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史의 보이지 않는 1cm [김자영의 정치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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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史의 보이지 않는 1cm [김자영의 정치여행]
  • 김자영 기자
  • 승인 2023.09.22 21:4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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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방자치제’ 요구하며 단식 돌입한 DJ 찾아간 YS, ‘내각제 포기’ 입장 같아

[시사오늘·시사ON·시사온= 김자영 기자]

ⓒ 시사오늘 (그래픽 = 정세연 기자)
<시사오늘>은 성공한 단식으로 평가받는 김영삼 전 대통령(YS)과 김대중 전 대통령(YS)의 사례를 살펴봤다. ⓒ 시사오늘 (그래픽 = 정세연 기자)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지난달 31일 단식을 선언한 이후로 한동안 정치권에서 역대 정치인의 단식 사례가 다시 오르내렸습니다. 

제1야당 대표의 단식 투쟁이 열흘 넘게 이어지는 데도, 조롱과 비난의 목소리가 이어지고, 정부 여당 인사가 이 대표를 찾아가지 않는 것을 과거 정치와 비교하는 이도 있었습니다. 황교안 전 자유한국당 대표가 단식했을 때 이낙연 전 국무총리와 이해찬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최병렬 전 한나라당 대표 단식 때 문희상 당시 청와대 비서실장, 유인태 당시 정무수석이 찾아갔다는 것입니다. 

일례로 1990년 평화민주당 총재였던 김대중(DJ)이 지방자치제 도입을 요구하며 단식에 돌입했을 때, 김영삼 당시 민주자유당 대표최고위원(YS)이 그를 두 차례 찾아간 사례도 언급됐습니다. 

김대중 자서전에 따르면 DJ는 입원한 병원에 찾아온 김영삼 당시 민자당 대표최고위원에게 “나와 김 대표가 민주화를 위해 싸웠는데 민주화란 것이 무엇이오. 바로 의회 정치와 지자제가 핵심 아니냐”며 지자제의 필요성을 강조했고, YS도 이에 고개를 끄덕였다고 나와 있습니다. 

현재에 와선 DJ의 당시 단식 목적이 ‘지방자치제 실시’였던 것으로만 많이 알려졌지만, 자세히 살펴보면 그는 지방자치제만 요구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DJ는 ‘내각제 포기’ ‘보안사와 안기부의 정치 사찰 중지’ ‘민생 문제 해결’도 내세웠습니다. 

그리고 YS는 ‘내각제 포기’를 강하게 바라는 이 중 하나였습니다. 내각제는 전두환 정권 때부터 민정당이 바라던 제도로, 1980년대 ’

‘대통령 직선제 개헌’을 외치던 민주화 투사의 정체성을 가진 그로선 내각제를 받아들일 수 없었습니다. 3당 합당으로 만들어진 민자당에서 YS의 민주계는 소수 계파로 민정계 등 주류로부터 많은 견제를 받았습니다. 내각제는 그에게 정치적 타격을 입힐 것이 분명한 사안이었습니다. 

DJ는 단식에 돌입하기 직전 정국 상황에 대해 자서전에서 “민주자유당은 현안을 싸고 사사건건 충돌했다. 합당을 하기 전 노태우, 김영삼, 김종필 세 사람은 ‘1년 이내에 의원 내각제 실현을 위해 헌법을 개정한다’는 각서를 썼다. 이 각서가 공개되면서 민자당 내 계파는 권력 투쟁의 소용돌이 속으로 빠져들었다. 구 민정계와 공화계는 의원 내각제로 권력을 창출하려 했고, 구 민주계는 김영삼 씨를 노태우 대통령의 후계자로 만들기 위해서 현행 대통령 중심제를 선호했다. 계파 간 암투는 치열하게 전개됐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DJ 단식 4일 차인 1990년 10월 11일 자 보도입니다. 이날 YS는 DJ를 찾아갔습니다. 

ⓒ 네이버 뉴스라이브러리 캡처본
1990년 10월 11일 자 <동아일보> ‘김영삼 대표, 단식 김대중 총재 방문 정국 타개 단독 요담’ 기사 ⓒ 네이버 뉴스라이브러리 캡처본

김영삼 대표가 단식 4일째를 맞은 김대중 총재를 위로하기 위해 평민당사를 전격 방문해 이루어진 이날 양김 요담에서는 내각제 개헌 포기 문제를 비롯, 지자제 전면 실시 문제, 보안사의 정치사찰 중지 및 군의 정치적 중립 보장 문제, 물가 치안 등 당면 민생 문제 해결 방안 등에 대한 상호 입장 타진이 이뤄졌다. 

약 53분간 진행된 이날 요담에서 김 대표는 김 총재가 제시한 4개 항의 정국 정상화 방안에 대한 정부 여당의 수용 의사를 밝히면서 김 총재의 단식 중단 및 국회 복귀를 요청한 것으로 알려졌다. 

- 1990년 10월 11일 자 <동아일보> ‘김영삼 대표, 단식 김대중 총재 방문 정국 타개 단독 요담’

강수로 일관할 듯싶던 민자당의 김영삼 대표 최고위원이 김대중 총재를 방문했고, 이어 여야 대화 복원을 위해 당직을 개편하는 등 그간의 대야 자세를 바꾸어 나갔다. 또 이면에서는 지자제 실시 문제에 대한 여권의 대폭적인 양보 용의도 시사하고 있다. (중략)

내각제 개헌 포기 선언은 김대중 총재와 김영삼 대표의 정치적 입장이 일치하는 문제다. 김 대표가 민자당 내 민정계와 공화계의 제동에 걸려 자신의 입장을 당론화하지 못해왔으나 이번에 단식 정국 해소 명분을 내세워 민자당 대표 자격으로 “국민이 원하지 않고 야당이 반대하면 내각제 개헌을 강행하지 않겠다”고 언명할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 평민당 의원들의 분석이다. 

- 1990년 10월 15일 자 <동아일보> ‘단식 정국 끝내기 초강수’

노태우 정부는 결국 지방 자치 실시를 약속했습니다. 김영삼은 그해 20일 지방의원 선거 전면 실시, 기초 및 광역자치단체장 선거 방침을 민자당 공식 당론으로 밝혔습니다. 실제 제1회 지방선거는 김영삼 정부 3년 차인 1995년 6월 치러졌습니다. 

“마침내 노 정권은 지방자치 실시를 약속했다. 이로써 36년 만에 지방 자치 시대가 다시 열렸다. (중략) 10월 20일, 나는 이런 계획을 알리는 정부 여당의 연락을 받고 단식을 풀었다. 단식을 시작한 지 13일 만이었다.”

- 김대중 자서전 1권 574~576쪽

DJ 단식 종료 이후인 1990년 10월 25일, 노태우·김영삼·김종필이 서명한 내각제 개헌 합의 각서 공개로 큰 파문이 일었습니다. 당시 YS는 마산으로 내려가 당무를 거부하고 노태우와 담판을 벌인 끝에 ‘내각제 완전 포기’ 입장을 받아내며 정치적 승리를 거두게 됩니다. 

정세운 시사평론가는 20일 <시사오늘>과의 대화에서 “당시 YS의 DJ 단식장 방문은 격려나 단식 정국 해소 목적 외에도 ‘내각제 거부’라는 정치적 입장이 같았던 배경이 자리하고 있다. ‘정치적 이해관계’가 맞았던 것”이라고 설명했습니다. 

 

YS 23일 단식 투쟁, 종료될 때까지 언론에 보도 안 돼
전두환 정권 YS 강제 입원…단식 중단 위해 여러 수 써


지금은 잘 알려진 1983년 YS의 23일 단식 투쟁은 당시 군사 정권의 지배하에 언론에 보도조차 되지 않았습니다. 그나마도 <동아일보>에 ‘최근 정가 일각에서 얘기되고 있는 정세 흐름’ 정도의 우회적 표현으로 전해질 뿐이었습니다. 이영덕 전 <조선일보> 논설위원은 지난 4월 21일 ‘문민정부로 가는 민주화 대장정’ 대담회에서 “YS 단식이 있을 때, 이틀인가 보도 자체를 못 했다. 나중에야 ‘야당 정치인 모종의 식사 문제’라는 이상야릇한, 육하원칙으로 따지면 말도 안 되게 쓸 수밖에 없었다”는 증언을 남기기도 했습니다. 

지금이야 YS의 단식이 야권이 결집하고 민주화추진협의회 결성, 신한민주당 창당, 2·12 총선 돌풍으로까지 이어지는 시작점이 됐다고 평가받습니다. 하지만 당시만 해도 전두환 정권에서 단식 여부 자체를 의심하는 시선도 있었다고 합니다. 

단식 8일 차에 경찰 당국은 김영삼을 서울대학병원으로 강제 이송합니다. YS 회고록에 “전화선부터 끊어 놓고 수십 명이 들이닥쳤다. 나는 반항했으나 그들의 완력을 당할 수 없었다. 결국 앰뷸런스에 실려 병원으로 강제 이송되었다. 나의 집은 내가 병원으로 강제 이송된 후 수십 명의 경찰들이 점거했다”고 전해지고 있습니다. 당시 측근인 홍인길이 정부가 YS를 강제 입원시키자 칼을 들고 경찰서장을 협박하는 해프닝도 벌어졌지만, 외부에 전해지지 않았습니다. 당시 병원 진단을 통해 그가 단식하고 있단 것이 확실시 됐고, 전두환 정권은 김영삼의 병상 앞에 불고기 등 음식상을 차려 냄새를 풍기는 등 단식 중단을 위해 온갖 수단을 썼습니다. 하지만 YS는 의사들이 건강 상태가 위험하다 진단 내렸던 23일째까지 단식을 멈추지 않았습니다. 

이번 ‘김자영의 정치여행’은 현대 정치사의 숨은 비하인드를 살펴봤습니다. 다음주 금요일에 찾아 뵙겠습니다. <편집자주>

담당업무 : 정치부 기자입니다.
좌우명 : 생각대신 행동으로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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