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준석·유승민 공천 리스크는?…‘야권통합’ YS, ‘이철승·이택희·이택돈’에 발목 [김자영의 정치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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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준석·유승민 공천 리스크는?…‘야권통합’ YS, ‘이철승·이택희·이택돈’에 발목 [김자영의 정치여행]
  • 김자영 기자
  • 승인 2023.09.15 16:28
  • 댓글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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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의힘 노원병 조직위원장 아직 공석…이준석 당원권 정지 내년 1월 풀려
“‘포용전략’vs‘순혈주의’ 갈림길…국정기조 반대자 공천 후유증 염려 가능성”
1985년 야권 똘똘 뭉쳤지만 後 갈등…전두환 정권 사주 받은 신민당 의원도

[시사오늘·시사ON·시사온= 김자영 기자]

ⓒ 시사오늘 (그래픽 = 정세연 기자)
총선이 7개월여 남았다. 국민의힘 지도부는 이준석 전 대표·유승민 전 의원 등 여권 내 쓴소리파에 대해 어떤 태도를 취할까. ⓒ 시사오늘 (그래픽 = 정세연 기자)

총선 7개월을 앞둔 가운데, 정치권 관심사 중 하나는 국민의힘이 이준석 전 국민의힘 대표나 유승민 전 의원 등 대표적인 쓴소리파를 공천할 것인지 말 것인지 여부다. 

이 전 대표나 유 전 의원은 ‘당정일체’를 강조하는 국민의힘과 반대로 대립각을 세우며 정부 여당에 대한 비판 목소리를 지속해서 내고 있다. 이 전 대표는 원내 경험은 없지만 웬만한 국회의원보다 정치적 체급이 크다. 당도 그의 존재감을 쉽게 무시할 수 없는 정도가 됐다. 

국민의힘은 지난달 31일 10개 지역구 조직위원장을 발표했는데, 아직 26개 지역이  공석이다. 이준석 전 국민의힘 대표가 3번 출마했다 낙선했고, 또 내년 총선 출마를 염두에 두고 있는 서울 노원병이 그 중 하나다. 이 전 대표의 당원권 정지 징계는 총선 3개월 전인 내년 1월에 풀리는데, 아직 공석인 노원병을 두고 당 지도부가 고심하는 흔적을 엿볼 수 있다. 

유승민 전 의원은 자신의 페이스북이나 각종 시사 프로그램에 나와 정부를 비판하고 있다. 공천 실무를 담당하는 국민의힘 이철규 사무총장이 지난달 16일 비공개 의원총회에서 “함께 타고 있는 배에 구멍을 내 침몰하게 하는 승객은 함께 승선 못 한다”는 경고성 발언을 했을 때, 유 전 의원은 “배가 침몰한다면 책임은 대통령과 윤핵관들, 당 지도부에 있다”며 “배 침몰이니 승선 못 하니 이런 말을 하는 건 공천 협박”이라고 지적했다. 

이들을 바라보는 여권의 입장은 상반된다. 홍준표 대구시장은 당원권 10개월 정지 징계를 받은 뒤인 지난 7월 30일 페이스북에 올린 글에서 “모두 힘을 합쳐도 어려운 판에 나까지 내치고도 총선이 괜찮을까”라며 “이준석도 안고 유승민도 안고 가라”고 전했다. ‘보수 통합’ ‘외연확장’을 중시하는 취지의 발언이라 볼 수 있다. 

통합하려고 해도, 이 전 대표가 정부 여당 비판만을 이어간다면 이점보다 리스크가 더 클 것으로 보는 입장도 있다. 국민의힘 권영세 의원은 지난달 31일 SBS <김태현의 정치쇼>에서 이 전 대표에 대해 “당 내지는 정부에 대해 안 되기를 바라는 식의 말투가 이어지면 당의 입장에서도 긍정적으로 판단하기 쉽지 않다. 본인 탓도 좀 있다고 본다”고 말했다. 공천과 관련해선 “국민 여론 등이 고려될 텐데 국민이 보기에 당에 대해 잘되라는 의미에서 쓴소리란 식으로 (인식이) 결정된다면 긍정적으로 검토할 수 있지만, 그렇지 않다면 당내에서도 어쩔 수 없지 않겠냐”고 전했다. 

이현종 <문화일보> 논설위원은 14일 <시사오늘>과의 통화에서 “당에선 정부 여당 입장과 반대되는 소리를 하는 사람이 국민의힘 후보로 나가면 오히려 당에 불리하게 작용할 수 있는 점을 우려하는 것으로 보인다”며 “총선 전략과 관련해 반대자까지 끌어안는 ‘포용적 전략’이 유리할지, 윤석열 정부와 함께할 사람들로 가는 ‘순혈주의’로 가는 게 좋을지의 갈림길에 있는 것 같다”고 전했다. 

이 논설위원은 이준석 전 대표 공천 관련해 고려될 점으로 “첫째는 노원병 당선 가능성, 둘째로 국정기조나 당 입장과 반대되는 사람을 공천했을 때의 후유증”을 꼽았다. 그는 “이 전 대표에게 부정적인 감정을 가진 여성 유권자나, 이를 갈고 있는 강성 지지층들이 있다”며 “공천을 주지 않을 경우 신당 후보로 나가 밖에서 공격할 우려가 있고, 공천 반대론자 입장에선 여당의 ‘안정감’ ‘단일성’을 해쳐 혼란을 줄 수 있다고 본다. 양 리스크가 복잡하게 얽혀있다”고 설명했다. 유승민 전 의원의 경우 총선보다 대선을 염두에 둔 것으로 보는 해석이 있다. 

평론가의 지적처럼, 당은 ‘선거 승리’를 목표로 ‘통합’을 추구하는 동시에 선거 이후 발생할 수 있는 리스크를 관리할 필요성을 느낄 수밖에 없다. 한때 한배를 탔던 이가 때로 상처를 남기는 일도 정치권에 적잖이 벌어지기 때문이다. 선거가 끝나면 승리를 위해 뜻을 모았던 ‘원팀’도 흩어지기 마련이다. 

 

신한민주당 12대 총선 돌풍…2년 못가 분당


1985년 창당된 신한민주당이 12대 총선서 돌풍을 일으켜 제1야당으로 올라서지만, 창당 2년 만에 90명 중 74명이 신민당을 떠난 사례를 살펴볼 수 있다. 선거 전 승리를 위해 야권은 대통합을 목표로 똘똘 뭉쳤지만, 이후에는 당내 주도권을 두고 계파별로 분열했다. 신민당에서 통일민주당이 창당되기까지 과정은 이렇다. 

YS는 1983년 5월 18일, 광주민주화운동 3주기를 맞아 전두환 정권에 민주화 5개항을 요구하며 23일 단식 투쟁에 돌입했다. 요구가 모두 받아들여지지 않았으나 단식 끝에 YS의 가택 연금이 해제됐다. 그의 단식은 정치적 암흑기에 침묵할 수밖에 없었던 야권 인사들이 결집한 계기가 됐다. 

연금이 해제된 김영삼은 민주화 실현, 대통령직선제 쟁취를 위해 YS의 상도동계와 DJ(김대중 전 대통령)의 동교동계가 연합하는 야권 연대가 필요하다고 판단했다. 그리고 발족한 게 ‘민주화추진협의회(민추협)’다. 1984년 5월 18일 만들어진 민추협에는 김영삼·김대중이 공동의장으로 취임했으며, 당시 미국에 체류 중이던 김대중을 대신해 측근 김상현이 공동의장 대행직을 맡았다. 동교동계와 상도동계는 임원을 철저히 반분했다. 

그리고 1984년 말, 전두환 정권이 3차에 걸쳐 정치인 해금 조치를 단행한다. 해금된 김영삼은 당시 자연스럽게 신당 창당 가능성을 가늠하게 됐다. 민정당 외에 민한당이나 국민당이 있었지만, 이는 구색 갖추기식 명목야당에 불과해 ‘민주화’에 대한 국민적 열망을 담아내기 역부족이었다. 

1985년 1월 18일 YS계, DJ계를 비롯해 이철승계·신도환계·김재광계, 이민우, 이기택까지 야권 소수 계파까지 모두 아우른 신민당이 창당됐다. 민추협계와 비민추협계가 50대 50으로 참여했다. 추운 날씨에도 투표율 84.6%를 기록한 12대 총선에서, 신민당은 창당 67석을 얻는 파란을 일으킨다. 그해 3월 6일 김영삼, 김대중, 김상현, 김덕룡 등 정치활동이 규제되던 마지막 14명까지 해금조치로 정치 활동 자유를 얻는다. 

그러던 1984년 4월, 상도동계 40명 의원과 동교동계 34명 의원, 총 74명이 신민당을 탈당한다. 곧바로 통일민주당이 창당됐다. 신민당 90명 의원 중 80% 이상이 떠난 것이다. 대여 투쟁을 위해 한뜻을 모았던 신민당이지만, 이민우 구상을 계기로 갈등이 증폭됐다. 이민우 구상은 내각제 검토도 가능하다는 입장을 시사했는데, ‘내각제’는 전두환 정권이 바라던 바였기 때문에 YS·DJ는 결사반대했다. 이에 따라 당내 의원들도 분화했다. 

앞서 12대 총선에서 계파를 아우른 공천을 시행됐다고 설명했는데, 이철승·이택희·이택돈 등 9명의 비주류 의원이 연합을 결성하고 이민우 구상을 지지하는 일이 발생한다. 이들은 정부에 우호적인 경향을 띠었다. 이철승은 1976년~1979년 총재로 신민당을 이끌 당시에도 ‘중도통합론’을 주창해 박정희 정권에 미온적 태도를 보여, 사쿠라라는 비판을 받은 바 있었다. 

이철승·이택희·이택돈을 포함한 신민당 내 비주류 의원 9명이 이민우 구상을 지지했다. 신민당의 중심축이었던 YS·DJ는 1987년 2월 말경, 내각제 개헌 지지 의사를 공개적으로 밝힌 이철승을 제명하기로 합의하는 등, 당은 큰 혼란에 휩싸였다. 

신민당의 이철승·김재광·신도환·박한상·조연하·김옥선·이택돈·이택희 의원 등 비주류와 당풍 쇄신파 의원 8명은 8일 아침 서울 P호텔에서 회합, 비주류 연합을 결성하는 한편 이민우 구상에 대한 지지와 김대중·김영삼 씨의 당 운영 간섭 배제 입장을 밝혔다. 

- 1987년 1월 8일 자 <동아일보> ‘신민 비주류 연합 결성’

ⓒ 네이버 뉴스라이브러리 캡처본
1987년 3월 21일 자 <경향신문> ‘신민 내분 혼미 거듭’ 기사. ⓒ 네이버 뉴스라이브러리 캡처본

비주류와 정풍파 의원들은 최근의 당 내분 사태의 책임은 전적으로 주류 측에 있다고 보고 내주 중 각각 모임을 갖고 반양김세력 공동전선을 모색할 방침이다. 

비주류의 이철승, 김재광, 신도환 의원과 정풍파의 박한상, 이택돈, 박해충, 이택희 의원 등은 그간 비공식 접촉을 통해 당 기능을 마비시켜 개헌 투쟁에 차질을 빚게 한 주류 측의 해당행위를 집중 추궁해야 한다는 데 의견을 같이한 것으로 알려졌다. 

- 1987년 3월 21일 자 <경향신문> ‘신민 내분 혼미 거듭’

1987년을 맞아 신민당은 계속해서 내분에 휩쓸려 갔다. 독재 권력과 맞서 싸우기 위해 전 국민의 민주화 역량을 하나로 모아야 하는 상황에서 개헌투쟁의 구심점이 되어야 할 신민당이 심각한 내부의 노선 투쟁을 맞은 것이었다.

- 김영삼 회고록 <민주주의를 위한 나의 투쟁> 2권, 321~322쪽.

평행선을 달리던 신민당은 결국 분당했다. YS·DJ계 인사들은 통일민주당에 참여했다. 이때 폭력 사태가 발생하기도 했다. 후에 전두환 정권 안기부 부장이었던 장세동을 비롯해 신민당 이택희·이택돈 의원까지 연루된 것으로 밝혀진 이른바 ‘용팔이 사건’이다. 

5월 1일 중앙당 창당대회를 앞둔 통일민주당이 폭력에 시달리고 있다. 통일민주당은 24일까지 전국적으로 47개 지구당 창당을 마쳤는데, 이 중 18군데의 지구당창당대회에서 신원을 알 수 없는 청년들이 대회 장소를 점거, 대회를 방해하거나 당원들을 마구 구타하는 등 난동을 부렸다.

- 1987년 4월 25일 자 <조선일보> ‘“각목부대” 정체는 누구냐 잇따르는 신당 지구당  폭력사태’

당시 사건에 대한 조사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다가 1993년 YS가 대통령으로 취임하며 진상이 밝혀진다. 검찰 조사 결과 안기부 부장이었던 장세동이 배후에 있었다는 사실이 드러난다. 장세동이 ‘통일민주당’ 출현을 저지하기 위해 이택희·이택돈 전 신민당 의원에게 정치자금을 제공하고 사주했음이 밝혀진 것이다. 

정세운 시사평론가는 15일 대화에서 “‘통합정치’의 결과가 꼭 좋은 것만은 아니다”라고 전했다. 

여야간 대립이 날로 심화되는 상황입니다. 정치권에서 왜 저런 선택을 했을까 의문이 든 적 한 번쯤 있을겁니다. 이들의 선택은 과거 정치 경험으로부터 얻어진 학습효과 아닐까요. ‘김자영의 정치여행’은 현 정치 상황을 현대 정치사를 비춰 해석해 봤습니다. 다음주 금요일에 찾아 뵙겠습니다. <편집자주>

담당업무 : 정치부 기자입니다.
좌우명 : 생각대신 행동으로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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ㅇㅇ 2023-09-15 18:02:55
윤대통령이 꼭대기인데, 쓴말 내뱉는 이준석과 유승민을 포용한다?
그건 이미 지난 지방선거 유승민 공천탈락과 이준석 당대표 해임 (가짜 궐위?)로 증명됬다.

민돈기 2023-09-15 17:55:47
티비 패널인 논설위원과 반댜로 하면은 그나마 수도권선거에서 패배하지만 개박살나는 상황을 막을 수잇다.. 종편에서 나온 자칭 보수패널 주장과 별반 차이없는 집권세력과 윤핵관등은 더불당 압승을 바라는세력으로 보입니다..

책임당원 2023-09-15 17:09:03
지금 국힘이 무슨 순혈주의? 전향한 사람에 아스팔트만 들끓는데 아직도 정신 못차리고 쯧쯧 지금의 국힘은 그냥 ‘우덜식 순혈주의’로 총선 치루고 자연스럽게 소멸하는게 맞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