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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문점과 경교장] 두 역사현장의 ´연결고리´
남북정상회담으로 보는 분단과 평화, 통일 염원의 상징
2018년 05월 03일 20:23:17 윤진석 기자 sisaon@sisaon.co.kr

(시사오늘, 시사ON, 시사온=윤진석 기자)

판문점 앞. 분단을 넘어 평화지대로, 이제 막 한 발을 뗐다. 분단의 상징이 판문점이라면, 경교장은 통일 염원의 상징처다. 두 역사의 현장이 맞닿은 연결고리를 찾아 과거로 향했다.

   
▲ 판문점이 분단의 상징에서 평화의 상징으로 나아가고 있다.ⓒ뉴시스


올해로 분단된 지 73년, 정전된 지 65년. 그간의 판문점은 뼈아픈 전쟁의 기억 터였다. 동족상잔의 비극과 분단의 상징 터였다.

1950년 북한의 침략으로 6·25 전쟁이 발발했다. 일 년간 치열한 전쟁이 벌어졌고, 2년 간 휴전회담이 진행됐다. 정전협상을 논의하던 곳이 남북한 비무장지대의 판문점이다. 3년의 진통 끝에 1953년 7월 27일 유엔군과 공산군은 판문점에서 전쟁을 잠시 중단하겠다고 선언했다. 정전협정이 맺어졌고, 한반도 중앙부를 가로지르는 북위 38도선, 삼팔선은 다시금 휴전선으로 그어졌다. 이 일로 원래 이남으로 분류되던 개성은 이북으로 재편됐다. 또 이북에 속해 있던 속초는 이남으로 편입됐다.

 4·27 제3차 남북정상회담이 사상 최초로 판문점에서 이뤄졌다. 문재인 대통령은 판문점 선언에서 “한반도에 더 이상 전쟁은 없을 것"이라고 주창했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은 “내가 다녀간 이 길로 북과 남의 모든 사람들이 자유롭게 오갈 수 있게 되자”고 말했다. 이윽고 두 정상은 “남과 북은 종전을 선언하고 정전협정을 평화협정으로 전환”하기로 했다는 선언문에 서명했다. 전쟁과 분단의 길에서, 평화와 통일의 길로 나아갈 역사적 이정표를 얻은 순간이었다.

판문점, 종전의 미래로의 첫발
남북협상의 산실, 경교장의 의미
  

판문점이 평화지대의 첫걸음을 이제 막 뗀 거라면, 통일염원의 고향과도 같은 경교장은 그런 의미에서 되새길만하다. 종로구 평동에 위치한 국가문화재 경교장(사적 제465호)은 남북 지도급 인사들이 통일민주국가 수립 대책을 논의한 최초의 남북협상의 산실로 기록되고 있다. 또 대한민국 임시정부 마지막 청사이자, 백범 김구 선생이 암살당한 민족 비극의 현장이기도 하다.

   
▲ 경교장은 통일 염원이 담긴 남북협상의 산실이자, 백범 김구 선생이 머문 대한민국 마지막 임시정부 청사다.ⓒ시사오늘

남북은 하나 돼야 한다는 일념으로 남북제정사회단체 연석회의를 주도하던 김구 선생은 경교장에 머물다, 1949년 6월 26일 일요일 정오께 포병 소위 안두희에 의해 네발의 총을 맞고 암살당했다. 권오창 우리사회연구소 이사장은 얼마 전 경교장에서 있던 남북제정연석회의 70주년 기념행사에서 이렇게 상기했다.

“상해 임시정부에서 독립운동을 하던 김구 선생이 쓰러지고 얼마 후 깨어났을 때 총탄이 하나 허파 옆으로 갈비뼈에 박혔다. 총탄을 빼면 죽는다는 의사 말에 김구 선생은 평생을 몸속에 총탄 갖고 사시다가 여기 경교장에서 또다시 총을 맞고 돌아가셨다. 통일을 앞당길 지도자의 죽음이었다. 역사적 비운이다, 너무나 통탄할 일이다. 이제 백범 선생의 정신 따라 남과 북이 힘을 합쳐 조국을 통일해야 한다. 남북제정연석회의 정신 따라 조국을 통일해야 한다.”

김인수 (사)백범사상실천운동연합 대표이자 경교장복원민족추진위 상임대표는 지난 2일 전화통화에서 “김구 선생이 만약 남북협상을 하러 가지 않았다면, 암살까진 당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바라봤다.

남북협상은 남측의 김구·김규식, 북측의 김일성·김두봉이 5 · 10 단독 선거에 반대하는 남북한의 정치 지도자들이 통일정부 수립을 위해 벌인 정치 협상이다. 이들은 남북 분단을 막기 위해 1948년 4월 평양에서 남북제정당사회단체 연석회의와 회담을 개최했다. 역사에 있어 만약이란 없지만, 당시의 남북협상이 성공해 통일을 이뤘다면 어땠을까. 김구 선생은 통일 반대론자들에게 암살되지 않았을 거다. 이듬해 6.25 전쟁 발발도, 분단의 상징인 판문점 또한 존재하지 않았을 거라는 게 김 대표의 설명이다.

“경교장은 이렇듯 분단을 극복하려던 장소다. 그러나 동족상잔의 비극인 한국전쟁 후 판문점이라는, 전쟁으로 얼룩진 장소가 만들어졌다. 올해 분단 칠십 삼년 만에 판문점에서 남북정상회담이 열렸다. 판문점이나 경교장이나 분단 문제와 연관돼있다. 두 장소 모두 통일로 가야 하는 상징적 역사적 의미가 있다.”

경교장 얽힌 일제강점기 역사적 착잡함도…
"근현대사 국가문화재로 원형 복원돼야"

한편으로 일제강점기와 관련된 착잡한 근현대사의 단면이라는 점에서 한 친일갑부 소유의 별장이던 경교장이 어떤 연유로 근현대사의 문화유적지가 됐는지 또한 눈여겨 볼 역사적 사례다.

원래 경교장은 죽첨정이라는 이름의 최창학이라는 사람의 소유였다. 일제강점기 대표 친일파로 광산업을 해 재벌이 된 인물로 잘 알려져 있다.

광복이 되자, 최창학은 자신의 친일행위로 전 재산을 잃고 감옥에 갈까, 두려웠다. 죄를 속죄한다는 뜻에서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청사이자 김구 선생의 사저로 무상 임대해주기에 이른다. 일종의 면피용으로, 기회주의적 발상에서 비롯됐다는 평가가 일반적이다.

하지만, 최창학은 김구 선생 암살 후 친일파 명단에 포함돼 대부분 재산을 몰수당했다. 경교장 또한, 전쟁 후 가세가 기울면서 처분해 여러 손을 거치다, 삼성생명 강북삼성병원(전 고려병원)의 소유로 됐다.

국가문화재이기는 하나, 소유권이 삼성에 있어 절반만 복원된 상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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