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책임’이 자초한 ‘고용 불안’…카카오, 빛나던 과거를 돌아봐야 할 때 [기자수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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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책임’이 자초한 ‘고용 불안’…카카오, 빛나던 과거를 돌아봐야 할 때 [기자수첩]
  • 편슬기 기자
  • 승인 2023.08.21 17:1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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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카오, ‘수평적 소통’ 강조했으나 ‘수직적 소통’으로 변모
스스로 성장 동력 버린 카카오…‘역성장’과 ‘경영위기’ 맞아
위기 극복 위해서 ‘잃어버린 것’ 무엇인지 뒤돌아봐야 할 때

[시사오늘·시사ON·시사온=편슬기 기자]

지난 17일 판교역에서 열린 카카오 노조 2차 집회와 노조원들의 모습이 카카오 아지트 정문에 비치고 있다. ⓒ 시사오늘 편슬기
지난 17일 판교역에서 열린 카카오 노조 2차 집회와 노조원들의 모습이 카카오 아지트 정문에 비치고 있다. ⓒ 시사오늘 편슬기

‘네카라쿠배당토직야’라는 신조어가 있다. 개발자들 사이에서 입사하고 싶은 기업의 앞 글자만 따서 만들어진 것으로 △네이버 △카카오 △라인 △쿠팡 △배달의민족 △당근마켓 △토스 △직방 △야놀자를 가리킨다.

본래 ‘네카라쿠배‘까지 부르던 것에서 범위가 더 넓어지긴 했으나, 그때나 지금이나 카카오는 개발자들이 입사하고 싶은 워너비 기업 중 하나였다. 다만, 그것이 과거형인 이유는 카카오가 희망퇴직 및 권고사직을 고려할 만큼 심각한 경영상의 어려움에 처해있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카카오 자회사인 카카오엔터테인먼트는 지난 6월, 10년 이상 연차 직원들에게 이·전직을 권하는 '넥스트 챕터 프로그램'(NCP)을 실시했다. 카카오엔터프라이즈는 지난달 17일부터 다른 계열사 전출 및 희망퇴직을 접수했다. 카카오의 손자회사인 엑스엘게임즈에서도 지난주까지 희망퇴직 신청을 받았다.

회사에 경영난이 닥치면 가장 먼저 인력 줄이기에 나서는 것이 보통이다. 그런 의미에서 위기 극복을 위해 카카오가 선택한 행보가 새로울 것은 없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직접적인 영향을 받게 될 당사자인 직원들은 배제하고, 그들의 신뢰를 저버리는 모습을 보인 것은 크나큰 패착이 아닐까. 

한때 카카오가 내세우던 핵심 가치는 ‘신뢰·충돌·헌신’이었다. 수평적 소통 구조를 통해 모두가 목소리를 낼 수 있었고 그 덕분에 직원 개개인의 책임감과 직무의식을 고취할 수 있었다. 그랬던 카카오가 어느덧 구시대적 유물을 지향하는 회사로 전락하고 만 것.

관리자가 시키면 ‘네’ 하고 따르는 경직된 시스템을 지양하며 승승장구해온 카카오가 스스로 회사의 성장 동력을 버린 순간이다. 결과는 처참했다. 직원들의 사기 저하, 소외감 증가는 물론, 역성장과 경영위기로까지 이어졌다. 

현 경영난의 가장 큰 원인으로 지목받는 인물은 김범수 카카오 창업자다. 단기간에 몸집을 불린 문어발식 사업 확장, IT 기업이라는 주체성과 거리가 먼 소상공인들의 업종을 침범하며 많은 비판을 받아왔다. 공든 탑도 한 순간에 무너지는 일이 비일비재한 경영현실에서, 근간을 잃고 겉모습에 치중하며 쌓아 올린 모래성은 더 말할 것도 없다.

지난해 데이터센터 화재 사건 발생 후 책임을 지고 물러난 남궁훈 전 카카오 대표는 올해 초 카카오 미래이니셔티브센터 상근 고문으로 복귀했다. 동종 업계 이직을 방지하기 위함이라는 카카오의 해명이 있었지만 이를 바라보는 카카오 노조 조합원들의 시선은 곱지 않았다.

직원들이 ‘고용 불안’이란 격랑 속에서 흔들릴 때, 그는 두 차례에 걸친 스톡옵션 행사로 96억 원을 챙겼다. 어느 직원이 여기서 ‘신뢰’를 찾을 수 있을까?

지난 17일 도착한 판교역은 카카오 노조의 2차 집회 준비가 한창이었다. 취재를 위해 출발지인 판교역으로 향했다. 이미 많은 인파가 모여 집회와 행진을 준비하느라 여념이 없는 모습이었다.

집회 참가자들은 검은 티셔츠를 맞춰 입었고, 주최 측에서 준비한 하얀 우산에는 ‘책임·소통·사과’라는 글귀가 붙은 스티커를 부착하고 있었다. 준비를 마친 이들은 전체 발언이 있을 트럭 앞에 서서 대기 중이었다.

그들의 맞은편엔 바로 카카오 아지트가 위치해 있었다. 잘 닦인 출입문이 노조원들의 모습을 고스란히 반사하는 모습은, 소통하기를 거부하는 철옹성과도 같이 느껴졌다. 그러나 그들이 외치는 목소리는 닿았을 것이다.

250여 명의 카카오 노조 크루들은 뙤약볕 아래 판교 일대를 함께 걸으며 소통을 부르짖었다. 경영진들의 사과와 책임을 요구하며 “무책임 경영 회전문 인사 브라이언 사과해라”, “경영 실패 책임 떠넘기지 말고 고용안정 책임져라”, “일방적 리더십 이제 그만 탐욕적 경영 그만해라” 한마음 한뜻으로 외쳤다.

언젠가 서로의 주파수가 통해 ‘공진(共振) 현상’이 발생한다면, 사이를 가로막는 유리벽 또한 깨질 수 있다. 그런 날이 온다면 노사 간에 격 없이 소통할 기회가 생겨날 수도 있을 것이다.

과거, 혁신의 아이콘이었던 카카오. 위기를 극복하고 다시 일어나기 위해, 잃어버린 것이 무엇인지 다시 한번 돌아봐야 할 때다.

담당업무 : IT, 통신, 전기전자 / 항공, 물류를 담당합니다
좌우명 : Do or do not There is no t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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