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철현의 사람과 법>사정기관의 계좌추적권 남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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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철현의 사람과 법>사정기관의 계좌추적권 남용
  • 안철현 변호사
  • 승인 2014.08.20 16:1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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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오늘, 시사ON, 시사온=안철현 변호사)

금융감독원에서 작년부터 지금까지 삼성, 현대 등 카드사들을 감사하면서 소속 카드설계사 중 실적 상위 1위부터 10위까지를 표적으로 삼아 조사 중이다. 금융감독원이 직접 각 카드사들로부터 매년 수여하는 카드모집 실적 상위 1위부터 10위까지의 명단을 교부받아 이들의 2010년 6월 30일 부터 2013년 6월 30일 까지의 계좌를 추적해 위법행위를 적발했다.

언뜻 보기에는 별 문제가 없어 보인다. 여신전문금융업법과 금융실명거래 및 비밀보장에 관한 법률 등에서는 사정기관에 계좌를 추적할 수 있는 권한을 부여하고 있다. 그러나 이 법률들이 계좌추적권을 사정기관에 건네주면서 당신들 마음대로 계좌를 추적하라고 허용한 것이 아니다. 계좌추적권은 남용의 우려가 있고, 사생활 및 개인정보를 침해할 우려가 높기 때문에 매우 한정적으로 그 권한을 부여했다.

그래서 금융실명거래 및 비밀보장에 관한 법률에서는 “조사에 필요한 경우 등 일정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금융회사 등에 종사하는 자는 명의인의 서면상의 요구나 동의를 받지 아니하고는 그 금융거래의 내용에 대한 정보 또는 자료를 타인에게 제공하거나 누설하여서는 아니 된다”고 규정하고 있다. 또 “누구든지 금융회사 등에 종사하는 자에게 거래정보 등의 제공을 요구하여서도 아니 된다”고 규정해 놓았다.

여기에서 “조사에 필요한 경우 등”예외사유로는 내부자거래 및 불공정거래행위 등의 조사에 필요한 경우, 고객예금 횡령, 무자원 입금 기표 후 현금 인출 등 금융사고의 적발에 필요한 경우, 구속성예금 수입, 자기앞수표 선발행 등 불건전 금융거래행위의 조사에 필요한 경우, 금융실명거래 위반, 장부 외 거래, 출자자 대출, 동일인 한도 초과 등 법령 위반행위의 조사에 필요한 경우, 「예금자보호법」에 따른 예금보험업무 및 「금융산업의 구조개선에 관한 법률」에 따라 예금보험공사사장이 예금자표의 작성업무를 수행하기 위하여 필요한 경우로 한정해 놓고 있다.

또 하나는 특정금융거래정보의 보고 및 이용 등에 관한 법률에서 금융거래를 이용한 자금세탁행위 및 공중협박자금조달행위를 조사하기 위해 계좌를 추적할 수 있도록 허용하고 있다.

그런데도 이번에 금융감독원은 감사를 하는 과정에서 위 법률에서 엄격히 정해놓은 예외사유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압수수색영장 발부나 사전 동의는 물론 사전 통보도 없이 해당 카드설계사와 가족들의 금융거래를 광범위하게 추적하여 이를 근거로 카드설계사들을 조사했다. 위와 같은 금융감독원의 일방적이고 광범위한 계좌추적은 금융실명거래 및 비밀보장에 관한 법률을 위반한 것임은 물론 그로 인해 해당 카드설계사들의 기본적 인권을 침해한 것으로 보아야 마땅하다.

국가기관에 의한 금융거래추적은 그 필요성에도 불구하고 남용 또는 악용의 위험성이 매우 높다. 별다른 통제 없는 계좌추적의 관행은 헌법상 보장된 시민들의 사생활의 비밀과 자기정보에 대한 지배결정권, 행복추구권을 심각하게 침해할 위험을 가지고 있다. 권한을 가진 기관이 요구하는 정보도 불법·부당한 행위와 직접 관련된 거래로 엄격하게 한정되어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사정기관들은 조사의 실효성과 거래파악의 편의만을 앞세워 정보를 요구하는 사례가 많은데 이는 반드시 시정되어야 한다고 본다. 그렇지 않으면 현대 자본주의의 근간인 신용사회의 기반이 흔들릴 수 있다. 법 위반이 있으면 그 절차가 어찌되었건 정당화될 수 있다는 논리는 법치주의에 정면으로 반한다. 이번 계좌추적도 불법적인 계좌추적이라고 보아야 마땅하므로 향후 그 증거능력이 부정되어야 할 것이다.

여기에서 한발 더 나아가 누군가를 처벌하거나 행정처분을 하기 위해서는 해당자를 조사해서 소명의 기회를 주고 법위반 사실을 밝혀야만 한다. 그런데 놀랍게도 조사에 착수하기가 무섭게 각 카드사에서 카드설계사들의 코드를 중지했다. 언제까지 이런 관행이 당연한 것으로 인식되어야 하는 것인지 답답한 심정을 억누를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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