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병도의 時代架橋] 한국경제 ‘반세기 추락’ 경보(警報), 앞이 안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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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병도의 時代架橋] 한국경제 ‘반세기 추락’ 경보(警報), 앞이 안 보인다
  • 이병도 주필
  • 승인 2019.12.07 08: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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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세계 걱정거리 된 경쟁력
'50년 만에 최악' 디플레이션 징후
성장률 3분의 1로, 복원력 난망
급락하는 수출…위기감 없는 정부
자영업과 중산층 무너지는 위기
범정부적 반전 대책 시급
포퓰리즘 중단 안하면 재정 파탄
끝 모를 경기침체, 구조개혁 서둘러야

[시사오늘·시사ON·시사온=이병도 주필)

한국 경제가 '반세기 만에 최악'으로 빠져들 가능성이 높다는 경고가 국내외 곳곳에서 날아들고 있다. 증후군도 역력하다. 어두운 터널을 탈출하지 못한 채 헤매고 있는 형국이다. 경제의 체질 개선이 시급하다. 정부의 대처는 미온적이다. 보다 근본적이고 체계적인 처방이 요구된다. 

현재 우리 경제는 국가 경쟁력과 국내 경제체질이 함께 침체의 수렁으로 침몰하고 있는 국면으로 보인다. 저(低)성장의 함정이다. 저성장이 저물가를 낳고, 저물가가 사회적 기대수익률을 낮춰 저성장을 가속화하는 악순환의 고리가 점차 깊어지고 있다. 

세계 유력 언론들의 한국 경제에 대한 질타가 잇따를 수 밖에 없다. 내년에도 한국 경제의 반등 가능성은 없다는 전망들이다. '물가 하락→소득 감소→성장률 하락'이라는 악순환을 경고하는 목소리가 끊이지 않고 있다.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는 “1954년 이후 처음으로 2년 연속 2%대 성장률을 기록해 최악의 상황에 빠져들고 있다”고 한국 경제를 비관했다. 블룸버그는 “한류의 나라가 혁신은 실패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사실, 인공지능, 빅데이터, 자율주행, 5세대 이동통신 등 4차 산업혁명 기술이 전 분야로 빠르게 확산되며 비즈니스 패러다임이 바뀌는 것도 변화에 굼뜬 한국 기업들에는 치명적인 위협이다.

한국 경제가 '반세기 만에 최악'으로 빠져들 가능성이 높다는 경고가 국내외 곳곳에서 날아들고 있다. 사진은 문재인 대통령이 5일 오전 서울 강남구 삼성동 코엑스에서 열린 제56회 무역의 날 기념식에 참석한 모습이다.ⓒ뉴시스
한국 경제가 '반세기 만에 최악'으로 빠져들 가능성이 높다는 경고가 국내외 곳곳에서 날아들고 있다. 사진은 문재인 대통령이 5일 오전 서울 강남구 삼성동 코엑스에서 열린 제56회 무역의 날 기념식에 참석한 모습이다.ⓒ뉴시스

복원력 상실...무더기 신용등급 강등

한국경제가 성장률 자체보다 아픈 대목은 외환위기와 글로벌 금융위기 당시만 해도 1년 만에 급반등했지만, 지금은 복원력마저 잃었다는 것이다. 

내년 한국 경제는 1% 후반대 또는 2% 초반대 성장이라는 시각이 대세이다. 잠재성장률에 미달하는 2% 안팎 성장이 고착한다면 일자리는 물론 분배도 복지도 벽에 부닥치게 될 것이다. 내수 부진에 인건비 급등까지 겹치면서 이미 자영업 몰락은 구조화하고 있다. 이는 중산층 붕괴로 이어질 수 있다. 

경기침체가 이어지면서 디플레이션 위험에 얼마나 깊이 빠져들고 있는지는 이미 한눈에 드러난다.

미국의 신용평가사인 무디스는 내년 한국 기업들의 무더기 신용등급 강등을 경고한 바 있다. 한국 기업들의 영업 환경이 크게 악화하고 영업이익이 줄어들었기 때문이다. 한국거래소가 밝힌 올 3분기 상장사 579개 기업의 영업이익도 전년 동기 대비 무려 41.3%나 감소했다. 4개 분기 연속 두 자릿수 감소치다. 제조업 가동률은 72.3%로 지난 6월(72.0%) 이후 가장 낮았다.

지난 11월 수출도 전년 대비 14.3% 감소해 12개월 연속 마이너스를 기록했다. 감소율은 지난 6월 이래 6개월째나 두 자릿수다. 반도체, 디스플레이, 화학 제품 등 주요 수출품 가격이 급락한 영향이 크다.

수출전선 붕괴

수출은 경제성장을 이끄는 엔진이다. 한국 경제의 주축이 흔들리고 있는 양상이다. 수출 기반이 흔들리면 성장의 날개가 꺾인다. ‘성장률 1%대 추락’ 우려가 나오는 것은 수출전선 붕괴의 충격이 큰 탓이다.

한국은 GDP의 45%를 수출에 의존한다. 미·중 무역 갈등과 보호무역주의 대두에 따른 충격을 피하기 힘들다. 이대로면 올해 한국경제의 성장률은 1%대에 머물 가능성이 높다. 오일쇼크나 외환위기 같은 대형 외부 충격이 없는데 1%대 성장은 처음이다. 

실제, 수출 붕괴의 충격은 전체 경제로 번지고 있다. 그 결과는 참담하다. 모든 산업활동이 멍든다. 생산·소비·투자가 모두 ‘마이너스 늪’에 빠져든 것은 이 때문이다. 수출 불황이 내수를 위축시키고, 다시 생산·투자 감소 사태를 낳는 악순환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정부는 수출 경쟁력 강화에 대해서는 말 한마디 없다. 

전통적 수출시장인 중국 미국 일본에 대한 적극적 통상외교 등 보다 범정부 차원의 반전 대책이 시급하다. 

'트리플 마이너스' 기록

전체적으로, 수출은 연속 감소 중이고 투자·생산·소비가 동반 하락하는 '트리플 마이너스'를 기록했다. 한마디로, 반(反)기업·반시장 정책이 지속된 결과다. 

국내총생산(GDP) 디플레이터 상승률이 마이너스란 것은 성장동력이 급락해 물가로 나타나는 경제 규모가 쪼그라들고 있음을 의미한다. 각종 경제지표는 이미 우리 경제가 침체의 터널에 갇혀있음을 보여준다. 통계청이 발표한 산업활동동향에서도 생산, 투자, 소비 등이 모두 감소했다. 

미국 유럽 등 주요 국가 중 최근 소비자물가지수는 물론 GDP 디플레이터 상승률까지 모두 마이너스로 떨어진 나라는 없다.

우리 정부의 재정적자도 폭증세다. 올해 1~3분기 정부의 관리재정수지는 2011년 관련 통계를 발표하기 시작한 이래 역대 최대인 57조원 적자였다. 2019∼2023년 중기 재정운용계획을 보면 2023년 국가채무는 1000조원을 넘고 국가채무비율은 46.4%까지 오른다. 

기적을 일궈냈던 우리 경제가 이대로 주저앉을 수는 없다. 고비용·저효율이라는 우리 경제의 체질을 바꿀 구조개혁, 투자를 가로막는 규제혁신, 주력 수출산업에 대한 의존도를 낮추고 내수를 활성화하는 등의 ‘복합 처방’이 필요하다. 

4차 산업혁명 물결에 올라탈 수 있도록 반기업적 노동·규제 개혁에 박차를 가해야 한다. 

구조적 침체의 전형

물가가 완만하게 오르면서 경제가 성장하는 것이 정상이나, 최근 한국 경제는 물가가 하락하면서 경제 총량도 줄어드는 환자 같은 양상을 보이고 있다. 경제가 활력을 잃고 성장 동력이 위축되는 구조적 침체의 전형적 양상이다. 

문재인 정부의 집권 전반기를 평가할 때 올해 성장률의 급격한 하락은 두드러진다. 정부는 올해 성장률 전망치를 2.4~2.5%로 예상했으나 2% 달성도 버거운 상황이다. 4분기에 1%의 성장을 해야 2%가 가능하지만, 전문가들은 회의적이다. 

정부나 한국은행과 달리 일부 민간 예측기관은 1%대 성장 전망을 하고 있다. 골드만삭스와 무디스는 2.1%, JP모건은 2.0%, LG경제연구원은 1.8%, 한국경제연구원은 1.9%를 예상한다. 국내외 경제 불투명성이 짙어 낙관이 이르다는 경고다. 국가 경제의 안팎에 문제가 크다는 의미다. 

GDP(국내총생산)디플레이터 상승률이 20년 만에 최대폭으로 떨어졌다는 한국은행 발표는 우리 경제가 어떤 처지인지를 극명하게 보여준다. GDP디플레이터가 네 분기 연속 마이너스인 것은 외환위기 때도 없던 일이다. 그 하락폭도 작년 4분기 -0.1%, 올 1분기 -0.5%, 2분기 -0.7%로 점점 커지고 있다. 경제가 활력을 잃은 채 갈수록 기력이 쇠하고 있다는 명백한 징후다.

'디플레이션' 악몽 우려 

허지만, 정부와 한국은행은 디플레라는 말만 나와도, 즉각 부인하려는 자세다. 문 대통령은 수차례에 걸쳐 "우리 경제가 올바른 방향으로 가고 있다"고 말했다. 

장관과 청와대 참모들은 대통령이 말한 기조에서 한발짝도 움직이지 못한다. 한은도 우리 경제가 디플레 조짐을 보이고 있다는 지적을 거부한다. 이래선 디플레에 선제대응은커녕 제때 적절한 대응조차 어렵다.

정부가 눈앞의 인기에만 급급해 체질개선과 구조개혁을 미룬다면 기업들의 글로벌 경쟁력 약화만 초래할 뿐이다.

경제 회복이 더뎌지면 저성장의 함정에 빠질 가능성은 그만큼 커질 수밖에 없다. 경기 둔화와 고령화 속에서 우리 경제가 20년 동안 디플레이션과 경기침체의 악순환에 빠졌던 일본의 전철을 밟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커지고 있는 현실이다.

대표적으로, 11월 농산물을 제외한 근원 물가가 20년 만의 최저라는 소식도 나왔다. '디플레이션' 악몽이 우리 주위를 맴돌고 있음을 그대로 보여준다. 최근 급격한 부동산 가격 상승도 국가 경제 전반에 악영향을 미친다. 땅값이 뛰면 그만큼 기업의 생산원가가 높아지고 경쟁력은 떨어질 수 밖에 없다. 

GDP 디플레이터, 20년 만에 최대 하락 

국민경제의 전체 활력을 보여주는 국내총생산(GDP) 디플레이터가 1961년 통계 작성 이래 처음으로 지난해 4분기부터 네 분기 연속 마이너스를 기록한 것은 우연이 아니다.

GDP디플레이터는 명목 GDP를 실질 GDP로 나눈 값으로, GDP를 구성하는 투자, 소비, 수출입 등 경제 전체의 물가수준을 반영해 ‘GDP 물가’로도 불린다. 소비자물가가 가계 지출 비중이 큰 460개 품목에 가중치를 붙여 산출하는 반면 ‘GDP 물가’는 모든 물가 요인을 포괄하는 종합 지표여서 체감경기와 밀접하다. 거시경제 진단 시 반드시 주목해야 하는 이유다.

이 수치는 기업 채산성 악화와 소비 위축으로 1.6% 하락해 20년 만에 가장 크게 떨어졌다. 하락 폭도 2018년 4분기 0.1%, 2019년 1분기 0.5%, 2분기 0.7%, 3분기 1.6%로 갈수록 커졌다. 한국은행에서는 올 4분기에도 GDP 디플레이터가 하락해 5분기 연속 마이너스 행진할 가능성이 큰것으로 예상했다. 

한번 디플레이션 심리가 형성되면 걷잡을 수 없게 되면서 경제를 회복 불능 상태로 몰아넣을 수 있다는 것이 디플레이션을 경험한 다른 나라들의 교훈이다. '잃어버린 20년'을 겪은 일본이 대표적이다.

디플레이션 초입단계 진입

올해는 세계 경제가 2.3% 성장할 것으로 예상되는 상황에서 우리 경제는 추경을 편성하고도 세계 평균보다 낮은 성장률로 부진에 빠져 있다. 정부가 돈을 아무리 많이 풀어도 민간 부문의 활력이 살아나지 않고 있는 탓이다.

이에따라 ▷수출은 12개월째 마이너스를 기록하고 ▷소비자물가는 11개월째 0%대 행진이며 ▷30·40세대 신규 일자리는 25개월째 마이너스를 기록 중이다.

생산자물가도 마이너스다. 주로 총수요 부진으로 전반적인 물가 수준이 지속해서 하락하는 디플레이션 초입에 들어섰다는 진단이 지나치지 않다.

경상성장률에서 물가상승률(GDP 디플레이터 상승률)을 뺀 게 실질성장률이다. 정부와 한은이 예측하는 2.0% 전후를 올해 실질성장률로, GDP 디플레이터 상승률을 -1.0%로 보고 계산하면 올해 경상성장률은 1% 안팎에 그칠 것이다. 경상성장률이 2015~2017년 5% 안팎, 지난해는 3%였던 점에 비춰보면 얼마나 단기간에 한국 경제의 역동성이 추락했는지 알 수 있다. 1년 새 3분의 1토막, 2년 새 5분의 1토막 났다. 

때문에, 최근 한국 증시는 주요 20개국(G20)의 다른 나라 증시와는 달리 삼성전자에 유가증권시장 시가총액의 30%가량을 의존하며 반도체 시황에 따라 지수가 출렁이는 상황이 반복되고 있다. 4차 산업혁명을 이끌 혁신 기업 역시 찾아보기 어렵다.

신용등급 단계적 추락 

국제신용평가사들은 이미 지난여름부터 한국 기업의 신용등급을 부정적으로 보고 단계적으로 낮추는 작업에 들어갔다는 소식이다. 

이와 관련, 파이낸셜타임스(FT)는 최근 ‘한국경제가 반세기 만에 최악 상황으로 빠져들고 있다’는 제목의 기사를 보도했다.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이 올해 2%에 이어 내년에도 2.3% 수준에 머물러 1954년 이후 처음 2년 연속 2.5% 아래를 기록할 것이라는 분석이다. 

저성장 자체보다 심각한 문제는 경제의 복원력 상실이다. 외환위기 때인 1998년에는 -5.5% 역성장을 했지만 이듬해 11.3%, 글로벌 금융위기 직후인 2009년 0.7%였지만 이듬해 6.5%로 급속히 반등했다. FT는 “이번에는 복원 가능성이 크지 않다”고 전망했다.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도 “디플레이션이 한국 경제를 위협하고 있다”고 경고했다. 

저성장과 저물가가 결합된 디플레이션은 경제 저혈압이다. 이웃 일본이 반면교사다. 잃어버린 10년은 20년으로 연장됐다. 보다 못한 아베 신조 총리가 아베노믹스라는 고강도 처방을 내렸지만 일본 경제는 예전의 영광을 되찾지 못하고 있다. 어쩌면 지금 일본 경제는 잃어버린 30년의 터널을 헤매고 있는지도 모른다.

성장률 10년 만에 최저...암울한 경제 뉴스들

한국은행도 올해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기존의 2.2%에서 2.0%로 낮췄다. 이런 전망치가 현실화된다면 올해 성장률은 글로벌 금융위기 직후인 2009년 0.8% 이후 10년 만에 최저치를 기록하게 된다. 이 전망치를 달성하리란 보장도 없다. 

한국은행은 지난해 1월에 올해 성장률 전망치를 2.9%로 처음 제시한 후 지금까지 모두 6차례에 걸쳐 하향 조정을 거듭했다. 그만큼 한국 경제가 예상했던 대로 움직이지 않고 있다는 의미다. ING그룹(1.6%), 씨티그룹(1.8%), 스탠다드차타드와 JP모건(1.9%) 등도 모두 한국 경제성장률이 올해 1%대로 곤두박질할 것이라는 보다 어두운 전망들을 내놓고 있다.

그렇지 않아도, 올 들어 주요 20개국(G20) 증시 대부분이 두 자릿수 상승률을 기록한 반면 한국 증권시장의 코스피지수는 2.1% 오르는 데 그쳤다. 올 들어 0.1% 내린 인도네시아와 연초 대비 제자리걸음하고 있는 사우디를 제외하면 G20 국가 가운데 상승률이 꼴찌다.

최근 한국은 성장률뿐 아니라 고용·부동산·물가·재정 등 각 분야에서 쏟아진 암울한 경제 뉴스들이 언론 지면을 메우고 있다. 고용 분야에선 최저임금을 못 받는 근로자가 16.5%로 문재인 정부 출범 전의 13%보다 크게 늘었다. 특히 음식·숙박업 종사자는 43%가 최저임금을 못 받고 있다. 문 정부가 서민층을 위한다며 최저임금을 2년간 29%나 올렸지만 현실이 따라올 수 없었던 것이다. 현실과 괴리된 정책은 도리어 최하위 계층을 더 빈곤하게 만들었다.

현금 복지가 폭증한 탓에 국민 1인당 국가 부채가 1400만원을 넘어섰다는 보도도 나왔다. 문 정부 출범 전 1인당 1224만원에서 16%나 불어났다. 퍼주기 복지 탓에 고용기금이 고갈될 위기에 처하자, 맞벌이 부부를 위한 공공 어린이집 예산을 전액 삭감했다는 뉴스도 나왔다. 가짜 일자리 만드느라 세금을 탕진해버려 정작 필요한 보육 시설 투자를 중단한다는 것이다.

구조개혁 사실상 포기

그럼에도, 문재인 정부는 정책전환의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 비관적 전망과 경고(警告)가 확산하는 가장 큰 이유다. 국제사회 시각이 그렇게 바뀌면 한국에 대한 투자 감소 등 또 다른 후폭풍으로 재앙을 증폭시킬 뿐이다.

홍남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5대 구조개혁 과제로 산업혁신, 노동혁신, 공공기관 혁신, 인구구조와 기술변화 대비, 규제혁신을 제시했다. 경제사령탑이 뒤늦게나마 우리 경제의 중요한 당면과제를 제대로 인식한 것은 다행스럽긴 하다.

그러나, 정작 문제는 홍 부총리가 한시가 급한 이같은 구조개혁을 중장기 과제로 돌려 버렸다는 사실이다. 당장은 발등의 불로 떨어진 경기를 살리는 데 주력하고 중장기적으로 성장잠재력 확충을 위한 구조개혁에 나서겠다는 것이다. 이는 이미 반환점을 돈 정부 임기 내에는 인기 없는 구조개혁을 사실상 포기하겠다는 것이나 다름없다.

특히, 수출 감소는 세계경기 둔화를 배경으로 하지만 근본적으로는 우리나라의 주력 상품들이 대외 가격경쟁력을 잃은 탓이다. 정부가 최저임금 인상, 근로시간 제한 등 기업의 고비용 구조를 심화시키는 정책을 쏟아낸 결과 수출이 불황의 늪에 빠진 것이다. 정부는 이제라도 정책기조를 바꿔 고비용 구조 개혁에 나서야만 한다. 

미래세대에 부담

그렇지만, 경제가 무섭게 가라앉고 있는데도, 청와대와 정부는 아직도 “소득주도성장이 효과를 내고 있다”거나 “경제가 견고하다”고 한다.

여전히 ‘남 탓’만 하고 있다. “경제는 튼튼한데 글로벌 경기하강 탓”이라거나 “야당과 언론이 부정적 요인을 과도하게 부각한 탓”이라는 식이다. 경기침체는 미·중 무역전쟁 등 외부 영향도 있지만 잘못된 정책이 초래한 부분도 적지 않다. 

경제정책이라도 민간 활력 제고에 초점을 맞춰야 할 텐데, 거꾸로 규제·증세·반(反)기업 기조를 고수하고 있으니 답답한 노릇이다. 

지금 추세라면 앞으로가 더 문제다. 2028년까지 정부 총수입은 연평균 3.8% 증가하는 반면 총지출은 4.5% 늘어남으로써 국가채무가 1490조 6000억원 규모까지 확대될 것이라는 게 예산정책처의 전망이다. 앞으로 9년 뒤에는 국가채무가 다시 2배로 늘어나게 된다는 얘기다. 지금 당장 필요하다는 이유로 미래세대에 부담을 지우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그런데도 정부는 온갖 퍼주기 정책으로 선심을 쓰듯이 예산을 쏟아붓고 있으니, 국가채무가 늘어나는 데는 아랑곳없다는 태세다. 

포퓰리즘인 '소득주도성장'을 내세워 재정 퍼주기에 올인하면서 곳간 바닥이 드러나고 있는 것이다. 내년에는 총선까지 있어 포퓰리즘 정책이 한층 기승을 부릴 것 같아 걱정된다. 포퓰리즘 정책을 중단하지 않으면 재정파탄은 불보듯 뻔하다. 지금은 빙산처럼 물속에 잠겨 있지만 곧 수면 위로 올라올 것이다. 그 후유증은 후세대가 고스란히 안아야 한다. 

경제난 최대 원인 '정책실패' 

한마디로, 소득주도성장 정책, 주 52시간 근무제, 법인세 인상 등 핵심 경제정책이 기업의 투자 의욕을 꺾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경제난의 최대 원인은 소득주도성장 정책에 따른 고비용 구조의 악화다. 하지만 정부는 이에 눈을 감는다. 홍장표 소득주도성장특위 위원장은 “최근 고용지표 개선, 가계소득 증가 등 성과가 나타나고 있다”며 자화자찬을 늘어놓았다. 

정부는 재정을 쏟아붓는 데만 열중하고 있다. 하지만 경기침체에 대한 정확한 진단과 반성, 경제정책의 기조 전환 없는 재정 투하는 ‘밑 빠진 독에 물 붓기’로 나랏빚만 늘릴 뿐이다.

심각한 것은 경기가 안 좋은 상황에서 인건비가 치솟고 있다는 점이다. 최저임금은 지난 2년간 30% 가까이 올랐다. 자영업자들의 차입 증가율은 2018년 1분기 7.94%를 시작으로 매분기 계속 높아져 올해 3분기에 12.1%까지 치솟았다. 2018년부터 시작된 최저임금 두 자릿수 인상의 영향을 직접 받았다고 볼 수밖에 없다.

편의점 일자리 감소야말로 최저임금 정책의 본질을 돌아보게 한다. 정부는 한계노동자들이 피해를 보는 것을 일부 부작용처럼 거론하지만 최저임금 제도는 그 한계근로자를 보호하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다. 

한국에선 최저임금 인상의 덕을 한계근로자가 아니라 정규직 근로자가 본다. 올해 한국의 최저임금은 중위 임금의 64.5% 수준으로 미국(32.2%) 일본(42.1%) 독일(47.2%)에 비할 수 없이 높다. 최저임금 인상 여파가 클 수밖에 없다. 최저임금 인상으로 근로자 평균임금이 올라갔지만 한계근로자 일자리가 없어졌다면 그 정책은 실패한 것이다. 

한국경제 난파 막아야

디플레는 치료가 어렵다. 예방이 최선이다. 2008년 세계 금융위기가 터졌을 때 당시 벤 버냉키 미 연방준비제도(연준) 의장은 늘 일본 사례를 염두에 뒀다. 버냉키는 일본과 정반대의 길을 걸었다. 지속적인 제로금리와 양적완화(QE)라는 대담한 정책이 나온 배경이다. 그 덕에 미국 경제는 되살아났고, 디플레 우려도 나오지 않았다.

이제 우리 정부도 바짝 긴장하고 한국 경제의 난파를 막아야 한다. 진영 논리보다 나라와 국민의 경제적 안위가 먼저라는 비상한 각오가 필요하다. 정공법밖에 없다. 소득주도 성장의 공식 폐기를 선언해야 한다. 

두 가지 정책이 필수적이다. 첫째, 노동 유연성을 확보함으로써 일자리를 늘리고 국민소득 증가를 꾀해야 한다. 둘째, 과감한 규제 완화를 통한 기업 활성화가 시급하다.

경기침체기에 정부가 확장적 재정정책을 펼치는 것은 당연하다. 하지만 집행의 효율성과 함께 사양산업에 대한 신속한 구조조정, 규제개혁 등 민간 분야에 활력을 불어넣는 정책에 총력을 기울여야 한다. 

‘경제의 허리’인 중산층이 무너지면 장기 경기침체에 빠질 수도 있다. 소득양극화 심화 문제도 있다. 정부는 소득의 ‘창출’이 아닌 ‘이전’에 불과한 이른바 ‘포용성장 정책’이 자영업 몰락의 원인은 아닌지, 차제에 면밀히 따져봐야 할 것이다. 실패를 인정한다면 더 늦기 전에 과감하게 정책을 바꿔야 한다.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인 폴 크루그먼 교수(뉴욕시립대)는 9월 서울에서 열린 콘퍼런스에서 "디플레이션 위험이 있을 때 신중한 기조는 위험을 더 키울 수 있다"고 말했다. 좀 더 과감하게 움직이란 뜻이다.

새 술은 새 부대에 담는 심정으로 개각을 경제정책 수술의 계기로 삼아야 한다. 이번에도 정책 기조를 바꾸지 않으면 경제 회생의 희망은 더욱 멀어진다. 경제 전문가를 발탁하는 결단으로 남은 임기 전체를 경제 비상체제로 가동해야 한다. 

수출 붕괴, 적극 대응을 

현안에 적극 대응해야 한다. 무엇보다 수출 붕괴가 문제다. 지난 11월 수출도 통관 기준으로 지난해 같은 달보다 14.3% 줄었다. 12개월째 감소 행진이다. 

정부는 미·중 무역 전쟁 등 대외 여건 악화를 강조하지만, 경쟁국인 중국(-0.9%)이나 일본(-9.2%)보다 낙폭이 훨씬 크다. 반도체·자동차·기계·유화·석유제품 등 5대 주력 수출품이 모두 큰 폭 감소세를 기록했다. 

국제무역연구원은 올해 수출 증가율이 -10.2%를 기록할 것으로 전망했다. 세계 금융위기 때인 2009년 이후 10년 만의 두 자릿수 감소다. 수출산업치고 멍들지 않은 업종이 드물다. 반도체 수출은 30.8% 감소했다. 중국산에 밀린 디스플레이는 -23.4%, 반짝 회복세를 보이던 선박 수출은 -62.1%를 기록했다.

우리 경제는 수출 의존도가 높은 개방경제여서 대외 충격에 매우 취약한데 글로벌 환경이 내년에도 뚜렷하게 나아질 것이라는 신호는 보이지 않는다. 미·중 무역 분쟁, 유럽과 중국 경기의 하강, 일본의 무역 보복 등은 내년에도 여전히 악재다. 

한국경제 성장률 하락의 원인으로도 미·중 무역 분쟁, 일본의 수출규제, 반도체 가격 하락 등 대외적인 요인이 우선적으로 꼽힌다. 한국은 미·중 무역전쟁의 충격을 크게 받는 대표적 국가로 꼽힌다. 

수출산업 구조 전환해야 

정부는 수출추락으로 인한 경제 악순환의 고리를 끊어야 한다. 하지만 아무런 관심이 없는 듯하다. 수출 대책이래야 내년에 무역금융을 2조3000억원 늘린다는 것이 고작이다. 

정부는 지금이라도 수출 부진의 근본 원인을 파고들어야 한다. 최대 수출 품목인 반도체와 최대 수출국인 중국 실적이 부진한 탓으로만 돌릴 일이 아니다. 미국 일본 아세안(동남아국가연합) 유럽연합(EU)에서는 왜 수출이 줄고 있는지, 악조건에서도 선방하고 있는 컴퓨터 화장품 바이오헬스 등의 수출을 더 늘릴 수 없는지 심층적인 분석과 대책이 필요하다.

의료 등 서비스 수출, 기술 브랜드 콘텐츠 등 무형 자산 수출에도 눈을 돌려야 한다. 원전 수출에 악영향을 미치고 있는 ‘탈(脫)원전’ 정책도 철회하는 게 옳다. 수출 중소기업의 저변 확대, 신산업의 수출산업화도 빼놓을 수 없는 과제들이다. 환경 변화에 대응하려면 수출산업의 구조적 전환은 빠를수록 좋다.

수출경기가 하강하고 있을 때는 건설투자라도 받쳐줘야 한다. 건설투자가 국내총생산(GDP)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15%에 달하는 현실을 감안하면 부양까지는 아니더라도 성장률 방어를 위해 활용할 필요가 있다. 

기업환경 더 악화 전망 

내년 세계 경제환경은 더욱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국제금융센터는 미·중 무역전쟁의 불확실성이 해소되지 않은 상황에서 경기 침체와 각국 정부의 정책 부조화, 저금리 후유증, 기업들의 신용등급 강등 등 악재가 널려 있다며 내년도 세계 경제 성장률이 3%에 그칠 것으로 전망했다. 

국제통화기금(IMF)과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등 다른 기관들도 내년 세계 경제 전망을 비관적으로 보고 있다. 기업들은 글로벌 경기침체 등으로 한 치 앞도 내다볼 수 없는 위기를 맞고 있다. 

국내 상황도 기업들에는 결코 우호적이지 않다. 기업들의 의욕을 꺾는 반(反)기업 정책이 즐비한 상황에서 경영권을 위협하는 상법·자본시장법 시행령 개정안이 시행되면 기업들은 더 움츠러들 수밖에 없다. 

노동과 환경, 공정거래, 기업 경영 등 전방위로 강화된 기업 규제는 투자, 생산, 고용을 모두 줄이고 소비 부진으로까지 이어져 결국엔 경기침체를 불러오게 된다.

해외 제조업체들이 시장 구도를 새로 만들기 위해 무섭게 움직이는 동안 우리 기업들은 외부와의 경쟁은커녕 내부 환경에만 매달려 역동성을 현저히 잃고 있다. 삼성전자만 해도 2017년 미국 전자장비 전문업체 하만을 9조원에 인수한 후 대형 M&A에 나서지 못하고 있다. 

이와 관련, 한국무역협회가 내놓은 '중국, 인재의 블랙홀'보고서는 중국 기업의 우리나라 산업 인재 사냥이 갈수록 도를 더하고 있음을 여실히 보여준다. 중국 기업들은 연봉과 복지 등에서 파격적인 조건을 제시해 우리나라의 첨단기술 인력을 빨아들이고 있다. 세계 1위 배터리 업체인 중국 CATL은 연봉의 3~4배를 제시했고, 전기차 업체인 비야디(BYD)는 높은 연봉 외에 자동차, 아파트 등의 부대조건까지 내놓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중국 정부는 산업의 중국몽(中國夢)인 '중국 제조 2025'를 추진하면서 반도체, 항공우주, 통신장비, 로봇, 바이오 등 10개 첨단 분야의 해외 인력 유치에 사활을 걸고 있다. 중국은 전 세계를 대상으로 인력 확보에 나섰으나 지리적으로 가까워 문화적 이질감이 적고 경쟁 분야가 겹치는 한국의 우수 두뇌 사냥에 힘을 쏟고 있는 것이다. 

기업혁신 고삐 당겨야

이같은 국면에서, 코스피지수가 부진을 면치 못하면서 유가증권시장 전체 시가총액이 글로벌 기업 한 곳의 시가총액에도 못 미치는 일이 현실화될 가능성도 커졌다. 애플의 시가총액은 지난 1일 기준 1조1874억달러로, 2일 원·달러 환율(1183원10전)로 환산하면 약 1404조8000억원에 달한다. 2일 종가 기준 유가증권시장 시가총액(1404조9000억원)에 불과 1000억원 차이로 따라붙었다.

올 들어 70% 가까이 오른 애플 주가는 상승세를 이어가고 있다. 코스피 추월은 시간문제다. 애플뿐이 아니다. 또 다른 미국 IT 회사 마이크로소프트(MS)의 시가총액 역시 최근 1조1500억달러를 넘나들고 있다. 애플이나 MS가 시가총액 기준 세계 1, 2위를 다투게 된 것은 위기도 있었지만, 신산업 개발과 사업 다각화 등을 통해 이를 슬기롭게 극복했기 때문이다.

상황이 어려울 때일수록 기업은 혁신의 고삐를 당겨야 한다. 시장이 요동치고 기술 변화가 빠른 시기에는 오히려 도약의 기회가 찾아올 수 있다. 비상경영의 강도를 더 높이고 새로운 사업 모델과 신기술 개발에 모든 힘을 쏟아부어야 한다. 관건은 혁신의 속도와 과감한 미래 투자다. 진정한 기업가정신을 발휘해야 할 때다. 

신사업을 육성하려면 기존 사업자와 새로운 사업자가 이해 충돌을 해소할 수 있도록 신속하게 시스템을 구축해야 한다. 

그런 면에서, 최근 정부의 상법·자본시장법 시행령 개정안은 내용과 형식 등 여러 면에서 부적절하다. 적지 않은 조항이 기업 경영에 큰 영항을 미치지만 이를 ‘경영’과 무관한 것으로 규정하고 있어서다. ‘경영 행위’를 정한 자본시장법과 기업의 자유로운 활동을 보장하는 헌법과 배치될 소지가 다분하다. 기업 사외이사 임기를 제한한 것도 지나친 국가 개입이란 지적이 나온다. 한국경영자총협회 등 주요 경제관련 단체들이 시행령 개정 철회를 요구한 것은 정부의 과도한 개입을 우려한 때문일 것이다.

저성장 경기침체 고통 확산

국내 경기회복이 관건이다. 지금 경기는 바닥을 찍고 올라서지 못하고 계속 주저앉는 양상이다. 현재 경기상황을 보여주는 경기동행지수 순환변동치 움직임을 보면 명확해진다. 지난해 5월부터 올해 3월까지 11개월 연속 하락하다가 이후 소폭의 상승·하락을 반복하며 좀처럼 추세 반전을 이루지 못하고 있다. 

이로 인해, 자영업자들은 벼랑 끝으로 내몰리고 있다. 장사는 안 되는데 인건비가 급등해 돈벌이는 줄고 빚만 늘어나는 형국이다. 사업을 접든지, 빚을 내 버티기에 들어가든지 선택의 기로에 선 자영업자가 부쩍 늘어나고 있다. 한국은행의 3분기 예금취급기관 대출금 현황을 보면 도소매·숙박·음식업의 대출금이 220조257억원으로 전년 동기에 비해 12.1% 늘었다. 2분기(12.0%)에 이어 두 분기 연속 사상 최고 증가율이다. 반면 가구 사업소득은 지난해 4분기부터 4개 분기 연속 감소세다.

저성장의 고통이 확산되고 있다. 국세청의 ‘국세통계’에 따르면 ‘취업 후 상환 학자금(ICL)’ 대출 체납액도 지난해 206억원으로, 전년보다 42%나 늘었다. 새해는 더 악화될 가능성이 크다. 청년실업 사태가 개선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청년실업률은 10월 7.2%로 떨어졌지만 청년취업자 10명 중 8명 이상은 주당 17시간 미만의 초단기 일자리에 종사한다. 실업급여 수급자도 올해 사상 최대를 기록할 전망이다. 모두가 최악의 침체가 낳은 살풍경이다.

이와 관련, 유독 한국에서 40대는 일자리를 잃거나, 회사를 다니더라도 위아래에 짓눌려 자기 목소리를 내지 못하는 ‘낀 세대’가 되고 있다. 40대 취업자 수는 2015년부터 만 4년 동안 내리 줄고 있다. 제조업 불황으로 폐업과 구조조정이 늘면서 40대가 직격탄을 맞은 것이다.

최근 조선업과 해운업, 자동차업계 구조조정으로 실직으로 내몰린 세대도 주로 40대다.

40대의 위기는 당사자뿐 아니라 전체 사회 경제에 문제를 일으킨다. 생산성이 가장 높은 40대가 일터에서 밀려나면 중장기적으로 산업 전반의 경쟁력이 떨어질 수 있다. 자녀들이 한창 자라나고 씀씀이도 활발한 40대가 경제적으로 무력해지면 가정이 타격을 받을 뿐 아니라 사회 전체의 소비가 줄어 성장률에도 악영향을 미친다. 그러나 정부와 사회의 인식은 아직 안이하기만 하다. 일자리 지원 정책은 청년층과 60대 이상 고령층에만 몰려 있고 40대에 대한 지원은 크게 미흡하다. 

기업투자 유인책 미비

해결수단인 기업의 투자를 이끌어낼 유인책도 좀처럼 찾아보기 힘들다. 서비스산업발전기본법과 원격진료를 허용하는 의료법 개정안 등은 18대 국회부터, ‘데이터 3법’ 등은 19대 국회부터 발의됐지만 여전히 처리되지 못하고 있다. 대신 주 52시간 근로제와 화학물질관리법 등 각종 법규는 기업의 숨통을 조이고 있다. 

특히, 혁신성장은 한국경제가 살아나갈 젖줄이다. 신산업 분야 성장에 필수적인 법령 제·개정이 지연되면서 성과창출을 가로막고 있다. 데이터 3법, 국가정보화기본법, 위치정보법, 생명공학육성법 등 한시가 급한 법령들이 한 두개가 아니다. 더 이상 입법지연으로 혁신성장이 막혀서는 안된다.

경제상황이 엄중해 쟁점이 없는 경제활성화 법안들은 반드시 처리하겠다고 정부·여당이 다짐한 게 불과 얼마 전이다. 하지만 제대로 처리된 게 거의 없다. 정쟁에는 치열하고 경제 문제는 대충 넘기는 이런 국회를 더 이상 용납해선 안 될 것이다. 

국가 산업의 미래를 좌우할 첨단 분야의 인력 유출도 속수무책으로 지켜볼 수만은 없다. 우리나라는 스위스 국제경영개발연구원(IMD)이 작년에 실시한 두뇌 유출지수 조사에서 조사 대상 63개국 가운데 43위에 머물렀다. 밖에서 인력을 끌어가기 좋은 환경이라는 뜻이다. 

반도체와 디스플레이, 전기차 등 첨단 제조업이나 인공지능(AI), 빅데이터, 사물인터넷(IoT) 등 4차 산업은 소수의 창조적 기술 또는 아이디어가 곧 국가의 경쟁력이다. 이런 분야에서 인력 유출은 국부의 유출이자 국가 경쟁력의 추락을 의미한다.

첨단 산업 인력유출도 정부가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 사후 제재 수단인 현행 '산업기술보호유출방지법'만으로는 부족하다. 예방적 방화벽이 필요해 보인다. 국가의 미래가 걸린 첨단 분야의 인재 관리는 단순한 산업 정책 차원이 아닌 국가 안보 차원에서 다루도록 해야 할 것이다. 

국가채무와 경제 현안, 초당적 협력을

국가채무가 갈수록 눈덩이처럼 불어나고 있는 것도 큰 문제다. 1초마다 139만원씩 빚이 늘고 있다고 한다. 국가채무는 올해 본예산 기준 741조원까지 커질 것으로 보인다. 국가채무는 중앙정부와 지방정부가 민간이나 해외에서 빌려쓰고 갚아야 할 빚을 말한다. 

국민 1인당 부담해야 하는 국가채무도 1400만원을 돌파했다는 소식이다. 국회예산정책처가 홈페이지에 게시하는 국가채무시계에 따르면 지난 11월 30일 오후 6시 15분 기준으로 국민 각자가 전체 나라 빚에서 떠맡아야 할 액수가 1418만 7555원에 이르렀다는 것이다. 

정부 살림살이에서 세금으로 거둬들이는 수입보다 기업지원 및 복지사업 등에 지출하는 금액이 초과되기 때문에 적자가 누적된 탓이다. 갓 태어난 신생아에게도 여지없이 채무 부담을 지우는 ‘헬 조선’의 현주소다.

현재 대한민국의 전체 국가 빚은 735조 6000억원으로, 증가 속도가 빠르다는 것이 특히 걱정스럽다. 1인당 국가채무 부담액이 10년 전인 2009년의 723만원에서 2배로 늘어난 것이 그 결과다.

정부는 경기 침체를 막기 위해 올해보다 26조원이 증가한 60조원의 적자국채를 또 찍어 내년 예산을 사상 최대로 편성했으나, 민간기업의 투자와 생산, 고용이 나아지지 않으면 효과는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 나랏빚을 늘리는 재정 동원은 일시적 처방이지 근본적 대책이 될 수 없다. 기업 활력 제고가 무엇보다 시급한 우리 경제의 당면 과제로 떠올랐다. 이를 위해서는 투자를 가로막는 규제 혁파와 함께 고비용·저생산성의 체질을 바꾸는 구조개혁이 동반돼야만 한다. 

저금리 기조 속에서 마땅한 투자처가 없어 부동산으로만 몰리는 시중 자금을 생산적인 분야로 돌리는 방안도 강구해야 한다. 

경제 5단체는 최근 성명에서 주 52시간 근무제 보안 법안, 개인정보보호법과 정보통신망법, 신용정보보호법 등의 데이터 규제 완화 법안, 화학물질 관련 규제완화법안 처리를 시급한 현안으로 요구했다. 이들 법안은 이번 정기국회에서 처리되지 못하면 폐기된다. 정부 여당이 적극적인 정치력을 발휘해야겠지만 야당의 협조가 있어야 한다. 국민의 삶이 걸린 경제에 여야가 따로일 수 없다. 우리 경제가 처한 위기에 공감한다면 법안이든 정책이든 경제활력을 높일 수 있는 방안을 찾아 초당적으로 협력해야 할 것이다.

성장동력 회복 획기적 방안 관건

기획재정부는 내년 경제정책 방향을 통해 산업, 노동, 공공부문 혁신과 규제개혁을 중심으로 한 5대 분야의 구조개혁 추진 방향을 제시하겠다고 했다. 

그러나, 비상한 결단과 노력 없이 현상 탈피는 불가능할 것이다. 경제 체질을 강화해 성장동력을 회복할 수 있는 획기적인 방안을 내놓길 바란다. 더 늦기 전에 방향을 전환하고 새로운 활력을 일으켜야 한다.

경기 침체를 막기 위한 특단의 대책도 필요하다. 재정 투입만으로는 한계가 있다. 민간에 활력을 주는 규제 개혁, 노동시장·공공부문 개혁 등 광범위한 구조 개혁 없이는 난국을 돌파할 수 없다.

이를 위해 정부 경제정책의 당면 목표는 성장력 회복에 초점이 맞춰져야 한다. 가라앉는 경제를 추스르기 위해 정부와 한국은행은 재정과 통화정책 등 모든 수단을 동원하는 한편 민간 역량을 극대화해야 한다. 재정 투입은 민간의 활력 제고를 위한 마중물 역할에 집중돼야 한다. 안팎 환경 악화로 투자를 머뭇거리는 민간 기업을 끌어내기 위해서는 장애물을 치워주는 노력이 무엇보다 중요하고 시급하다. 

 

이병도는…

1952년 경남 진양에서 출생했고 서강대 신문방송학과를 졸업, 1979년 동양통신 기자로 언론계에 입문한 후 1981년 연합뉴스로 자리를 옮겨 정치부 야당출입 기자로 오랫동안 활동해 왔다. 저서로는, <6공해제>, <97년 대선 최후의 승자는>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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