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박Wars①]親李·親朴의 탄생, 승자는?
스크롤 이동 상태바
[진박Wars①]親李·親朴의 탄생, 승자는?
  • 김병묵 기자
  • 승인 2016.01.16 05:51
  • 댓글 1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2007년 한나라당 대선후보 경선…'보이지 않는 균열'

(시사오늘, 시사ON, 시사온=김병묵 기자)

권력은 나누기 어렵다. 권력이 클수록 더욱 그렇다. 거대 여당의 패권, 한국 정치의 주도권을 두고 새누리당의 내전은 진행 중이다. 이명박 전 대통령과 박근혜 대통령을 비롯한 등장인물들도 화려하다. 그야말로 별들의 전쟁, 스타워즈(StarWars)다. 친이계와 친박계의 탄생부터, 최근 일어나는 ‘진박’논란까지, <시사오늘>이 살펴봤다.

에피소드 Ⅰ : 보이지 않는 균열

2007년, 한나라당 대선후보 선출과정의 양대 산맥은 당시 이명박 전 서울시장과 박근혜 전 대표였다. 후일 연달아 대통령직을 맡게 되는 이 두 사람은 당내 세력을 양분하며 격돌했다.

자연스레 ‘친(親) 이명박계(친이)’와 ‘친 박근혜계(친박)’가 만들어져 경쟁했다. 특히 그 해 노무현 전 대통령의 지지율이 최악을 달리며 그 어느 때보다도 강력한 ‘정권 심판론’이 일어났고, 별다른 대책을 세우지 못한 야권은 선거 전부터 패색이 짙었다. 이런 상황을 배경으로 그 해의 한나라당 대선후보 경선은 그 자체로 대통령 선거 수준의 열기를 띄게 됐다.

▲ 2007년 TV토론에 나온 박근혜 대통령(왼쪽)과 이명박 전 대통령 ⓒ뉴시스

우선 두 사람은 경선룰로 맞붙었다. 여론조사의 반영 비율이 문제였다. 대의원과 당원 투표, 여론조사 반영 비율을 어떻게 정하느냐에 따라 유·불리가 달라졌다. 노 전 대통령 탄핵 역풍을 정면으로 맞은 제 17대 총선에서, 구원투수로 한나라당 대표를 맡은 박 후보는 민심을 돌려세우며 선방했다. 이후 크고작은 선거마다 승리하며 ‘선거의 여왕’이라는 칭호도 받는다. 이런 업적과 맞물려 박 후보는 확고한 당 내 지지기반을 얻는다. 이처럼 정치권의 거탑이었던 박 후보에게 맞수가 등장했다. 서울시장 재임 시절의 청계천 복원 성공 등으로 대중적 인기를 구가한 이 후보는 당 내 지지율에서는 박 후보에게 밀렸지만 원 외의 지지율에서 고공행진을 달리고 있었다. 특히, 당시 경제 상황이 좋지 않았기에 기업가 출신인 이 후보에 대한 기대감이 상당했다. 그래서 이 후보 측은 여론조사 100%의 ‘오픈 프라이머리’를 제안했다. 하지만 박 후보 측은 강하게 반대하며 버텼다.

우여곡절 끝에 강재섭 한나라당 대표가 낸 중재안을 기초로 5월 14일 타협했다.(대의원과 당원, 국민, 여론조사의 비율이 2:3:3:2로 확정된 이 중재안의 룰은 나중에 경선 결과를 결정적으로 가르게 된다.)

이즈음엔 이미 격화된 갈등으로 분당(分黨)가능성까지 제기됐었다. 당 안팎에서 내분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가 나왔다. 한나라당 나경원 대변인이 "당에서 누워서 침뱉기형, 책임 주객전도형, 헐뜯는 상호비방형 행위가 나타나고 있다"며 "국익과 미래를 위해 진지한 토론과 숙고가 필요하다"고 강조했을 정도다.

공천 룰 확정 후, 경쟁은 뜨겁다 못해 과열됐다. 친이계와 친박계는 서로를 향해 포문을 겨눴다. 그것도 서로에게 가장 치명상을 입힐 만한 사안들을 장전한 상태였다. 친박계는 이명박 후보의 재산 형성과정에 대해 집중포화를 퍼부었다. 친이계는 박근혜 후보의 사생활에 대한 의혹을 중심으로 저격에 들어갔다. 이는 각각 기업가와 전직 대통령 딸이라는 두 사람이 걸어온 길에 기인하는 일종의 맞춤공세였다.

친박계는 ‘회사원 신화’를 일궜다는 평과 함께 인기몰이를 해온 이 후보에게 도곡동 땅 의혹을 제기했다. 포항제철이 매입한 도곡동 땅의 실소유주가 이명박 후보이고, 포철에 거액으로 매입을 부탁하며 재산을 부당 축재했다는 주장이다. 친박계의 좌장격이었던 서청원 고문의 증언과 함께, 검찰은 수사에 들어갔다. 그 유명한 ‘BBK 실 소유주 의혹’도 제시하며 해명을 요구했다. 투자자문회사 BBK가 주가조작과 거액의 횡령 등으로 김경준 전 대표가 구속됐는데, 이 후보가 실소유주라면 그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는 것이 BBK 실소유주 의혹의 주요 내용이다.(이후 이 BBK 의혹은 대선을 앞두고 다시 크게 불거진다.)

친이계는 故 박정희 전 대통령의 딸이라는 꼬리표를 단 박 후보를 향해, 故 최태민 목사와의 관계를 언급, 여전히 박 후보의 공·사조직엔 최 목사의 친인척이 즐비하다는 의혹을 제기했다. 또 친이계는 논평 등을 통해 ‘김대중 전 대통령과 故 장준하 씨에 대해서는 사과하면서 이미 사법적 판단이 끝난 인혁당 사건의 당사자들에게는 왜 유감의 뜻을 표하지 않느냐’고 박 대표의 역사관을 지적하기도 했다.

공방의 수위는 점점 높아졌다. 7월 친이계의 진수희 대변인이 "박근혜 후보가 전두환 전 대통령으로부터 받은 6억 원은 현재 가치로 300억 원에 이른다“며 ”분양가 기준으로 30평대 강남 은마아파트 30채에 해당하는 돈"이라고 비난했다.

그러자 친박계 이혜훈 대변인은 "이명박 후보 및 일가가 전국에 걸쳐 보유한 부동산은 현재 시가로 최소 2300억 원에 이르는데 이는 30평 아파트 6만여 세대를 지을 수 있는 돈“이라고 의혹을 제기하며 ”이명박 일가의 땅에 대한 사랑과 소유욕이 놀라울 따름"이라고 강도 높게 받아쳤다. (당시 이혜훈 대변인과 유승민 캠프 메시지팀장은 친박계의 선봉에 선 행동대장들이었다. 그러나 이 둘에겐 시간이 흐른 뒤 반전이 일어난다.)

용서 없는 네거티브 경쟁 끝에, 경선은 이 후보 쪽으로 기우는 듯 했다. 경선의 끝자락인 8월 초까지 이 후보는 박 후보를 10%p 이상 따돌리며 대세론을 형성했다.

대세론을 굳혀가던 친이계를 향해 친박계는 마지막 총반격을 펼쳤다. 경선을 며칠 남겨두지 않은 시점에서 이 후보의 큰형(이상은)이 소유한 도곡동 땅이 차명재산일 가능성이 있다는 검찰의 중간수사 결과 발표가 나자, 친박계는 일제히 ‘도곡동 게이트’라고 명명하며 후보 사퇴를 요구했다. 지지율이 10%p이상 차이나는 상황에서 던진 최후의 승부수였다.

친이계는 ‘정치검찰’이라며 검찰과의 전면전을 선포했다. 좌장 이재오 최고위원과 친이계 의원들은 밤늦은 시간 대검찰청에 몰려가 철야 농성을 벌이며 항의했다.

친이계의 혼신의 방어에도 불구하고 검찰의 중간수사 발표가 미친 영향은 컸다. 막판에 격차가 줄어들었다. 2007년 8월 15일 <리얼미터>가 발표한 여론조사 결과에선 지지율이 소폭 오른 박 후보(32.9%)가 반대로 소폭 떨어진 이 후보(35.6%)를 오차범위 이내인 2.7%p까지 추격했다고 나왔다.

▲ 이명박 전 대통령(2007년 한나라당 대선후보 경선 당시) ⓒ뉴시스

운명의 날, 8월 20일 치러진 한나라당 대선후보 경선은 이명박 후보의 승리로 끝난다. 직접선거인단에서 박근혜 후보는 1000표 정도를 앞섰으나, 여론조사에서 2700여표를 앞선 이명박 후보가 합계 1200~1500여표 차이로 신승한다. 총 16만3천여표 중 2천여표, 1.5%p의 차이에 불과한 박빙의 전투였다. 그러나 승자와 패자는 극명하게 나뉘었다.

이로써 표면적으로는  한나라당의 유혈 낭자했던 경선은 끝났다. 그러나 치열했던 경선은 친이계와 친박계 사이에 보이지 않는 균열을 남겼다. 금방 봉합될 듯 했던 상처는 아물지 않았고, 균열은 이후 더욱 깊어진다.<계속>

 

담당업무 : 게임·공기업 / 국회 정무위원회
좌우명 : 행동하라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1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ㄱㄱㄱ 2018-02-09 02:52:43
이정도면 예언성 기사 ㄷㄷㄷ