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경 해체’ 떠오르는 ‘의원 정수 축소’ 주장 [주간필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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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경 해체’ 떠오르는 ‘의원 정수 축소’ 주장 [주간필담]
  • 정진호 기자
  • 승인 2023.04.16 14:4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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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원 정수 줄이면 국회 신뢰 회복되나…정부여당이라면 근본적 해결책 제시해야

[시사오늘·시사ON·시사온= 정진호 기자]

김기현 국민의힘 대표의 의원 정수 축소 주장은 근본적 해결책과 거리가 멀다. ⓒ시사오늘 김유종
김기현 국민의힘 대표의 의원 정수 축소 주장은 근본적 해결책과 거리가 멀다. ⓒ시사오늘 김유종

2014년 5월 19일. 박근혜 당시 대통령이 국민 앞에 섰다. ‘세월호 참사’에 대해 사과하기 위해서였다. 그러면서 그는 폭탄선언을 던졌다. “고심 끝에 해경을 해체하기로 결론을 내렸다.” 해경이 제 역할을 못했으니 아예 없애버리겠다는 뜻이었다.

이 결정은 놀림거리가 됐다. ‘고심 끝에 해체’란 밈(meme)이 유행처럼 번졌다. 당연한 결과였다. 국민이 원하는 건 안전 시스템 개선이었다. 사람들의 요구와 해경 해체라는 조치 사이엔 논리적 정합성이 없었다. 이처럼 엉뚱하고 비합리적인 문제 해결 방식은 박근혜 정부의 이미지를 악화시킨 원인 중 하나였다.

2023년 4월 6일. 김기현 국민의힘 대표가 ‘국회의원 정수 축소’를 주장했다. ‘국회가 국민 신뢰를 회복하기 위한’ 방책이라는 게 그의 설명이다. 어디서 본 적 있는 논리 전개다. ‘일을 제대로 못하니 사람 수를 줄여라.’

물론 우리 국회엔 문제가 많다. 민생은 없고 정쟁만 있다. 국민이 아닌 권력자에 충성한다. 갈등을 해결하기는커녕 유발한다. 하나하나 열거하기도 어려울 지경이다. 국회가 국민 신뢰를 잃었다는 건 옳은 진단이다.

그러나 해결책이 이상하다. 국민이 국회를 신뢰하지 않는 것과 의원 정수 간에는 상관관계가 없다. 국민이 국회를 욕하는 건 일을 못해서지 머릿수가 많아서가 아니다. 의원 정수가 적을수록 국회가 원활히 돌아간다는 증거도 없다.

백번 양보해 의원 정수가 많은 게 문제라고 해도 김 대표의 제안이 비논리적인 건 마찬가지다. 의원 수를 줄여서 국민의 신뢰를 회복할 수 있다면, 30명만 줄여야 할 이유가 없다. 헌법이 허용하는 최소치인 200명까지 줄이는 게 낫다. 왜 10%, 왜 30명인가.

국민이 국회를 신뢰하지 않으면 어떻게 해야 하나. 민생을 우선하고 국민에 충성하며 갈등 중재에 나서야 한다. 그런데 김 대표는 여기서 의원 정수 축소를 꺼내들었다. 의원 정수를 감축하면 국회의원들이 국민과 민생만 바라보게 될까. 이상한 논리 흐름이다. 박근혜 정부가 안전 시스템 개선 요구에 ‘해경 해체’로 답한 것과 유사하다.

물론 김 대표도 ‘몰라서’ 그런 건 아닐 게다. 다수 의석을 앞세워 각종 법안을 밀어붙이는 거대 야당에 맞서려면 여론을 등에 업어야 하는데, 정부여당 지지율은 좀처럼 반등하지 못하고 있다. 김 대표 입장에선 지지율 확보가 절실하다. 의원 정수 축소는 이런 맥락에서 나온 고육지책(苦肉之策)일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정부여당이라면 냉철한 상황 진단과 합리적 처방에 집중해야 한다. 그래야 국민이 신뢰한다. 당장의 지지율 상승을 위해 엉뚱한 답을 내놓으면 국민은 정부여당을 믿지 않는다. 진짜 위기는 그런 불신이 쌓였을 때 온다. 늘 정도(正道)를 가시라. 그게 윤석열 정부를 위하는 길이다.

담당업무 : 국회 및 국민의힘 출입합니다.
좌우명 : 인생 짧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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