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정현 바라보는 두 가지 시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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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현 바라보는 두 가지 시선
  • 정진호 기자
  • 승인 2016.09.05 15:3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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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와대 비서’일까 ‘보이지 않는 바람’일까

(시사오늘, 시사ON, 시사온= 정진호 기자) 

▲ 지금까지 이정현 새누리당 대표의 행보는 ‘청와대의 비서’에 가까워 보인다 ⓒ 뉴시스

누군가는 ‘호남의 노무현’이라고 한다. 누군가는 ‘친박의 거수기’라고 한다. 한쪽에서는 새누리당의 불모지(不毛地)나 다름없던 호남에서 인간 승리를 일궈낸 ‘외톨이 비주류’라고 칭찬하지만, 다른 한쪽에서는 친박계가 당권 장악을 목적으로 세운 ‘청와대의 비서’라고 평가절하 한다. 이정현 새누리당 대표를 바라보는 시각은 이토록 다르다.

당대표에 오른 지 한 달여가 지난 지금, 이 대표에 대한 평가는 ‘청와대의 비서’ 쪽에 가깝다.

전당대회 당대표 후보자 연설에서 “모두가 ‘근본 없는 놈’이라고 등 뒤에서 저를 비웃을 때, 저 같은 사람을 발탁해 준 박근혜 대통령께 감사함을 갖고 있다”던, 당대표로서의 첫 공식일정에서 “대통령과 정부에 맞서는 게 마치 정의고 그게 다인 것처럼 인식한다면 여당 의원으로서 자격이 없다”던 모습 그대로인 듯하다.

지난달 11일, 이 대표는 박 대통령과의 청와대 오찬에서 ‘탕평인사, 균형인사, 능력인사, 소수자에 대한 배려 인사’를 건의했다. 박 대통령도 “참고하겠다”고 긍정적으로 답했다. 닷새 후 개각이 이뤄졌으나 이 대표의 요구는 하나도 수용되지 않았다게 일반론이다. 하지만 이 대표는 이 개각을 “너무 지치고 피곤한 장관들을 교체한 것 자체가 쇄신”이라고 치켜세웠다.

야당이 ‘서별관 청문회’에 최경환 전 경제부총리와 안종범 청와대 정책조정수석 등의 출석을 요구한 데 대해서도 같은 태도를 취했다. 더불어민주당 우상호 원내대표가 “꽉 막힌 정국을 풀기 위해 여당의 지도력이 필요한데 (이 대표가) 뒤에 숨어 있다”고 비판했지만, 이 대표의 대응은 변하지 않았다. 온 나라를 떠들썩하게 만든 우병우 청와대 민정수석 논란에 대해서도 시종일관 침묵으로 일관하고 있다.

자연히 비판이 나왔다. 국민의당 박지원 비상대책위원장은 개각 직후 “대통령께서는 (이 대표를) 집권여당 대표로 상대하는 게 아니라 비서로 상대한다는 것이 입증됐다”고 말했다. 당대표 경선 중이었던 추미애 의원도 “신임 대표인 이정현 대표를 물 먹였다”고 비꼬았다. 언론의 반응도 다르지 않다. 기자들 사이에서는 이 대표가 “홍보수석 같은 모습”이라는 평가가 심심찮게 흘러나온다. 리더십이 흔들리고 있다는 우려도 들린다.

그러나 반대의 시선도 있다. 이 대표의 침묵이 전략적 판단에 따른 행동이라는 주장이다. 시작은 ‘바람론’이었다. 지난달 24일 정진석 원내대표와 비박계는 우병우 청와대 민정수석 사퇴를 거듭 주장하면서 이 대표에게 적극적인 노력을 요구했다. 그러자 이 대표는 “벼가 익고 과일이 익는 것은 보이는 해 또는 보이는 구름, 보이는 비만 있어서는 되는 것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바람도 한 작용을 한다”며 물밑에서 움직이고 있음을 시사했다.

본의 아니게 박지원 비대위원장도 힘을 보탰다. 박 위원장은 지난 3일 SNS를 통해 “어제 만난 새누리당 고위인사와의 대화 한 토막을 소개한다”며 “새누리당 고위인사가 ‘모든 언론과 정치권에서 우병우 청와대 민정수석의 사퇴를 몰아붙이면 대통령께서 하시려고 해도 밀려서 하시는 것 같으니 (더 안 한다)’라고 했다”고 전했다.

박 위원장의 전언이 사실이라면, 박 대통령에게는 여론을 앞세운 압박보다 논란이 잠잠해진 뒤 조용히 설득하는 쪽이 더 효과적일 수 있다. 역설적으로 박 대통령에 대한 이 대표의 태도가 ‘맞춤 대응’일 수 있음을 인정한 셈이다.

실제로 여권의 한 관계자는 지난달 30일 <시사오늘>과 만난 자리에서 “이 대표는 박 대통령의 스타일에 대해 누구보다 잘 아는 사람”이라면서 “박 대통령은 여론에 따라 움직이는 정치인이 아니기 때문에 무작정 몰아붙이기만 한다면 오히려 일이 더 안 풀린다고 생각하고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또 “지금까지 여론으로 박 대통령을 밀어붙여서 일이 성사된 적이 있었나”라고 반문하며 “정치적인 득실을 따지지 않고 오로지 ‘일이 되나 안 되나’만 보면 이 대표의 방식이 더 맞을 것”이라고 덧붙이기도 했다.

다만 이 대표가 ‘결과를 내야 한다’는 점에는 공감했다. 그는 “그래도 아직은 허니문 기간이라 ‘이 대표 스타일이겠거니’ 하는 사람도 적지 않다”고 지적한 뒤 “한 달, 두 달 뒤에도 지금 같은 모습이 지속되면 변명의 여지가 없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고 충고했다. ‘보이지 않는 바람’이 결과를 내놓지 못할 경우, 사람들은 ‘바람’의 존재 자체를 의심할 수밖에 없다는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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