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자원공사, 필리핀 안갓댐 인수 1년 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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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자원공사, 필리핀 안갓댐 인수 1년 후
  • 김신애 기자
  • 승인 2011.04.21 13: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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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지도 저러지도…대법원 판결만

한국수자원공사(K-water)는 지난해 5월 국내 최초로 해외 수력발전소에 손을 뻗으며 필리핀 마닐라(Manila) 지역의 안갓(Angat)댐을 인수키로 했다. 당시 수자원공사는 “40년 수력발전 운영관리 기술을 접목해 원활한 전력공급 및 수익 창출을 이루고 향후 동남아를 비롯한 해외시장에서 국제적인 수자원 전문기관으로 거듭나는 계기를 마련했다”고 자랑스럽게 발표했다.

그리고 1년 뒤, 안갓댐은 이제 애물단지로 탈바꿈 했다. 인수 절차는 현지 시민단체의 반발로 중단돼 있다. 사업 추진 여부는 현지 대법원 판결에 달려 있다. 또 수자원공사 스스로도 재정악화의 길을 갈지, 부끄러움을 감수할지 곤란한 입장에 처해 있다. 이에 수자원공사의 안갓댐 사업을 되짚어보고 1년이 지난 지금은 어떤 모습을 하고 있는지 들여다보기로 했다.
  
좌초위기 안갓댐 사업

안갓댐은 필리핀 마닐라 북부 약 58km지점에 위치한 대규모 다목적댐이다. 저수지 면적은 23㎢, 유효저수용량은 8억5000만㎥로 우리나라의 소양강댐과 규모가 비슷하다. 안갓댐을 인수한 한국 수자원공사는 낙후한 안갓댐 구조를 정비·증축해 경영할 계획이었다. 

▲ 안갓댐 위치 사진 ⓒ뉴시스
수자원공사는 4억 4천만 달러(약 4천840억 원)에 안갓댐을 인수하고 연간 운영 매출액으로 약 600억 원을 내다봤다. 안갓댐의 발전시설용량은 218MW로 1년에 400GWh 이상의 전력을 생산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수자원공사의 안갓댐 인수는 현지 시민단체의 반발로 빛을 보지 못하고 있다. 지난해 5월5일 수자원공사가 우선협상자로 선정된 후 같은 달 19일 필리핀의 4개 시민단체가 현지 대법원(The Super Court)에 ‘입찰 무효 및 안갓댐 민영화 금지’ 가처분 신청을 냈다. 이에 대법원은 현재까지 본안 소송 심리를 진행 중에 있고 안갓댐 인수절차는 정지된 상태다.

필리핀 현지인에게 안갓댐의 의미는 남다르다. 안갓댐은 필리핀 수도 마닐라의 생활용수 97%를 담당하고 블라칸(Bulacan)과 산훼르나도(San Fermando) 지방의 농경지에 관개용수를 공급하기 때문이다. 시민단체는 안갓댐이 민영화될 경우 마닐라의 물 공급과 인근 농경지 관개에 차질이 생길 수 있다고 주장한다. 2010년 전기 민영화로 전기요금이 30% 인상되면서 발전사업 분야의 민영화 자체에 대한 반대가 있기도 하다.

수자원공사는 시민단체 등의 안갓댐 민영화에 대한 부정적인 입장을 알고는 있었지만 그 심각성을 예측하지 못하고 지금의 상황까지 이르렀다. 

적자 재정에 4천840억이 웬말

수자원공사의 안갓댐 인수액은 4억 4천만 달러(약 4천840억 원)다. 입찰가를 2위로 써낸 Gen Northern Energy Corp(현지 업체)과는 7천500만 달러(약 825억 원)가 차이난다. 또 필리핀 전력자산관리공사(PSALM)가 지난해 5월5일까지 매각한 수력발전시설 관련자료에 따르면 매각한 수력발전 시설 중 안갓댐의 W당 단가도 가장 높다. 필리핀의 민영화 수력발전 20개 중 안갓댐의 단가는 1W에 2.02달러로 가장 높고 다음으로 1.86달러, 가장 낮은 금액은 1W당 0.02달러에 매각된 것도 있다.

▲ 김건호 한국수자원공사 사장 ⓒ뉴시스
 
수자원공사는 필리핀이 다른 댐을 매각한 시점과 수자원공사가 안갓댐을 인수한 시점 사이 전력 가격 상승을 고려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게다가 수자원공사가 낮은 이율로 자금을 도입한 것까지 감안하면 인수액 2위 그룹에 비해서도 가격이 유독 높은 것은 아니라고 한다.

수자원공사 측은 “적정한 투자금액이라고 판단해 입찰가를 써냈고 사업의 타당성을 믿는다”며 “혹시 일이 잘못 돼도 인수액은 지불한 상태가 아니기 때문에 손해 보는 것은 없다. 손해가 있다면 사업 추진을 위한 시장조사 또는 출장비 등으로 들어간 비용 몇 억 뿐”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재정적 손실이 없더라도 대형 프로젝트 성사 발표를 쉽게 번복할 수는 없는 일이다. 이는 공기업의 신뢰를 잃는 일이다. 또 사업 금액은 수자원공사의 만성 적자와 연결지어 생각해야 한다. 2010년 10월 국정감사에서 민주당 김진애 의원은 “이미 4대강과 경인아라뱃길 사업으로 재무 건전성이 위협받는 상황에서도 수자원공사는 규모가 큰 해외사업을 무리하게 추진해 재정 건전성이 더욱 나빠질까 우려된다”고 말했다.

수자원공사가 4대강 살리기 사업과 경인아라뱃길 사업에 투자한 금액만도 10조 원이 넘는다. 수자원공사는 사업비를 감당하기 위해 2010년 한 해에만 4조 원 가량의 사채를 발행했다. 2009년까지는 사채발행액이 1조 원도 넘긴 적이 없었다. 더욱이 2011년에는 5조 원 이상의 사채발행 계획이 있다.

2010년 말 차입금 총액은 7조원이 넘기도 한다. 이율을 4%까지 낮춰 추산해도 연 이자만 2천 800억 원 가량이다. 실제 이율과 2011년 사채 발행에 따른 누적 이자까지 적용하면 금액은 어마어마하다. 지난해 당기순이익 1천421억 원에 불과한 수자원공사가 감당하기에는 어려운 금액이다. 정부 보조금도 2010년 약 40억 원에서 2011년에는 2천560억 원 가량으로 늘었다. 빚은 늘어만 가고 빈 구멍은 정부가 메워주는 식이다.

수자원공사 관계자는 “사업 일정이 작년에 많은 자금이 투입되게 잡히다 보니 사채발행이 늘어난 것은 사실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안갓댐 사업을 추진한 것은 생존과 발전 위한 전략”이라고 설명한다. 관계자는 “해외투자사업은 100% PF(Project Financing)을 원칙으로 한다”며 “만일 부정적 상황이 생겨도 수자원공사는 자금 상환 책임이 없다”고 말했다. PF는 한국 수출입은행, 국제상업은행(SCB, Standard Charterd Bank), 필리핀 현지 은행이 각각 1/3씩 담당한다.

사실 수자원공사에게 자금상환 책임이 없다고 문제가 없는 것은 아니다. 수자원공사 대신 한국수출입은행이라는 다른 공기업에게 책임이 전가될 뿐이다. 게다가 자금 조달처 확인 결과 현 사업의 PF은 자금의 2/3에 대해서만 진행된다. 나머지 1/3은 수자원공사의 자본금으로 충당하도록 돼 있다.

▲ 수자원공사 차입금 변동 추이 ⓒ 자료제공=한국수자원공사

수위는 줄어드는데…수익성 있나

수익성 측면에서도 문제가 제기됐다. 현재 필리핀은 이상기후로 댐 수위가 낮아지고 있다. 지난해 국정감사 자료에 따르면 댐 수위가 180m(안정수위 200m, 위험수위 180m) 이하로 내려간 적이 2000년 이후만도 2번이 있다. 2010년 9월에는 수위가 185m에 불과했다.

이미 지난해 4월 수자원공사 이사회에서는 “용수확보 안전성에 따라 발전수익이 영향 받을 수 있기 때문에 이에 대한 대책을 검토해야 한다”는 지적이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수자원공사는 이상기후를 예측할 수 있는 모델도 없이 사업을 강행했다.

수자원공사는 수문분석을 할 때 50년~100년 치 트렌드 분석을 했기 때문에 공교롭게 작년에 비가 적게 와 수위가 낮아졌다고 해서 크게 문제가 되는 것은 아니라고 반박했다. 하지만 50년 이상의 트렌드 분석이 오히려 최근 기후의 ‘이상성’을 완화시켜 문제를 묵인하는 결과가 될 수도 있다는 지적이 있다. 

게다가 이러한 위험요소를 충분히 검토해야 하는 ‘해외사업리스크관리위원회’는 인수 결정 시점까지도 형성돼 있지 않았다. 정부 예산편성지침에 따르면 해외사업의 경우 해외사업리스크관리위원회를 설치해야 한다. 하지만 수자원공사는 ‘해외사업선정위원회’ ‘투자심사위원회’ 등을 통해 해외사업 리스크를 관리했을 뿐이다.

수자원공사가 민주당 김진애 의원에게 제출한 ‘리스크관리위원회 구성원 현황과 회의개최내용’을 보면 수자원공사는 뒤늦게 리스크관리위원회를 구성했지만 한 번도 회의를 개최하지 않은 것을 확인할 수 있다. 더구나 구성원 18명의 의원 중 15명이 내부 인사로 구성돼 있어 구색만 맞추려는 것 아니냐는 비판도 있다.

국정감사에서 한나라당 허천 의원은 “해외사업을 효율적으로 추진하려면 해당 국가의 수문과 수자원 현황 등을 지속적으로 연구해 강우 예측 역량을 미리 갖췄어야 되는 것 아니냐”고 지적 했다.

김진애 의원은 “8조원 규모 4대강 사업에 대한 수자원공사 자체투자로 재무건전성에 위협을 받고 있는 상황에서 해외사업에 대한 보다 투명하고 객관적인 검증장치가 필요한 것은 아닌지”에 대한 의문을 제기하기도 했다.

▲ 지난 10월 국정감사에서 발언하는 국토해양부 소속 김진애 민주당 의원 ⓒ뉴시스

진퇴양난 수공, 결론은 용두사미?

수자원공사와 PSALM은 지난 3월 말 현지 법원에 변론서를 제출한 상태다. 수자원공사는 대법원의 판결이 나기까지 빨라야 4년, 긴급사항으로 처리될 경우 2년을 내다봤다.

판결 결과에 대해서는 그리 긍정적이지 않다. 소문에는 2위 협상대상자인 필리핀 그룹, Gen Northern Energy Corp이 배후에 있다는 말이 들리기도 한다. 1위 업체의 인수과정이 취소되면 2위 그룹이 우선 협상대상자가 되기 때문이다. 수자원공사는 “확인된 바는 아니지만 만약 그렇다면 우리는 외국기업이기 때문에 어떤 형태로도 현지 업체에게 유리할 것”이라며 부정적인 속내를 비쳤다.

일각에서는 수자원공사가 오히려 판결에서 지기를 기대할 것이라는 의견도 있다. 수자원공사의 적자 재정에 사업비 부담이 만만치 않을 것이고 수익성도 불분명하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사업을 용두사미로 끝내는 것도 공기업의 자존심에 금이 가는 일이다. 

수자원공사는 “포기하고 싶은 마음은 없다”고 주장한다. 그렇지만 적극적인 변론 활동을 취하고 있는 것도 아니다. 상대가 민간이 아닌 필리핀 정부라 조심스러운 부분도 있고 무엇보다 소송의 직접 당사자가 아니기 때문이라는 것이 수자원공사의 설명이다.

수자원공사는 “우리는 우선협상상대 이지만 직접적인 책임은 PSALM이 져야 하는 문제”라며 “우리가 나서지 않아도 PSALM이 스스로 방어하고 있기 때문에 가만히 있어도 다 해준다”고 방관하는 태도에 정당성을 부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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