승계 준비하는 HD현대…非오너 경영 30년史 ② [옛날신문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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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계 준비하는 HD현대…非오너 경영 30년史 ② [옛날신문보기]
  • 권현정 기자
  • 승인 2024.04.16 10:3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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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몽준 최대주주 “경영은 전문 경영인에” 선언
10년 재임 민계식 전 대표 ‘기술 현중’ 방향 잡아
권오갑 회장, 구조 개편 ‘묘수’…바톤은 정기선 부회장에

[시사오늘·시사ON·시사온=권현정 기자]

조석래 효성그룹 명예회장이 지난 3월 29일 영면에 들었다. 창업 2세 경영인의 부고 소식으로 재계 안팎에서 한 세대가 저물어가는 데 대한 헛헛한 실감이 돈다. 그룹의 새로운 얼굴로 나선 3세들의 어깨도 무거워지고 있다. 선대의 일대에서 공과 과를 살필 때겠다. <편집자주>

지난해 싱가포르에서 열린 ‘가스텍 2023’ 행사장에서 정기선 HD현대 사장이 부스를 둘러보고 있다. ⓒHD현대중공업
지난해 싱가포르에서 열린 ‘가스텍 2023’ 행사장에서 정기선 HD현대 부회장이 부스를 둘러보고 있다. ⓒHD현대중공업

현대가 3세인 정기선 HD현대·HD한국조선해양 대표이사 부회장이 재계에 본격 등장한 것은 지난 2015년, 상무를 단 지 1년여 만에 최연소 전무에 오르면서였다. 이후 정 부회장은 2021년 사장을, 2023년엔 부회장 타이틀을 달았다.

정 부회장의 ‘초고속’ 승진은 단박에 이목을 모았다. 창업주 3세 경영인의 재계 등장이란 점 외에도 HD현대 그룹의 ‘소유와 경영 분리’ 원칙의 변화가 감지된단 점에서도 관심을 끈 것.

이후 현대중공업에서 오랜 시간 역량을 키워왔지만, 여전히 정 부회장의 승계에는 오너경영 부활의 장단에 대한 의심이 드리워진다.

다행히 정 부회장에게는 오답노트와 족보가 제법 쌓여있다. 아버지 정몽준 HD현대 최대주주와 전 회장단 등 선배‘들’의 족적이다.

 

정몽준 최대주주 ‘경영 분리’ 원칙…민계식 전 회장 ‘기술 중심’ 색깔 입혀


정기선 부회장의 가장 가까운 경영 선배는 아버지인 정몽준 HD현대 최대주주다. 다만, 정 최대주주가 직접 경영에 참여한 기간은 5년여 수준으로 짧다.

정 최대주주는 1982년 사장을 거쳐 1987년 37세의 나이로 회장에 취임했으나 바로 다음 해인 1988년 고문으로 물러났고, 2002년 현대그룹의 계열분리로 현대중공업 그룹이 탄생하자 고문직까지 내려놓으면서 경영에선 아주 물러난 것으로 평가된다.

다만, 오너로서의 역할까지 손을 뗀 것은 아니었다. 주인으로서 회사의 원칙을 정한 것. ‘소유와 경영의 분리’다.

1988년 13대 국회의원에 당선되면서 현대중공업을 떠난 정 고문은 대주주로서의 의사를 표시해야 하는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면 경영에는 관여하지 않는다. 자신의 대주주일뿐 경영은 전문경영인에게 맡겨야 한다는 신념을 갖고 있다고 현대중공업 고위관계자는 귀띔한다.

2002년 4월 17일자 <동아일보> [2002대기업 리더들(17)] 현대중공업그룹 “CEO에 전권을…”

다만 굵직한 인사에서는 최대주주로서 영향력을 행사했다. 이에 따라 경영 분리 원칙이 바탕에 있지만, 임원의 선임 및 재임엔 오너의 입김이 역할하는 HD현대의 미묘한 경영체제가 완성됐다.

해당 체제는 한동안 과도기를 겪은 것으로 보인다. 정 최대주주의 ‘경영 분리’ 초기 몇 년간은 특정한 목적으로 선임됐다가 임기를 채우지 못 하고 물러나는 사례가 잦았다.

현대중공업 CEO들의 평균 임기도 동종업계에 비해 짧은 것으로 분석됐다. 98년 이후 김형벽 사장이 1년, 조충휘 사장이 2년, 최길선 사장이 3년, 유관홍 사장이 1년7개월간 대표이사 사장을 맡았다. 8년이 채 못되는 기간에 4명의 대표이사가 바뀐 것.

(중략)

업계 관계자는 “조선업은 수주에서 발주까지 3년 이상이 걸리는 특성이 있다”며 “이 때문에 CEO 인사가 잦아질 경우 경영 일관성을 유지하기가 힘들다”고 말했다.

2005년 11월 1일자 <이데일리> 현대중공업 계열  CEO “나 떨고 있니?”

그러다 2010년을 즈음해 대표이사 사장단 중심 경영체제가 자리를 잡으며 장기 임원이 늘기 시작한다.

민계식 전 현대중공업 대표이사는 2001년부터 2011년까지 10여 년간 대표이사직을 맡았다. 2010년부터 2011년까지 1년간은 그룹 출범 후 처음으로 부활한 회장직에 앉기도 했다.

그룹이 본격적으로 방향성을 가지고 성장하기 시작한 것도 이 즈음부터다. 민 전 대표이사가 잡은 키는 ‘기술 중심 경영’으로 향했다.

민계식 회장은 ‘물량의 현대중공업’을 ‘기술의 현대중공업’으로 탈바꿈시킨 주역이다. 2001년 대표이사 사장에 취임한 후로는 주력제품 일류화, 핵심기술 고도화, 생산기술 일류화, 신제품·신기술 개발, 신규사업 창출 등 ‘기술개발 5대 중점 과제’를 정하고 기술중심 경영에 더욱 박차를 가했다. 임직원들은 “일등상품만이 살아남을 수 있다”는 그의 말을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어야 했다.

(중략)

세계일류상품 보유 개수에서 현대중공업은 단연 발군이다. 2, 3위 업체들의 개수를 모두 합한 것보다도 많다. 현재 국내에서 10개 이상의 세계일류상품을 보유한 기업은 현대중공업을 포함해 3개사뿐이다. 현대중공업은 세계일류상품 선정 제도가 처음 시행된 2001년부터 10년 동안 한 해도 빠짐없이 세계일류상품을 배출하고 있다.

2011년 3월 7일자 <이코노미조선> 민계식 현대중공업 회장

물론, 이후에도 2013년 저가 수주 해소 과제를 안고 회장으로 승진한 이재성 전 대표이사 회장이 임기를 1년 반여 남겨두고 사실상 경질되는 등 단일 과제 수행을 위한 인사는 종종 이어졌다.

다만, 대표이사 교체 주기는 크게 줄어든 것이 확인된다. 이재성 전 회장의 대표이사 재직 기간은 2009년부터 2014년까지 5년이다. 2011년 대표이사에 선임된 김외현 전 대표이사는 2015년까지 임기를 채웠다.

 

권오갑 HD현대 대표이사 회장 체제 8년…체질개선 열매 수확, 정기 부회장 손에


현재 그룹 회장을 맡고 있는 권오갑 HD현대 대표이사 체제 아래서 HD현대의 경영 체제 및 방향성은 완연히 안정기에 접어든 모습이다.

권 대표이사 회장은 지난 2017년 11월 현대중공업 지주(현 HD현대) 대표이사에 선임된 이후 현재까지 대표이사직을 맡고 있고, 지난 2019년부터는 회장으로 그룹을 이끌고 있다.

대표이사로만 약 7년째 그룹을 이끌고 있는 권 회장에 대한 평가는 ‘정리의 귀재’로 모인다. 그룹사에서 오래 벼린 순환출자 구조 해소 및 지주사 재편을 지난 2018년 마무리했고, 사업구조 역시 조선, 에너지, 건설기계 등으로 전문화하고 있다.

권오갑 HD현대 대표이사 회장. ⓒHD현대
권오갑 HD현대 대표이사 회장. ⓒHD현대

대우조선해양 인수전 실패 등의 과(過)도 있지만, 지난 2022년 출범 20년 만에 그룹명을 ‘HD현대’로 바꾸며 새출발을 선언하는 등 새로운 그룹사(史)를 시작할 토양을 다졌단 평이다.

지난해 HD현대는 2년 연속 매출 60조 원대를 달성하며 호실적을 거두기도 했다.

현대중공업그룹이 내놓은 지배구조 개편안이 지주사체제 전환와 순환출자 해소라는 과제를 모두 해결한 ‘묘수’로 환영받고 있는 만큼 지배구조 개편에 관한 잡음은 더이상 없을 것으로 보인다. 

이경자 한국투자증권 연구원은 이날 "현대중공업그룹의 이번 지배구조 개편안은 모든 참여자에게 충격을 주지 않는 최선의 방안"이라며 "회사와 주주 모두에게 긍정적"이라고 바라봤다. 

(중략)

권 부회장이 ‘오너경영체제’의 길을 닦는 일에도 청신호가 켜졌다. 그룹 최대의 숙제가 해결된 만큼 정기선 현대중공업 부사장이 수주 등 경영 성과를 내는 일에 집중할 수 있는 환경이 마련됐기 때문이다. 

2018년 8월 23일자 <비즈니스 포스트> [오늘 Who] 권오갑, 깔끔했다, 현대중공업 지주체제 마무리 모두 만족

권 회장의 정리에 따른 ‘열매’를 HD현대가 얼마나 수확할 수 있을지는 방향키를 잡아가고 있는 정기선 HD현대 부회장에 달려 있다.

정 부회장은 지난 2021년 사장 승진과 함께 2022년 지주사 및 HD한국조선해양의 대표이사를 맡으며 경영에 본격적으로 나서고 있다.

최근엔 정 부회장이 직접 설립하고 키운 계열사 HD현대마린솔루션이 IPO(기업공개)를 준비하면서 승계 속도설이 힘을 얻는 상황이다. HD현대가 30여 년 만에 ‘오너경영’으로 키를 틀고 있다.

담당업무 : 정유·화학·에너지를 담당하고 있습니다
좌우명 : 해파리처럼 살아도 사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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