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배한 통진당과 민주주의
스크롤 이동 상태바
패배한 통진당과 민주주의
  • 김병묵 기자
  • 승인 2014.12.19 11:4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기자수첩>모두가 얻는 것 없이 잃기만 할 정치 희극

(시사오늘, 시사ON, 시사온=김병묵 기자)

통합진보당이 결국 19일 해산선고를 받았다. 진보성향으로 분류되는 이정미 재판관을 포함해 헌법재판소의 재판관 9인 중 8명이 인용 판결을 냈다. 이로써 2000년 민주노동당으로 출발했던 통진당은 14년 만에 역사 속으로 사라졌으며 현직 국회의원 5명은 의원직을 상실했다.

법리적인 판단을 차치하고 정치적인 시각으로만 볼 때, 이번 판결은 한국정치에 ‘잃는 것만’있는 블랙 코미디라고 보인다. 사실상 ‘민주주의’라는 정치과정에 대한 불신을 공개 표출한 것이나 다름없기 때문이다. 국민들의 손으로 투표를 통해 단죄할 권리를 빼앗고 대의명분 하에 멋대로 심판을 내린 꼴이다.

통진당이 공당으로서 용납될 수 없는 행위를 했다는 전제가 있다 하더라도, 이를 강제로 해산하는 방법으로 제재할 것은 아니다. 여러 징계 방법이 존재한다는 사실도 있지만 결정적으로 정치집단은 국민의 표로 심판받는 것이 가장 ‘민주주의다운’과정이라는 점이 중요하다.

종북 딱지도 채 벗지 못한 채 국민들의 신임을 잃은 통진당이 선거에서 얼마나 고전하는지는 앞서 6·4 지방선거와 7·30 재보선에서 증명됐다. 오히려 노회찬이라는 빅카드를 내세워 동작을에서 접전을 벌이는 등 확연히 성장한 정의당에게 지지율도 추월당했다.

이러한 상황에서 별다른 이변이 없는 한 통진당의 다음 총선은 사투가 됐을 가능성이 높다. 정가에서 통진당이 여전히 민주화 투쟁 시절의 낡은 언어와 사고도 버리지 못했으며, 스스로의 투쟁에 취한 채 변혁에 실패했다는 평이 돈 지는 오래됐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더더욱 ‘박근혜 대통령의 정치보복’, ‘민주주의 후퇴’라는 의혹을 무릅쓰면서 해산을 강행해야 헀을까. 또한 이념적 문제가 있는 정당의 존재만으로 흔들리고 위협받을 만큼 우리의 자유와 국가의 기반은 취약한 것인지에 대해서도 회의가 드는 것이 사실이다.

당사자인 통진당 이정희 대표는 재판 직후 기자회견에서 “역사의 후퇴를 막지 못한 죄, 내게 책임을 물어달라”고 자조했다. 정의당은 "사법 역사에서 가장 큰 치욕으로 남을 것"이라고 규탄했다.

여당과 제1야당의 반응은 달랐다. 새누리당은 ‘자유민주주의의 승리’라며 환영사를 건넸다. 새정치민주연합은 유탄을 걱정해 말을 아끼는 모양새다. ‘헌재의 결정을 무겁게 받아들이나 정당 자유 훼손을 우려한다’ 정도의 촌평만 내놨다. 그러나 이번 통진당 해산이 정말로 새누리당이 환영할 만한 일인지, 새정치연합이 불똥이 튈까 몸을 사려야 할 사안인지는 의문이다.

새누리당은 민주주의 역행을 방조했다는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새정치연합도 크게 다르지 않다. 정의당은 진보정치의 혼란 속에 또다시 덩그러니 남겨졌다. 책임이 가장 크다면 큰 통진당은 사실상 공중분해에 이르렀다. 정부는 재보궐 선거 등으로 인해 또다시 새로운 지출을 해야 한다. 어느 누구도 얻은 것은 보이지 않고 잃은 것만 보이는 사건이다.

벌써부터 정가에선 반사이익과 후폭풍을 두고 정당별 주판알을 튀기고 있다. 당장 새누리당은 명분을 얻고, 새정치연합과 정의당 등은 흩어진 지지층을 일부 흡수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물론 종북당을 옹호했다는 역풍도 야권에선 고려할 만한 미래다.

다만 그러한 상황은 일시적이다. 대신 헌정 사상 첫 정부의 심판 청구에 의한 정당 해산이라는 사실은 역사에 오점으로 남을 가능성이 훨씬 높다. 눈앞의 정치적 손익보다 영원히 기록될 역사를 더 두려워하는 정치인들이 사라진 것은 아닐까 하는 걱정이 드는 이유다. 이 희극에 웃는 자는 누구인가.

 

담당업무 : 게임·공기업 / 국회 정무위원회
좌우명 : 행동하라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