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쿠시마 오염수-처리수 공방, ‘용어의 정치학’ [김자영의 정치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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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쿠시마 오염수-처리수 공방, ‘용어의 정치학’ [김자영의 정치여행]
  • 김자영 기자
  • 승인 2023.09.08 15:4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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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정권, 北 미사일에 불상·미상 발사체 표현 사용
코로나19 사태 초기, ‘우한 폐렴’ 고집한 자유한국당

[시사오늘·시사ON·시사온= 김자영 기자]

ⓒ 시사오늘 (그래픽 = 정세연 기자)
일본 후쿠시마 원전 오염수 명칭을 두고 논쟁이 오갔다. ⓒ 시사오늘 (그래픽 = 정세연 기자)

일본 후쿠시마 원전 오염수 명칭 변경을 두고 논쟁이 오가고 있다. 일본 정부는 ‘오염수’ 대신 ‘처리수’ 명칭 사용을 권장하고 있는데, 국내에서도 용어 변경을 검토하는 것으로 전해진다. 

지난달 31일 지지통신 보도에 따르면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는 도쿄전력 후쿠시마 원전 처리수를 ‘오염수’라고 발언한 노무라 테츠로 농림수산상에게 전면 철회와 사과를 요구했다. 일본 내에서도 오염수 처리에 대한 정치적 견해가 나뉘는 만큼 용어 선택에도 신중한 모습이다. 

노동진 수협중앙회장은 지난달 30일 국회에서 열린 국민의힘 주관 ‘수협·급식업계 수산물 소비 상생 협약식’에서 “과학적으로 증명된 ALPS(다핵종제거설비)에서 정화돼서 나가는 물을 자꾸 오염수, 오염수 하니 이에 대한 거부 반응이 또 있는 것”이라며 오염수란 명칭을 처리수로 바꾸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한덕수 국무총리는 같은 날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수협회장의 이런 주장에 대해 “검토해보겠다”고 전했다. 박진 외교부 장관도 지난달 31일 국회 외교통일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처리하기 전의 오염수와 처리한 다음의 오염수는 방사성 물질 등 여러 농도가 다르기 때문에 구별해서 부르는 것이 보다 과학적”이라고 말했다.

야당은 강하게 반발하는 모양새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지난 3일 런던협약·의정서 당사국 친서 발송 기자회견에서 “심지어 오염수를 오염수로 부르지 못하도록 처리수라는 이름으로 창씨개명하겠다는 해괴한 언사까지 하고 있다”고 말했다.

전예현 우석대 대학원 객원교수는 4일 <시사오늘>과의 통화에서 오염수-처리수 명칭 논란과 관련해 “용어 검토는 오염수라는 말에서 느껴지는 부정적 느낌을 줄이기 위한 노력”이라고 전했다. 실제 국민 정서를 변화시킬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해선 물음표지만, 우선은 단어 변경을 통해 프레임 전환을 꾀하려는 시도라는 것. 

명칭 관련 논란은 지난 5월에도 불거진 바 있다. 지난 5월 11일 정부가 후쿠시마 오염수를 지칭하는 공식 용어를 처리수로 바꾸는 방안을 검토 중이란 언론 보도가 나오자, 외교부는 곧바로 “처리수로 변경하는 방안은 검토한 바 없다”고 공식 부인했다. 

당시 이준석 전 국민의힘 대표는 페이스북에 올린 글에서 “북한에서 날아오는 것은 누군가 아무리 발사체로 이름을 바꾸려고 해도 국민들은 그것이 미사일임을 알았다”며 “일본이 방류하는 것의 이름을 무엇으로 바꾸더라도 국민의 생각은 크게 달라지지 않을 것”이라고 전했다. 

정권 교체 후, 불상·미상 발사체 아닌 ‘미상 탄도미사일’ 표현 사용

실제 같은 대상을 일컫는다 해도 정치권에선 ‘북한 미사일’이라 부르냐, ’미확인 발사체’로 부르냐가 쟁점이 될 수 있다. 북한이 미사일을 발사했을 때, 박근혜 정부 합동참모본부는 1보로 ‘불상(佛像) 발사체’, 문재인 정부에선 ’미상(未詳) 발사체’란 표현을 사용했다. 

2021년 3월 25일, 일본과 미국에서 북한이 탄도미사일로 추정되는 미사일을 발사했단 속보가 나왔을 때, 합참이 “북한이 동해상으로 미상의 발사체를 발사했다”는 발표를 내놓아, 국방부 브리핑 과정에서 설전이 있기도 했다. 당시 야권에서 “미사일을 미사일이라 부르지 못한다”는 비판이 있었다. 

윤석열 정부로 정권이 교체된 뒤 국방부가 최초 탐지 시 발표할 때 ‘발사체’ 대신 ‘미상 탄도미사일’ 등 표현을 써 명확히 규정하는 것으로 바뀌었다. 

WHO, ‘특정 지역 지칭시 차별 조장’ 우려…‘우한’ 非사용 권고

코로나19 사태 초기였던 2020년 2월, 세계보건기구(WHO)가 질병 공식 명칭을 ‘신종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명명하기 전에 ‘우한 폐렴’ ‘우한 바이러스’란 표현이 사용되는 일도 있었다. 코로나19 발원지가 중국 후베이성 우한시였기 때문이다. 

WHO는 질병 명칭에 특정 지역이나 사람·동물 등을 지칭하는 표현을 쓸 경우 차별·혐오를 조장할 수 있단 이유로 질병 이름에 지역 이름인 ‘우한’ 표현을 사용하지 않을 것을 권장했다. 

정부는 당시 ‘신종 코로나’로 표현할 것을 권고했는데, 정치권에서 용어 때문에 논쟁이 있기도 했다. 국회에서 관련 특위를 꾸릴 때 민주당은 특위명을 ‘신종코로나 특위’로, 자유한국당은 ‘우한 폐렴 특위’란 명칭을 고집해 공방을 벌였기 때문이다. 당시 한국당은 민주당을 향해 ‘반중 정서 차단에 급급하다’는 말을 내놨고, 민주당은 한국당을 향해 ‘코로나바이러스 차단을 위해 마음 모으기도 부족한 시기에, 명칭을 두고 편가르기식 구분에 앞장선다’고 비판했다. 

이 외에도 지난해 10월 있었던 이태원 참사에 대해 ‘10·29 참사’란 표현을 사용하자는 주장이 있었다. 미국의 경우 2001년 뉴욕 세계무역센터(WTC) 테러 참사 이후 ‘쌍둥이 빌딩 테러’ ‘세계무역센터 테러’ 등의 표현 대신 지명과 장소를 뺀 ’9·11 테러’로 통일했다.

여야간 대립이 날로 심화되는 상황입니다. 정치권에서 왜 저런 선택을 했을까 의문이 든 적 한 번쯤 있을겁니다. 이들의 선택은 과거 정치 경험으로부터 얻어진 학습효과 아닐까요. ‘김자영의 정치여행’은 현 정치 상황을 현대 정치사를 비춰 해석해 봤습니다. 다음주 금요일에 찾아 뵙겠습니다. <편집자주>

담당업무 : 정치부 기자입니다.
좌우명 : 생각대신 행동으로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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