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틀막’ 유행…창피한 우리 자화상 [金亨錫 시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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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틀막’ 유행…창피한 우리 자화상 [金亨錫 시론]
  • 김형석 논설위원
  • 승인 2024.03.10 12:2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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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인 제공자 제쳐두고 대뜸 입틀막부터 비난?”
“남의 연설 중 양해 없이 끼어드는 건 분명한 잘못”
“더욱이 대통령 행사 소란은 위기 상황 전조 될 수도”
“되풀이되는 ‘입틀막’ 코미디, 해외엔 어떻게 비칠까”
“연설방해꾼들 자숙하고 경호방식도 유연해져야”

[시사오늘·시사ON·시사온= 김형석 논설위원]

지난 2월 16일 대전 유성구 카이스트(KAIST)에서 열린 2024년 학위수여식에서 석사 졸업생이 R&D 예산 복원 등을 요구하며 자리에서 일어나 항의하다 제지 당하고 있다. ⓒ 뉴시스
지난 2월 16일 대전 유성구 카이스트(KAIST)에서 열린 2024년 학위수여식에서 석사 졸업생이 R&D 예산 복원 등을 요구하며 자리에서 일어나 항의하다 제지 당하고 있다. ⓒ 뉴시스

‘입틀막’은 점잖지 못한 용어다. 요즘 언론에 자주 등장하는 이 말은 자극적이며 천박하기까지 하다. 할 수 없이 차용해 쓰면서 독자들께 양해를 구한다. 

그러나 국어사전에 나온 입틀막의 본래 뜻은 그렇게 천박한 게 아니다. 사전에는 “놀라서 벌어진 입을 막을 정도로 벅차오를 때의 ‘입을 틀어막는다’를 줄여 이르는 말”이라고 정의돼 있다. 

그러니까 남의 입을 틀어막는 게 아니라 놀라거나 감정이 벅차오를 때 스스로의 입을 틀어막는다는 뜻이겠다. 그걸 ‘남의 입을 틀어막는다’는 의미로 요즘 여기저기서 마구 쓰는 중이다. 

입틀막 관련 기사를 언론에서 접할 때마다 헷갈린다. 집단 착각 또는 집단 마취 상태인가, 아니면 집단지성을 접하는 나의 소양 부족일까 하고.

헷갈리다가 나름 내린 결론은 입틀막이란 용어 사용부터 잘못됐고, 연설방해꾼에 대한 지적은 없이 대뜸 입틀막에 대한 비난부터 쏟아내는 것도 잘못된 일이라는 거다. 흥분해서 ‘입틀막’을 꺼내들며 억지춘향식 공격에 나서는 이들을 보면 코미디 같다는 생각도 든다.

그래서 여론몰이를 하는 이들이 만드는 ‘대세’를 거스르는 한이 있더라도 다 함께 사태의 순서를 바로잡아 보자는 뜻에서 인기 없을 이 글을 내보내기로 했다. 

엇나간 일의 원천 대부분은 국회

방송 토론 프로그램 등에서 한 사람이 말할 때 누가 불쑥 끼어들면? 당연히 규칙 위반이다. 방송 출연자라면 대부분 일정 수준에 이른 사람들이지만, 그래도 가끔은 그런 규칙 위반이 발생한다. 사회자가 제지하게 마련이다. 

학교에서 교사가 수업할 때 학생이 손도 들지 않고 큰 소리로 불쑥 끼어든다면? 그것도 분명한 잘못이다. 그럴 경우 과거 성질 급한 교사들은 폭력을 행사하기 일쑤였다. 요즘 세태에서는 수업을 방해받으면서도 대충 마무리하지 않을까 싶다. 그것 역시 잘못된 일이다. 

사찰에서 스님이 설법할 때, 교회에서 목사님이 설교할 때 해당 종교를 믿지 않는 방해꾼이 소리치며 나타난다면? 그런 상식 밖의 행동은 아직 접해보지 못했으나 당연히 신도들이나 관계자들에 의해 제지받을 거다.

그럼에도 불구, 방해꾼들이 수시로 출몰하는 곳이 한 군데 있다. 국회의사당이다. 상대당 의원이 마음에 들지 않는 발언을 할 때면 일제히 고함을 내지르기 일쑤다. 항의의 표시로 차라리 자리를 떴으면 좋겠으나 앉은자리에서 발언을 덮을 정도의 고함을 내지르곤 한다. 국회가 그런 코미디 공연을 한 지는 사실 오래됐다. 그들…, 먼 먼 옛날 거리 집회에서 제지받지 않고 맘껏 내지르던 추억이 그리운 모양이다. 

외신을 타고 들어오는 외국 국회 모습과 우리 국회 모습은 꽤 다르다. 일본 국회 등에서도 가끔 파행과 고함이 들리기는 하지만 우리처럼 허구한 날 고함과 삿대질로 의사당이 뒤범벅되는 경우는 드문 것 같다. 과문한 탓인지는 몰라도, 유럽 등 선진국 국회는 대부분 심심할 정도로 점잖은 토론장의 모습을 보인다. 

회기 중 거의 매일 방송을 타는 우리 국회 모습을 보며 우리들은 상대방의 말이 자기 마음에 들지 않으면 소리를 내지르는 걸 당연하게 여기게 된 것 아닐까 싶다. 그걸 언론 자유, 의사 표현의 자유란다. 규칙 위반, 방종, 연설방해일 뿐인데….

입틀막을 비난하기 전에 우선 연설방해꾼들에 대한 지적이 있어야 마땅하다. 그러나 요즘 ‘여론’은 그런 정상적인 사고를 덮어버렸다. 더욱이 대통령 경호의 특수성을 잠시만 생각해 보면 그런 막무가내식 돌출행동은 나올 수가 없다.

일련의 사태를 오바마 경우와 억지로 비교하잔다

거듭 말하지만, 연설방해꾼들을 일방적으로 편드는 요즘의 적지 않은 주장들에 대해 우리는 ‘글쟁이’ 양심상 도저히 반박하지 않고 지나갈 수가 없다. 그게 결국 지지율 낮은 대통령 쪽의 편을 드는 미련한 짓이 될지라도….

손흥민 선수나 방탄소년단은 대외에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얼굴들이다. 그들보다도 더 비중 높은 대한민국 대표선수가 대통령이다. 싫건 좋건 대한민국 종합부문 대표선수다. 요즘처럼 K팝이다, K푸드다 뭐다 해서 한국에 세계의 이목이 쏠리는 상황에서 대표선수의 체면이나 격을 마구 떨어뜨려 국익에 무슨 도움이 될까.

한국과학기술원(KAIST) 학위 수여식에서 졸업생이 대통령에게 항의하다 강제 퇴장당하는 등 대통령이 연설할 때마다 청중 속에서 돌출행동이 튀어나온다. 앞으로도 그러지 않으리라는 보장이 없다. 이런저런 분야에서 세계 일류국가로 올라섰다는 대한민국의 민낯이 드러나는 순간들이다. 

그런데 그 일을 미국의 오바마 전 대통령의 세련된 처신과 비교하잔다. 경우가 아주 다른 상황을 억지로 꿰어맞추면서까지 제 나라 대통령을 비난하고 싶은가 보다. 정말 “쯧쯧…!” 소리가 절로 나오지 않을 수 없다. 

오바마 경우는 이렇다. 십수 년 전 샌프란시스코에서 이민법 개정에 관한 오바마의 연설이 있었다. 그때 청중석에서 “대통령님, 우리 가족은 19개월째 떨어져 있습니다!”라는 한국인 학생의 고함이 터져 나왔다. 오바마 연설에 대한 반대 의사 표시가 아니라 오바마와 ‘같은 편’에 서서, 이민법을 신속히 개정해 달라는 호소였다. 

“대통령님은 모든 서류 미비 이민자들의 추방을 막을 수 있는 권한이 있지 않습니까!”라는 그 학생을 향해 오바마의 대응은 역시 노련했다. “아닙니다. 그래서 우리가 지금 여기 모인 겁니다”라고 유연하게 대답했다. 

오바마는 경호원들이 ‘같은 편’이었던 그 학생의 발언을 제지하거나 쫓아내게 하지 않았다. 흥분한 학생을 가라앉힌 후 연설을 계속했다. 윤 대통령의 연설 중 벌어진 입틀막 사태와는 애초부터 상황이 매우 달랐다. 

물론 오바마의 대처가 노련했던 건 사실이다. 그렇다고 오바마처럼 오랜 정치 경험이 없는 윤 대통령이 오바마처럼 유연한 대처를 하지 못했다고 비난하는 것 역시 온당치 못한 지적이다. 또 두 사람은 스타일 자체가 다르다. ‘다름을 잘못’이라고 비난하는 것도 억지거나 무지의 소치다. 한마디로 비교거리가 안 되는 것으로 대통령실을 비난하는 모습이다.

연설방해꾼들 자숙하고 경호처 세련됐으면

분단국의 대통령 안전 문제가 외국과는 비교할 상태가 아니라는 점을 감안하면 경호처의 예민한 대응 역시 전혀 이해 못 할 바도 아니다. 과거 경호실(경호처)의 순간적인 방심이 몇 차례나 큰 위기를 불러왔던 기억을 우리는 갖고 있다. 

1974년 8월 광복절 행사장에선 연단의 박정희 대통령을 향해 문세광이 총을 쏘며 돌진하는 상황이 벌어졌다. 육영수 여사가 그 총탄을 맞고 숨졌다. 박종규 경호실의 행사 참석자들에 대한 허술한 검색이 빚은 참사였다. 1979년 10월 26일엔 차지철 경호실의 안일한 근무로 인해 박정희 대통령이 김재규 중앙정보부장의 총을 맞고 숨졌다. 

대통령 경호처가 다른 나라에 비해 유난히 예민하고 경직될 수밖에 없는 이유다. 게다가 “박정희 목을 따러 왔다”는 1968년 김신조 사태, 1983년 아웅산 사태 등 북한의 대통령을 겨냥한 테러 계획이 끊임없이 이어져 온 게 우리의 현실이다. 2022년 일본 아베 신조 전 총리가 피살된 이후 각국 원수들에 대한 경호가 강화되는 추세이기도 하다. 

대북 강경 기조를 이어가는 윤 대통령이기에 대중 앞에 나설 때 경호처의 긴장도가 더욱 높을 수밖에 없는 건 당연한 일이다. 

총선 때까지 윤 대통령이 참석할 각종 행사에서 연설방해꾼들과 그들에 대한 입틀막 사태가 지속되지 않을까 걱정된다. 그 뉴스가 외신을 타고 해외로 나가며 우리나라가 다시 한번 지구촌 조롱거리가 될 일은 생각하기조차 싫다.    

연설방해꾼들의 자숙이 필요하고 국가 원수에 대한 유연한 경호전략도 새로 생각해 볼 시점이다.

김형석(金亨錫) 논설위원은…

연합뉴스 지방1부, 사회부, 경제부, 주간부, 산업부, 전국부, 뉴미디어실 기자를 지냈다. 생활경제부장, 산업부장, 논설위원, 전략사업본부장 등을 역임했다. 

정년퇴직 후 경력으로 △2007년 말 창간한 신설 언론사 아주일보(현 아주경제) 편집총괄 전무 △광고대행사 KGT 회장 △물류회사 물류혁명 수석고문 △시설안전공단 사외이사 △한국방송광고진흥공사(코바코) 사외이사 △중앙언론사 전·현직 경제분야 논설위원 모임 ‘시장경제포럼’ 창설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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