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민주화 1년②>과녁 조준 잘못한 대기업 규제 정책, 해법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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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민주화 1년②>과녁 조준 잘못한 대기업 규제 정책, 해법은?
  • 박상길 기자
  • 승인 2013.12.27 09:5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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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 그림 그리기 실패…금산분리·집중투표제 등 전시행정 불과
대기업 '적극 투자 독려'· 중소기업 '시장경쟁 생존 법안' 필요

(시사오늘, 시사ON, 시사온=박상길 기자)

▲ 지난해 9월 정부서울청사 앞에서 경실련 및 경제개혁연대 관계자가 일정 자산 규모 이상 상장회사의 집중투표제의무화 등 경재민주화 정책 개혁을 촉구하고 있다ⓒ뉴시스

박근혜정부가 경제민주화를 외친 지도 어느덧 1년이 다 됐다. 그동안 정부의 경제민주화 정책을 바라보는 세간의 시선은 다양했다. 특히 중소기업을 살리려는 취지에서 내놓은 각종 대기업 규제 정책은 전시 행정에 불과했다는 평가가 이어지고 있다.

정치권은 대기업에 쏠린 부의 편중 현상을 완화하기 위해 경제적 약자의 권익 보호, 공정거래 관련법 집행체계 개선, 대기업 총수일가 사익 편취 행위 근절, 기업 지배구조 개선, 금산분리 강화 등을 내걸었다.이 중 금산분리, 집중투표제 등이 시행되며 일부 성과를 보이긴 했지만 당초 기대치에 못 미쳤다.

금산분리 무색…대기업 금융사 자본의 절반이 계열사 돈

대기업집단의 금융 계열사를 통한 의결권 관행은 여전한 것으로 나타났다. 상당수의 대기업 금융계열사가 재출자나 대출 형태로 비금융계열사에 돈을 대주고 있어 금산분리 취지가 무색하다는 지적이 일고 있다.

지난 4월 지정된 상호출자제한기업집단(공기업 및 금융업 주력 기업집단 제외) 소속 금융계열사는 113곳이었다. 이 중 금융계열사가 가장 많은 기업집단은 삼성(12개)인 것으로 나타났으며, 이들은 비금융계열사 15곳에 2028억 원을 출자하고 있었다. 또한 롯데의 경우에는 금융계열사 자본금에서 비금융계열사의 출자금액이 차지하는 비율이 무려 84.26%에 달했으나 총수 및 총수일가의 지분은 0.83%에 불과했다.이 밖에 동부는 ㈜동부메탈에 대해 금융계열사가 자본금의 31%, 동양은 ㈜동양에 대해 (금융계열사가 자본금의) 27%를 출자하고 있었다.

이들은 자본금 15조6880억 원의 48.65%인 7조6320억 원을 같은 기업집단 내 계열사를 통해 출자했으며, 그 가운데 70.9%인 5조4109억 원은 비금융계열사 출자분이었다. 반면 총수가 있는 기업집단의 경우 총수와 총수일가가 금융계열사에 출자한 금액은 자본금의 3.1%에 불과했다. 이들은 비금융계열사에 3855억 원을 재출자했으며 3102억 원가량의 대출도 지원한 것으로 나타났다. 총수가 아주 적은 출자 비율에도 불구하고 비금융계열사의 출자를 통해 금융계열사에 대한 지배권을 행사하고 있고, 이들 금융계열사는 다시 비금융계열사에 출자 및 자금 지원하는 구조다.

이에 일각에서는 "금융계열사의 대주주 적격성 심사를 강화하는 한편 금산법을 보완해 금산분리를 강화해야 한다"는 지적이 일고 있다. 공정위는 이와 관련해 대기업 소속 금융보험사가 비금융계열사 주식에 대해 갖는 의결권을 현행 15%에서 5%로 제한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으며 현재 관련 법안이 국회에 계류 중이다.

집중투표제, 외국자본 먹튀 우려로 일부 기업만 시행 '도입 미미'

최근 동양, 웅진, STX 등 중견그룹 부도사태가 잇따르면서 대주주의 전횡을 막고 경영진의 도덕적 해이 등을 견제하기 위한 소액주주 권한 강화장치에 대한 관심이 재점화되고 있다. 그중 하나가 바로 집중투표제다. 정부는 지난 7월 법무부가 집중투표제를 단계적으로 의무화하는 내용의 상법개정안을 입법 예고하는 등 도입을 앞당겼다. 대주주가 존재하는 국내 기업환경에서는 대주주의 전횡을 견제하기 위해 집중투표제 도입이 필요하다는 입장이었다.

하지만 소액주주의 권리를 보장하기 위해 제도가 의무화된다면 외국계 자본이나 비우호적인 세력의 경영권 간섭에 피해를 볼 수 있다는 우려 때문에 재계는 거세게 반발했다. 10월 한국기업지배구조원에 따르면 국내 매출액 기준 상위 30곳 중 정관 변경을 통해 집중투표제를 도입한 기업은 전력공사, 포스코, 가스공사, KT, 대우조선해양, SK텔레콤, 한화생명 등 7곳이다. 또한 10대 그룹 상장 계열사 92곳 중에 집중투표제를 도입한 곳은 SK텔레콤과 한화생명 2곳뿐이다.

주식시장에 상장한 기업집단별로 보면 기업집단 51곳 중 집중투표제를 도입한 곳은 11곳에 불과하며 이마저도 태영그룹이 전체 4곳의 상장사 중 2곳에 도입하고 있다. 이 밖에 한화, 한전과 코오롱, KT&G, SK, CJ 등 나머지는 전체 그룹 상장사 중 한 곳만이 집중투표제를 실시하고 있다.

대기업 지배구조 '줄줄이 낙제점'…사외이사 영입 문화 조성해야

국내 주요그룹 80%가 지배구조 평가에서 낙제점을 받았다. 지난 10월 기업지배구조원이 국내 기업 690여 곳을 대상으로 주주권 보호와 이사회 운영, 공시제도 등 97개 항목을 평가해 지배구조 등급을 매겼는데 이 중 80%에 해당하는 한진과 현대백화점, 효성 등 540여 곳이 B 이하를 받았다.또한 지배구조가 체계를 갖추지 못해 당장 주주 가치 훼손이 우려되는 D등급은 한화를 포함한 12곳이 받았다. 최상위인 S등급을 받은 기업은 단 한 곳도 없었으며 A등급은 두산 그룹이 유일했다.

B등급은 기업지배구조 모범규준이 제시한 체계를 갖추기 위해 노력이 많이 필요하고, 지배구조 리스크로 주주 가치 훼손이 우려된다는 뜻이고, C등급은 그 정도가 더 심하다는 것이다. 이에 전문가들은 불투명한 기업 경영을 개선하기 위해 이사회의 독립성과 전문성이 필수적이라고 지적했다.

정부가 경제 성장을 위해 기업에 자율권을 줬으며, 이명박 정권에서 비즈니스 프렌들리 등 친기업 정책을 추구하면서 지배구조가 느슨해졌다는 것이다. 이에 따라 전문가들은 회사 가치를 보호하기 위해서는 대주주나 경영자를 견제하고 안건에 반대할 수 있는 사외이사가 이사회에 들어올 수 있도록 관행과 문화를 바꿔야 한다고 강조했다.

▲ 지난해 현장자본가들이 경제민주화 공약 철회를 촉구하기 위한 기자회견을 열었던 모습ⓒ뉴시스

집단소송제, 소비자 이권 보호 vs 재계 살리기 '갑론을박'

소비자가 기업의 불법행위와 부당이득 등에 소송해 승리하면 다수 피해자가 구제받을 수 있는 소비자집단소송법 제정을 두고 시민사회와 재계가 온도 차를 보이고 있다. 이와 관련해 일각에서는 담합과 재판매가격 유지행위 등에는 도입하되 법리 문제·부작용 방지장치 등에 대해서는 충분히 검토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일부 정치권과 시민단체에서는 소비자분쟁, 환경·공해분쟁 등 집단분쟁이 급증하고 있어 모든 분야에 적용할 수 있는 집단소송제 도입이 절실하다는 논리를 제기하고 있다. 하지만 제도 도입에는 신중할 필요가 있다는 입장이다. 무분별한 소송 남발에 소비자와 기업 모두 소송비만 낭비할 수 있다는 것이다.

과거 LIG건설 기업어음(CP) 피해자 소송 사례를 대표적인 예로 들 수 있다. 15건의 소송 중 투자자들이 승소한 사례는 2건에 그쳤으며, 나머지는 모두 증권사가 승소했다. 그나마 투자자들이 이긴 2건 모두 항소에 들어간 상황이라 소송이 장기화되고 있다. 이와 관련해 공정거래위원회도 담합과 재판매가격 유지행위 등 소액 다수의 피해가 있는 공정거래법 위반행위에 대해서만 도입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전문가들은 "지금 필요한 것은 사기판매 증거를 수집하고 강한 개인 채권단을 구성해 기업을 압박하는 일"이라며 "소송은 검찰 수사 추이를 보면서 해도 늦지 않다. 오히려 피해자들이 소송을 준비하면서 비용을 감당하는 것 때문에 2차 피해가 우려된다"고 말했다.

이처럼 박근혜정부는 지난 1년 동안 중소기업을 살린다는 취지에서 시행한 '대·중소기업 상생 법안 큰 그림 그리기'에 실패했다. 이와 관련해 전문가들은 앞으로 4년 동안 대기업엔 적극적으로 투자를 독려하고 중소기업은 치열한 시장경쟁서 생존할 법안을 내놔야한다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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