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땠을까] 역대 국회의 법안처리 강행 사례는?
[어땠을까] 역대 국회의 법안처리 강행 사례는?
  • 김병묵 기자
  • 승인 2019.12.12 16:1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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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2년‘피난국회 발췌개헌’이 시작
3선 개헌·YS 제명안…역사 바꾸기도

(시사오늘, 시사ON, 시사온=김병묵 기자)

ⓒ시사오늘 그래픽=박지연 기자
<시사오늘>이 역대 국회의 주요한 법안처리 강행 사례를 살펴봤다. ⓒ시사오늘 그래픽=박지연 기자

더불어민주당과 야4당이 자유한국당을 빼고 2020년 예산안을 처리했다. 이에 한국당은 '날치기'라며 법안처리 강행을 비판하고 있다. '날치기'는 국회의 변칙 안건 처리를 비판하는 용어로, 때때로 국회에서 다수당이 여야합의를 거치지 않고 법안처리 등을 강행할 때 등장한다. <시사오늘>이 역대 국회의 주요한 법안처리 강행 사례를 살펴봤다.

한국전쟁 중이었던 1952년 7월, 부산 피난국회에선 이승만대통령을 지지하는 세력이 대통령 직선제를 골자로 하는 '발췌 개헌'을 강행했다. 야당 국회의원들을 헌병을 동원해 연행하고, 국회의사당을 봉쇄한 상태로 166명 중 찬성 163표, 반대 0표, 기권 3표로 개헌안을 통과시킨 사례다. 

이후 1969년, 박정희 정부에선 '3선개헌'을 강행했다. 당시 야당인 신민당이 단상을 점거하는 등 강하게 반대하자, 일요일 새벽2시, 여당계 국회의원들만 별관에 모여 박정희 전 대통령의 3연임을 가능하게 하는 개헌을 변칙 통과시켰다.

1979년 김영삼(YS) 전 대통령(당시 신민당 총재) 제명안 처리는 역사의 물줄기를 바꾸기도 했다. YS가 뉴욕타임즈에서 '박정희 정권에 대한 지지를 철회해달라'고 요구한 것을 빌미로, 야당의 강한 반발 속에서도 여당 단독으로 제명안을 의결시켰다. 신민당 의원들은 총사퇴로 맞섰고 결국 이는 부마민주항쟁으로, 또 10·26 사건으로 이어지며 유신정권의 막을 내리게 된다.

1986년 유성환 전 의원은 '이 나라의 국시는 반공이 아니라 통일'이라고 발언한 이른바 '통일국시 사건'으로 체포됐는데, 그 중심에는 당시 여당이었던 민정당의 강행처리가 있었다. 당시 이재형 국회의장이 경호권을 발동, 야당 의원들의 출입을 막은 채로 여당의원들 중심으로 체포동의안을 만장일치 통과시켰다. 유 의원은 4시간 후 구속됐다.

1990년엔 3당합당을 통해 출범한 거대야당 민주자유당과 야당인 평화민주당이 방송관계법 등을 놓고 팽팽한 대치 중이었다. 평민당 의원들이 단상을 점거하고 박준규 당시 국회의장을 밀어내자, 김재광 당시 국회 부의장이 쟁점법안들을 통과시켰다. 평민당 국회의원 63명이 사직서를 제출하기도 했다.

1996년 12월 25일 저녁에 당내총무들에게 전화를 받은 신한국당 의원들은 노동법·안기부법 통과를 위해 서울의 마포의 한 호텔에 모였다. 그리고 국회가 본격적인 문을 열기 전인 새벽에 국회로 들어가 약 7분여 만에 노동법 등 쟁점법안 11개를 모두 처리했다. 뒤늦게 이 사실을 안 당시 야당 새정치국민회의와 자유민주연합은 항의농성에 들어갔고, 노동계는 전면파업에 돌입했다. 

2004년 노무현 대통령 탄핵소추안 가결도 우여곡절이 있었다. 탄핵안을 처리하려는 한나라당, 새천년 민주당과 탄핵안에 반대하는 열린우리당이 의사당 내에서 대치하며 탄핵안 1차 처리에 실패한 바 있다. 그러나 중립을 지키던 자민련이 남상국 전 대우건설 사장의 자살로 말미암아 탄핵 가결로 선회, 국회경호권이 발동되며 3월 12일 195명 찬성, 2명 반대로 탄핵 소추안이 가결됐다. 이는 약 한달 뒤 열린 제17대 총선에서 '탄핵 역풍'으로 열린우리당이 압승하는 결과로 이어졌고, 또 다시 한 달여 뒤인 5월 14일 결국 헌법재판소에서 탄핵심판이 기각됐다.

2005년 사학법 개정안 통과는 강행 처리됐지만, 반발에 의해 '재개정'에 이른 사례로 꼽힌다. 열린우리당은 민주노동당, 새천년민주당과 함께 본회의장을 선점한 뒤, 당시 추진하던 '4대 개혁입법' 중 하나인 사학법 개정안을 처리했다. 그러나 이듬해 장외투쟁을 불사한 한나라당의 강한 반발에 결국 재개정 쪽으로 방향을 틀었다. 

2009년엔 한나라당이 국회 본회의장 국회의장석을 점거하고 신문법, 방송법, IPTV법 개정안 등 일명 '미디어 관련 3법' 등을 직권상정해 사실상 단독으로 처리했다. 이 과정에서 한나라당 의원들이 의결정족수를 충족시키려고 대리투표한 것이 밝혀지며 '날치기 논란'이 다시 일었고, 방송법 개정안은 1차 표결 종료 후 재석의원수가 의결정족수에 못 미친 것이 확인돼 재투표하는 해프닝도 있었다.

2011년 한·미 FTA 비준안 처리 과정에선 의원직을 잃는 상황도 벌어졌다. 여당이었던 한나라당은 민주당과 원내대표 간 최종 협상이 결렬되자 비준안 단독처리를 강행했다. 이 과정에서 통합진보당 소속이었던 김선동 의원이 비준을 진행하던 정의화 부의장을 향해 최루탄을 터뜨리며 저항했다. 김 전 의원은 2012년 총선에서 재선에 성공했으나, 이 일로 인해 의원직을 상실했다. 

한편, 이번 '4+1 협의' 정당들의 예산안 통과 이전에도 예산안 강행처리는 존재했다. 국회선진화법이 도입되기 이전인 2010년, '4대강 예산'으로 여야가 대치하자 한나라당은 예산안을 단독으로 처리했다. 손학규 당시 민주당 대표가 천막농성에 돌입하는 등 강한 후폭풍이 일었다. 

선진화법 도입(2012년) 이후엔 지난 2017년 자유한국당이 2018년 예산안 표결을 보이콧하며 사실상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당의 합의하에 예산안이 강행 처리된 사례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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