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WTO와 개도국 그리고 생존
[칼럼] WTO와 개도국 그리고 생존
  • 이성희 전 농협중앙회 감사위원장
  • 승인 2019.12.09 17: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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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오늘, 시사ON, 시사온=이성희 전 농협중앙회 감사위원장)

지난 10월에 정부는 향후 세계무역기구(WTO) 농업분야 협상에서 개도국 지위 유지를 주장하지 않기로 결정했다. 1995년 WTO협상에서 우리는 낮은 농가소득, 농산물 무역적자, 낙후된 농업 기반시설 등의 사유로 농업분야에서 개도국으로 인정 받았다. 그걸 스스로 포기하겠다는 것이다.

OECD 가입, 1인당 국민소득 3만2천달러, 세계 유수의 무역국. 이런 나라가 더 이상 개발도상국을 주장하기에는 무리가 있고, 아무 자원도 없는 나라에서 자동차 등 제조업을 다른 나라에 팔아서 먹고 살려 하면 우리나라 총생산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지 않는 농업은 약간의 희생을 감수할 수밖에 없지 않느냐는 것이다. 

농민들의 반발이 거세다.  문재인 정부가 출범할 때, 대통령이 직접 농업을 챙기겠다고 했는데 오히려 농촌 현실은 더 어려워지고, 그나마 어렵게 인정받았던 개도국 지위마저 스스로 포기 하겠다 하니 분통이 터지고 서럽기까지 한 것이다. 

개발도상국을 주장하지 않겠다는 것은 반대로 우리나라 농업이 선진국이 됐다는 것인데 과연 그럴까? 백번 양보해도 그런 것 같지는 않다. 개발도상국을 정확하게 구분 짓는 일관된 기준은 없고 기관마다 약간의 차이는 있으나 공통적으로 적용하는 것은 소득수준이다. 그렇다면 우리나라 농민들의 소득수준이 선진국 수준이다 라고 자신 있게 얘기할 사람이 있을까?

WTO 협상이 완료된 1995년과 지금의 현실을 비교해보자.

1995년 농가소득은 도시근로자 소득대비 95.1%로 거의 차이가 없었다. 2018년 농가소득은 4207만 원으로 도시근로자 소득 6482만 원의 65.5%에 불과할 뿐이다. 그래도 농가소득은 1995년 대비 2018년에 거의 2배로 성장했지만, 농축산물을 생산해서 벌어들인 농업소득은 24년간 물가상승률에도 못 미치는 23%만 성장했을 뿐이다. 이는 농업소득은 정체되고 농외소득이나 이전소득이 증가했다는 것이다. 직업으로의 농업은 고달프다는 것이다. 

농업 구조측면에서는 더욱 심각하다. 2018년 현재, 농가인구중 65세이상 고령화율은 44.7%로 국가 전체 14.3%의 3배수준이며, 전체농가중 70%가 경지규모가 1ha 미만인 소농이고, 농축산물의 연간 판매금액이 1천만 원 미만농가가 전체농가의 65%를 차지하고 있는 영세농이다. 누가 보아도 참으로 가슴 답답한 농촌 현실이다.

국민소득 3만2천 달러, OECD국가, 트럼프의 개도국 포기 압박 등으로 실리를 취하려는 WTO 개도국 유지 포기, 정부의 결정을 십분 이해할 수도 있다. 그러나 동시에 내놓은 정부의 대책에는 많은 아쉬움이 남는다.  공익형직불제 도입, 농업예산 4.4% 증액, 청년후계농 육성, 국산농산물 수요기반 확대와 수급기능 강화 등이 정부가 내놓은 대책이다. 공익형불제 도입 이외에는 현재 추진하고 있는 사업들 중심이며 정부 예산안 기준으로 예산증액도 국가 전체예산 증가율에는 턱없이 모자라는 수치일 뿐이다. 농민들의 반발이 거센 이유이기도 하다

그래도 과거 1995년 우루과이라운드(UR) 협정을 전후해 정부가 내놓은 농어촌구조개선사업(42조 원), 농업․농촌 발전계획(45조 원), 농업․농촌 종합대책(119조 원) 등과 같은 종합대책을 발표했다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물론 그 당시 투자규모를 부풀리기 위해 기존예산과 융자까지 포함하여 국민들로부터 농업계가 오해를 받았지만 말이다. 

개도국 지위 포기가 이미 던져진 주사위라면, 이제는 농업을 산업의 한 축으로 성장시킬 마지막 기회로 삼아야 한다. 미래협상에 따라 발생할 수 있는 영향에 대비할 수 있는 시간과 여력은 충분하다는 경제부총리의 말처럼 세밀하고 농민들의 피부에 와 닿는 대책을 모두가 협력하여 마련해야 한다. 

“국토정원의 관리자”인 농민의 헌신 등 농업의 공익적 기능을 강조하지 않아도, 일자리 창출로서의 농업, 농촌에 대한 투자다. 한국농촌경제연구원에 따르면 2018년 기준, 농림축산식품분야 종사자수는 연관산업까지 포함하면 488만 명으로 국내 전체 취업자의 18%나 된다고 한다. 농업, 농촌에 대한 투자가 시대에 맞지 않는, 사양산업에 대한 투자가 아니라는 반증이다. 농업이 산업의 한 축으로서 당당하게 대접 받을 이유가 충분하다. 

정당한 국가는 어느 한쪽 산업을 희생하여 다른 산업을 성장시키지 않을 것이다. 농민도 국민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필자는 여야정 합의를 바탕으로 2017년에 도입한 '농어촌상생협력기금'의 활성화를 무척 아쉽게 생각한다. 당초 FTA 수혜기업들 중심으로 매년 1000억 원씩 출연해 10년동안 1조 원을 조성하기로한 기금이 2019년 11월말 기준으로 737억 원 수준이라 한다. 당초 목표대로 시급히 조성돼야 한다.  

차기 WTO협상이 언제 시작될지는 알 수 없다. 몇 년 후, 아님 더 오랜 세월이 걸릴 수도 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이 시간이 우리의 농업, 농촌의 생존 골든타임이다. 그리 시간이 많아보이지 않는다. 간절하고 절실한 마음으로 우리 모두가 머리를 맞대 활로를 찾아야 한다.

이성희는…

1971~1997   경기 낙생농협 입사, 상무, 전무 역임
1998~2008   낙생농협 조합장(3선)
2003~2010   농협중앙회 이사(2선)
2008~2015   농협중앙회 감사위원장(3선)
2016            23대 농협중앙회장선거 출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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