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석헌과 한국교회>“개신교는 생명력을 잃었으니 새 종교가 나올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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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석헌과 한국교회>“개신교는 생명력을 잃었으니 새 종교가 나올 것”
  • 심의석 자유기고가
  • 승인 2011.08.10 2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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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프롤로그-4

[시사오늘·시사ON·시사온=심의석 자유기고가)

함석헌의 기독교 비판은 비판에만 그치지 않았다. 제2의 종교개혁을 말하고 새 종교의 출현을 말하는 데까지 나아간다. 모세의 종교인 유대교가 낡아지고 때가 묻자 예수의 종교인 천주교가 나왔고, 이 천주교가 로마의 국교가 되고 권력을 잡으면서 부패해지고 형식화되자 다시 개신교가 나왔듯이, 개신교가 교리화, 의식화(儀式化)하고 제도화하여 생명력을 잃었으니 이제 새 종교가 반드시 나올 것이라고 말한다.

새 종교가 나오는 것은 역사적 과정으로 보아도 그렇지만 이치로 봐서도 틀림없는 진리라고 말한다. 어머니가 늙으면 사라지듯이 모교회(母敎會)가 낡아지면 언젠가는 사라질 것이라고 말한다. 그리고 새 교회가 태어나기 마련이라고 한다. 이것이 곧 새 종교다. 그는 새 종교를 기다린다고 말한다. 새 종교를 기다리는 자세가 곧 새 종교라고 말한다. 
 
새 종교는 어떤 형태로 올까? 함석헌은 새로운 사람이 올 것이라고 말한다. 새 사람이 와야 새 종교가 탄생할 것이라고 한다. 재림 예수가 곧 그 사람이라고 한다. 재림 예수는 하늘에서 구름을 타고 내려올 것이라고 하는 성경의 기사는 그가 사람이라기보다는 신이라고 하는 뉘앙스를 풍긴다.

그러나 함석헌은 재림 예수는 사람 사는 세상에 사람으로 오지 사람 아닌 다른 존재로 올 수가 없다고 말한다. 구름을 타고 재림하는 예수에 관한 성경의 기사는 신화의 옷을 입고 있다고 보는 것이 분명하다.

19세기 유럽의 자유주의 신학은 성경 기사에서 신화적인 요소를 제거하고 역사적 예수를 탐구하고자 했다. 20세기에 들어와서 루돌프 불트만은 ‘예수 그리스도와 신화’에서 탈신화화(demythologizing)를 제창한다. 자유주의 신학의 주안점이 성경에서 신화적인 진술들을 제거하자는 데 있는 것이라면 불트만의 주장은 신화적인 진술들을 사실로 받아들이지 말고 해석의 과정을 거쳐 신화가 내포하고 있는 의미를 밝혀내자는 데 있다.

함석헌의 입장은 탈신화를 주장하는 자유주의 신학보다는 탈신화화를 제창하는 불트만의 입장에 더 가깝다고 보여 진다. 예수가 재림하지 않는다고 말하지 않고 육체를 가진 사람으로 다시 올 것이라고 해석하기 때문이다.
 
나는 지금까지 함석헌이 기성교회에 대해서 어떻게 비판적이었는가를 살펴보았다. 내가 나가는 교회에 대한 그 많고 심한 그의 비판을 그렇게 열심히 읽었으면 내 신앙이 많이 흔들렸어야 마땅할 것이다. 그런데 그 비판들을 읽고 나서 오히려 나에게는 새로운 신앙이 싹터 올랐다.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믿게 되었고 예수 안에서 하나님을 눈으로 보고 손으로 만지듯이 믿게 되었다. 예수를 보면서 하나님을 알 수 있게 되었다. 
 

▲ 함석헌 ⓒ사진제공=(사)함석헌 기념사업회
사실 그동안 나는 하나님은 믿으려고 노력했지마는 예수는 믿는다고 내놓고 말하기가 어려웠다. 지금 생각하면 신화의 옷을 입고 있는 예수를 글자 그대로 믿으려 하고, 더 나아가 성경을 한 부분에만 치우쳐 논리화한 교리를 그대로 믿으려 하니, 내 이성이 반란을 일으켜서 나를 궁지로 몰아넣었다고 생각한다.

예수가 남자를 알지 못하는 처녀에게서 성령으로 잉태되어 태어났다고 하고, 예수가 죽은 지 사흘 만에 육체로 부활하였다고 하는 등의, 신화를 논리로 포장한 교리를 내 이성이 받아들이지 못하니 예수 믿기를 사실상 포기하는 상태에서까지 갈 수밖에 없었다. 예수는 믿지 말고 하나님만 믿으라고 하면 얼마나 좋겠는가 하는 생각이 간절했다. 그러나 함석헌을 따라 신화의 옷을 벗은 예수를 만나자 예수를 구주로 영접하는 신앙이 살아났다. 
 
이제는 신화적인 패러다임을 따르지 않고도 얼마든지 예수를 하나님의 아들로, 하나님으로 믿을 수 있다. 하나님은 영이신데 예수의 영이 하나님의 영의 경지에 이르렀으면 예수가 곧 하나님 아니겠는가? 예수가 세례 요한한테 세례를 받은 순간부터 그의 영적 경지는 하나님의 경지에 이른 것 아닌가? 이렇게 영적인 접근을 하자 십자가와 부활이 너무 쉽게 나에게 다가왔다. 함석헌은 의식화하고 제도화한 기성교회를 비판하면서, 그리고 예수에게서 신화의 옷을 벗기면서, 현대인이 예수를 구주로 영접할 수 있는 이성적 영적 경지를 개척했다.

나는 그의 영향을 받아 살아있는 구주 예수를 만나게 되었다. 나는 신화의 옷을 입고 다가오는 예수 때문에, 그리고 굳어버린 기성교회의 의식(儀式)과 교리 때문에, 나처럼 신앙생활에서 남모르게 혼란을 겪는 사람들이 많이 있으리라고 생각한다. 나는 그들이 모두 함석헌이 믿는 예수에 대해 알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 함석헌의 말대로 우리는 학문을 배우려고 학교에 가지마는 학교가 곧 학문은 아니다.

우리는 예수를 믿으려고 교회에 가지마는 교회가 곧 예수는 아니다. 예수에 대해 교회에서 배우지만 궁극적으로는 자신의 체험으로 만나야 한다. 자신의 예수를 찾는 데 도움이 된다면 교회 밖에 있는 스승도 만나봐야 한다. 예수를 제대로 알고 싶으면 함석헌을 읽어야 한다.
 
함석헌과 같은 시대를 산 사람 치고 그를 모르는 사람은 별로 없을 것이다. 그러나 그들이 아는 함석헌은 대부분 민권운동가로서의 함석헌일 것이다. 그는 1958년 8월에 ‘사상계’에 발표한 ‘생각하는 백성이라야 산다’(14-109)에서 “남한은 북한을 소련·중공의 꼭두각시라 하고, 북한은 남한을 미국의 꼭두각시라 하니, 남이 볼 때 있는 것은 꼭두각시뿐이지 나라가 아니다. 우리는 나라 없는 백성이다. 6·25는 꼭두각시의 놀음이었다”라고 했다. 그때는  실제로 남한은 북한을 괴뢰라 부르고 북한은 남한을 괴뢰라 불렀다.

그렇다면 남·북에 괴뢰만 있지 나라가 없으니 “우리는 나라 없는 백성이다”라는 함석헌의 말은 틀림없는 사실이다. 그런데도 그는 한 구절 때문만은 아니지만 주로 이 구절 때문에 이승만 정권 치하에서 20일 간 구금을 당했다. 그리고 그 후부터 박정희·전두환 군사정권에 이르는 30년 가까이 불법 부당한 권력에 대항하여 치열한 비폭력저항을 전개했다. 
 
그러나 이러한 비폭력저항은 그에게 투철한 기독교사상의 뿌리가 있었기에 가능했다. 그는 김경재 교수의 말처럼 한국 신·구교 역사상 가장 위대한 기독교사상가라는 평가를 받아 마땅한 사람이다. 앞으로는 그의 이러한 사상가로서의 면모가 더욱 선명하게 부각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와 함께 동시대를 살지 않은 젊은이들에게도 그의 비폭력저항과 함께, 어떤 의미로는 그 이상으로, 그의 기독교사상이 잘 소개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함석헌 전집’을 통독해야 그의 사상을 알 수 있는데, 그것도 한두 번으로는 부족한데, 그 방대한 분량을 읽어내기가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러므로 누군가가 그의 기독교사상을 한 권으로 정리하는 작업이 필요하다. 그래서 10여 년 전에 내가 한번 해보겠다는 생각을 갖고 준비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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