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체포특권은 정말 폐지돼야 할까 [주간필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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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체포특권은 정말 폐지돼야 할까 [주간필담]
  • 정진호 기자
  • 승인 2023.06.17 10:5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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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체포특권은 민주주의 위기에 대비한 안전장치…폐지보다는 보완할 방법 찾아야

[시사오늘·시사ON·시사온= 정진호 기자]

윤관석·이성만 의원에 대한 체포동의안이 국회에서 부결되자 또 다시 불체포특권 폐지론이 고개를 들고 있다. ⓒ시사오늘 김유종
윤관석·이성만 의원에 대한 체포동의안이 국회에서 부결되자 또 다시 불체포특권 폐지론이 고개를 들고 있다. ⓒ시사오늘 김유종

또 다시 불체포특권이 도마에 올랐습니다. 2021년 더불어민주당 전당대회 ‘돈 봉투 의혹’과 관련, 정당법 위반 혐의로 구속영장이 청구된 윤관석·이성만 의원에 대한 체포동의안이 국회에서 부결되면서입니다. 이런 일이 있을 때면 늘 그렇듯, 이번에도 국회의원 불체포특권은 반드시 폐지해야 할 ‘만악의 근원’ 취급을 받고 있습니다.

그러나 정말 불체포특권이 ‘사라져야만 하는’ 제도인지는 의문입니다. 알려진 대로, 불체포특권은 왕의 전제권력을 견제하기 위해 탄생했습니다. 17세기 초 왕위에 오른 제임스 1세가 자신에게 반기를 드는 의원들을 자의적으로 체포·구금하자, 의회가 ‘자기 방어’를 위해 만든 법이 ‘의원특권법(Privilege of Parliament Act)’입니다. 불체포특권은 이 의원특권법이 개량·발전한 결과죠.

불체포특권 폐지를 주장하는 측은 바로 이 기원(起源)을 거론합니다. 민주주의가 안정적으로 정착된 지금, 절대왕정 시대의 유산인 불체포특권은 불필요한 ‘특권’ 이상도 이하도 아니라는 겁니다. 제정 당시의 취지는 온데간데없고 개인 비리를 방어하기 위한 역할만 하고 있으니, 이제는 폐지해야 한다는 논리죠. 여론조사 결과를 보면, 다수 국민들도 이 의견에 동의하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하지만 이 주장에는 맹점이 있습니다. 오늘의 정치 환경이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라는 막연한 믿음을 전제로 하고 있다는 거죠. 불체포특권은 지금처럼 안정된 상황을 상정해서 만들어진 제도가 아닙니다. 권위주의 정권이 출현해 민주주의를 무너뜨리려 하는 ‘비상사태’를 대비한 ‘안전장치’입니다. 여러 부작용이 있음에도, 대다수 민주주의 국가들이 불체포특권을 규정하고 있는 건 이런 이유죠.

더욱이 우리나라처럼 행정부의 권한이 비대한 국가에서는 ‘유사 권위주의’ 정권 출현 가능성이 결코 낮지 않습니다. 우리나라는 대통령이 여당을 통해 입법부를 어느 정도 통제할 수 있고, 인사권을 행사해 사법부에도 영향력을 미칠 수 있습니다. 특히 여대야소 상황이라면 대통령은 무소불위(無所不爲)의 권력을 휘두를 수 있죠. 이런 환경 속에서 ‘방탄 국회’가 꼴 보기 싫다는 이유로 불체포특권을 폐지하는 건 더 큰 문제를 낳을 소지가 있습니다.

꼭 폐지라는 극단적인 방법을 동원하지 않고도 불체포특권을 적절히 통제하는 방법도 존재합니다. 최근 국민의힘 권성동 의원은 체포동의안이 48시간 이내에 표결되지 않을 경우 가결된 것으로 간주하고, 무기명투표인 현행 방식을 기명투표로 전환하는 것을 골자로 하는 국회법 개정안을 발의했습니다. 이 정도 법안만 통과돼도 불체포특권을 개인 비리의 방패막이로 사용하는 일은 크게 줄어들 가능성이 높습니다.

우리 정치권에는 실현 가능성과 관계없이 일단 ‘내지르고 보자’는 식의 행태가 팽배합니다. 국회의원 수 감축이나 불체포특권 폐지 같은 공약이 대표적입니다. 하지만 이는 국민들에게 심리적 청량감은 줄 수 있을지언정, 실제로 문제를 해결하는 데는 전혀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이제는 우리도 잠깐의 시원함을 안겨주는 자극적인 말 대신, ‘인기는 없지만 합리적인’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봐야 하지 않을까요.

담당업무 : 국회 및 국민의힘 출입합니다.
좌우명 : 인생 짧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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