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혜영 “경기도지사, 더 이상 대권 디딤돌 아니다”
원혜영 “경기도지사, 더 이상 대권 디딤돌 아니다”
  • 정세운 · 윤명철 기자
  • 승인 2013.09.16 1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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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혜영 국회의원 “혁신 이뤄, 경기도를 대한민국 중심부로 만들겠다”“안철수 신당, 통추 때와는 달라”…“성공 가능성 있어”

(시사오늘, 시사ON, 시사온=정세운 · 윤명철 기자)

▲ 민주당 원혜영 의원 ⓒ시사오늘 박시형 기자

민주당 원혜영 의원의 이력은 독특하다.
원 의원은 서울대 재학시절 유신독재에 항거해 2번 복역하고 4번의 제적을 당한 운동권이다. 그는 30대 나이에 (주)풀무원식품을 창업해 한 때 잘나가는 경영인이기도 했다. 하지만 1987년 6월 항쟁을 통해 대통령직선제를 쟁취, 문민정부 기회를 양김(김영삼-김대중)의 분열로 실패해 합법적인 군부정권이 출범하는 것을 보고 눈을 정치로 돌렸다. 정의감으로 피가 다시 들끓었다. 그는 야권 통합 운동과 새로운 정치운동이 필요하다는 판단으로 잘나가던 회사를 친구에게 넘기고 정치에 입문했다. 그리고 1992년 치러진 14대 총선에서 민주당 후보로 경기도 부천 중구을에 출마해 첫 금배지를 달았다.

원혜영에게 시련이 닥쳤다. 1995년 영국에서 돌아온 김대중(DJ) 전 대통령이 국민회의를 창당하자, 대부분의 정치인들은 다음 당선을 위해 당을 옮겼다. 원혜영은 “명분이 없다”며 노무현 김원길 이부영 박계동 제정구 박석무 등과 함께 당을 지켰다. 하지만 돌아온 건 ‘낙선’이란 두 글자였다.
그들과 함께 통합추진회의(통추)를 결성해 정치실험에 나서기도 했다. 이후 그는 4선의 중진과 두 차례의 부천시장을 거쳐 제1야당의 공동대표까지 역임했다. 그런 그가 이제 경기도지사에 도전장을 던졌다. 그가 도전장을 낸 이유가 듣고 싶어 만남을 요청했다. 인터뷰는 9월 4일 국회 의원회관 816호에서 이뤄졌다.

그의 목소리는 낮고 차분했지만 60대 초반의 나이에 비해 젊고 건강한 모습이었다.
첫 대면에서 필자는 ‘나이에 비해 훨씬 젊어 보인다’고 하자 원 의원은“현미밥, 안전한 먹거리, 맑은 공기, 그리고 하루 30분 이상 꾸준히 걷고 있다”고 답했다. 

▲ 원혜영 의원 ⓒ시사오늘 박시형 기자

“야권분열 반대해 민주당에 남아, 결국 낙선”

첫 질문을 그가 정치에 입문하던 시기로 돌렸다.

-기업을 경영하다 정치에 입문했습니다. 계기가 있었나요.

“원래 내가 정치를 시작하게 된 게 1987년 6월 항쟁의 성과로 6·29선언이 나오고, 대통령 직선제를 쟁취하면서 합법적인 정치활동의 장이 열렸을 때입니다. 그리고 국민들은 당연히 그 결과로써 민주정부를 수립할 것이라 믿었고, 결정적인 조건이 양김의 단일화였습니다. 양김이 내내 공언을 하기도 했고 그렇기 때문에 국민들은 추호의 의심 없이 당연히 될 줄 알았습니다. 결국은 이게 지역적 기반이나 양쪽 세력의 이해관계 때문에 안 됐습니다. 합법적으로 군사정권을 연장시킨 꼴이 된 거죠.
이런 상황 속에서 야권 통합 운동과 새로운 정치운동이 필요하다고 판단해 정치를 시작하게 됐습니다. 제14대 국회 때 야권통합을 이룩하고 처음 내가 당선돼 등원을 했습니다.”

1987년 양김의 분열로 대통령은 군사정부의 후예인 노태우에게로 돌아갔다. 1988년 13대 총선은 집권당이던 민정당과 민주당 평민당 공화당 등 4당 체제로 치러졌다.
이후 1990년 민정당과 김영삼이 이끄는 민주당, 김종필이 수장인 공화당은 3당 합당을 통해 거대여당인 민자당을 탄생시켰다.
야당은 김대중이 이끄는 평민당과 3당 합당에 참여하지 않은 이른바 ‘꼬마 민주당’이 이었다. 1992년 대선을 앞두고 평민당과 꼬마 민주당은 통합, 마침내 야권통합을 이뤄냈다. 원 의원은 그때의 일을 얘기하는 듯싶었다.

- 14대 국회에서 첫 금배지를 달았습니다. 1996년 15대 총선을 앞두고 대부분의 정치인은 국민회의로 입당을 했는데 입당하지 않고 민주당에 잔류한 이유가 궁금합니다.

“단도직입적으로 말하면 DJ가 국민회의를 만듦으로써 야권분열이 왔기 때문입니다.”

-당시 DJ가 당을 깨지 않고 민주당으로 들어와도 얼마든지 당을 장악할 수 있었을 텐데요. 설득을 해보지는 않았나요?

“DJ에게 김원기, 노무현, 그리고 저는 ‘민주당을 깨면 안 된다. 민주당의 후보로 나오셔라’ 했습니다. 그러나 DJ는 전적으로 당신이 당을 장악, 통제할 수 있는 정당을 원했던 것 같습니다. 그런 점에서 야권분열이 왔고 기본적으로 야권분열을 반대해서 민주당에 남은 것입니다.”
1992년 대선에서 패한 DJ는 정계은퇴를 선언한 뒤 영국으로 외유를 떠났다. 정국 구도는 민정-민주-공화당의 3당 합당으로 탄생한 ‘민자’라는 거대여당과 이기택이 이끄는 통합야당인 민주당 양당 체제였다.
1995년 지방선거를 앞두고 외유를 떠났던 DJ는 돌아와 민주당 지원유세에 나서기 시작했고, 슬그머니 정계복귀를 서둘렀다. 그리고 그는 국민회의를 창당했다.

-결국 15대 총선에서 낙선했습니다.

“그런데 한국정치는 무엇보다도 지역기반, 카리스마 있는 리더의 힘이 크기 때문에 결국 민주당이 소신 있고, 참신한 사람들이 많이 있다는 평가에도 불구하고 결국 전멸하다시피 하고, 나도 380표차로 떨어졌습니다.
그 때 (나의 지역구는) 국민회의에서 동네 이장 출신이고 단위 농협조합장 하시던 최선영이라는 분이 출마했습니다. 하지만 언론에서도 당선권이라고 예측했는데 결국 지역주의를 못 넘었습니다.”
이기택 김원기를 비롯해 노무현 박계동 원혜영 등 대중적 인기를 무기로 15대 총선에 출마했으나 이들은 모두 낙선했다.

- DJ를 안 따라갔을 때는 금배지와도 바꾸겠다는 소신 있었습니까?

“그 때 안 따라간 거는 불리한 거 누구나 다 알던 거였습니다. 아주 불리하다, 떨어질 각오하고 안 따라갔던 것인데 나중에 막판은 워낙 또 지역에서, 현장에서 인기가 좋아서 언론들도 당연히 여유 있게당선되는 것으로 보고, 나도 분위기 좋아서 당선될 줄 알았는데 탄탄한 지역기반이나 강한 리더가 뒷받침, 모아주는 표가 없기 때문에 아쉽게 떨어졌습니다.
그런데 나는 참 복이 많다고 생각하는 게 내가 해온 일 중에서 보람되고 영광된 게 부천시장 일입니다. 그 때 내가 대세 좇아서 가고 당선됐으면 그냥 국회의원 6선이겠죠. 그것보다 떨어졌기 때문에 부천시장을 할 수 있었습니다. 이것이 내 일생에서 가장 보람되고 영광된 일을 할 수 있어서 큰 복이었습니다. ‘그 때 안 떨어졌으면 어떻게 할 뻔했나´는 생각이 들 정도로 나로서는 아주 좋은 기회가 됐던 것 같습니다.”

-비록 15대 총선에서 낙선하기는 했지만 통추의 인기가 대단했었습니다.

“그 때 통추가 대선을 앞두고 둘로 나눠졌습니다. DJ가 국민회의를 만들어서 야권을 분열시킨 문제가 있지만 어쨌든 DJ 중심으로 정권교체를 할 수가 있는 기회가 왔습니다. 이전의 문제를 가지고 인정을 못하고 돕지 않는다면 큰 역사적인 관점에서 봤을 때 정당치 않다, 그래서 정권교체를 위해서 DJ를 지지하는 쪽이 대세였는데 김원기, 노무현, 김정길, 유인태, 원혜영 등이 그랬습니다. 그래도 어쨌든 3김 청산이 주다, DJ가 분열의 책임이 있는데 어떻게 지지하느냐 해서 결국 새누리당으로 참여한 분들이 이부영, 제정구, 박계동 이렇게 됐습니다.” 

▲ 원혜영 의원 ⓒ시사오늘 박시형 기자

“노무현 반대로 이인제 후보 지지 접어”

- 그런데 통추시절에 독자후보를 내보자는 분들도 있었다고 들었습니다.

“일부 초기에 그런 얘기가 있었습니다. 나 같은 경우도 이인제 의원이 독자후보로 나가는 움직임이 있으니깐 그것도 나름대로 우리사회를 근본적으로 바꾸는 계기가 되지 아닐까 생각을 했는데 결국 여러가지 한계가 있고 좀 더 이상적이지는 못하지만 현실적으로 정권교체 가능성이 큰 DJ를 지지하는 게 맞겠다, 이렇게 판단을 한 것입니다.”

- 통추가 인기가 좋아 내부에서 얼마든지 후보를 낼 수 있지 않았을까요.

 “그때는 노무현보다는 제정구를 내보내는 것이 어떻겠는지 잠깐 검토해 봤습니다. 그런데 무게가 안 실려서 현실성이 없다고 정리했습니다. 차라리 이인제 의원이 독자적으로 선풍을 일으켰으니깐 그것을대안으로 논의를 해봤는데 안 하는 쪽으로 정리를 했습니다.”

 -이인제 후보를 지지하지 못한 이유가 있었나요?

“노무현 의원이 이인제 의원하고 같이 통일민주당으로 같이 13대 때 등원을 하고, 같이 노동위원회에 있었습니다. 노무현 의원은 ‘이인제 의원이 실제로 서민, 민중을 대변하는 정치인이 아니다’ 하는 부정적 인식이 아주 강했습니다."

-왜 그렇지요?

“3당 통합할 때 다른 의원들은 ‘정치가 현실인거 어떻게 하냐. 따라가야지’ 했습니다. 그런데 이인제 의원은 너무 당당하게 ‘당신 당연히 와야지 왜 딴 소리 하냐’는 식으로 아주 비난하는 그런 입장을 취했습니다.
그 얘기를 ‘제3후보를 지지하는 것도 방법 아니냐’ 할 때 노무현 의원이 날 직접 찾아와서 ‘내가 겪어봐서 잘 안다. 그런데 이인제 의원이 정말 정치적 태도나 입장이 서민을 위한 정치를 하겠다는 태도가 아니어서 실망했다. 더구나 3당 야합 때는 다른 의원들은 정치가 현실 아니냐, 미안하다 이렇게 서로 양해를 구하는 입장이었는데 이인제 의원은 너무 당당하게 ‘왜 안 쫓아오냐’해서 ‘정말 용납하기어려웠다. 그런 사람을 자기가 지지할 수 없지 않냐.’ 그렇게 나에게 설명 겸 호소를 했습니다. 나도 ‘잘 알겠다’고 했고, 모두 행동 통일해서 크게는 둘로 나눠졌지만 정권교체를 위해 DJ를 지지하기로결정했습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DJ를 ‘분열주의자’라고 맹비난했습니다. DJ를 따라가기에는 명분이 약했던 것 아닌가요?

“과거에 이견이 있었고 우리 보기에 잘못된 점이 있었다 하더라도 50년 만의 수평적 정권교체의 기회라는 것을 그런 이유로 유실시킬 수는 없는 것 아니냐는 큰 판단을 가지고 참여를 했습니다.”

- 노무현 전 대통령이 통추에서 한나라당 간 사람은 ‘이익’을 택해서 간 사람이고, 국민회의를 선택한 사람은 ‘의’를 택해서 갔다고 평가했습니다. 이를 가지고 박계동 전 의원과 한때 설전을 벌였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노 전 대통령과 같은 생각입니까.

“그렇게 단순하게 얘기할 일은 아닙니다. 정치적 입장이 달랐던 것이죠. 수평적 정권교체의 가치를 최고로 쳤느냐, 아니면 3김 청산, 구체적으로 반DJ 입장을 더 강하게 가졌느냐. 아무리 그래도 DJ가 집권하는 게 역사적으로 무슨 의미가 있느냐 이런 부정적 관점이 있었냐 하는 정치적 입장 차로 봐야합니다. 어디는 원칙과 정의를 따르고, 어디는 정의가 아니지만 사적인 이익을 추구했다는 것은 그 당시 시점에는 격렬했지만 나중에 정리해서 볼 때는 그렇게 볼 수는 없습니다.”

- 그 이후 ‘노무현’과 정치적 스탠스를 같이 해왔습니다. 혹자는 이 때문에 친노라고 이야기를 합니다. 맞습니까?

“나는 노무현 전 대통령의 동지로서 지역주의 극복을 위해서 또 민주화된 사회, 노 전 대통령 표현대로 ‘사람 사는 세상’을 위해 같이 일했다는 것이 아주 영광스럽고 뜻있는 일이라 생각합니다. 그런 점에서 통추도 같이 했고, 원조 친노라고 보면 원조 친노입니다. 나는 자랑스럽게 생각하는데 집권 이후에 소위 친노라고 하는 쪽에는 직접 속하지 않았다고 봅니다.”
원 의원은 그러면서 재밌는 이야기를 했다.
“내가 우스갯소리로 ‘핵심 친노에서는 나를 친노로 인정 안 하고, 반노(비노)쪽에서는 친노라고 해서 내가 허공에 떠있다’고 했습니다.”

- 친노가 원 의원을 친노가 아니라고 하고, 비노 쪽에서는 친노라고 하는 것은 정치적으로 세력화를 못했기 때문에 그런 얘기를 듣는다고 생각하지 않습니까.

 “내 나름대로 원칙을 가지고 정치를 했기 때문에 어느 극단으로 한쪽으로 치우친 것으로 안 보이는 측면이 있습니다. 그런 게 이유일 듯싶습니다.”
노무현은 대통령에 당선 후 자신의 정치 일생을 걸었던 지역주의 극복을 위해 열린우리당을 창당했다. 하지만 열린우리당은 창당한지 몇 년 안 돼 문을 닫았다. 

▲ 원혜영 의원 ⓒ시사오늘 박시형 기자

“열린우리당 동력 상실, 새로운 정치실현 좌절”

-노무현 대통령 당선 후 열린우리당을 창당한 이유가 무엇입니까.

“지역주의 극복을 위한 노력으로 보면 됩니다. 그런 과정에서 바보 노무현이라고 불렸습니다. 그래서 저렇게 우직할 정도로 바른 정치를 하는 사람에게 나라를 맡겨보자는 국민적 합의가 노무현 정권을 탄생시켰다고 봅니다. 열린우리당 창당도 그 연장선상에 있었다고 봅니다.”

-그런데 몇 년 안 돼 문을 닫았습니다.

“안 좋은 정치 환경 속에서 그리고 또 노무현 전 대통령이 격정적이었습니다. 받아들일 것은 받아들이고, 타협하면서 가야할 것을  못했습니다. (이리저리) 부딪치다 보니깐 결국 많은 세력을 적으로 만들어서 꼭 하고자 했던 지역주의 극복이나 정부 혁신, 지방 자치, 지방 분권 이런 것들을 완성시키지 못한 것에 대해 안타깝게 생각을 합니다.”

-열린우리당이 힘들어도 끝까지 갔어야 한다, 이런 생각은 안 해봤습니까?

 “이미 그럴 수 있는 동력을 상실했다고 봅니다. 다만 적어도 열린우리당 창당에 참여한 사람들이 노무현 정부가 실패하고, 국민으로부터 외면을 받는다고 해서 그 당을 떠난다는 것은 정치 이전에 사람으로서의 바른 도리가 아니라고 생각했습니다. 나는 ‘이 배가 침몰하면 나도 침몰한다’는 생각으로 당을 지켰습니다. 어쨌든 참 아쉽습니다. 지역에 기반하지 않은 정당, 또 새로운 정치를 실현하고 실천하고자 했던 정당이 좌절한 것은 정치 발전의 큰 아픔으로 기억 합니다.”
이 부분에서 필자에게 궁금한 게 있다. 노무현은 지역주의 극복을 모토로 정치를 해왔다. DJ의 경우, ‘4자 필승론’이나 ‘지역등권론’등을 설파하며 지역주의에 기대 정치를 해왔다는 비판을 면키 어렵다.
노무현 전 대통령도 생전에 DJ를 향해 “역사의 수레바퀴를 거꾸로 돌리려는 지역주의자”라고 비판했다.
하지만 민주당 내부에서는 ‘김대중과 노무현 정신을 계승하자’며 두 사람의 걸개사진을 당사에 걸어놓고 있다.

- 민주당 내부에서 ‘김대중과 노무현의 정신을 계승하자’라는 얘기를 많이 합니다. 잘 이해가 되지 않는 부분인데요. 무엇을 이야기하는 건가요?

“(김대중, 노무현) 두 분을 대비시키면 그렇지만 더 크게 여야로 보면 어쨌든 서민과 중산층을 대변하려고 했습니다. 한편으로 DJ는 지역주의의 향유자, 어떤 때는 지역주의를 강화시키는데 기여한 책임도 있지만 기본적으로는 지역주의의 극복을 위해서 맞서 싸운 측면도 분명 있습니다. 물론 국면 국면에서는 자유롭지 못합니다. 책임 있다는 것은 인정하지만 DJ가 지역주의의 조장자가 아니라 피해자이기도 합니다. 1971년도 대통령 선거 때 정상적으로 안 되니깐 공화당 이효상 씨가 ‘경상도 대통령론’ 하면서 들고 나와 호남 고립으로 갔습니다. 3당 야합도 그런 것입니다. 기본적으로 피해자인 것입니다.
DJ는 피해자니깐 어쩔 수 없이 맞서 싸운 측면이 있는데 노무현은 거기서 더 나가서 영남이라는 우월적 지역 기반에서 거기에 안주하면 국회의원도 하고 잘됐을 텐데 약자인 호남과의 연대를 기본 입장으로했습니다.
시쳇말로 홈그라운드에서도 고향사람 취급 못 받고 호남사람 취급받으면서 몇 번씩 좌절도 하고 그런 겁니다. 또, 기본적으로 민주주의의 실현, 지방자치 실현, 노동자, 농민을 비롯한 서민의 권익 보호 이런 점은 뚜렷하게 공통된 겁니다. 역대 기득권 세력인 영남, 보수 기반으로 주로 여당을 해왔던 집권세력과는 뚜렷하게 구분되는 공통점이 있다고 봐야 합니다.”

“노무현, 정치적 동질감 느껴”

 이쯤에서 원 의원에게 짓궂은 질문을 던졌다.

-노무현, 김대중 중에서 한 사람을 대통령으로 선택해야 한다면 누구를 선택하겠습니까?

“나는 어쨌든 정치적으로 가장 동질감을 느끼는 분이 노무현 대통령인데, 정치적인 실천을 통해서 성과를 많이 낸 분은 김대중 대통령이라 보고 있습니다.”

이제 본론으로 돌아와 현실정치에 대해 물어볼 차례다.

- 원내대표, 당대표를 역임했음에도 존재감이 약합니다. 호남사람이 아니어서인가요?

 “호남사람이 아니기 때문은 아니고, 내가 정치적으로 강한 입장을 별로 취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뭐든지 대비가 뚜렷해야지 확실하게 인식이 되는 것 아닌가요? 좋게 말하면 합리적이고, 그게 다른 측면으로는 입장이 모호하다는 평가를 받는 것 같습니다. 강한 정치적 인상을 주지 못하는 그런 것이 약점이라고 보여지는 것 같습니다.”

- 풀무원을 대표 자리를 과감하게 버리고 정치를 시작했습니다. 결단성이 없어보이지는 않는데요.

“정치하려고 접은 건 아니고 민주화 운동에 복귀하려고 사업을 정리한 것입니다. 마침 사업이 잘 됐고, 나보다 능력도 있고 돈 있고 의지 있는 동업한 친구였던 남승우 사장이 있었기 때문에 다 넘겼습니다. 그게 회사 발전을 위해 잘된 것이죠. 나는 평소 소신으로 우리사회의 민주화를 위해서 기여하겠다는 의지를 사회운동이든 정치운동이든 실현할 수 있었습니다. 또 여러 차례 국회의원도 했고 시장도 했습니다. 정당과 국회의 지도적인 역할도 하고 나로서는 아주 만족스러운 결과였다고 생각을 합니다.”

이 부분에서 필자는 ‘이미지 변신을 해보는 것은 어떠냐’고 물었더니, 원 의원은 간단명료하게 답변했다. “나이 들어서 이미지가 바뀌면 이상해 보인다. ”(웃음)

- 강용석 전 의원이 새누리당에서 성공하려면 영남+법조인이 돼야 하고, 민주당은 호남 출신에 감방에 갔다 와야 존재감이 있다고 농담식으로 얘기했지만 의미가 있어 보입니다. 민주당에서 정치를 해보면어느 정도 맞지 않나요?

“민주당도 끊임없이 외연을 확장하기 위해서는 호남의 지지 기반을 바탕으로 해서 더 확대해 나갈 수 있는 리더십이 필요합니다.”

- 원 의원이 야당답지 못하다는 평가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좋게 말하면 합리성이 있어서 그렇고, 나쁘게 말하면 투쟁성 약해서 그런 것이죠.”

“민주당, 책임 있고 능력 있는 집단으로 거듭나야”

- 지난 대선에서 패배한 이유는 무엇인가요

“박근혜 후보가 선거운동을 아주 잘 한 거죠. 경제민주화, 복지국가 건설 등 진보세력이 중심으로 하는 어젠다를 받아들이면서 나도 그렇게 하겠다고 하니까 누가 더 잘할 수 있느냐고 갔고, 그런 점에서 책임성과 능력에 있어서 우리가 박근혜 후보보다 못한 것으로 평가받은 것이죠. 냉정하고 겸손하게 받아들여야 합니다. 이 점에서 진보는 안 되겠으니까 중도를 강화하자는 것은 의미가 없다고 봅니다. 얼마나 책임 있고 능력 있는 집단인지 국민에게 인식시키는 게 중요합니다. 진보 약화, 중도 강화는 전혀 잘못된 얘기죠.”

- 일각에서는 우리나라 보수층이 상당히 두텁기 때문에 민주당 집권이 어렵다는 얘기도 나옵니다.

“그렇지만 우리가 두 번의 집권 경험이 있고 이번도 불과 3~4%의 차이로 진 거 아닙니까.  이쪽이 지리멸렬, 야권단일화도 모양 좋게 안 됐고, 심지어 당의 역량까지도 총동원하지 못했습니다. 문재인 후보를 중심으로 한 핵심세력만 열심히 했습니다. 심지어 국회의원도 상당한 소외되는 분위기가 있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48% 얻은 것은 정권교체 열망으로 받아들입니다.”

- 당내 지지세력 만으로는 집권이 힘드니깐 DJ 때처럼 시민사회세력 끌어들여 다시 한 번 세를 확장하자는 의견도 있습니다.

“세상일은 다 내가 중심을 잡아야 갖다 붙이고 뗄 수도 있는 것입니다. 중심을 못 잡고 허겁지겁, 가령 물에 빠졌을 때 제일 조심해야 하는데, 자기  중심을 못 잡으면 구하려고 사람이 가도 구하러 간 사람까지 붙잡혀서 같이 빠져죽기 쉽습니다. 나는 중심을 잘 잡는 게 제일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 원혜영 의원 ⓒ시사오늘 박시형 기자

 “이석기 사태, 국정원 수세 몰리자 터트려”

- 국정원 대선개입 의혹-NLL 사태-이석기 내란음모 사건 등 일련의 사건에서 민주당이 주도권을 잡지 못하고 있습니다.

“분명한 것은 국정원의 대선 개입이라는 것은 이석기가 장난감총 가지고 무기 만들겠다는 것 못지않게 황당한, 정말 50~60년대나 있었던 일이 지금 재현되고 있는 것입니다. 민주당을 비롯한 일반 상식 있는 시민들, 대학생, 교수, 종교계까지 다 나섰습니다. 이 급한 불을 끄기 위해서, 국정원이 자기네가 저지른  과오에 대한 국민적인 비판과 문책을 피하려고 이석기 문제를 꺼낸 것 같습니다.”

-이석기 문제를 어떻게 보십니까?

“이석기 사태가 사실이라면 용납할 수 없는 일이라는 것은 확실히 해도 그건 그것이지요. 국정원이 이 시점에서 그걸 왜 터트렸을까요. 어린애들도 다 아는 것 아닙니까? 국정원이 자기네가 저지른 과오를덮기 위해서 했기 때문에 솔직히 약발이 약합니다. 국정원이 자기 살아남으려고 위기에 몰려서 맞불을 논 것이 아니라 국가 대표 기관으로서 국가 안전을 위해하는 세력을 잡아넣겠다고 했으면 파장이 컸을것입니다. 이석기 사태가 사실이라고 하더라도 목적은 제 발의 불 끄려고 했기 때문에 그 파급력은 작을 수밖에 없습니다.”

- 이석기라는 사람이 내란을 할 수 있는 힘이 있나요? 민주당이 부화뇌동해서 끌려가는 것이라는 비판도 있습니다.

“장난감총이라도 사서 무기로 만들 수 있다고 어리석고 현실성 없는 세력들 얘기니깐 내란음모까지 가기는 재판을 해봐야 하지만, 그러나 분명하게 헌법이 인정하지 않는 무력 폭력, 이런 것을 적어도 주장하고 집단적으로 논의했다는 점에서 정치적 책임은 면할 수가 없다고 봅니다. 법적으로는 재판을 통해서 가려질 것입니다.”

- 현 지도부가 대응 못하고 수세에 몰리는 것은 지도부 문제로 볼 수 있나요. 지도부 교체 이야기도 나옵니다.

“내가 지도부라도 별 뾰족한 수가 없습니다. 시간이 흘러야 한다고 봅니다. 그런 점에서 어제 내가 의총에서도 얘기했습니다. ‘이석기 사건이 황당하고 참 용납할 수 없는 일이지만 국정원이 이 문제를 제기하는 것은 너무 뻔한 것이기 때문에 국민이 바보가 아니고 여기에 넘어가서 ‘그래 국정원 훌륭한 일 하니깐 국정원 개혁이고 뭐고 국정원 흔드는 일 하지마’이런 식으로는 가지 않을 것이다. 그쪽이 의도하는 것이니깐 그렇게 못 하게 우리 야당이 국정원 개혁 투쟁은 더 단호하게 당당하게 나가자'고 얘기를 했습니다. 국정원 계산대로 안 될 것입니다.”

“야권 단일화 절실, 새누리 유정복 ‘유력’”

이제 원 의원이 마음속에 품었던 얘기를 듣는 시간이다.

-내년 지방선거에서 경기도지사 출마를 염두에 두고 있습니다. 당내 최대 경쟁자는 누구인가요.

“당내에서는 역시 김진표 선배님이 지난 3년 전에도 민주당 후보로 선출됐었습니다.(원 의원과 김진표 의원은 경복고-서울대 선후배 사이다.) 현재 김진표 의원이 제일 앞서 있습니다. (그리고) 내가 뒤따르는 그런 상황입니다. 그것보다 훨씬 중요한 게 안철수 의원 쪽에서 후보를 어떤 분을 내느냐, 그리고 그쪽과 정의당을 포함한 범야권이 어떻게 후보 단일화를 이룰 수 있을 것이냐가 훨씬 중요한 관건입니다.”

- 후보 단일화를 해야지 이길 수 있다는 말인가요? 후보 단일화를 하면 당연히 제일 야당인 민주당이 돼야 한다고 보시죠?

 “그렇게 하면 민주당의 오만이 될 수 있습니다. 후보단일화는 진실된 생각을 가지고 합의를 도출해야 한다고 봅니다.”

원 의원이 경기도지사가 되기까지는 산 넘어 산이다. 우선 민주당 내부에도 쟁쟁한 경쟁자가 있다. 고교·대학 선배인 김진표 의원이다. 이 밖에도 이종걸, 이석현, 최재성 등…. 이겨야 할 상대가 너무 많다. 민주당 후보가 돼도 본선까지는 갈 길이 멀다. 야권 후보 단일화라는 큰 강이 있다. 지방선거는 8개월 앞으로 다가왔다. 우군이 절실하다.

-새누리당에서는 누가 후보가 될까요?

“새누리당은 잘 모르겠는데 일반적으로 유정복 장관이 친박 인사고, 제일 기반이 튼튼한 거 아니냐고 합니다. 그렇게들 보더라고요.”

-출마 이유는 무엇인가요.

“내가 경기지사에 관심을 갖게 된 이유는 대통령 선거 끝나고 여러 가지 고민을 했습니다. (반드시) 집권을 통해 위로부터의 개혁, 위로부터의 변화만이 우리사회를 발전시키는 길인가, 그렇지 않다고 생각했습니다. 위로부터의 변화 못지않게 밑으로부터의 변화, 우리 시민들의 생활 현장 변화가 그 못지않게 중요한 것 아니냐. 그래서 밑으로부터의 변화를 통해서 우리 국민들에게 희망을 갖게 해주는 일이 중요한 일이라고 판단했습니다.”

-어렵습니다. 구체적으로 말씀해 주시죠.

“풀무원 창업도 성공적으로 했고, 시장을 하면서 혁신을 통해서 많은 성과를 냈던 사람으로서 ‘내가 잘 할 수 있는 일을 할 수 있다면 그것을 기피할 일은 아니지 않느냐’ 그런 생각을 해서 경기지사를 준비하고 있습니다.”

- 경기지사에 나오려면 당내 의원들을 우군으로 끌어들어야 합니다. 이를테면 세력화가 필요할 텐데요.

 “이제는 많은 국민들이 지역주의 청산과 계파를 없애야 한다고 지적합니다. 시대정신도 그런 거고 그런 점에서 계파를 기반으로 정치하겠다는 생각을 갖고 있지 않습니다. 다른 분에게도 (계파 청산을)버려야 할 때고, 그렇게 하라고 충고를 해줘야 할 입장입니다.”

▲ 원혜영 의원 ⓒ시사오늘 박시형 기자

“경기도지사, 더 이상 대권 디딤돌 아냐… 모독”

- 본선에서는 김문수 지사보다는 유정복 장관이 나오는 게 편하지요.

“각각 장단점이 있을 겁니다. 김문수 지사가 나오면 워낙 인지도가 높고 현직 프리미엄에 성실, 겸손 이미지도 있습니다. 하지만 뉴타운 실패 이런 것은 MB-김문수 공동책임입니다. 심지어 무상급식까지 정쟁거리로 만들어냈습니다. 대권을 위해서 학생들의 급식 환경까지 악화시키는 굉장히 근본적으로 잘못된 정치태도라고 봅니다. 유정복 장관은 참신한 맛이 있어서 확장성이 더 클 수도 있습니다. 여러 가지를 따져봐야 합니다.”

- 좀 이른 질문일 수도 있습니다. 경기도지사나 서울시장을 역임했던 사람은 차기 대권주자로 거론됩니다. 경기도지사가 되면 차기 대권을 생각하는 것 아닙니까?

 “이제는 서울시장이나 경기도지사가 대권 행보의 디딤돌로 전락되면 안 됩니다. 1,000만 서울시민, 1,200만 경기도민들에 대한 모독이라 생각합니다. 그리고 이제는 시민의식이 ‘시장, 지사 징검다리 삼아서 대권 도전해, 응원해줄게’ 이런 것을 넘어섰다고 봅니다. 정말 누가 경기도를 위해서 시민을 위해서 보살피고 바꿔나가고 개선해 나갈 것이냐? 하는 것을 보고 판단할 것이라 봅니다.”

- 하지만 서울시장이나 경기지사는 막대한 예산을 관장하게 됩니다. 때문에 사람이 몰리게 됩니다. 사람이 모이면 대권도 욕심이 생기는 것 같은데요.

“아주 바람직하지 않은 게 서울시장, 경기지사가 자기 일에 대해 충실히 하기보다는 대권도전의 기반으로 생각하는 게 만연돼 있다는 겁니다. 솔직히 많은 정치인들이 그런 생각에서 탈피 못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결국 유권자, 시민이 판단할 문제라고 보는데요. 그런 목적이나 의도를 가지고 접근하는 후보들을 우리 시민이 일꾼으로 선택하지는 않을 겁니다.”

- 경기지사가 되면 대권 도전은 아예 생각도 안 한다는 겁니까?

 “경기도는 대한민국 축소판이고 인구로 따지면 대한민국 인구의 1/4이고, 1250만입니다. 경기도민에게 내 능력과 노력을 다 바쳐서 잘 봉사하고, 그래서 시민들의 생활환경을 조금이라도 낫게, 편리하게,안전하게 만드는 일 자체가 최고의 가치가 돼야 합니다. 이런 것을 잘해서 대권 도전하겠다는 ‘사’가 끼면 국민들이 알게 되는 겁니다. 그런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봅니다.”

“경기도는 서울의 주변부가 아닌 대한민국 중심”

- ‘내가 경기도지사가 돼야 한다’는 당위성을 설명해 주시죠.

“대한민국에 가장 필요한 게 혁신이고, 특히 경기도에 가장 절실한 것도 그것입니다. 이런 점에서 나는 혁신의 전도사라고 얘기할 정도로 대한민국의 가장 창조적인 기업인 풀무원을 창업한 사람이고, 평범한 도시 부천을 문화도시로 완전히 천지개벽시킨 사람입니다. 정치 입문 후 14대 국회에서 깨끗한 정치운동을 한 것부터 현재의 몸싸움하지 않는 국회, 공부하는 국회를 만들기 위해서 꾸준하게 정치혁신, 국회혁신한 사람입니다.”
그러면서 그는 좀 더 구체적으로 당위성을 설명했다.
“이런 것을 하겠다고 주장하는 사람보다 실적이나 성과를 낸 사람에게 기회가 주어져야 합니다. 그런 점에서 나는 경기도와 대한민국의 가장 절실한 과제인 혁신을 이뤄낼 적임자입니다. 이미 경영을 통해서, 국회 운영에 있어서 앞장서서 성과를 내왔다는 점에서 충분히 자신 있게 당당하게 얘기할 수 있습니다. ‘내가 정치 경력이 많으니까, 정치적 비중 크니깐 지사를 해야 한다’는 생각은 극복돼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 내년 2014년 경기도지사 선거의 어젠다는 무엇이라고 봅니까?

“경기도는 서울의 주변부가 아니고 대한민국의 중심, 전진기지라는 인식으로 바꾸는 게 제일 중요합니다. 이를 위한 환경을 만들어줘야 인식이 바뀝니다. 경기도에 사는 시민들조차도 우리가 여러 가지로 돈도 없고, 학력도 없고 그래서 변두리에 산다는 자조적인 말들을 많이 합니다. 행정이나 정치도 서울 중심으로 돼 있습니다. 이런 점에서 경기도의 주체성 확립, 경기도가 서울의 주변부가 아니라 대한민국의 중심이다, 선봉이다, 그런 정도의 자긍심을 가지고 시민들이 그렇게 생각할 수 있도록 행정과 정책 및 사업을 통해서 바꿔나가는 게 제일 중요한 과제라 생각합니다.”

원 의원은 내년 지방선거에서 승리를 위해 야권 후보 단일화를 최우선으로 두고 있는 듯하다. 안철수 얘기를 뺄 수는 없을 듯싶다. 당장 10월 재보선과 내년 지방선거에서 야권의 주도권을 놓고 경쟁해야할 안철수에 대해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을까.

“안철수에 협력하는 것도 민주당의 중요한 과제”

- 안철수 신당이 가능한가요?

“안철수 의원의 실질적인 정치활동은 지난 보궐선거를 통해서 등원하면서 현역 정치인이 된 것이라고 봅니다. 이제부터 어떻게 하느냐에 달려있습니다. 안 의원이 표방하는 ‘새로운 정치’는 결국 기성 정치에 대한 국민들의 실망과 좌절, 불신 이런 것들이 축적된 결과입니다. 기성 정치권은 이것을 간과하면 안 됩니다. 정치는 현실이기 때문에 안 의원 그룹이 현실정치 세력으로서, 책임 있는 세력으로서 어떻게 성장할 수 있느냐가 앞으로의 과제라고 보는데요. 또 그런 것은 기성의 정치세력들과 상호 연대하고 존중하면서 만들어 나가는 것입니다.”

-민주당 입장에서 보면, 연대보다는 입당이 좋을 듯싶은데요.

“안철수 의원이 ‘새로운 정치’에 대한 가치가 약화되거나 섞여버리는 거로 보여지기 때문에 입당은 쉽게 선택을 하기가 어렵다고 봅니다. 60년 전통의 야당, 민주당이라는 정치적 실체와 또 안철수 의원에게 투영되고 있는 국민들의 새로운 정치에 대한 요구, 이런 것들을 생산적, 발전적으로 잘 묶어 가느냐가 과제일 것 같습니다.”

- 과거 통추도 인기는 대단했는데 실패했습니다. 결국 안철수도 그렇게 되지 않을까요.

“우선 좀 다른 측면이 있습니다. 그 때만 해도 YS, DJ의 강력한 지역기반을 가진 리더십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제는 여야 간에 그 부분이 민주당은 거의 해체되다시피 했고, 새누리당도 박근혜 이후의 리더십이 뚜렷하지 않습니다. 그런 점에서 안철수가 가지고 있는 비중은 여전히 큰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쉽게 소멸될 거다, 반대로 모든 것을 다 주도해 나갈 것이다.’ 이렇게 판단하기에는 근거나 재료는 없습니다. 앞으로 어떻게 하느냐에 달려있습니다. 흔히 이야기하는 것처럼 정치적 이상과 현실을 어떻게 잘 조화시켜 나가느냐가 앞으로 안철수의 과제인 것 같습니다. 안철수가 국민에게 희망을 주는 정치, 새로운 정치를 하도록 협력하는 것도 민주당에 필요한 태도라고 봅니다."

인터뷰를 마치면서 필자는 원 의원에게 ‘좀 더 구체적으로 안철수 의원과 연대 방안을 논의해 보는 게 좋을 듯싶다. 힘을 합쳐 ‘김영춘 부산시장 만들기’ 프로젝트를 진행해 보는 게 어떠냐’고 물었더니, 원 의원은 “그런 파격적 발상이 필요하다고 본다. 안철수 의원에게 그 얘기를 해야겠다”고 답했다.

철옹성 같이 닫혀있는 지역주의가 깨지는 것을 보고 싶은 마음은 원 의원이나 필자나 다 같은 생각인 듯싶다.

담당업무 : 국회 및 더불어민주당 출입합니다.
좌우명 : 行人臨發又開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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