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병도의 時代架橋] 국가 예산 운용-파행과 개혁 과제
[이병도의 時代架橋] 국가 예산 운용-파행과 개혁 과제
  • 이병도 주필
  • 승인 2019.11.30 12: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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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산 심의, 또 헌법위반 가능성
‘세금 중독’…재정증권 역대 최대
한계 드러난 재정 만능주의
땜질用 일자리 예산 급증과 국가 부채
국회 심사, 올해도 졸속 우려
밀실ㆍ담합 단계로 간 '초슈퍼 예산안'
‘자영업 몰락’과 ‘재정 중독’ 실상
혈세 낭비요인 철저한 차단을
구조조정 등 중장기 대책 긴요

(시사오늘, 시사ON, 시사온=이병도 주필)

국가 예산의 파행 운용이 심각하다. 나라 살림을 책임진 정부, 이를 제대로 감시 견제해야 할 국회 모두 곳곳에서 많은 오류를 드러내고 있다.

정부는 진정한 민생(民生)경제 발전과 국가 경쟁력 향상을 위한 예산 활용 보다는 '재정 중독'의 단기적 포퓰리즘에 집착하는 양상이고, 국회 역시 당리당략에 의한 밀실ㆍ담합의 졸속 심의 구태를 답습하고 있다. 예산 수립 및 심의ㆍ집행 과정의 근본적 개혁이 요구된다. 

정부가 제출한 내년도 예산안은 513조5천억 원으로 사상 최대 규모다. 세수가 정체된 상황에서 부족한 예산을 빚으로 충당하면서 재정 건전성에 대한 우려도 실로 크다. 

정부는 단기 성장률을 끌어올리기 위해 재정 투입에 ‘올인’하고 있다. 세금을 퍼부어 복지정책을 쏟아내며, 단기 일자리 만들기에 혈안이다. 나라의 먼 미래에는 관심이 없다. 역사에 죄를 짓는 격이다. 

현재, 세금으로 현금을 지급받는 국민은 약 1,200만명으로 인구 4명 중 1명꼴이다. 현금지급 방식의 복지는 중독성이 강하다. 중간에 끊는 것이 어렵고, 더 많은 요구와 보다 강한 저항을 불러오기 마련이다. 하지만, 내년 총선을 앞두고 현금을 살포하는 '포퓰리즘 복지'는 더욱 기승을 부릴 태세다.

29일 오전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 소위원회에서 예산안 심사를 위한 3당 간사협의체를 열었다.ⓒ뉴시스
29일 오전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 소위원회에서 예산안 심사를 위한 3당 간사협의체를 열었다.ⓒ뉴시스

법정시한 내 처리 불가능

새해 예산안은 국무회의에서 의결될 때부터 팽창 규모 때문에 ‘총선 예산’이란 비판을 받았고, 재정 중독 문제가 제기됐다. 

세수의 대폭 감소로 적자국채를 역대 최대 규모인 60조원이나 발행키로 했다. ‘총선 승리’에 눈 먼 정치권의 포퓰리즘을 이용, 정부마저 장단을 맞춘 꼴이다. 

그런데도, 최근 국회 예산 심의에서는 예산 타당성 논의나 재정건전성에 대한 우려를 찾아보기 어렵다. 졸속과 깜깜이 예산 심의가 되레 정부의 재정만능주의를 부추기는 형국이다. 철저한 심사를 통해 불요불급한 예산을 걸러내야 할 국회가 오히려 예산을 더 늘리고 있다. 

법정시한 내 처리도 어렵게 됐다. '회계연도 30일전 확정'을 강제조항으로 규정한 헌법을 또 위반하게 되는 셈이다. 국회 선진화법이 시행된 이후에는 12월 말이나 신년에 가서야 예산안이 통과되는 관행은 사라지긴 했으나, 헌법과 법률에 따라 '회계연도 개시 30일전'인 12월 2일에 통과된 경우는 단 한번에 지나지 않았다. 

재정수지 사상 최악 전망

그동안 문재인 정부는 국민 혈세로 일자리 만들기에 나선 덕분에 고용 시장은 양적으로는 2017년 이전 수준을 회복했다. 그러나 질적으로는 오히려 제조업 일자리와 30·40대 일자리가 감소하는 등 고용 사정이 최악이다. 

나랏돈을 쏟아붓는데도 국가 경제가 2% 성장조차 장담하지 못하고, 40대 가장들이 실직의 눈물을 흘리는 현실을 직시해야 하는 상황이다. 

경기 침체와 기업 이익 격감으로 세금도 걷히지 않고 있어, 정부는 내년에 적자 국채를 60조원이나 찍겠다고 한다. 관리재정수지가 내년엔 72조원 적자로 사상 최악이 된다. GDP 대비 재정적자 비율이 3.6%로 국제 건전재정 기준(3%)을 훨씬 초과하게 된다.

올해도 문 정부의 재정증권 누적 발행액은 역대 최대인 것으로 나타났다. 49조원에 달해, 관련 자료를 확인할 수 있는 2011년 이후 최대치다. 지난해 2조원보다 단번에 25배 가까이 급증한 규모다. '망국 예산'이란 말이 과장만은 아니다. 어느 때보다 국회의 예산 견제 기능이 중요하다.  

'밑 빠진 독 물 붓기' 일자리 예산 

역대 최대 규모인 25조7697억원의 일자리예산 등 항목에서 불길한 그림자가 어른대는 게 문제다. 최근 문재인 대통령의 국정 지지율이 40% 아래로 떨어진 여론조사(한국갤럽)에서 '경제·민생 문제 해결 부족'이 부정평가 이유 1위에 오른 것도 이와 연관된다. 

처음부터 문 정부의 일자리안정자금은 재정만능주의에 기초한 지원책이었다. 최저임금 과속인상에 따른 부작용을 재정으로 해결할 수 있다는 믿음에서 나온 정책이다. 하지만 그건 마취제에 불과하다. 근본치료책이 아니다. 내년이면 부정수급을 비롯해 퇴사자 지연신고 등에 따른 환수 문제가 급격하게 불거질 가능성이 높다. 

일자리 안정자금이 도입된 지난해 이후 부정수급으로 적발된 업체는 11만4812곳, 금액으로는 568억원이 넘는다. 직원이 퇴사를 했는데도 보조금이 지급됐고, 일부 업체는 고의로 숨기기도 했다. 이 정부 들어 일자리 관련 예산이 크게 늘면서 부정수급은 사업 종류를 가리지 않고 발생하고 있다. 

사업주 자녀를 신규 채용한 것처럼 꾸며 청년추가고용장려금을 타 내는 경우, 기존 재직자가 신규 취업으로 위장해 재직자는 받을 수 없는 청년내일채움공제에 가입하는 경우도 있었다. 내년 재정지원 일자리사업 예산은 올해보다 무려 21.3%나 증가했다. 관리가 따르지 않는 예산집행은 '눈먼 돈' 또는 '밑 빠진 독에 물 붓기'가 될 수밖에 없다. 

'고용 참사'를 세금으로 땜질

최저임금 과속 인상과 무차별 주 52시간 근로제 등에 따른 고용 참사를 세금으로만 땜질하려 드는 셈이다. 세금의존증이 만성화하면 민간의 경쟁력을 떨어뜨리고, 고용시장을 왜곡하며, 산업 구조조정도 저해하게 된다.

일자리 안정자금은 민간의 고용 확대를 유도하기 위해 임금의 일부분을 정부에서 지원하는 예산을 의미한다. 그런데 이런 비상 대책이 일시적 보조금 차원을 넘어 ‘세금 중독’으로 악성 진화하고 있다. 

올 들어서는 간단한 서류만 제출해도 지급하는 등 퍼붓기식으로 돌변한 데다, 제도화돼 계속 지급될 것이라는 기대가 커지면서 신청이 급증했다. 급기야 올해 2조8000억 원 규모로 편성된 자금이 10월 말에 벌써 바닥을 드러내자, 비상상황에 대비한 정부 예비비 가운데 985억 원을 헐어서 써야 할 정도가 됐다.

2003년 통계 작성 이후 작년까지 소득 하위 10% 가구의 공적 이전소득이 근로소득을 웃돈 적은 한 번도 없었다. 그런데 올들어 이런 추세가 뒤집어졌다. 일해서 버는 돈은 줄어드는 반면 세금 지원 받는 것은 훨씬 많아지고 있는 탓이다. 이들 가구의 실질적 근로소득은 오히려 지난해 1분기부터 7분기째 감소세다. 

결국 소득주도성장 정책이 실패해 저소득층의 일자리와 소득이 줄고, 이를 메우려고 세금을 쏟아붓고 있는 것이 근본적 배경이라 할 수 있다. 그렇다고 저소득층의 삶이 개선되고 있지도 않은 상황이다.

이미 일자리 안정자금의 효과는 부실하기 짝이 없음이 드러났다. 올해 대규모 추경까지 편성해 일자리예산을 쏟아부었지만, 질 낮은 노인 알바일자리 외에 성과가 없었음을 국민은 체감하고 있다. 

'세금 폭탄', 가정마다 불만

'민생 경제' 현장은 생생하다. 최근 종합부동산세와 건강보험료 인상분 고지서를 받아든 가정마다 불만이 터져나오고 있다. 이미 낸 재산세를 포함해 보유세 부담이 상한선(전년비 150%)까지 오른 가구가 적지 않다.

건보료 인상의 주된 요인 역시 집값 상승에 따른 재산과표 상승에 있다. 집값 상승률이 높은 지역은 ‘폭탄’에 가까운 건보료 인상이 통지됐다. 

통계청에 따르면 3분기 가계소득에서 정부가 떼가는 세금 건보료 연금 등 비(非)소비지출이 월 평균 113만8200원으로 역대 최대였다. 100만원을 벌면 23만원이 소비와 무관하게 빠져나가고 있는 것이다. 정부가 집값을 올려놓고 보유세·건보료 폭탄을 때리는 지금 상황은 ‘미필적 고의’나 다름없다.

여기에다, 새해 14조3234억원 규모, 13개 재정사업은 명확한 법률 근거도 없이 편성돼 논란을 빚고 있다. 일자리 안정자금(2조1647억원)과 기초연금 인상(1조6813억원) 등 조(兆)단위 사업에서부터 국민취업지원제(2771억원) 형사공공변호인제(18억원) 등 신설사업까지 내용도 각양각색이다.

‘한국형 실업부조’로 불리는 국민취업지원제도는 대표적이다. 예타 면제 대상이 아닌 데다, 관련 법안이 상임위에 계류돼 있는 입법불비 상태다. 형사공공변호인제도도 ‘3권 분립 위배소지가 있다’는 법원 등의 반발에 부딪혀 근거법이 발의조차 안 된 상황이다. 북핵 국제제재 국면에 올해보다 10.3% 늘어난 남북협력기금(1조2200억원)도 꼼꼼히 따져봐야 할 항목이다. 

정치흥정 심사역행 가능성

여야가 내년 총선을 앞두고 포퓰리즘 성격의 '눈먼 예산'은 반드시 걸러내야 할 이유다. 

불요불급한 예산부터 솎아내는 등 민생회복을 제1순위에 두는 심의를 해야 한다.12월 2일 본회의 처리 법정시한은 꼭 지켜야 하겠지만, 정략을 배제한 심의도 중요하다. 정부가 한정된 예산을 효율적으로 쓰고 있는지부터 점검해야 한다. 이미 지난 1~7월에만 부정 수급 사례 9만 5000건(335억원)이 적발됐다.

그럼에도, 국회는 선거법 개정안을 포함한 패스트트랙(신속처리안건) 법안 처리 등을 놓고 여야 긴장이 고조되면서 예산안 심사는 뒷전으로 밀려난 모습이다. 막판 정치 흥정으로 심사를 마무리할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야당은 여당의 원안 고수 방침을 무너뜨리고 10조원 안팎을 삭감하겠다고 벼렀지만, 결국 여야가 상임위 심사에서 내년 총선을 의식, 되레 10조원 이상 증액한 것을 보면 공염불이 될 공산이 커졌다. 특히, 표심 잡기에 도움이 되는 사회간접자본(SOC) 예산이 대거 증액됐다. 내년 총선을 겨냥해 의원들이 현금지원 사업과 SOC 예산을 늘리라는 요구를 쏟아냈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국채를 발행해서 ‘돈 풀기’에 나선 여당은 말할 필요도 없고, “14조5000억 원을 깎아 500조 원 이하로 줄이겠다”고 큰소리쳤던 자유한국당의 이중적 행태도 가관이다.

국회 존재 이유와 심의 무용론

국회의 기본 책무는 입법권과 예산 심의·확정권이다. 그런데 상임위원회 차원의 예산 심의를 보면 국회의 존재 이유를 의심케 한다. 상임위 17곳 중 12곳이 정부 예산안의 예비 심사를 마친 결과, 원안보다 예산 총액이 오히려 10조5950억 원 늘어났다.

국회는 매년 정부 예산안에 대해 현미경 검증을 하겠다고 벼르지만 제대로 된 적이 없다. 심사과정에서 끼워넣기 예산 등의 구태를 반복하는 통에 감액은 고사하고 오히려 증액되기 십상이다. 현 정부 들어서도 지난 3년간 늘어난 예산이 100조원을 넘을 정도다. 

내년 국세수입이 올해보다 3조원 정도 줄어든 292조원대로 예상되는데, 이런 식으로 예산 늘리기가 계속되면 국가재정이 급속도로 악화할 게 불을 보듯 뻔하다. 

국회 예산심의 무용론까지 나오는 지경이다. 헌법이 국회에 예산심의권을 주고 있는 것은 납세자를 대신해 불필요한 예산을 삭감하라는 것이다. 결코 증액하라는 취지가 아니다. 

철저한 심사를 통해 불요불급한 예산을 걸러내야 할 국회가 되레 예산을 더 늘리고 있으니 기가 막힌 일이다. 국회 예산심의에 대한 개혁방안이 필요하다. 정부의 씀씀이에 대한 통제를 근원적으로 강화하는 문제가 시급하다. 

정치가 경제 압도...최대 규모 역행 

이번에도 여야의 나눠먹기 폐습이 재현된 것으로 보여 크게 걱정된다. 

부실 심사 이상으로 우려되는 것은 소소위의 밀실 심의로 넘어간 예산이 ‘정치적 흥정’의 희생양으로 전락하는 것이다. 

실제 국회 주변에서는 “소소위 자체가 정치적 타협의 산물이어서 여야 실세들이 민원을 거래하듯 주고받기식으로 협상하는 구조”라는 말이 공공연히 나돌 정도다. ‘누더기 졸속 예산’ 걱정을 짙게 하는 대목이다.

내년 총선을 앞두고 ‘쪽지 예산’ ‘카톡 예산’이 넘쳐난다. 정부 편성 단계부터 ‘초슈퍼 예산’으로 불리며 문제가 많았지만, 국회가 오히려 역대 최대 규모의 증액에 앞장서고 있는 형국이다. 

한 명의 정치인은 다른 의원들의 특별예산을 지지해주는 대신 자신의 것 하나를 받는다. 그런 과정이 중첩되면서 특별예산 규모는 마구잡이로 부풀고, 국가 투자의 우선순위는 왜곡된다. 정치가 경제를 압도하는 것이 한국의 현실이 되고 있다. 

현금성 복지와 민원성 사업 증액

의원들이 의지만 갖고 있다면 당장 예산 삭감이 가능한 곳은 많다. 현금복지 예산안 54조 원 가운데 ‘중복 사업’만 23조 원에 이른다. 현금 바우처 사업과 합치면 60조 원이 넘는다. 

하지만 국회의 예산심사에서 이런 고민의 흔적은 찾아보기 어렵다. 

17개 상임위 중 11개 상임위가 예비심사에서 예산을 정부원안보다 오히려 늘렸다. 증액된 예산은 전국 하수관로 정비사업(4704억원), 누리과정(6174억원) 등 사회간접자본(SOC)과 현금성 복지사업이 대부분이다. 반면 예비심사에서 정부원안보다 예산을 삭감한 곳은 기회재정위원회 한 곳뿐이다. 나머지 5개 상임위 예비심사가 모두 마무리되면 증액 규모는 더 늘어날 것으로 예상된다. 

증액된 내역을 보면 도로·하천정비 등 지역 건설 사업 2조3000억원, 농민 소득 보전 8500억원, 이장·통장 수당 1320억원 등 지역 유권자 환심을 사려는 사업이 대부분이다. 이·통장 수당의 경우 정부·여당이 월 20만원에서 30만원으로 인상하겠다고 했을 때 "총선용 현금 살포"라고 비난했던 한국당 의원들이 정작 예산 심사 과정에선 한술 더 떠 월 40만원 인상안을 주도했다는 소식이다.

보건복지위원회는 한발 더 나갔다. 정부는 이미 복지예산을 전년 대비 10조원 늘려 편성했다. 그럼에도, 의원들은 예비심사에서 무려 15조원의 추가 증액을 요구했다. 여기에는 기초생활수급자 부양의무자기준 폐지와 서울시 기초연금 국비지원 확대, 대한노인회 지원 확대 등 현금성 복지와 굵직한 민원성 사업들이 포함돼 있다. 

예산안 가운데 불요불급한 14조5천억 원 감액을 공언했던 야당 의원들이 상임위 예산 증액에 다투어 가세했다니 어안이 벙벙할 뿐이다. 앞에서는 현미경 심사를 외치면서 뒤에서는 예산 증액에 여야 의원들의 죽이 척척 맞은 셈이다.

야권, 이율배반적 행태

심의 과정이 문제다. 예산안은 법적 자격을 갖춘 예산결산특별위원회 예산안조정소위가 심사해 전체회의를 거쳐 본회의에 넘기게 돼 있다. 

하지만 심사의 효율성을 높인다는 명분으로 예산안조정소위는 그간 여야 간사와 기획재정부 관계자 등 소수의 인원으로 소소위를 구성해 밀실에서 예산의 증액·감액을 결정했다. 법적 근거가 없는 데다 지금까지는 회의록도 없고, 언론 취재도 어려웠다. 

이 때문에 의원들의 민원성 예산 요구인 '쪽지'가 난무하고 밀실 주고받기가 이뤄지는 창구라는 비판이 끊이지 않았다. 자유한국당·바른미래당 등 야당 의원들이 말로는 "삭감하겠다"면서도 밀실에선 자기 지역구 관련 예산 늘리기에 혈안이 됐기 때문이다. 

당초, 야권은 내년도 예산안이 국회에 제출되자 정부가 정책실패를 세금으로 메우려 한다고 주장했다. 총선용이나 선심성 예산을 선별해 가차 없이 삭감하겠다는 입장을 내놓기도 했다. 그러나 선심성 예산 늘리기 경쟁에는 여야의 구분이 없었다. 앞에서는 감액을 외치면서 뒤로는 지역구 민원예산을 챙기는 이율배반적 행태를 보였다. 

이런 점을 의식해 여야는 최근 소소위에 더불어민주당과 자유한국당, 바른미래당 등 여야 3당 간사만 참여하고 속기록을 남기는 한편 언론에 매일 논의 내용을 브리핑하기로 했다. 여야가 예산심사의 투명성을 높인 것은 잘한 일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밀실 예산심사에 대한 우려가 사라진 것은 아니다. 참석자들이 입을 맞추면 얼마든지 예산 담합과 끼워 넣기가 가능하기 때문이다.

올해의 경우 예산안조정소위는 1차 감액 심사를 마치고 정리되지 않은 470여 건을 소소위에 넘겼다. 닷새간 중단됐던 예산심사가 재개됐다고는 하나, 예산안처리 법정시한이 다가오고 있어 밀도 있는 심사는커녕, 각 사안을 주마간산 식으로나마 살펴볼 시간은 있는지 조차 모르게 됐다. 날치기 심사 가능성이 역력하다.  

역대 최대 공적 이전소득 실태

기본적으로, 정부의 정책방향 부터가 문제다. 지금 한국 경제의 성장엔진은 식고 있다. 한은은 올해 성장률 전망치를 2.7%로 잡았다가 얼마 전 2.2%로 낮췄지만, 이마저 불투명한 상황이다. 1%대로 추락할 수 있다는 예측까지 나오는 터라 내년은 더 걱정스럽다.

이런 국면에서, 내년 예산안은 심각한 '거품'을 안고 있다. 원래 각 부처가 쓰겠다고 요청한 예산 규모가 498조원이었는데, 문재인 대통령이 국가부채 비율에 얽,매이지 말라는 취지의 지시를 내리고 민주당이 "500조원 이상은 당연하다"고 압박하면서 전년보다 44조원이나 늘어난 513조원의 수퍼예산으로 편성됐다. 

이 중 인공지능·5G·부품 국산화 등 미래 성장동력 확보 관련 예산은 12조원뿐이다. 반면 국민 지갑에 현금을 꽂아주는 각종 보조금·수당이나 가짜 일자리 사업 등 총선용 선심성 예산이 54조원에 이른다. 국민 세금으로 정권 선거운동을 하는 셈이다.

정부의 이런 자세 때문에 실제, 소득 하위 10% 가구가 일을 해서 번 돈보다 정부로부터 지원받은 돈이 3배 가량 더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 통계청이 내놓은 올해 3분기 가계동향조사 분석을 보면 그렇다. 공적 이전소득은 근로소득의 3.1배로, 2003년 통계 집계 이후 역대 최대다.  공적 이전소득은 국민연금, 기초연금, 아동수당 등 정부가 지원하는 돈을 말한다. 

저소득 가구가 재정에 의존해 소득을 유지하는 사태가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하위 20%인 1분위 가구의 소득은 4.3% 늘었다. 내막을 뜯어보면 정부 지원에 의존한 증가일 뿐이다. 이들 가구의 근로소득은 6.5% 줄어 7분기째 감소했다. 반면 이전소득은 67만3700원으로, 1년 전보다 11.4%나 늘어 근로소득 44만7700원보다 22만여원이나 많다. 이전소득 중 정부 지원금인 공적이전소득은 처분가능소득 기준으로 무려 74%를 차지했다.

고용노동부, 보건복지부, 중소벤처기업부 등 중앙 정부를 비롯해 서울시, 전라남도, 경기도 등이 저마다 비슷한 직접일자리 자금을 집행하고 있으나 기획재정부는 이 같은 마구잡이 예산 편성과 재정 남발을 통제하지도 못한다. 재정 낭비를 막을 의지가 있는지도 의문이다. 문 정부가 최저임금 정책 실패에 따른 고용 참사를 막기 위해 세금을 퍼부으면서 소득주도성장 성과라고 호도하려는 것 아니냐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내년엔 이런 일에 더 많은 세금을 쓰겠다고 하는데, 이러다간 나라 곳간은 바닥이 드러난다. 더구나 국가재정에 의존해 소득을 유지시키는 것은 근로 의욕을 떨어뜨리는 결과를 낳는다. 빈곤층 소득 증대는 세금이 아닌 일자리 지원을 통해 이뤄져야 함에도 실상은 그렇다.

확장재정 '진퇴양난'

더욱이, 정부는 빚으로 곳간을 메우려 하고 있다. 이를 감당할 여력이 있는지도 의문이다. 확장재정에 지출은 커지는데 세수는 줄어드니 '진퇴양난'이다. 나랏 빚이 늘어 재정건전성이 엉망이 되면 우리 경제엔 미래가 없다.

재정증권이란 정부가 사용하는 '급전'이다. 국고금 출납 과정에서 생기는 일시적인 부족 자금을 충당하기 위해 정부가 발행하는 단기 유가증권을 말한다. 반드시 발행한 해에 상환해야 한다. 

정부는 지난 2월부터 9월까지 매월 3조~10조원 규모로 총 49조원의 재정증권을 발행했다. 2~6월 재정증권은 주로 재정 조기집행에 필요한 자금이었고, 7~9월 것은 기존에 발행한 재정증권 상환에 썼다. 결국 빚을 내서 빚을 갚은 셈이다.

정부의 씀씀이는 늘었는데 들어오는 돈이 줄어드니 '급전'에 해당하는 재정증권을 발행해 충당하고 있는 것이다.

재정증권 발행은 올들어 매달 정례화되는 추세다. 규모도 계속 불어나고 있다. 시장금리 상승에도 영향을 미친다. 정부가 시장에서 돈을 끌어당기니 금리가 올라가는 것은 당연하다. 시중금리가 오르면 기업 등 민간투자도 위축될 수 밖에 없다. 나라 경제가 악순환으로 가게됨은 필연이다.

일자리 안정자금, 예비비 남용 

이와 관련, 올 한 해 동안 지급해야 할 정부 일자리 안정자금은 벌써 바닥을 드러냈다. 지난 1~10월 일자리 안정자금 신청자 수는 324만명으로 정부의 당초 예상(238만명)은 물론 지난해 지원 대상(264만명)을 훌쩍 뛰어넘었다. 정부의 예상은 빗나갔고 올해 예산 2조 8818억원은 모두 소진됐다. 

일자리 안정자금은 30인 미만 사업장에서 최저임금의 120% 이하 급여를 받는 근로자 1인당 월 13만~15만원을 지급하는 사업이다. 

기획재정부는 부족한 재원을 예비비에서 충당키로 했다. 예비비 985억원을 투입하기로 했다. 당초 신청자를 238만명으로 예상했으나 신청이 폭주하면서 결국 예비비에 기대게 된 셈이다. 정부는 지난해 10·12월에도 국무회의에서 예비비 561억4천600만원을 지출 의결해 10개 정부 기관을 통해 초단기 일자리 1만8천859개를 만들었다. 

예비비는 천재지변 같은 급한 상황에 대비하기 위해 남겨둔 일종의 국가 비상금인데, 수요 예측을 제대로 하지 못한 정부가 마치 쌈짓돈처럼 꺼내 쓰겠다는 것이다.

경기 침체와 인건비 상승 등으로 어려움을 겪는 자영업의 어두운 현실이 고스란히 반영된 결과다. 더 큰 문제는 내년이다. 정부가 국회에 제출한 내년도 예산안에는 일자리 안정자금으로 올해보다 24.9% 줄어든 2조 1647억원이 배정됐다. 야당이 대폭 삭감을 요구하고 있어 이마저도 줄어들 가능성이 있다. 

공무원 증원과 국가 부채 

재정사업 시행에는 엄정한 법적 절차와 국민적 동의가 필수적이다. 국가재정법에서 사업비 500억원 이상, 예산지원 300억원 이상인 사업은 예비타당성 조사(예타)를 받도록 규정하고 있는 이유다. 

그런데도 ‘한시적’임을 분명히 하고 2018년 처음 편성된 일자리 안정자금을 별다른 설명없이 3년 연속 2조원대로 요청한 것은 그냥 넘어갈 일이 아니다. 일자리 안정자금은 도입 당시 최저임금인상률이 16.4%로 직전 5개 연도 평균(7.4%)보다 9%포인트나 높은 ‘긴급한 상황’임을 앞세워 예타를 면제받았다. 내년 임금인상률이 2.9%로 크게 낮아진 상황에서 또 2조원대의 예산을 요구하는 정당성을 찾기는 힘들다.

여기에다, 정부가 내년에 신규로 채용할 공무원수는 단일 규모로는 29년만에 최대 증가 폭이다. 문재인 대통령 대선 공약에 따라 정부는 임기가 끝나는 2022년까지 순차적으로 17만4000명을 증원하게 된다. 

공무원은 법적으로 신분이 보장돼 사실상 해고가 불가능하다. 일단 뽑으면 대부분 정년을 보장해줘야 한다. 문제는 재원이다. 통상 공무원으로 채용되면 임금과 연금을 포함해 60년간 국민 세금으로 먹여살려야 한다. 그 비용이 연금을 합쳐 370조원에 이를 것이란 추정치도 나와있다.

당장 공무원 연금 적자는 눈덩이처럼 불어나고 있다. 정부가 국회에 제출한 중장기 기금재정관리계획에 의하면 공무원연금에 대한 정부 보전 규모가 올해 1조6000억원에서 2023년이면 3조3000억원으로 늘어난다. 4년새 두 배다. 

수급자가 늘어나다 보니 그 규모가 기하급수적으로 불어나고 있는 것이다. 국가 부채가 늘어나는 주범으로 공무원 및 군인연금의 충당부채가 꼽히고 있다. 

공무원 증원이 국가적 재앙이 된 베네수엘라와 그리스 사례는 좋은 반면교사다. 국회가 예산심의과정에서 공무원 증원에 따른 재정 여력을 충분히 살펴보고 그 수를 최대한 줄여야 한다. 

정책 실패, 조세 오류 야기 

정책 실패로 인한 조세 오류 현상은 곳곳에서 드러나고 있다. 부동산 정책 부터가 그렇다.

국세청은 최근 9억 원 이상의 고가 주택 및 다주택 가구를 대상으로 종합부동산세 고지서를 일제히 발송했다. 세금 부담이 지난해보다 최대 3배까지 늘어난다. 정부로서는 종부세 수입이 1년 만에 50% 가까이 증가하는 셈이다.

납세자들을 화나게 하는 것은, 이번 ‘종부세 폭탄’이 문재인 정부의 참담한 부동산 정책 실패에서 비롯되고 있다는 점이다. 

문 정부가 지난 2년여 동안 무려 17차례나 부동산 대책을 쏟아냈음에도, 서울 집값은 22주 연속 상승세다. 서울 강남에서는 3.3㎡당 1억 원을 넘어선 아파트가 나타나는 등 유례없는 일이 벌어지고 있다. 현 정부의 집권 기간 서울 부동산값 상승률은 15.7%로 같은 기간 박근혜 정부의 2.6%, 이명박 정부의 5.4%와 비교가 불가능할 정도다. 

서울과 수도권 일부 지역에서 집 하나 갖고 있는 보통 직장인과 은퇴자도 종부세를 내게 됐다며 불만이 터져 나오는 이유다.

그럼에도, 정부는 갈수록 센 종부세 폭탄을 터뜨릴 태세다. 잘못된 판단이다. 종부세 도입 취지는 부동산 투기를 억제해 서민 주거 안정을 꾀하자는 것이었다. 정작 투기꾼은 집값이 왕창 오르니 상관없고, 일반 국민의 주거 안정만 해치게 됐다. 현 정부의 종부세 폭탄은 존재 이유를 상실한 조세 징벌일 뿐이다. 근본적 재검토가 필요하다. 

예산 정책실패는 MRI(자기공명영상)에서도 극명하게 드러난다.

보건복지부는 지난 7월 건강보험 보장성 강화 정책, 이른바 ‘문재인케어’가 집권 2년 간 3600만 명의 국민에게 2조2000억 원의 의료비 경감 혜택을 주었고, 상급 종합병원 건보 보장률도 68.8%까지 높였다고 자랑했다. 그런데 불과 4개월 만에 복지부는 MRI 촬영 건보 적용 확대로 건보 재정이 위협받으면서 스스로 축소 불가피론을 입에 올리고 있다. 

애초부터 재정의 뒷감당은 누가 할 것인지를 감춘 채, 업적만 내세우던 ‘건보 확대 과속(過速)’ 포퓰리즘 정책이 현실의 벽에 부닥쳤음을 자인한 셈이다. MRI를 중심으로 촬영 건수와 진료비가 무서운 추세로 팽창한 문제와 관련, 복지부는 과잉 진료 전면 조사, 경증 환자 건보 혜택 축소 검토 등 사실상의 후퇴 선언을 했다. 

문 정부 출범 이후 건보 재정은 급속히 부실화하고 있다. 지난해엔 8년 만에 처음으로 적자로 돌았고, 현재 추세라면 20조5955억 원에 달하던 누적 적립금이 2024년에 완전 소진될 것으로 국회예산정책처는 보고 있다. 적립금이 고갈되면 건보료 부담 급증이나 의료 서비스 악화가 불가피하다. 그런데 문 정부는 임기 중엔 펑펑 쓰고, 힘든 뒤처리는 다음 정부로 미루는 나쁜 행태를 보이고 있다. 

독도 관련 예산도 그렇다. 정부 예산에 바탕을 둔 독도 정책을 보면 신뢰는 더욱 떨어지고, 독도 정책을 의심할 수밖에 없다. 내년도 독도 관련 정부 예산 정책에서는 영토 수호 의지의 실종이나 다름없어 보인다.

울릉도와 독도가 위치한 만큼 독도 사정을 가장 잘 파악하는 경북도가 건의한 내년도 독도 관련 국비 사업은 모두 15건 387억원에 이른다. 하지만 정부 반영은 9건, 87억300만원으로 건의액에서 반영한 금액 비율은 22.5%에 그친다. 해마다 20만 명이 넘는 국민이 찾는 만큼, 무엇보다 이들의 안전을 위한 방파제 시설 구축이 필요한데, 이에 드는 비용으로 건의한 180억원마저 전액 삭감했으니 할 말이 없을 정도다.

이미 지난달 31일 한밤중 응급환자 이송을 위해 나선 소방헬기가 독도 해상에서 추락, 탑승자 7명이 숨지거나 실종되는 참담한 사고로 독도에서의 비상시 구조 활동의 열악한 환경이 그대로 드러난 바 있다. 독도를 지키는 대원은 물론, 20만 명이 넘는 독도 방문객과 주변에서 생업을 잇는 어업인 안전을 먼저 위하는 정부라면, 내년 독도 예산을 이처럼 무관심 속에 방치할 수는 없는 일이다. 

경제 기초체력, 초고령 사회 대비를

심각한 국가 부채 상황과 관련, 정부 여당은 재정 확대에 금리 인하를 더하면 이 사태를 모면할 수 있다고 보는 듯하다. 하지만 저성장·저물가로 대표되는 디플레이션을 근본적으로 막으려면 재정과 금리만으로는 역부족이다. 재정을 확대해도 과거와 달리 승수효과가 크게 떨어져 경기를 제대로 살리지 못한다. 

재정 확대와 금리 인하라도 규제 완화 등 구조개혁 여부에 따라 효과는 극명하게 엇갈릴 수 밖에 없다. 게다가 디플레이션 위기를 돌파하려면 지속적으로 소비와 투자를 촉진할 수 있어야 한다.더 늦기 전에 기업과 시장의 역동성을 높일 종합처방이 시급하다.

지금 정부가 해야 할 일은 '재정 중독' 방향 보다는 규제와 간섭을 줄이고, 노동시장 개혁을 비롯한 구조조정에 나서 민간의 활력을 되살려 내는 것이다. 그래야 잠재성장률도, 단기 경제성장률도 높아질 수 있다. 재정 건전성의 정상적 여력도 확보될 수 있다. 

이를 위해서는 재정증권 발행이 더 늘어나지 않도록 관리해야 하고, 지나친 복지·고용 예산도 재정비해야 할 것이다.  

급격한 고령화로 복지제도를 확대하지 않더라도 40년 후에는 GDP 대비 복지지출이 대폭 급증할 것으로 전망된다. 정부가 할 일은 ‘묻지도 따지지도 않는 현금살포’가 아니라 경제의 기초체력을 탄탄하게 만들어 초고령 사회에 대비해야 마땅하다. 

당장, 국회는 ‘민생’의 관점에서 효율적 예산 분배를 따지는 데 주력해야 한다. 정부의 잘못에 눈감은 채 오히려 증액에 나서거나, 총액 삭감을 놓고 힘겨루기를 할 게 아니라, 불요불급한 예산부터 솎아내는 등 민생회복을 제1순위에 두는 심의를 해야 할 것임을 거듭 강조한다. 국민이 정부와 국회의 잘못된 '세금 유린' 행위를 심판하지 않으면, 나쁜 정치가 결국 경제를 지배하게 되고, 나라는 쇠망에 이르는 길로 가게 될 것임도 경고해 둔다.

 

이병도는…

1952년 경남 진양에서 출생했고 서강대 신문방송학과를 졸업, 1979년 동양통신 기자로 언론계에 입문한 후 1981년 연합뉴스로 자리를 옮겨 정치부 야당출입 기자로 오랫동안 활동해 왔다. 저서로는, <6공해제>, <97년 대선 최후의 승자는>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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