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강왕’ 목숨 앗은 석면질환 앞에 아이들 떨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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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강왕’ 목숨 앗은 석면질환 앞에 아이들 떨고 있다
  • 김신애 기자
  • 승인 2012.01.18 14:2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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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 10개 학교, 1만명 석면 노출
ABS 8개 중 5개학교 기준치 초과

[시사오늘·시사ON·시사온=김신애 기자]

지난 12월13일 ‘철강왕’ 박태준 포스코 명예회장이 타계했다. 전 언론은 박 전 명예회장의 사망소식과 일대기를 전하며 철강업계의 ‘큰 별’이 진 것을 아쉬워했고 각계각층에서 깊은 애도의 물결이 이어졌다.  

박 전 명예회장의 사인은 급성 폐질환이었다. 그의 주치의였던 장준 연세대 세브란스병원 호흡기내과 교수는 기자회견에서 “박 명예회장은 급성 폐손상으로 인한 호흡곤란으로 사망”했다며 “지난 수술 때 폐 부위에서 석면과 규폐가 발견됐다. 이런 물질 때문에 발생한 염증으로 폐가 석회화되는 섬유화 병변이 일어났고 흉막유착이 심해졌다”고 설명했다.

전문가들에 따르면 고인의 폐손상은 과거 포스코 산업현장에서 사용된 석면 때문일 가능성이 있다. 직접 산업 현장에서 일하며 현장에서 사용된 석면에 과다 노출됐다는 것. 환경보건시민센터와 서울대보건대학원의 조사내용에 따르면 포스코의 포항제철소와 광양제철소는 1980년대부터 2011년 2월까지 석면의 위협을 받았다.

환경보건시민세터 등에 따르면 이들 제철소는 안동 광산에서 생산된 사문석을 용광로 관련공정에 사용했다. 사문석의 생산지인 안동 2개의 광산은 과거 석면광산으로 허가가 났던 곳으로, 실제 이곳에서 생산된 사문석에는 백석면(주로)과 액티놀라이트 2종의 석면이 많게는 100% 까지도 함유돼 있었다.

박 명예회장의 사망 원인으로 지적된 사문석은 전국 초·중·고교의 학생들에게도 그대로 노출됐다. 교과부는 지난 2010년 12월 전국 학교에 “친환경적 흙 운동장 조성필요”라며 감람석 운동장 조성을 권했다. 그러나 감람석 운동장 조성 과정에서 재료에 대한 검증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아 전국 10개 학교, 1만명이 넘는 학생과 교직원이 석면이 함유된 감람석 운동장을 사용했다. 운동장에 감람석으로 깔린 사문석도 생산지가 안동의 사문석 광산이었다. 

경남 하동초등학교는 2010년 2월, 경기 과천고와 인천 영선초등학교는 2010년 11월, 충남 음봉중학교와 쌍용중, 경남 밀주초등학교 등은 그해 12월부터 석면운동장을 사용했다. 피해학교 10곳의 2011년도 졸업생과 재학생, 교직원 수를 모두 합하면 석면노출 위험인구는 1만403명에 달한다.

▲ 지난 10일 서울 종로구 정부중앙청사 후문 앞에서 열린 '하동초등학교 석면노출 등교거부, 교과부 항의 기자회견'에서 환경보건시민센터 회원들과 참가자들이 석면피해 대책 마련을 촉구하고 있다. ⓒ뉴시스


1급 발암물질 석면에 1만여명 노출

지난해 9월 학교 운동장에 석면이 함유돼 있다는 환경보건시민센터 등의 발표가 있은 후, 교과부는 대학기관에 조사를 의뢰해 해당 학교 운동장의 석면조사를 실시했다. 조사 결과 석면노출실험(ABS)에서는 8개 학교 중 5곳에서 기준치를 초과하는 석면이 검출되기도 했다.
 
교과부의 조사내용은 △운동장 토양의 석면조사 △학교 교실 등 흡착먼지의 석면 조사 △운동장의 대기 조사 △운동장에서 활동 시 노출정도를 확인하는 ABS조사 △ 초과생애발암위해도(ELCR) 조사 등이다.

운동장 토양의 석면조사에서는 조사대상 8개 학교가 모두 석면이 검출됐다. 석면 종류는 백석면(chrysotile)과 각섬석의 일종인 트레몰라이트석면(tremolite asbestos), 액티놀라이트석면(actinolite asbestos) 등이다. 각섬석 계열 석면은 백석면보다 독성이 강해 2003년부터 이미 사용이 금지된 바 있다.

▲ 교과부 보고서 '감람석 파쇄토 운동장 내석면 조사' 내용 요약 ⓒ환경보건시민센터
특히 석면노출실험(ABS) 조사결과 8개의 학교 중 5개 학교에서 기준치를 초과하는 석면노출이 확인됐다. ABS는 학생들이 운동장을 이용할 경우 얼마나 석면에 노출되는지를 알아보기 위한 것으로,축구를 할 때를 가정해 실험했다. 석면노출농도가 가장 높은 학교는 과천고(0.05)로, 기준치인 0.01의 5배를 초과하기도 했다.

단, 위해도평가(risk assessment)에서 보고서는 “조사 대상인 모든 학교의 초과생애발암위해도(ELCR)는 미국 EPA와 환경부의 ‘석면광산 등 석면발생지역의 토양환경 관리 지침’에서 제시한 관리대상 위해도 이하였다”고 결론지었다.

그러나 환경보건시민센터는 “취약집단인 어린 학생들이 조사대상이라는 점을 전혀 고려하지 않은 판단”이라며 “어린이들은 체중당 호흡량이 어른보다 많고 운동을 하면서 호흡량이 더욱 많아진다는 특성이 고려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또 서울대보건대학원 최경호 교수(환경독성학)는 “노출된 집단이 커지면 위해가능한 인구가 증가하는 것이고 따라서 문제가 인구에 비례해 커진다”고 밝혔다. 

건강피해 우려 "대책 마련하라"

현재 대부분의 학교에서 석면운동장이 제거됐지만 광주 서림초등학교는 여전히 석면토양이 남아 있다. 또 서림초와 더불어 인천 영선초는 교과부의 조사대상에서도 제외됐다. 무엇보다 석면에 노출된 학생과 교직원 등의 건강상 우려에 대한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

경남 하동초등학교의 350여 학부모들은 방학기간동안 교육과학기술부를 상대로 석면피해대책을 촉구했다. 하지만 교과부가 아무런 대책을 제시하지 않자 급기야 지난 9일 학생들이 등교거부에 들어갔다. 하동초등학교는 지난해 학교운동장 석면토양을 제거하는 과정에서 2차노출을 우려, 통상보다 이른 12월5일 방학을 시작해 지난 9일 개학을 맞았다. 이날 재학생 712명 중 등교거부를 한 학생은 모두 226명이었다. 

학부모들은 석면 피해구제법에 의거한 ‘석면건강수첩’ 발급을 요구하는 한편, 추후 아이들이 암에 걸릴 경우를 대비해 ‘장기암보험’을 요구했다. 환경성 석면 노출에 의해 석면질환에 걸릴 경우 보상되는 피해구제제도는 같은 질병에 걸린 노동자들에게 지급되는 산재보험금의 10~20%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지난 12월20일 하동초등학교를 비롯해 인천지역의 학생과 학부모들은 서울에 올라와 피해대책을 촉구했다. 이에 환경부는 4일 “석면건강수첩 발급에 준하는 평생건강관리 대책”을 제시했다. 하지만 교과부는 무대책으로 일관, 하동초등학교 학생의 32%가 개학일 등교 거부를 한 것이다.

지난 10일에는 학부모와 학생이 서울 정부중앙청사 후문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이날부터 등교거부에 참가한 학생들을 대상으로 ‘환경대안학교’를 운영, 석면피해대책을 요구하는 등교거부를 계속 진행할 것을 밝히기도 했다.

기자회견에서 조창수 하동초등학교 비상대책위원장은 “환경부가 새로운 건강검진대책을 제시해 하동초 학부모가 수용했지만 가해 당사자인 교과부는 아무런 대책을 마련하지 않고 있다”며 “교과부 감사 결과를 기다리며 당분간은 학부모회가 환경학교를 여는 등 대체수업을 이끌 계획이다. 하지만 계속해서 교과부가 대책을 내놓지 않으면 감사원에 감사를 청구하는 것도 검토할 것”이라고 밝혔다.

한편, 지난 2011년 1월부터 시행중인 ‘석면건강수첩제도’는 석면에 과노출돼 건강피해를 입을 우려가 있는 경우 석면건강수첩을 발급해 정기적으로 석면질환발병 여부를 검진하는 제도다. 학부모들은 이와 함께 추후 아이들에게 암과 같은 석면질환이 발병할 경우를 대비해 집단암보험 가입을 요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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