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동권 주류’ 정당, 열린우리당의 탄생 [한국정당사⑮]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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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동권 주류’ 정당, 열린우리당의 탄생 [한국정당사⑮]
  • 정진호 기자
  • 승인 2023.10.17 14:2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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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념적 차이 크지 않았던 여야, 열린우리당 기점으로 진보-보수 분리

[시사오늘·시사ON·시사온= 정진호 기자]

열린우리당은 우리 정치 지형이 보혁 이념 구도로 재편되는 신호탄이었다. ⓒ시사오늘 정세연
열린우리당 창당은 우리 정치 지형이 보혁 이념 구도로 재편되는 신호탄이었다. ⓒ시사오늘 정세연

복잡했던 우리 정당사는 제15대 총선과 대선을 기점으로 어느 정도 정리됩니다. 한나라당과 새정치국민회의가 거대 양당을 형성하고 자유민주연합이 제3당으로서 한 자리를 차지하는 모양새가 한동안 유지되죠. 제16대 총선을 앞두고 새정치국민회의가 새천년민주당으로 옷을 갈아입긴 했지만, 인적 구성 측면에서는 새정치국민회의가 ‘확대 개편’된 수준이었으므로 그리 큰 변화라고 보기는 어려웠습니다.

정당사적으로 유의미한 변화가 있었던 건 2003년 열린우리당 창당이 이뤄지면서였습니다. 알려진 대로, 노무현 전 대통령은 지역주의에 대한 강한 비판 의식을 가진 인물이었습니다. DJ(김대중 전 대통령)가 1995년 지방선거를 위해 ‘지역등권론’을 주장하자 “김대중의 지역등권론은 역사의 수레바퀴를 거꾸로 돌리려는 반역사적 행위”라고 공개적으로 일갈할 정도였습니다. 그는 DJ가 새정치국민회의를 만들 때도 따라가지 않고 국민통합추진회의(통추)에 참여했죠.

그러나 노무현을 대통령으로 만든 새천년민주당은 여전히 ‘호남 색채’가 강한 정당이었습니다. 이념적으로 봐도 새천년민주당은 ‘호남 정당’이라는 점을 제외하면 한나라당과 큰 차이가 없는 수준이었죠. 이에 노무현을 위시한 영남 세력과 천정배·신기남·정동영을 중심으로 한 호남 신(新)주류 세력들은 ‘호남색을 빼고 전국정당화를 이루지 않으면 제17대 총선에서의 패배는 불 보듯 뻔하다’며 당 쇄신을 주장하기 시작합니다.

하지만 호남 구(舊)주류 세력은 이 같은 쇄신 주장이 자신들을 몰아내기 위한 음모라고 봤습니다. 결국 격화된 갈등을 극복하지 못한 양측은 분당(分黨)의 길로 접어듭니다. 이렇게 영남 세력과 신주류 세력은 새천년민주당을 탈당, 유시민·김원웅 등이 몸담았던 개혁국민정당과 힘을 모아 열린우리당을 창당합니다. 대통령을 탄생시킨 여당이 쪼개지는 것도 모자라, 대통령이 탈당해 신당으로 향하는 ‘여당 교체’가 이뤄진 겁니다.

다만 이때까지만 해도 열린우리당으로의 ‘주류 교체’가 완성된 건 아니었습니다. 2003년 11월 11일 창당 당시 열린우리당 의원 수는 47명에 불과했습니다. 민주당에서 탈당한 의원 40명과 한나라당에서 합류한 이른바 ‘독수리 오형제’ 5명, 개혁국민정당 출신 2명이 전부였죠. 새천년민주당 의원 수가 59석이었으니, 열린우리당은 여당이었음에도 원내 제3당에 불과한 초유의 정당이었던 겁니다.

이런 상황에서 대통령 탄핵소추라는 초유의 사건이 터집니다. 노무현이 2004년 2월 18일 합동 기자회견에서 “개헌저지선까지 무너지면 그 뒤에 어떤 일이 생길지는 나도 정말 말씀드릴 수가 없다”고 말한 데 이어, 24일 대통령 기자회견에서 “국민들이 총선에서 열린우리당을 압도적으로 지지해줄 것을 기대한다. 대통령이 뭘 잘해서 열린우리당이 표를 얻을 수만 있다면 합법적인 모든 것을 다하고 싶다”고 발언한 것이 대통령의 정치적 중립 의무를 위반했다는 논란에 휩싸인 겁니다.

이에 중앙선거관리위원회는 대통령에게 중립을 지켜 달라고 권고했지만, 노무현이 사실상 거부 의사를 밝히면서 탄핵이 이뤄집니다. 당을 깨고 나간 노무현을 마뜩찮아 했던 새천년민주당과 한나라당·자유민주연합 두 야당이 연합했으니, 원내 제3당에 불과했던 ‘미니 여당’ 열린우리당으로서는 탄핵을 막을 방법이 없었죠.

그러나 대통령에 대한 탄핵은 역풍을 불렀습니다. 국민이 선출한 대통령을 국회가 몰아내려하는 데 대한 국민적 분노가 야당 연합을 덮치면서 열린우리당에 대한 지지율이 급등한 겁니다. 열린우리당을 이 흐름을 활용, 단순한 ‘총선 승리’를 넘어 ‘정치 교체’를 이루기 위한 공천을 단행했습니다. 그 수혜자들이 이른바 ‘86그룹(60년대생·80년대 학번)’으로 불리는 운동권 인사들입니다.

이런 구도 속에서 치러진 제17대 총선 결과, 열린우리당은 152석으로 과반을 차지합니다. 한나라당도 121석으로 선방했죠. 반면 각각 9석과 4석을 얻는 데 그친 새천년민주당과 자유민주연합은 몰락하고 맙니다. 이로써 이념적으로는 유사하나 지역에 따라 나뉘었던 우리나라 정당은 기존 보수세력이 이끄는 보수정당과 ‘운동권’ 중심의 진보정당으로 재편됩니다. 지금 우리가 이념적으로 구분하는 거대 양당 구도를 만든 건 열린우리당 창당과 제17대 총선 결과인 셈입니다.

열린우리당은 제17대 총선 공천 과정에서 운동권을 대거 발탁했다. 탄핵 역풍을 타고 대거 국회로 진입한 운동권은 열린우리당을 가치 중심 정당으로 탈바꿈시켰다. 기존 정당들이 지역 기반만 달랐을 뿐 이념적으로는 거의 유사한 지역주의 정당이었다면, 열린우리당은 지역주의에서 벗어나 이념을 기준으로 정당의 구분을 시도했다. 제17대 총선을 기점으로 형성된 한나라당과 열린우리당 양당 구도가 지금 우리가 보는 보혁 구도의 시작점이었던 것이다.

정세운 정치평론가

담당업무 : 국회 및 국민의힘 출입합니다.
좌우명 : 인생 짧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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