직 국가는 당대의 부모들에게 고맙다는 말 한마디 없다.

반면에 지금은 어떠한가? 갖은 복지 혜택을 장려하면서 제발 아기를 낳아달라고 국가가 애원해도 요즘 젊은이들은 낳지 않는다. 그것이 바로 저출산이다. 

우리 때와 달리 시대는 바야흐로 끝을 모르는 양극화에 이르고 말았다. 말로 다 표현할 수 없는 무한경쟁 시대에서 젊은이들은 고심고심하며 쉽게 아기를 낳을 수 없는 슬픈 현실에 처해 있다. 

심지어 결혼까지 기피하는 현상마저 일어나고 있다. 정부에서 결혼과 출산, 육아를 장려함에도 불확실한 미래에 대한 두려움이 극치를 이뤄 좀처럼 나아가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격세지감이다. 돌아보니 화가 난다. 역대 국가 모두에 치밀어 오른다. 우리 때 국가는 그 시대 국민에게 뭘 해줬나? 생명마저 강제하며 희생만 강요할 뿐이었다. 복강경 수술할 때 공포에 떠는 어머니들을 위해 위로조차 했었나?

이후도 마찬가지다. 젊은이들이 이 처참한 지경에 이르도록 역대 국가는 뭘 해왔나? 당대를 보듬지도, 백년대계를 준비하지도 못하는 나라야말로 역적이다. 

오늘날 저출산 문제는 쉽게 풀어갈 수 없는 문제로 남은 것 같다. 

윤석열 정부는 다시금 면밀히 살펴봐야 할 것이다. 미래 세대를 위해 다음 시대까지 꿰뚫을 통찰력이 필요하다. 그러려면 이 시대 국민을 진심으로 아우르는 마음부터가 첫걸음이 돼야 한다. 차기 대선주자들도 더는 근시안적 정책을 들이밀 생각을 말아야 할 것이다. 

미래를 준비하지 못하는 지도자는 죄인이다. 
 

※ 시민 기고는 본지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글을 쓰는 이순자 씨는 서울 양천구 신월동에 사는 77세 할머니입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