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오늘·시사ON·시사온=김신애 기자]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과 이맹희 전 제일비료 회장의 상속분쟁은 삼성가 전체로 번지며 막말까지 오가는 등 그야말로 막장드라마를 연출했다. 그 중 가장 먼저 이건희 회장 편에 선 것은 그의 셋째누나 이순희 씨였다. 이순희 씨는 지난 3월 이건희 회장을 상대로 한 소송에 참여하지 않겠다는 의사를 밝히며 그의 아들 김상용씨를 통해 이 회장을 지지한다는 입장까지 전했다.
당시 김상용씨는 “어머니는 평생을 전업주부로 사셨고 아버지도 평생 학계에 몸담으신 분이라 사업을 잘 모르시고 관심이 없다”며 “어머니께서는 확실히 (이건희 회장에 대한) 지지 의사를 전했다”고 말했다. 또 이순희씨의 남편 김규 전 서강대 영상대학원 원장도 한 언론을 통해 “그런 집안일에 왜 관여하느냐”며 소송에 참여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보였다.
그러나 과연 이건희 회장에 대한 이순희씨의 지지가 단지 복잡한 싸움에 얽히지 않으려는 이유였을까. 그 이유에 대해 재계 일각에서는 이순희씨의 아들 김상용씨의 회사와 삼성전자 사이의 관계를 의심하고 있다.
김상용씨가 대표이사로 있는 영보엔지니어링(주)는 휴대폰 배터리팩 등의 제조 판매를 목적으로 1998년 9월 설립됐다. 영보엔지니어링은 당초 자본금 1억원으로 시작해 지난 2011년 매출 1372억원을 기록하는 등 성장했다.
영보엔지니어링은 지난해 말 기준 김상용 대표가 29.6%의 지분을 보유하며 대주주로 있고, 그의 모친이자 이건희 회장의 누나인 이순희씨가 13.0%의 지분을 보유하고 있다. 김상용 대표는 이밖에 (주)애니모드를 운영고 있다. 애니모드는 통신기기 액세서리 유통업체로, 김 대표가 32.14%, 영보엔지니어링이 14.29%의 지분을 보유하고 있다.
물론 영보엔지니어링은 삼성전자와는 별개로 독립된 회사다. 공정거래위원회가 지난 4월12일 발표한 ‘2012년 상호출자제한 기업집단 등 지정 결과’에 영보엔지니어링은 삼성전자 계열사에 포함되지 않았다. 그러나 영보엔지니어링은 현재 휴대폰 배터리팩 외에 휴대폰 용 이어폰, 핸즈프리 등을 제조 판매 하면서 삼성전자와 주요 거래선을 이루고 있다. 이에 이건희 회장의 동생 이순희씨 역시 삼성그룹과 척을 지기 어려울 것이라는 분석이다.
지난해 말 감사보고서에 따르면 영보엔지니어링은 회사의 당기 매출액 대비 삼성전자에 대한 매출액 비율이 62%이다. 특히 연결감사보고서에는 연결실체의 주요 매출처가 삼성전자로, 당기 매출액의 약 31%를 차지하는 것으로 기록돼 있다. 매출처 중 삼성전자의 중국현지법인을 포함할 경우 삼성전자를 매출처로 한 매출액이 전체의 약 99%를 차지하는 등 영보엔지니어링 영업의 상당부분이 삼성전자와의 관계에 의존돼 있다.
공정거래법상 사업자가 특수관계인 또는 다른 회사에 대해 부당하게 지원하는 행위는 불공정거래행위로 허용하지 않는다. 때문에 최근 영보엔지니어링에 대해 ‘삼성 계열사에 포함돼야 하는 게 아니냐’는 주장도 있었다. 경제개혁연대는 지난 11일 “김상용 및 이순희 씨와 삼성그룹 이건희 회장과의 관계, 그리고 영보엔지니어링의 사업 내용 및 삼성그룹 계열사와의 거래 관계를 감안할 때 영보엔지니어링이 삼성그룹의 계열사로 포함돼야 하는 것이 아닌가 의문이 생긴다”며 공정위에 조사를 요청했다.
이에 대해 공정위 측은 거래 의존도만으로 일감 몰아주기나 계열사 여부를 판단하긴 곤란하다는 입장을 보였다. 공정위 한 관계자는 “삼성전자와 거래하는 기업 중에는 영업이익의 100%를 삼성에 의존하는 곳도 적지 않다”며 “영보엔지니어링은 2005년 7월 친족분리로 삼성 그룹에서 완전히 떨어져나왔고, 친족분리 이후 설립된 애니모드 역시 이 회장 일가나 임원 등이 보유한 지분이 전무해 삼성의 위장 계열사로 보기 어렵다”고 말했다.
삼성그룹 역시 “영보엔지니어링은 지난 2005년 공정위로부터 삼성전자와는 별개의 독립경영사로 인정받았다”며 “다른 협력사와 다를 바 없어 부당지원으로 볼 수도 없다”는 입장이다.
이에 부당지원 여부는 공정위에 의해 밝혀질 것이지만 이순희 씨의 ‘동생사랑’만큼은 현실적인 계산에 의한 것이란 분석이 지배적이다. 재계 한 관계자는 “이순희 씨는 삼성가 유산 상속에서 배제되는 등 홀대받았지만, 그보다 영보엔지니어링 입장에서 현재 삼성전자와 갑을관계에 있기 때문에 현실적으로 이건희 회장에게 등을 돌리지는 못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