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주의 지키는 건 정치인의 ‘양심’이다 [주간필담]
스크롤 이동 상태바
민주주의 지키는 건 정치인의 ‘양심’이다 [주간필담]
  • 정진호 기자
  • 승인 2023.10.07 18:19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민주주의와 포퓰리즘은 한끗 차이…그 ‘선’을 지키는 건 정치인의 양심

[시사오늘·시사ON·시사온= 정진호 기자]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은 이민자에 대한 백인의 혐오감을 악용해 정권을 잡았다. ⓒ연합뉴스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은 이민자에 대한 백인의 혐오감을 악용해 정권을 잡았다. ⓒ연합뉴스

민주주의엔 치명적 결함이 있다. 포퓰리즘에 취약하다는 점이다. 근본적으로 포퓰리즘은 ‘대중의 뜻을 따른다’는 측면에서 민주주의와 맥을 같이 한다. 포퓰리즘의 어원 자체가 대중이라는 뜻의 라틴어 포풀루스(populus)다. 민주주의(democracy)의 어원인 데모스(demos) 역시 그리스어로 ‘인민’을 뜻한다는 사실을 상기하면, 민주주의와 포퓰리즘은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라고 봐도 틀리지 않다.

그럼에도 지금까지 민주주의가 유지될 수 있었던 건 정치인들의 ‘양심(良心)’이 있었기 때문이다. 정치인은 두 가지 욕망 사이에서 줄타기하는 존재다. 그들은 개인적 욕심을 위해 줄달음치다가도, 국가의 존속을 위해 브레이크를 밟는다. 국민이 혐오하는 특정 집단을 제물삼거나 세금을 주머니 속 쌈짓돈처럼 뿌려대면 ‘표’에 도움이 된다는 걸 알면서도, 공동체의 미래를 위해 최소한의 ‘선’을 지킨다.

하지만 최근 들어 이 균형이 무너지는 모양새다. 개인적 욕망이 국가에 대한 책임감을 압도하고 있다. ‘민주주의 수호자’를 자처했던 미국부터가 그렇다.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은 이민자에 대한 백인의 혐오감을 악용해 정권을 잡았다. 트럼프 이전 미국 정치인들도 백인이 이민자를 싫어한다는 걸 알았다. 이민자를 공격하면 표에 도움이 된다는 사실도 알았다. 그러나 그러지 않았다. ‘옳지 않은’ 일이었기 때문이다. 최소한의 ‘선’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트럼프는 표를 위해 국가의 분열도 국민의 갈등도 서슴지 않았다.

지난 3일(현지시각)에는 역사상 처음으로 하원 의장이 임기 중에 쫓겨나는 일도 있었다. 공화당 출신인 케빈 매카시 하원 의장이 연방 정부 셧다운을 막기 위해 민주당과 임시 예산안 처리에 합의한 것을 문제 삼아 공화당 소수 극우파 의원들이 해임안을 발의한 것이다. 국정 마비와 금융시장의 혼란을 볼모로 자신들의 주장을 관철하려던 이들은 매카시 의장이 이를 거부하자 자당 출신 하원 의장에게 ‘역사상 최초로 임기 중 축출된 하원 의장’이라는 불명예를 씌웠다.

우리도 다르지 않다. 개인적 목적을 위해 ‘선’을 넘는 일들이 비일비재하게 벌어지고 있다. 지지자들에게 인기를 얻기 위해 특정 집단을 혐오 대상으로 타기팅(targeting)하거나, 눈앞의 공천권을 위해 강성 지지층의 요구에 맞춰 거리낌 없이 반민주적 행태를 보인다. 지지율만 높일 수 있다면, 공천을 받아 재선에 성공할 수만 있다면 국가의 미래는 아무래도 상관없다는 식의 태도다. 전형적인 포퓰리즘의 징후다.

스티븐 레비츠키 하버드대 교수는 ‘잘 설계된 제도가 민주주의를 지탱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 민주주의의 핵심 요소는 절제와 관용이라는 규범’이라고 말했다. 합법적인 행위지만 관행적으로는 자제해왔던 정치적 행위들이 하나 둘 실행될 때 민주주의는 무너지게 된다는 의미다. 미국과 우리나라는 물론, 전 세계적으로 나타나는 정치적 양상이 바로 이렇다.

그렇다면 민주주의의 위기를 극복할 방도는 있을까. 제도적 보완은 쉽지 않다. 앞서 언급했듯이, 민주주의와 포퓰리즘은 그야말로 ‘한끗’ 차이다. 포퓰리즘을 막기 위한 제도 개선은 국민의 의사 표현을 제약하는 쪽으로 귀결될 가능성이 높다. 포퓰리즘을 막기 위해 민주주의를 파괴하는 꼴이다. 그렇다고 국민들에게 이익 추구를 멈추라고 요구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결국 답은 하나만 남는다. 정치인들이 ‘양심’을 회복하는 것이다. 국가의 미래를 위해 당장의 지지율 하락이나 강성 지지층의 비난은 감수하는 ‘용기’를 갖는 것이다. 양심을 저버리고 개인의 욕망에 ‘올인’한 정치인들의 시대가 계속되는 한, 민주주의의 포퓰리즘화는 가속화될 수밖에 없다. 지금껏 경험한 적 없는 민주주의의 위기. 정치인들의 치열한 성찰과 반성이 필요한 때다.

담당업무 : 국회 및 국민의힘 출입합니다.
좌우명 : 인생 짧다.

관련기사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