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란치스코’ 교황이 던져준 그 메시지 [金亨錫 시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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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란치스코’ 교황이 던져준 그 메시지 [金亨錫 시론]
  • 김형석 논설위원
  • 승인 2024.03.31 14:3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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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여인에게 마음 빼앗긴 적 있다…힘 빼고, 솔직하게 다가가는 리더십”
“13억 신자 둔 ‘막강 교황’ 저토록 겸허한데…정치권, 국민에 실망만 안겨”
“마라도나 ‘신의 손’을 ‘죄지은 손’으로 지적하는 엄격함…관용 속 원칙지켜”

[시사오늘·시사ON·시사온= 김형석 논설위원]

프란치스코 교황이 지난해 12월 25일(현지시간) 바티칸 성탄절을 맞아 바티칸 성 베드로 대성당 발코니에서 사람들에게 손을 흔들고 있다. ⓒ 연합뉴스
프란치스코 교황이 지난해 12월 25일(현지시간) 바티칸 성탄절을 맞아 바티칸 성 베드로 대성당 발코니에서 사람들에게 손을 흔들고 있다. ⓒ 연합뉴스

“신학생 시절 여인에게 마음을 빼앗긴 적이 있다. 삼촌 결혼식에서 만난 한 여성에게 푹 빠진 적도 있다. 그 모습이 일주일 내내 머릿속에 떠올라 기도하기 어려웠다.”

프란치스코는 그 유혹을 이겨내고 최초 남미 출신 교황으로 등극했다. 즉위 11주년을 맞은 올해 87세의 교황의 내밀한 고백, ’삶:역사를 통해 본 나의 이야기‘. 이 책에서 교황은 이탈리아 언론인 ’파비오 마르케스 라고나‘와 인터뷰 형식으로 자신의 지나온 삶을 차분히 서술했다.  

특히 교황은 아르헨티나의 전설적인 축구영웅 디에고 마라도나에 관해 한 장(章) 전체를 할애해 써서 관심을 모으기도 했다.  

“타인을 개종하려 들지 마세요”

프란치스코 교황은 지난 2013년 즉위할 때부터 가톨릭교회를 더 포용적으로 변모시키려고 노력해 왔다. 지난해 12월, 동성 커플에 대한 가톨릭 사제 축복을 승인해 보수파 공격을 받았으며 이 책에서 동성 커플을 축복할 수 있도록 허용한 결정을 다시 한번 옹호했다. 낙태에 대해서는 여전히 강한 거부감을 보였다. “낙태는 고용된 살인, 암살이다. 아이를 상품으로 취급해선 안 된다.” 인간 생명에 대한 포용심으로 읽힐 만하다. 

교회 내 각종 개혁 정책을 밀고 나가기 때문에 거센 반대와 심한 모욕도 많이 받는 모양이다. 당연히 그럴 것이다. 그래서 “최악의 모욕에는 귀를 막고 있다”고도 했다. “나에 대해 말하고 쓰인 모든 것을 들여다본다면 매주 심리학자 상담을 받아야 할 것”이라고까지 말했다. 고통 없는 삶이 없기는 한 모양이다. 

프란치스코 교황의 본모습은 지난 2014년 8월 그가 방한했을 때 우리도 잠시 직접 접할 기회가 있었다. 당시 해외 언론을 통해 들려온 교황의 파격적인 ‘행복 십계명’을 접하며 그의 진면목을 대할 수도 있었다. 

그중 충격적인 대목은 ‘타인을 개종시키려 들지 마라’. ‘과연 전 세계를 대상으로 공격적인 포교활동을 펴온 가톨릭 교황이 한 말 맞나?’ 싶은 의문이 들었다. 그러나 이어진 서양의 오래된 금언 ‘자신의 인생을 살고 타인의 인생을 존중하라(Live and let live)’라는 대목에서 이해되기도 했었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그렇게 우리에게 부드러운 울림을 줬다. 이어 지난해 8월 포르투갈 리스본 세계청년대회 폐막 미사에서 2027년 세계 가톨릭 청소년대회(World Youth Day) 서울 개최를 직접 발표하며 우리에게 더욱 친근해졌다. 세계청년대회는 가톨릭이 전 세계 청년을 대상으로 5~6일 동안 개최, 그 기간을 전후해 전 세계 청년 신도 수십만~수백만 명이 모여드는 대형 국제행사다.

바티칸 뉴스 매체 ‘피데스’(Fides)의 가톨릭교회 연감에 따르면 전 세계 가톨릭 신자 수는 2019년 기준 약 13억 명을 기록했다. 중세 때만은 못해도 여전히 막강한 교황의 위세를 알게 해주는 통계치다.

교황은 회고록에 관해 “특히 젊은이들이 노인의 이야기를 통해 유익함을 얻을 수 있도록 유용하게 쓰이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젊은이들이 자신의 메시지를 잘 받아들였으면 하는 바람이 읽힌다. 

‘신의 손’과 ‘죄지은 손’

4·10 총선을 앞두고 우리가 접하는 프란치스코 교황의 메시지 의미는 각별하다. 

요즘 우리는 ‘친명, 비명, 친윤, 비윤, 비명횡사, 친명횡재’ 등 유치하고 삭막한 정치판 유행어로 눈과 귀가 온통 어지러울 지경이다. 이재명 민주당 대표와 윤석열 대통령의 그런 식의 내 사람 감싸기는 당연히 큰 부작용을 빚으며 국민들에게 실망만을 안겨주고 있다. 공정성과 대의를 잃어가며 지도자 자격까지도 의심받는다.  

교황은 몇 년 전 바티칸에서 아르헨티나 축구 영웅 디에고 마라도나의 알현을 받았을 때 “어느 쪽이 죄지은 손이냐?”라고 농담 삼아 물었다고 한다. 마라도나는 1986년 멕시코 월드컵 잉글랜드와의 8강전에서 손으로 결승 골을 넣었었다. 이후 핸드볼 반칙 여부가 문제 되자 마라도나는 “나는 손으로 공을 건드리지 않았다. 그건 신의 손이었다”라고 얼버무리고 지나갔다. 이후 마라도나에게는 ‘신의 손’이라는 별명이 따라붙었다.  

아르헨티나 출신이며 축구 팬이기도 한 교황은 마라도나를 만나 매우 반가웠다고 한다. 그러나 ‘자기편’인 마라도나가 반칙한 손을 ‘신의 손’ 운운한 것에는 동의하지 않고 분명한 선을 그었다. 신의 손이 아니라 ‘죄지은 손’이 어느 손이냐 묻는 뼈 있는 농담을 통해 제 편이라도 잘못은 분명하게 짚고 넘어가는 엄격함을 보인 것이다. 

교황이라고 수십 차례 방영됐던 그 녹화 장면을 왜 못 보았겠는가. 그냥 쉽게 “어느쪽이 신의 손이냐?”라고 묻는 대신 “어느쪽이 죄지은 손이냐?”고 물어 ‘신의 손’을 욕되게 할 수 없음을 마라도나뿐만 아니라 모든 이들에게 확인해 준 셈이다. 

교황은 이 책에서 마라도나에 관해 특별히 한 장(章) 전체를 할애해 썼다. 바로 그 메시지를 강하게 전하기 위함이리라. 부드러움과 관용 속에서도 공정과 원칙을 양보하지 않는 리더의 모습. 큰 지도자가 필수적으로 갖춰야 할 리더십이 아닌가 싶다. 

요즘 한국의 정치 지도자들에게선 찾아보기 어려운 덕목이다. 우리 정치 지도자들을 바티칸으로 연수라도 보내야 할 것 같다. 

김형석(金亨錫) 논설위원은…

연합뉴스 지방1부, 사회부, 경제부, 주간부, 산업부, 전국부, 뉴미디어실 기자를 지냈다. 생활경제부장, 산업부장, 논설위원, 전략사업본부장 등을 역임했다. 

정년퇴직 후 경력으로 △2007년 말 창간한 신설 언론사 아주일보(현 아주경제) 편집총괄 전무 △광고대행사 KGT 회장 △물류회사 물류혁명 수석고문 △시설안전공단 사외이사 △한국방송광고진흥공사(코바코) 사외이사 △중앙언론사 전·현직 경제분야 논설위원 모임 ‘시장경제포럼’ 창설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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