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공주와 몽실이 [이순자의 하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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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공주와 몽실이 [이순자의 하루]
  • 이순자 자유기고가
  • 승인 2024.02.27 16: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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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오늘·시사ON·시사온=이순자 자유기고가]

오래전, 설공주 때 얘기다.

몽실이는 진돗개 (수놈)다. 설공주 동네에 인기 스타다.

몽실이는 약 3살 정도 됐다고 했다. 

주인은 설공주 동네 초입에 살고 있는 일곱 칸짜리 옛날 집에 사는 민구 할머니다. 민구는 그 댁 할머니 친손주 이름이다. 금년 초등학교 3학년생이라고 했다. 할머니하고 같이 살지 않는다. 

민구네는 읍내에 산다. 일요일 마다 할머니 댁으로 엄마 아빠, 여동생과 함께 와서는 농사일도 돕고, 밥도 같이 해먹다가 저녁때 다시 읍내에 있는 집으로 간다. 민구 아버지는 공무원이다. 설공주가 위치해 있는 면사무소에서 일을 본다. 

할머니는 아들이 둘이다. 민구 아버지가 큰 아들이고 작은 아들은 트럭을 운전한다. 어느 일요일엔 아들 형제와 며느리 두 동서가 양쪽 집 손주들 4명과 함께 할머니 댁을 찾는다. 대식구가 버석버석 대며 하루를 분주하게 먹고 일하다가 저녁때가 되면 할머니만 남겨 두고 모두 돌아간다. 

가끔 동네 아낙네들이 시간을 때우기 위해 대여섯 명 모여서 십 원짜리 고스톱을 칠 때면 거의 할머니 댁에서 모여서 쳤다. 이때 할머니가 한 번도 빠지지 않고 읊조리는 넋두리가 있다. 돌아가신 할아버지, 즉 남편 얘기인데 말인즉슨 할머니 남편은 살아생전 일이라는 것을 하지 않았다고 한다. 

그렇다고 도박이나 술꾼은 아니었지만 빈둥대고 놀고먹으려는 게으름뱅이었다는 것이다. 아들도 아버지 닮을까봐 걱정을 많이 했고, 일부러라도 이를 악물고 아들을 어려서부터 농사일을 가르쳤다는 얘기였다. 

늘 할머니는 얘기 끝에 “아유 나는 이제 아무 소원도 없어, 소원풀이 다했으니까... 우리 민구 좀(손주)봐, 즈 아비 따라 농사일 거드는 것 좀 봐.” 이렇게 말하며 의기양양했다. 할머니는 일요일이면 읍내에 있는 성당에도 나가신다. 

칠십은 훨씬 넘으셨을 텐데도 눈만 뜨면 한시도 쉬지 않고 일을 하신다. 할머니 댁은 집 대문이 없다. 길가집이다. 오래된 돌담이 몇 자는 남아있고, 마당 왼편으로 울타리 삼아서 향나무 한그루가 오랜 세월 할머니 댁을 지켜주고 있다.

마당이 거의 동그랗고 한 삼사십 평은 되어 보였는데 항시 팃검불 하나 없이 매끈매끈 깔끔했다. 마루나 방도 늘 깔끔했고, 넓적해서 동네 아낙들이 시간이 날 때면, 할머니 댁 방이나 마루에 모여앉아 십 원짜리 고스톱을 칠 수 있는 것이다.

그런데 이 고스톱이 오묘해서 치는 사람들의 성품을 고스란히 나타내 준다. 할머니는 돈 잃는 것을 아주 싫어했다. 몇 번 구경했지만 한 번도 돈을 잃은 적이 없다. 다만 몇 푼을 따도 꼭꼭 따는 편이였다. 어쩌다 돈을 잃는 판이면 아주 식식대고 야단이 났다. 할머니의 승부욕이 잘 드러나는 고스톱이다.

나도 고스톱은 좀 칠 줄 안다. 그래도 여기 할머니 댁 십 원짜리 고스톱 판에는 별로 낀 적이 없다. 왜냐하면 나는 이곳으로 이사 온 지 이제 한 삼 년 되었다.

이 동네는 모두 일곱 집인데 그중 다섯 집이 터줏대감들이다. 나머지 중 또 한집은 이 동네로 들어온 지 십 년은 되었다니, 그중 나만 외지에서 굴러온 떠돌이인 셈이다. 십 원짜리 고스톱은 네 명이나 다섯 명이 하는데, 터줏대감들이 자리를 다 차지하고 있으면 나는 감히 낄 엄두도 못 낸다. 그저 뒤편에 앉아서 어깨너머로 구경만 할 뿐이다.

또 한 가지 고스톱 판에서는 금기사항이 있다. 등 뒤에서 훈수를 할 수 없다. 만약 멋모르고 한마디 훈수를 했다가는 큰 난리가 난다.

여름철에 할머니 댁에서 십 원짜리 고스톱 멤버들이 삑 둘러앉아 고스톱을 치고 있으면, 나는 혹 읍내에 갔다가 들어오다가도 그냥 지나칠 수가 없다. 일부러라도 마당을 가로질러 고스톱 판을 들여다보고 인사를 주고받고, 조금 앉아 있다가 집으로 가는 것이다. 

그것이 이웃 간의 예의고 의리 같았다. 이렇게 할머니 댁에는 동네 사람들이 자주 모이니까, 할머니 댁 개 몽실이는 동네 사람들 모두가 낯설지 않다.

특히 고등학교 2학년인 우리 집 둘째 딸이 지나올 때면 몽실이는 졸졸 쫓아오고, 또한 아들의 뒤도 따라왔다. 우리 집으로 따라와서는 대문 터쯤에 앉아서 꼬리를 살래살래 흔들고 있다.

몽실이도 젊은 사람이 좋은 모양이다.

한 번도 내 뒤를 따라온 적은 없지만, 우리 아이들의 뒤는 보기만 하면 따라왔다. 가끔 어슬렁어슬렁 동네 가가호호를 돌아다니기도 했다. 마치 동네의 수호신같이 집집을 지켜주는 듯했다.

그러다 어느 날 청천 벽력같은 소리가 들려왔다. 몽실이가 교통사고를 당해서 죽었다는 것이다.

어쩌면 좋아....... 가엾은 몽실이......

얼마 후에 또 놀라운 얘기가 들려왔다.

큰딸의 얘긴데 누구한테 들었는지 죽은 몽실이를 할머니 댁에서 삶아 먹었다는 것이었다.

그 얘기를 듣고 나니 어느 날부턴가 할머니 댁 마당 한옆에 커다란 양은솥이 화독위에 얹혀 있던 것이 생각났다.

그 솥이 몽실이를 삶은 솥일 것이었다.

말은 못 해도 사람과 교감을 하고, 이치를 공유하는 인간과 가장 가까운 개를 결국 할머니는 삶아서 먹은 것이다.

물론 소도 잡아먹고, 돼지도 닭도 잡아먹지만 개를 잡아먹는 것은 어쩐지 좀 애처로운 생각이 든다. 나만 그런 심정이 드는 것은 아닐 것이다.

설공주와 몽실이는 아마도 동네 사람들 기억에서 금방 잊힐 것 같지는 않다.

얼마 후에 둘째 딸과 시간이 있어 마주 보고 몽실이 얘기를 했는데, 딸의 얘기는 이러했다.

한 번은 내가 돈벌이를 위해 집을 떠나 객지에 나간 적이 있는데 그때 얘기였다. 몽실이가 둘째 딸을 꼭꼭 따라와서는 아예 봉당 위 방 문턱에 자리를 잡고 앉아 밤새도록 가지도 않고, 집 앞을 지켜줬다는 것이다.

먹을 것을 주는 것도 아닌데 가지도 않고, 멋스러운 꼬리를 싹 감아쥐고 앉아서 그 잘난 얼굴로 둘째 딸을 걱정하고 지켜줬다는 것이다.

몽실이는 진돗개다. 토종 흰 개는 아니지만, 노오란 털이 반지르르 윤기가 흐르고 얼굴, 코, 눈, 귀가 어찌 그리 잘생겼는지 사람으로 비유하자면 미남중의 미남인 격이었다.

몽실이는 짓는 법도 없다. 분명 벙어리도 아닌데 점잖기 그지없다. 괜스레 소란스럽게 짖어대는 그런 개가 아닌 것이다.

얼마나 몽실이와 정이 들었으면 교통사고로 죽은 후에 둘째 딸은 일주일 동안이나 울었다고 했다.

그리운 몽실이....

좀 더 오래 살았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 시민 기고는 본지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글을 쓰는 이순자 씨는 서울 양천구 신월동에 사는 78세 할머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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