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원장 사태’에 대한 우리의 시각 [金亨錫 시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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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법원장 사태’에 대한 우리의 시각 [金亨錫 시론]
  • 김형석 논설위원
  • 승인 2023.11.12 17:1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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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회, 정부가 함께 직무유기(職務遺棄)”
“사법부 경시=삼권분립 원칙 존중 않는다”
“재판 일정 지연돼 발 동동 구르는 서민 생각해 봤나”
“최우선으로 처리했어야 할 제1호 민생”
“법조인 출신 많은 尹정부가 어째 이리 느긋한가”

[시사오늘·시사ON·시사온= 김형석 논설위원]

차기 대법원장 후보로 지명된 조희대 전 대법관이 지난 11월 9일 오전 안철상 선임 대법관을 접견하기 위해 서울 서초구 대법원으로 들어서며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 연합뉴스
차기 대법원장 후보로 지명된 조희대 전 대법관이 지난 11월 9일 오전 안철상 선임 대법관을 접견하기 위해 서울 서초구 대법원으로 들어서며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 연합뉴스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8일 신임 대법원장 후보자로 조희대 전 대법관을 지명했다. 지난달 6일 이균용 전 대법원장 후보자에 대한 임명동의안이 국회에서 부결된 지 33일 만이다. 그에 앞서 김명수 전 대법원장이 퇴임한 9월 24일로부터는 45일 만이다. 

국회가 지금부터 조 후보자에 대한 임명동의안을 서둘러 가결하더라도 대법원장 공석 사태는 두 달가량 지속되는 셈이다.

국회와 정부가 함께 직무유기한 두 달

정상적인 국가가 이런 변태(變態)의 모습을 한 채 몇 달씩 지속되는 건, 두 말이 필요 없이 큰 잘못이다. 

대법원장 공석으로 상고심 중 전원합의체 판결이 일제히 지연됐다. 대법원장과 12인의 대법관(법원 행정처장 제외)이 내리는 전원합의체 판결은 대부분 서민 재판과 직결되지는 않는다. 대부분 정치·사회적 파급 효과가 매우 큰 사건이다. 따라서 기다리고 있는 유사 하급심들에 대해 당연히 절대적인 영향을 미친다. 보이지 않는, 쉽게 계량화할 수 없는 일선 법원의 재판 지연 사태가 많을 것이다. 

내년 초 임명될 대법관의 인선과 임명도 지연이 불가피해졌다. 통상 2월에 실시되는 하급 법원 판사들의 인사에도 연쇄 파급 효과를 미치게 됐다. 지금쯤 희망 지역 등의 신청을 받아 심사에 들어가야 하는데 서두르면 무리한 인사처리가 이뤄질 수야 있겠지만 졸속 처리가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35년 전인 1988년 사법사상 최초로 정기승 대법원장 후보가 낙마했었다. 정치권이 꼽은 이유야 많았지만 이후 사법부에 대한 정치권의 농간과 간섭이 심해진 계기가 됐다. 삼권분립 원칙을 존중하지 않고 사법부에 지나치게 영향력을 행사하려는 국회의원들의 문제가 계속 이어져 왔다. 

윤 대통령의 경우도 지적받을 사항이 없지 않다. 야당 설득 부족 등 정치력 부재도 문제지만,  33일씩 장고를 거듭하며 후보자 재지명을 미뤄온 무신경이 더 큰 문제다. 

똑같지야 않지만, 이번 문제를 병원의 경우에 빗대 생각해 보자. 환자가 많은 종합병원에서는 수술 일정 잡기가 쉽지 않다. 대기 중인 수술 환자들이 밀려있는 데다가 의사와 의료기기 등에 한계가 있어 한참 동안 기다려야 하는 경우가 많다. 병원장과 담당 과장들이 애써 수술 일정을 합리적으로 조정해 주면 겨우 수술을 제때 받을 수 있지만 병원장 없이 대행 체제로 갈 경우 결정이 늦어질 수밖에 없다. 환자들에겐 다른 병원으로 옮기는 선택지가 남는다.  

국회의원들과 정부 관계자들은 ‘대법원장 사태’ 이후 일선 법원들을 제대로 돌아본 적이 있을까?  이재명 민주당 대표야 수시로 재판을 받으러 갔으니 예외로 치더라도 나머지 인사들은 ‘법원 민생’을 살피러 법원에 행차한 일이 한 번이라도 있었을까 싶다.

이 대표 역시 서민들로서는 겁먹고 달려가야 하는 재판에 버젓하게 불출석하는 VIP피의자이니 서민들의 재판 지연으로 인한 속 상한 사정을 알 리가 없다. 더욱이 그쪽이야 신속 재판보다는 재판 지연을 오히려 원하는 입장이니…!

수술 일정이 제대로 잡히지 않으면 다른 병원으로 옮길 수도 있다지만, 판사들의 인사와 사건 배당이 지연돼 재판 날짜가 늦어지는 ‘서민 법원 환자들’은 미국이나 일본 법원으로 옮겨갈 수도 없는 노릇이다. 그저 발 동동 구르며 ‘나라 원망’이나 늘어놓는 수밖에 없다. 애먼 사법부가 욕을 먹고 아이러니하게도 국회보다는 정부가 심하게 원성을 사게 되는 일선 민원의 현장이다.   

하긴 사법부도 막말로 욕먹어 싸다. 아무리 지명권이나 동의안 처리권한이 정부와 국회에 있다고 해도 그 중대하고 막강한 민사재판권 형사재판권 등 모든 재판권을 움켜쥐고 있는 터에 그동안  정치권에 휘둘리지 않고 독립적으로 처신해 왔다면 오늘의 사태를 불러오지는 않았을 거다. 툭하면 정치재판 시비에 휘말리고 의도적인 재판 지연이나 일삼아왔으니 정치권이 아주 쉽게 보게 된 것도 당연한 일이다. 자업자득이다. 

대법원장 공석 장기화를 계기로 본 정작 더 ‘위험한 사태’는 이제 우리 서민들조차 더 이상 법원을 과거처럼 존경이나 믿음의 대상으로 보지 않는다는 점이다. 법조계와 의료계는 인신(人身)을 다룬다는 점에서 우리 사회의 가장 중요한 분야로 꼽힌다. 우수한 학생들의 로스쿨과 의대 진학률이 높은 것도 그런 이유에서다. 당연히 존경받아야 할 의사와 판·검사가 존경받지 못하는 사회는 병든 사회다. 우리 사회가 그 모습으로 가고 있다, 아니 이미 와있다. 

대법원장 공석을 대수롭지 않은 일로 보는 정부·국회를 생각하다 보니 속이 썩 안 좋아져 글이 주제를 조금 벗어나 잠깐 옆길로 새 버렸다. 

정부 요직에 그렇게 판·검사 출신이 많은데…

윤석열 정부에는 법조인 출신들이 많다. 정부는 크게 많지 않다고 우기지만 요직 곳곳에 ‘크게 많은 게’ 사실이다. 과거 정부나 외국의 예와 비교하면 이내 알 수 있는 일이다. 대통령이 검사 출신인 데다가 또 법조인들이 우리 사회의 엘리트 집단이니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기도 하다. 크게 흠잡을 일은 아니라는 게 필자 개인의 생각이다. 

그러나 정작 문제는 그들이 정부와 국회에 입성해서 제 할 일을 하지 못한다는 데 있다. 잘못된 시스템에 휩쓸려 매몰돼 버린 탓인가? 특히 법조인 출신이 다수를 차지하고 있는 국회의원들을 보면 ‘저 사람이 법조인 출신 맞나’라고 할 정도로 함량 미달인 경우가 적지 않다. 그러니 한동훈 법무부 장관 같은 ‘일개 장관’한테 판판이 깨질 수밖에 없다. 

이번 대법원장 공석 사태에서는 정부 관계자들의 ‘직무 유기’ 혐의도 없지 않다. 대표적으로 한 사람만 꼽아보자. 윤 대통령의 직계 후배로 이태원 사태에서도 잘 살아남은 이상민 행안부 장관. 그는 법원 사정을 누구보다도 잘 아는 판사 출신이다. 판사 출신으로 변호사를 하면서 재판 현장을 많이 경험한 사람이어서 대법원장 공석 장기화가 가져올 부작용에 대해 구체적으로 알 수 있는 사람이다. 

당연히 국무위원으로서 대법원장 문제에 관해 대통령에게 자세히 조언하고 서둘러 내부적으로 추천도 했어야 했다. 그런데도 두 달을 ‘방치하도록 방치해’ 판사 출신으로서의 국무위원 자격을 의심케 한다. 뚝심 있게 버티는 건 장점이지만, 전문 분야에 관해 적극 관여하지 못하는 건 결정적인 단점이다. 국무위원으로서 자격이 있는지를 스스로 돌아봐야 한다.

그렇다고 고심을 거듭하며 33일을 보냈다는 윤 대통령도 결코 면피 될 수 있는 사안은 아니다. 대통령의 외교분야 치적은 인정한다. 1호 세일즈맨으로서 중동지역에서 거둬온 수주 실적도 큰 박수를 받을 만한 일이다. 그런데도 왜 지지율은 마냥 그 타령일까. ‘민생, 민생’ 하지만 정작 대규모 민원 발생 현장이 어디인지를 정확히 파악하고 있는 것일까?

경상수지가 몇 달째 흑자 행진을 하고 있다고 해서 지지율이 금세 올라 내년 총선에서 정부 여당에 크게 득 될 일은 없어 보인다. 경제 회복 효과가 ‘윗목’에 도달해 표심에 반영되기까지는 시간이 꽤 걸릴 것이기 때문이다. 내년 총선이 급하다면 먼저 챙겨야 할 민생 현장은 바로 서민들의 불만과 고통이 쌓여있는 고질적 장소인 법원과 병원 그리고 시장 주변이라는 사실을 깨달아야 한다.   

조희대 후보자에 관하여 

조희대 전 대법관(66·사법연수원 13기).

원칙주의자, 보수 성향, 미스터 소수의견 등이 그에게 따라붙는 수식어다. 주요 판결마다 김명수 전 대법원장과 대척점에 있었다고도 알려졌다. 민주당과의 갈등 요소로 꼽힐 만하다. 

대법원장으로 지명된 후 첫 일성으로 ‘헌법 수호’와 ‘중도의 길’을 강조했다. 기자회견을 통해 “한평생 좌나 우로 치우치지 않았다”고도 주장했다. “수만 번 고사하고 싶은 심정이었다”며 “진심과 성의를 다해 헌법을 받들겠다”고 말했다.  대법관 퇴임 후엔 변호사를 하는 대신 대학에서 후학 양성에 힘썼다. 

김대기 대통령 비서실장은 조 후보자의 지명 사실을 알리며 “원칙과 정의, 상식에 기반해 사법부를 이끌며 사법부 신뢰를 신속히 회복해 나갈 수 있는 적임자라고 판단했다”라고 말했다. 비서실장으로서 으레 할 수 있는 말이겠으나 ‘사법부 신뢰를 신속히 회복해 나갈 수 있는 적임자’라는 부분에 일말의 기대를 품지 않을 수 없게 만든다. 

국민의힘이야 당연히 가결표를 던지겠으나 민주당 표가 어떻게 될지는 아직 불분명하다. 

언론인의 입장이 아니라 법원 민원인의 입장에서 말한다. “당장 내 재판의 원활한 진행을 위해 우선 대법원장의 임명과 후속 법원 인사가 급하다는 점을 국회의원님들께 일깨워 드립니다.”

민주당으로서는 윤 정부를 도와주는 일이 아니라 총선을 위한 일이다. 한 마디로, 조희대 후보가 아니고 어느 누구가 되더라도 지금의 공석상태보다는 낫다. 

김형석(金亨錫) 논설위원은…

연합뉴스 지방1부, 사회부, 경제부, 주간부, 산업부, 전국부, 뉴미디어실 기자를 지냈다. 생활경제부장, 산업부장, 논설위원, 전략사업본부장 등을 역임했다. 

정년퇴직 후 경력으로 △2007년 말 창간한 신설 언론사 아주일보(현 아주경제) 편집총괄 전무 △광고대행사 KGT 회장 △물류회사 물류혁명 수석고문 △시설안전공단 사외이사 △한국방송광고진흥공사(코바코) 사외이사 △중앙언론사 전·현직 경제분야 논설위원 모임 ‘시장경제포럼’ 창설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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