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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어느날>, 어느 봄날에 핀 상처받은 영혼들의 서정시
<김기범의 시네 리플릿>멜로영화 마에스트로의 거침없는 실험
2017년 03월 31일 (금) 김기범 영화기자 sisaon@sisaon.co.kr

(시사오늘, 시사ON, 시사온=김기범 영화기자) 

   
▲ 영화 <어느날> 포스터 ⓒ오퍼스픽쳐스

섬세함과 가녀린 감성, 그리고 이들이 받쳐주는 함축적인 대사와 여백이 곳곳에 묻어나는 공간 구성의 영상미는 이윤기 감독이 내세우는 필모그래피 속에서 버젓이 드러나는 그만의 트레이드마크다. 

비록 실제 말투는 어눌하지만, 늘 영상으로 언어 이상의 메시지를 짧고 굵게 관객들에게 전달하는 이윤기 감독의 공력은 이제 한국 멜로영화의 독보적인 마에스트로라는 칭호를 부여하기에 충분하다. 

<멋진 하루> 와 <사랑한다, 사랑하지 않는다> 그리고 <남과 여> 등을 관통하는 이윤기 감독 특유의 공통분모는 일상의 시간을 통해 평범한 남녀가 만나 때로는 짧게, 또는 길게 호흡하며 관객들을 자연스레 영화의 한 가운데에 파고들게 하고 끝내는 긴 여운으로 갈무리한다는 점이다. 

그렇기에 이윤기 감독의 작품은 거창하거나 급하게 흘러가는 스토리텔링에 천착하는 여느 영화들처럼 뚜렷한 기승전결 속에서의 인물 간 갈등 폭이 크지 않다. 

다만 장면마다 담백하면서도 짧게 끊어 치는 드라마의 스타카토가 켜켜이 쌓이다 종국에는 길고도 깊은 여운이 스며들 뿐이다. 

그런 의미에서 그에게 장엄한 배경음악이나 울긋불긋한 미장센은 거추장스럽기만 한 도구일지도 모른다. 

화려하고도 웅장한 과장이나 포장 대신, 우리네 일상과도 같은 등장인물의 사소한 동작과 대사 하나하나가 관객의 감정선 위에 포개져 잔잔한 공명을 울린다. 

연출자로서, 각본가로서 이윤기의 작품이 부지불식간에 관객들의 뇌리 속에 녹아드는 이유다. 

이에 비해 새로이 개봉하는 <어느날> 은 분명 감독의 기존 작품과는 차별화된 색채를 띠고 있다. 

난치병을 앓던 아내를 사고로 잃은 주인공 김남길과 역시 교통사고로 식물인간이 된 시각장애인 천우희의 우연한 만남은 어찌 보면 고단한 우리네 인생살이에서 일어날 수 있는 평범한 경우의 수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어느날> 에서 이윤기 감독은 어느 날 갑자기 일어난 그 평범한 경우의 수에 영혼의 배회라는 판타지를 가미했다.

어쩌면 이는 자신의 영화 문법에 있어서의 진화나 발전의 도모라기보다는 차라리 감독 개인의 모험이요, 실험대가 될 터이다. 

각자의 사랑하는 사람을 평생 가슴 속에 묻고 살아야 할 뿐, 살아 있는 동안에는 영원히 그들을 볼 수 없는 두 사람의 애절한 아픔과 사연은 두 주인공을 잇는 가교가 되지만, 기존 통속 멜로에서 볼 수 있었던 단순하고 흔한 연인의 로맨스가 아니다. 

일상에 찌든 남자와 영혼이 되어 떠도는 여자가 서로의 아픔을 다독이고 공유하면서도 끝내 세상이나 관계와의 인연을 놓았을 때만이 자기 자신을 치유할 수밖에 없는 애틋함은 현실 속에서는 좀처럼 일어나기 힘든 이야기인 듯하면서도, 찬찬히 뜯어보면 우리네 일상과 전혀 다르지 않다. 

평상시엔 시각장애자였던 여주인공이 혼수상태에 빠지자 육신을 빠져나간 영혼이 되어 처음으로 세상을 보게 되지만, 정작 자기 자신은 한 남자의 눈에만 뜨인다는 설정은 모든 것을 볼 수 있다고 착각하면서도 마음의 소리에는 귀 기울이지 못하는 평범한 갑남을녀들에 대한 훈계일지도 모른다. 

이번 <어느날> 에서도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남과 여는 미세한 표정과 동작을 통해 각 인물의 심정을 실감나게 구현해 내고자 노력했다. 

이를 연기하는 배우들 입장에서는 일상의 밋밋함을 영화 속의 강렬한 그 무언가로 발현시켜야 한다는 중압감이 높았을 것이다. 

그 여파인지 상처받은 영혼들의 어루만짐에 대한 파고는 더욱 소소하고도 작아진 느낌이지만, 대신 담백함과 여운은 지루할 만치 완성됐다. 

2016년 겨울 끝자락의 <남과 여> 는 이 시대 중년 도시남녀들의 애정과 일탈에 대한 긴 여운을 남겼다면, <어느날> 은 따뜻한 햇살과 가녀린 꽃잎이 흩날리는 화창한 봄날에 상처 받은 영혼들의 서정시를 그려냈다. 

섬세한 감성을 간헐적으로 끊어 가면서도 끝내 길게 이어 붙여가는 이윤기 감독의 필치는 여전하다. 

문제는 잔잔하고도 담백한 일상 속에서 피어나는 그 긴 호흡이 이번에는 과연 관객들에게 얼마나 어필할 수 있을지 다소 궁금해진다는 것이다. 

벚꽃이 흐드러질 4월 5일에 개봉한다. 15세 이상 관람가. 

 

뱀의 발 : 이젠 시각장애자라는 표현이 정착되어야 한다. 중요한 것은 마음의 눈이다. 

★★★

 

   
 

·영화 저널리스트
·한양대학교 연구원 및 연구교수 역임
·한양대학교, 서원대학교 등 강사 역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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