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 안에도 ‘일베’가 있지는 않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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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 안에도 ‘일베’가 있지는 않습니까?
  • 정진호 기자
  • 승인 2016.06.04 11:05
  •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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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적 약자 배려하는 분위기 부족…개선 시급

(시사오늘, 시사ON, 시사온=정진호 기자)

지난달 17일 발생한 ‘강남역 묻지마 살인사건’은 대한민국을 격랑 속으로 몰아넣었다. 여자라는 이유로 수많은 차별과 위험을 경험해야 했던 여성들이 이 사건을 ‘대한민국의 현주소를 보여준 사건’으로 규정하며 분노를 폭발시키자, 남성들이 ‘모든 남자를 잠재적 가해자 취급하지 말라’며 격하게 반발했기 때문이다. 강남역 10번 출구에서 촉발된 남녀 갈등은 한동안 우리 사회의 모든 이슈를 집어삼켰을 정도로 파괴적이었다.

이 전장에 나선 ‘자칭’ 남성 대표는 ‘일간베스트’ 회원들이었다. 일부 ‘일베’ 회원은 강남역 살인사건 추모를 조롱하는 조화를 보내고, 피켓을 들고 항의하는 방식으로 (자신들이 생각하는) ‘불의’에 맞섰다. 이 사건을 계기로 일베는 다시 한 번 한국 사회의 문젯거리로 도마 위에 올랐다.

▲ 추모 메시지를 바라보는 강은희 여성가족부 장관 ⓒ 뉴시스

‘무임승차자’를 혐오하라

지난 2014년 9월 29일 〈시사인〉은 '이제 국가 앞에 당당히 선 일베의 청년들'이라는 제목의 기사에서 일베의 논리구조를 분석했다. 이 분석의 핵심은 다음과 같았다. 일베가 생각하기에, 자신들이 혐오하는 대상인 여성과 진보, 호남, 세월호 유가족은 의무를 다하지 않고 권리만 챙기려 드는 ‘무임승차자’며, 의무를 다하는 일베인은 ‘희생자’라는 것.

실제로 지난달 30일 〈시사오늘〉과 만난 일베 이용자는 이렇게 말했다. “지금 우리나라는 다양한 방식으로 여성의 권리를 보호하고 있다. 하지만 여성들의 인식은 조선시대에서 조금도 변한 것이 없다. 자기 편할 때는 여자고, 불편할 때는 성차별이다. 데이트 비용은 남자가 내야하고, 집도 남자가 해야 하고, 무거운 것은 남자가 들어야 하고, 힘든 것은 남자가 해야 한다. 왜 당연히 해야 할 일은 하나도 하지 않고 권리만 챙기려 드나.”

문제는 이것이 일베만의 인식이 아니라는 점이다. 오찬호의 저서 〈우리는 차별에 찬성합니다〉는 일베 문제를 다른 시각에서 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여승무원들은 철도유통소속 계약직이란 걸 알고 들어갔습니다. 지금 철도공사 정직원으로 전환해달라는 것이 가장 주를 이루는 요구사항인데요. 한마디로 말도 안 되는 소리입니다. 공사 들어가기 엄청 어렵습니다. 남들 몇 년씩 어렵게 준비해서 토익 900점 넘기고 어렵게 공사 들어가는데 정직원을 넘보는 건 도둑놈 심보라고 볼 수 있죠? 노력한 만큼 돌아오게 되어 있습니다. 여승무원 여러분들은 철도공사 정직원이 되고 싶으시면 시험을 치고 정정당당하게 들어가십시오.”

오찬호는 2006년 350여 명의 여승무원들이 ‘철도공사의 정규직 직접채용’을 요구하며 실시한 파업에 대한 모 대학교 학생들의 반응을 이렇게 정리했다. 이른바 무임승차자 논리다. 그는 이 사건이 사측의 잘못으로 볼 만한 정황이 압도적으로 많았음에도, 학생들의 반응이 비정규직 여승무원들을 무임승차자로 판단하고 있다는 사실에 놀랐음을 고백했다.

일베는 돌연변이가 아니다

위 사례에서 나타나듯, 무임승차자 혐오 현상은 우리 사회 전반에 광범위하게 퍼져 있다. 얼마 전 한 인터넷 커뮤니티에서는 7급 공무원 지방대생 할당제에 대한 격론이 벌어졌다. 정확히 표현하면, 격론이라기보다는 성토에 가까웠다. 그들은 대부분 ‘왜 지방대생이라는 이유만으로 특혜를 받아야 하나’라는 공감대를 형성하고 있었다.

“서울로 대학 온 애들이 놀고 싶은 거 참아가면서 공부할 때 지방대 간 애들은 하고 싶은 거 다 하면서 놀았잖아요. 그런데 이제 와서 왜 지방대생의 권리를 주장하나요?”

소위 ‘명문대’에 다니고 있는 한 지방 출신 학생은 기자와의 만남에서 이렇게 반문했다. 이 대목에서도 어김없이 무임승차자 논리가 등장한다. ‘노력하지 않은’ 지방대생에게 왜 특혜를 줘야 하냐는 물음이었다.

이런 논리는 ‘여성할당제’ 비판에도 그대로 동원된다. ‘여성이라는 이유만으로 특혜를 받는 것은 합리적이지 못하다’는 것이다. 또 다른 인터넷 커뮤니티에서는 여성할당제 비판 글이 최다추천을 받았다. 내용은 아래와 같았다.

“우리 회사에 한 여직원이 있는데, 일은 쌓아두고 퇴근 시간만 기다리다가 땡 하면 백 들고 나간다. 이러니까 기업에서 여자를 안 뽑는 거다.”

이 글에는 ‘우리 회사에도 그런 여자가 있다’는 공감에서부터, ‘이래서 여자들이 욕을 먹는다’는 식의 성차별적 내용까지 다양한 댓글이 달렸다. 무임승차자로 인해 피해를 보기 싫다는 것과, 여성이 그 무임승차자라는 주장은 우리 사회 어디서나 쉽게 찾아볼 수 있었다. 일베는 돌연변이가 아니라, 우리 사회의 편견이 극단적인 방향으로 표출된 사례일 뿐이다.

나는 ‘털털한 여자’다

3일 〈시사오늘〉과 인터뷰를 가진 일베 회원 A씨는 여성이었다. 흥미롭게도, 그는 인터뷰 내내 자신이 ‘보통 여성과는 다르다’는 점을 강조했다. 직장인인 A씨는 “우리 회사 여직원들을 보면 한심하다는 생각부터 든다. 우리 회사 여직원들의 생리는 왜 금요일이나 월요일에만 오는지 모르겠다. 아무래도 군대를 다녀온 남자들이 책임감도 더 강한 것 같다. 내가 사장이라도 여자들 안 뽑는다”고 말했다.

같은 날 〈시사오늘〉과 만난 한 취업준비생은 대학생은 자신을 지방대 출신이라고 소개했다. 언론사 입사를 위해 서울에서 아카데미를 다니고 있다는 그는 “지방대에는 언론인을 꿈꾸는 사람 자체가 없다. 내가 나온 학교지만, 솔직히 부끄럽다. 서울서 다른 사람들과 같이 공부하면서 내가 다닌 학교가 얼마나 형편없었는지 느꼈다”고 강조했다.

이들은 왜 자신이 소속된 집단과 선을 그어야 했을까. 현재 대한민국 여성의 평균임금은 남성 임금의 64%에 불과하며, 공기업·대기업 등의 여성 채용 비율은 더 낮아지고 있다. 지방대생 채용 비율은 30%에도 미치지 못한다. 실제로 여전히 기업의 채용 과정에서는 여성이기 때문에, 지방대생이기 때문에 자신의 실력을 증명할 기회조차 얻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이들은 여성이라는 이유로, 지방대생이라는 이유로 차별받지 않기 위해 결별을 선택해야 했다.

이에 대해 익명을 요구한 한 지방 사립대 교수는 “다른 준거집단에 편입되기 위한 방편으로 자신의 소속 집단을 타자화하는 것은 사회적으로 차별받는 집단에서 흔히 발견되는 행동 양식”이라며 “젠더의 관점에서 여성을 비판하는 여성이 많다는 것, 스스로를 지방대 출신과 구별하려는 지방대생이 많다는 것은 그만큼 이들 집단에 대한 사회의 차별이 심하다는 증거”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우리 사회가 ‘나는 다른 여성과 다르다’, ‘나는 다른 지방대생과 다르다’는 선언을 강요하고 있지는 않은지 돌아봐야 한다”고 충고했다.

당신 안에도 일베가 있지는 않습니까?

무임승차자 메타포는 ‘조직 안에서 주어진 역할을 해내지 못하는 존재’에 대한 응징의 성격이 짙다. 그러나 ‘제 역할을 못 하는 무임승차자’ 메타포는 거대한 오류를 내포하고 있다. 제 역할을 해내는지 여부를 판단하기 위해서는 기준이 필요한데, 그 기준 자체가 ‘기득권 중심’이라는 한계를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남성 중심의 사회에서 여성에 대한 평가는 ‘얼마나 남성성을 내면화했는가’에 초점이 맞춰진다. 남성성을 내면화하지 못한, 즉 남성이 ‘이해할 수 없는’ 여성은 영원한 ‘이방인’으로 낙인찍히고, 변방으로 밀려난다. 무임승차권으로 표현되는 몇몇 제도는 여성에게 남성성을 강요하는 ‘폭력’을 막기 위해 마련해 놓은 작은 돌파구다. 주체가 다를 뿐, 지방인재채용목표제와 같은 제도도 같은 맥락이다.

하지만 우리 사회는 이를 용인하지 못하고 있다. 사회적 약자에게 ‘강자의 논리를 내면화 하라’는 폭력을 지속하고 있는 것이다. 이는 일베가 주장하는 무임승차자 논리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사회적 약자를 무임승차자로 규정하고 극단적인 표현을 일삼은 일베는 폭넓은 공감대를 형성하는 데 실패했다. 그러나 우리 사회는 일베와는 다른 방식으로, 더 효과적으로 공감을 획득하면서 사회적 약자를 무임승차자로 낙인찍고 있다. 일베는 어디에나 있고 어디에도 없다고들 한다. 하지만 어쩌면 우리 사회에서 일베는 어디에도 없지만 어디에나 있다는 표현이 더 적합할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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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장일단 2016-06-13 03:33:35
어찌 되었든 그들의 행동은 잘못되었다. 추모현장에 피켓을 들고, 자식을 잃은 부모들에게 손가락 질과 모욕을 준것은 크게 벌 받아야할 행동이다. 여성들이 자신들만의 권리를 찾으려 한다면, 진보가 잘못된 정치의 길을 가고 있다면 떳떳하게 나서서 맞서 싸워야지. 이렇게 비열하고 비 상식 적이며 비 윤리적인 방식으로 행동해서는 안된다.

내가일베라니 2016-06-04 12:07:11
계속 여기저기서 시각이 조금이라도 다른 사람을 전부 일베 취급하는데, 이거 뭐 대놓고 빨갱이 취급이나 다를바 없네. 진보 언론이나 보수언론이나 쓰는 언어의 방식은 똑같구만. 이번에 진보 언론들의 민낯을 보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일베가 공감대를 형성하기는 커녕 보수에게조차 혐오를 받고 있는 마당에, 똑같은 논리와 언어를 쓰는 메갈 워마드 여시들이 진보측으로부터 공감대를 얻는다면 코메디가 될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