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세논쟁, 침묵하는 ‘박근혜’-요동치는 ‘한나라’
스크롤 이동 상태바
감세논쟁, 침묵하는 ‘박근혜’-요동치는 ‘한나라’
  • 최신형 기자
  • 승인 2010.11.10 15:13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친이 소장파, 연판장 돌리며 청와대에 반기
박 전 대표 침묵의 정치, '정치적 딜' 의도(?)
또다시 박근혜 한나라당 전 대표가 주목받고 있다. 여의도 정치권에서, 지식인들과 언론, 그리고 반(反)박근혜 성향을 가진 누리꾼 등이 그에게 요구하고 있다.
 
MB노믹스의 감세 정책과 박근혜 줄푸세 정책(세금은 줄이고 규제는 풀고 법질서를 세우는 박 전 대표의 2007년 한나라당 대선경선 공약)과의 차이를 말해달라고.

정두언 최고위원에 의해 촉발된 감세안 철회 논쟁은 한나라당 소장파들이 주도한 ‘감세 철회 연판장’ 사건으로 이어졌지만 그 중심엔 언제나 친박계 수장인 박 전 대표가 있었다.

하지만 언제나 그렇듯 박 전 대표는 침묵하고 있다. 중요이슈가 불거질 때마다 침묵으로 일관하다 이슈가 종료될 시점에 ‘말 한마디’를 툭 던지며 정치적 딜을 시도하는 남다른 정치 감각은 지금도 진행 중이다.

감세안 논쟁으로 한나라당 친이계 내부가 요동치기 시작한 건 지난 10월 26일. 이후 감세안 철회 공식화→감세안 철회 번복→친이계 소장파 감세안 연판장 서명→정치권, 박 전 대표에게 입장 요구→서병수 최고위원·이혜훈 의원, 박 전 대표 방패막 자임 등 한나라당 내부는 급박하게 전개됐다.

과연 보름 전 한나라당 내부에선 어떤 일이 있었던 것일까.

감세 논쟁의 급물살은 지난 10월 26일에 있었던 안상수 한나라당 대표의 국회 교섭단체 대표연설에서 비롯됐다.

민주당·국민참여당 등 자유주의 정당이 좌클릭하는 사이 한나라당도 박노자 노르웨이 오슬로 대학 교수의 저서와 같은 ‘왼쪽으로 더 왼쪽으로’를 실행해 버린 것.

안 대표는 이날 국회 본회의에서 열린 교섭단체 대표 연설을 통해 “한나라당은 더불어 잘 사는 사회를 활짝 열기 위해 새로운 길을 모색하고자 한다”며 “당의 강령을 중도 개혁의 가치를 포용하는 방향으로 개정해 내년 3월까지 중도 보수의 기치를 담은 한나라당 개혁 플랜을 제시하겠다”고 말했다.

이어 “고소득층까지 아우르는 보편적 복지가 아닌 서민과 중산층을 포함한 70%의 복지를 열어 개혁적 중도 보수정당으로 국민 앞에 다시 설 것”이라며 거듭 복지를 강조한 뒤 “국가 정체성을 지키고 시장경제와 대한민국 선진화를 지향하는 합리적 중도 보수세력을 규합하겠다”고 천명했다. 

안 대표의 이 같은 주장은 지난 6·2 지방선거에서 민주당 등 자유주의 정당이 진보진영의 핵심의제였던 무상급식 등 보편적 복지로 서민과 주도층 표심을 공략하자 이를 염두해둔 사전포석이라는 관측이 컸다.
▲ 지난달 25일 오전 국회에서 열린 본회의에서 한나라당 박근혜 전 대표가 정두언 최고위원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 뉴시스

하지만 한나라당 내부의 분석은 이와는 조금 달랐다.

한나라당 관계자는 안 대표의 대표연설과 관련, “안상수 한나라당 대표가 중도개혁정당, 서민과 중산층 정당 등을 의제로 내세워 ‘안상수식’ 정치를 본격화하기 시작한 것”이라며 “내년 4월경 실시될 예정인 재·보궐 선거가 안 대표 자신의 대표직 수행 여부의 1차 고비인 만큼  승부수를 띄운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는 지난 7·14 전당대회에서 ‘안상수號’의 돛을 올렸지만 손학규 민주당 대표에 비해 이슈 메이커로서의 중량감이 떨어지자 정치권에서 자신의 입지를 구축하기 위한 것으로 해석된다.

하지만 ‘친이 주류’인 안 대표가 개혁적 중도보수라는 총론만 제시한 채, 각론에 대한 구체적 실천 방안을 내놓지 못하고 있는 사이 ‘친이 소장파’ 정두언 최고위원이 감세안 철회를 주장하며 한 발 치고 나갔다.

정 최고위원의 구체적 실천 방안은 안 대표를 궁지에 몰아넣었다. 더불어 박 전 대표에겐 감세 논쟁을 둘러싼 공격의 시발점을 알리면서.

정 최고위원은 안 대표의 국회 대표 연설 날 자신의 홈페이지에 <감세 철회의 필요성>이란 제목의 글을 통해 “최근 복지수요 증가로 재정지의 대폭 확대가 요구되고 있고 이에 따라 재정적자가 계속 늘고 있다”며 “재정지출을 늘리면서 세금을 같이 올리기는커녕 줄이는 정책은 전형적인 포퓰리즘”고 주장, 감세를 찬성하는 당내 인사들을 싸잡아 비난했다.

앞서 같은 달 25일 정 최고위원은 국회 본회의장에서 감세철회에 대한 내용이 들어있는 A4용지 한 장 분량의 문서를 들고 박 전 대표를 찾아가 의중을 물었고 A4용지를 받아든 박 전 대표는 “검토해보겠다”라는 원론적인 입장만 밝혔다.
 
하지만 이는 ‘감세-증세’ 논쟁의 점화는 물론, 박 전 대표에게 피격의 상황을 만들어 준 결과로 작용했다.
 
한나라, 감세 철회 번복..친이계 무슨 일이?

정 최고의원이 감세안 철회 주장을 자신의 홈페이지에 게재한 다음날인 10월 27일 한나라당 배은희 대변인은 최고중진 연석회의 후 가진 국회 브리핑에서 “정두언 최고위원이 고소득층에 대한 감세안 철회를 재차 요구했고 당에선 이 제안을 받아들여 정책위에서 고소득층 감세 철회에 대해 검토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하지만 이후 국회를 중심으로 친이계 주류 측이 당 지도부의 감세안 철회에 대해 MB노믹스를 이해하지 못한 처사라며 강하게 반발했다고 알려졌고 불과 몇 시간 뒤 배 대변인이 다시 국회 정론관을 찾아 기자들에게 “감세안 철회를 검토할 뿐이지 감세 철회를 당 지도부가 확정한 게 아니다”라고 번복하는 해프닝이 벌어졌다. 

친이계 주류가 감세안 철회에 1차 저지를 했다면 강만수 경제특보는 청와대 의중을 전달하며 2차 저지에 나섰다. 강만수 경제특보는 10월 28일 <헤럴드경제>와의 전화인터뷰에서 “감세안은 쉽게 바꿀 수 있는 게 아니다. 대통령 중심제에서 대통령의 공약인 감세는 국민과의 약속인데 특정 정치인에 의해 쉽게 바뀔 수 있는 사안도 아니다”라고 말하며 친이계 교통정리에 나섰다.

그러자 정 최고위원은 다음날인 10월 29일 다시 <헤럴드경제>와의 전화인터뷰에서 강만수 특보를 향해 “감세 귀신이 들려 있는 사람이다. 의원총회에서 많은 의원들이 동의를 하고 있어 감세철회가 성공할 것으로 확신하고 있다”고 강 특보를 힐난했다.

▲ 왼쪽부터 강만수 경제특보, 이명박 대통령, 백용호 청와대 정책실장.     © 뉴시스

이후 잠시 소강상태를 맞았던 감세안 철회 논쟁은 또다시 지난 4일 또다시 불거졌다. 이날 민본21 등 친이계 소장파 의원등은 ‘감세정책 관련 의총 소집 요구서’를 김무성 원내대표에게 공식 제출, 이른바 친이계 연판장 사건이 한나라당을 요동치게 한 것.

이날 감세안 연판장에 서명한 45명은 “현재 당 지도부와 청와대가 감세기조를 유지한다는 입장을 밝히고 있지만 당 내부엔 상당수 다른 목소리가 존재하고 있다”며 “이 문제는 당 지도부에서 일방적으로 결정할 일이 아니다”라며 사실상 당 지도부와 청와대에 반기를 들었다.

이에 김 원내대표는 “당장 급한 것은 아니니까 G20 정상회의 이후 의총을 열도록 하겠다”라고 말하며 사실상 감세논쟁을 수용하는 쪽으로 가닥을 잡았다. 다만 김 원내대표가 부자감세 논란과 관련해 당이 분열된 것처럼 비춰지면 안 된다며 언론출연의 자제를 주문했다는 후문이다.

여기서 흥미로운 대목은 감세안 연판장에 서명한 의원 45명의 계파다. 친이 소장파인 정두언 최고위원과 정태근 의원, 친이재오계인 신성범·조진래 의원과 친홍준표계인 박준선·이범래, 중도파인 권영세·김정권 의원, 민본21의 개혁성향의 초선의원, 그리고 친박계 구성찬·현기환 의원 등이 연판장에 서명했다.

결국 감세안 철회를 놓고 한나라당은 청와대-친이 주류 VS 친이 소장파-중도-초선-친박계 일부 등으로 권력지형이 재편되고 있는 셈이다.

또 감세안 철회 논란에 불을 지폈던 정 최고위원의 지역구는 서울 서대문을, 정태근 의원은 서울 성북을, 권영진 의원은 서울 노원을 등 연판장 서명자 중 수도권에 지역구를 둔 의원이 29명으로 절반을 차지하고 있다.

결국 수도권에 지역구를 둔 반(反)친이 주류가 MB노믹스인 감세에 반발하고 있는 것이다.

이는 최근 자유주의 정당들도 좌향좌 하는 상황에서 한나라당이 감세 기조를 유지할 경우 수도권 반(反)친이 주류 성향의 의원들이 2012년 총선에서 살아남기 어렵다고 생각하는 게 아니냐는 해석이 가능하다.

실제 지난달 21일 헤럴드미디어의 싱크탱크인 ‘헤럴드공공정책연구원’이 여론조사기관인 ‘데일리리서치’와 공동으로 실시한 여론조사(신뢰범위 95%, 오차한계 ±3.1%p)결과, 서울지역 국회의원에 대한 유권자들의 재신임 비율은 26.6%에 그쳤다.

18대 국회의 서울 지역구 48개 가운데 무려 40개 지역이 한나라당 소속이기 때문에 사실상 한나라당 수도권 의원에 대한 재신임 여부나 마찬가지인 셈이다.

한나라당 복수 관계자에 따르면 지난 6·2 지방선거에서 민주당이 서울 구청장 25개 중 21곳 지역에서 당선 된 이후 한나라당 수도권 의원들의 긴장감이 정점에 달하고 있다.

친이계의 반란에도 불구하고 감세안 철회가 당론으로 채택되기 역부족인 점도 감세논쟁이 정책논쟁이 아닌 권력지형 재편을 염두해둔 사전포석일 가능성을 한층 높이고 있다.

실제 한나라당 당헌·당규상 당론 변경은 의원 2/3이상의 동의가 필요하다. 감세철회가 당론으로 결정되려면 171명의 의원 중 무려 114명이 찬성을 해야 한다는 점에서 현실 가능성이 극히 낮다는 게 중론이다.

결국 수도권 친이 소장파등이 감세안 연판장 사건은 ‘감세냐 증세냐’의 경제정책적인 문제보단 권력헤게모니 측면에 기인하고 있는 측면이 큰 셈이다.

박근혜 침묵 속 친박계 방패막 자임

친이계가 불 지핀 감세안 논쟁의 중심엔 박 전 대표가 있다. 18대 후반기 들어 기존 상임위원회인 보건복지위원회에서 기획재정위원회로 말을 갈아탄 박 전 대표는 2012년 대선을 앞두고 ‘따뜻한 복지’를 화두로 삼는다는 것은 이미 알려진 사실이다. 그래서 박 전 대표의 줄푸세 공약이 다시금 주목받고 있다.

그는 이미 지난 6월 21일 기재위 회의에 참석해 ‘소득분배’와 ‘사회양극화’의 중요성을 역설했고 지난 9월 14일 진수희 보건복지부 장관이 참석했던 당내 여성의원들과의 오찬에서도 ‘노인복지’를 화두로 꺼냈다.

또 지난달 4일부터 20일간 진행됐던 2010국정감사에서도 박 전 대표는 MB정부의 국가부채-세제의 비효율성 등을 공격했다. 당시 정치권 안팎에선 박 전 대표가 MB노믹스와의 대립각을 통해 정치적 활동 공간을 넓히려는 게 아니냐는 관측이 강하게 제기됐다.


▲ 지난 8일 오전 국회 기획재정위 회의실에서 열린 상임위에 앞서 한나라당 박근혜 전 대표가 손으로 귀를가리는 표정을 하고 있다.     ©뉴시스

박 전 대표는 지난달 23일 자신의 미니홈피에 국감을 마치며 “이번 국감은 우리 사회가 안고 있는 과제들을 해결하기 위해 국가재정과 조세제도는 어떤 기준과 방향으로 이끌어야 하는지, 어려운 분들을 위해 국가는 무엇을 할 수 있는지, 평소 생각하던 것을 짚어보는 기회가 됐다”고 말하며 추상적인 담론만 내놓은 채 각론에 대해선 함구로 일관했다.

이때부터 정치권 안팎에선 박 전 대표에게 줄푸세 공약 중 감세 부분에 대한 근본적 성찰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유시민의 경제학 카페>,<부자의 경제학·빈민의 경제학>등을 저술한 유시민 참여정책연구원장은 지난 21일 CBS라디오 <변상욱의 뉴스쇼>에 출연해 “박근혜 전 대표의 줄푸세 정책은 이미 MB가 하고 있는 실패한 정책”이라고 말했고 지난 4일 PBC라디오 <열린세상 오늘! 이석우입니다>에 출연해선 “미국이나 유럽 등 모든 민주주의 선진국에선 현실적인 힘을 가진 정치인은 중요한 국가적 현안에 대해 의견을 말한다”며 박 전 대표의 침묵행보를 꼬집었다.

그러자 5일 친박계 서병수 최고위원은 CBS라디오 <변상욱의 뉴스쇼>에 출연해 감세논쟁과 관련, “(법인세·소득세 등)정책의 문제는 박 전 대표가 나설 문제가 아니다”라며 “MB에게 부담을 줄 수 있어 가급적 입장 표명을 하지 않는 것”이라고 말했다.

또 친박계 경제통인 이혜훈 의원은 지난 8일 PBC라디오 <열린세상! 오늘 이석우입니다>에 출연해 “박 전 대표의 감세정책은 MB의 감세정책과는 다르다. 박 전 대표가 얘기하던 감세는 내용을 잘 짜서 적절한 타이밍에 감세를 하자는 것”이라고 말했고 박 전 대표의 경제선생님으로 알려진 이한구 의원은 “법인세는 예정대로 가고 소득세는 감세를 철회하는 방법으로 갈 필요가 있다”며 절충점을 내놨다. 

실제 박 전 대표는 지난 달  5일 국회 기획재정위 기획재정부 국감에서 “비과세 감면 축소는 오래 전부터 추진됐지만 늘 새로운 비과세 감면 제도가 생기고 있다”며 비과세 감면제도의 축소 가능성을 언급했다.

하지만 일시적·한시적 감면제도인 비과세 감면제도는 축소한 채 반항구적이고 대기업을 위한 법인세엔 찬성하는 입장을 보일 경우 자칫 역풍을 맞을 수 있다.

한나라당 관계자는 “친박계 내부에선 오래 전부터 복지가 전제된 성장을 고민하고 있었다. 박 전 대표의 줄푸세 공약 중 법치는 그대로 가고 규제는 무조건 규제 완화가 아닌 필요한 규제를 선별적으로 한다는 입장을 가지고 있다. 나머지 감세 부분은 가장 많은 변화가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어 감세와 관련, “부담능력이 많은 계층에겐 증세를, 근로계층에겐 감세를, 또 징수체계의 재정립을 통해 세금탈루를 막고 비과세 영역을 재검토하면 재원을 상당히 마련할 수 있다”며 “이렇게 마련된 재원을 저소득층에게 단순 생계비 지원이 아닌 수요자 자립형 지원의 형태로 갈 것”이라고 말했다.

감세효과는 지금도 고전학파 VS 케인즈학파 경제학들 사이에서 치열한 논쟁거리다. 전자는 기업의 투자의욕을 고취해 일자리, 경제성장 등에 영향을 끼친다고 주장하고 있고 후자는 재정악화로 귀결될 것이라며 평가절하고 있다.

아직까지 박 전 대표가 감세정책에 대한 직접적 의견을 피력하지 않았지만 고전학파와 케인즈학파를 모두 수용하는 선에서 중립 포지션을 취할 가능성이 높다.

결국 현재 MB노믹스를 지지하는 친이 주류계와 ‘더 오른쪽으로’를 실행하고 있는 김문수 경기지사 등이 감세 논쟁에 불을 지필 경우 박 전 대표의 ‘따뜻한 복지’는 또 다시 여론의 뭇매를 맞는 상황에 직면할 수밖에 없을 것으로 보인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