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100 몰라도 된다’는 오판 위, 정책이 쌓였다 [주간필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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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100 몰라도 된다’는 오판 위, 정책이 쌓였다 [주간필담]
  • 권현정 기자
  • 승인 2024.03.02 09: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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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기업, 협력사에도 RE100 요구
국내는 높은 신재생E 가격으로 대응 부족
CFE 정책, 현실 진단 위에 다시 쌓아야

[시사오늘·시사ON·시사온=권현정 기자]

한동훈 국민의힘 비대위원장이 지난 27일 “RE100을 모르면 어떤가”라고 발언한 데 대해 정계 안팎에서 말이 오르내리고 있다. ⓒ시사오늘
한동훈 국민의힘 비대위원장이 지난 27일 “RE100을 모르면 어떤가”라고 발언한 데 대해 정계 안팎에서 비판이 나온다. ⓒ시사오늘

“‘RE100’(2050년 재생에너지 100% 전환을 약속한 기업 모임)을 알면 어떻고 모르면 어떤가. 사실 별 것 아닌 얘기다.”

지난 27일 한동훈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은 기후위기 대응 관련 공약 발표 자리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야당이 RE100을 안다며 ‘으스댄다’는 맥락에서 나온 말이었습니다.

해당 발언은 정계 안팎에서 연일 입길에 오르는 모습입니다. 국내 산업계가 줄기차게 정부 차원의 지원을 요청했던 RE100을, ‘아는 것만으로 으스댈 수 있는’ 희소한 개념으로 오판한 데 대한 비판이 우선 줄 잇습니다.

이어 그 같은 오판을 바탕으로 도출됐을 정부·여당 기후 정책에 대한 우려가 다시 고개를 듭니다.

정부는 최근 원전 중심의 국제 환경 인증제도를 신설하고 RE100 수준의 공신력을 얻어내겠다는 계획을 세우고 이행 중입니다.

 

경기도 기업 절반 ‘RE100 이행’ 요구받는데…신재생에너지 가격 ‘제자리’


RE100은 몇 년 전부터 국내 산업계의 지근거리에서 활활 타고 있는 당면문제입니다.

공급망을 포함해 ESG 경쟁력을 획득하려는 고객사 수요가 짙어지면서, 협력사인 국내 중소·중견 제조업계 등도 RE100 동참 요구를 받고 있거든요.

2022년 대한상공회의소가 국내 제조 기업 300곳을 대상으로 진행한 조사에서 응답기업 14.7%는 ‘(고객사들이) 재생에너지 사용을 요구했다’고 답했습니다.

지난해 경기연구원 조사에서는 ‘고객사로부터 RE100 요구를 받은 적이 있다’고 답한 도내 기업이 52.3%에 달했고요.

문제는 RE100에 대응하기에 국내 시장이 그리 녹록지 않다는 것입니다. 중국 등 경쟁시장은 신재생에너지 발전 설비를 늘리면서 LCOE(균등화발전원가. 설치, 처리 비용 등을 포함했을 때 전력 가격)이 꾸준히 하락하고 있지만, 한국은 증설이 점차 둔화되고 있어섭니다.

재생에너지 클라우드 플랫폼 통계에 따르면, 국내 태양광 발전 신규 설치 용량은 2019년 3073MW, 2020년 4121MW 등으로 늘어나다가 2023년엔 2756MW 수준까지 떨어졌습니다.

배정환 전남대학교 경영대 교수는 “RE100을 (기업이) 추진하려면 LCOE 단가가 맞아야 하는데, 우리나라는 주요 경쟁국인 중국, 유럽 대비 가격이 상당히 높다. 여전히 경제성이 안 나온다”고 짚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정부가 취할 수 있을 법한 선택지는 명해 보입니다. 기업들이 더 경제성 있는 신재생에너지를 찾아 생산기지를 이전하지 않도록 신재생에너지 설비를 적절히 확대하는 방법을 골몰해야 할 겁니다.

현재 진행 중인 RE100 산업단지 지원 사업 등에 더 박차를 가할 수도 있겠습니다. 윤석열 정부의 국정과제 중 하나가 ‘탄소중립형 산업단지 조성’이기도 하니까요.

다만, 정부는 다른 가능성에 기대를 더 거는 모습입니다. 윤 정부는 최근 국내 에너지 믹스에 친화적인 새로운 글로벌 기준을 개발하고 시장에 홍보하는 데 주력하고 있습니다.

 

RE100 모르면 현실 진단 ‘건너뛰기’…CF연합 가능성 살필 필요


정부는 지난해 확정된 제10차 전력수급기본계획(전기본)에서 오는 2030년 기준 원자력 발전 비중을 32.4%로 고지했습니다. 기존 2030 NDC(국가 온실가스 감축목표) 상향안 기준 8.5%p 늘어난 수치입니다.

10차 전기본엔 고리 2호기 등 운영이 만료되는 원전의 계속운전 등도 적시됐습니다.

이어 정부는 무탄소 에너지(CFE) 전환 기업 인증제도인 ‘CF연합’ 추진으로 일련의 흐름에 쐐기를 박았습니다. CF연합은 탈탄소 에너지에 원전을 포함합니다.

정부와 여당은 자신만만한 모습입니다. 지난달 28일 산업부와 CF 연합은 올해를 CFE 이니셔티브 확산의 원년으로 선언하고, 올해 하반기부터는 해외 기업·기관에도 가입을 개방한단 계획을 밝혔습니다.

업계와 학계는 다소 회의적인 목소리를 냅니다.

RE100은 민간 주도 이니셔티브로 글로벌 시장의 필요에 의해 시장이 만든 캠페인입니다. CFE는 한국 정부가 한국의 필요에 의해 만든 제도입니다. 관 주도 이니셔티브엔 한계가 있단 게 업계 중론입니다.

또한, 이니셔티브에 대한 시장의 요구를 충분히 고심했는지에 대한 의문이 남습니다.

시장은 글로벌 정부의 다양한 ‘그린’ 정책이 쏟아지는 와중에도 흔들리지 않을, 체력 좋은 기업을 가늠할 필요가 있었습니다. 신재생에너지 확보 역량은 가장 확실한 기준이었겠고요.

반면 원전은 아직 다수 국가에서 이견이 나오는 탈탄소 전원입니다. 배정환 교수는 “EU 내에서도 이탈리아, 프랑스는 (에너지 믹스가) 원전 중심이니 (CF연합을) 옹호하겠지만, 독일과 스웨덴 등 탈원전에 나선 국가들은 인정하지 않을 것”이라고 내다봤습니다.

장기전에 정책역량을 ‘올인(all in)’하는 데 대한 우려도 나옵니다.

제10차 전기본에서 정부는 신재생에너지 발전비중을 21.6%로 정했습니다. 기존 2030 NDC 상향안 기준 30.2%에서 8.6%p 줄었습니다. 태양광 산업은 지난해 비위 조사 등으로 위축된 상황입니다.

원전 공급은 늘리고, 신재생에너지 공급은 줄이고 있는 셈입니다. 국내 제조업계의 당면과제가 CF연합 참여 압박이 아니라 RE100 참여 압박인데도요.

한동훈 비대위원장은 지난 27일 같은 자리에서 기후대응기금 규모를 올해 2조4000억 원에서 2027년 5조 원으로 늘리겠단 공약을 공개했습니다.

큰 돈입니다. 현장의 목소리도 듣고, 시장 분석도 하고, 현실 진단도 다시 차근차근 해볼 필요가 있겠습니다.

담당업무 : 정유·화학·에너지를 담당하고 있습니다
좌우명 : 해파리처럼 살아도 사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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