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김종인의 사죄가 의미하는 것
[기자수첩] 김종인의 사죄가 의미하는 것
  • 정진호 기자
  • 승인 2020.08.20 19:1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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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8 관련 망언 사과는 중도보수가 주류 됐다는 신호…정치 지형에 변화 올 가능성 높아

(시사오늘, 시사ON, 시사온= 정진호 기자)

김종인 미래통합당 비상대책위원장이 5·18 관련 망언에 대해 사과한 것은 통합당 내에서 중도보수가 주류로 올라섰다는 신호일 수 있다. ⓒ뉴시스
김종인 미래통합당 비상대책위원장이 5·18 관련 망언에 대해 사과한 것은 통합당 내에서 중도보수가 주류로 올라섰다는 신호일 수 있다. ⓒ뉴시스

정당(政黨)의 사전적 의미는 ‘정치적인 주의나 주장이 같은 사람들이 정권을 잡고 정치적 이상을 실현하기 위하여 조직한 단체’다. 그러나 이는 이론적 정의일 뿐, 모든 당원들이 똑같은 정치 철학을 갖고 동일한 가치를 지향하기는 불가능하다. 어떤 정당이든, 현실에서는 완전히 이질적인 세력이 정권 획득을 위해 오월동주(吳越同舟)하는 일이 빈번하다.

미래통합당은 그 중에서도 극단적인 형태다. 1990년 ‘3당 합당’으로 결성된 민주자유당과 그 후신(後身) 정당에는 군부독재정권의 후예와 군부독재정권에 맞선 민주화 투사가 공존해 왔다. 박정희-전두환-노태우의 유산을 이어받은 세력과 YS(김영삼 전 대통령)의 뜻을 따랐던 민주화 세력이 손을 잡은 결과였다.

그러나 두 세력은 화학적 결합이 불가능했고, 양측의 이질성은 끊이지 않았던 내전(內戰)의 원인이 됐다. 그리고 당연하게도, 내전의 승자가 누구인지에 따라 우리나라 보수정당은 그 성격을 달리해 왔다. 유독 잦은 당명(黨名) 변경, 중도와 극우를 오가는 태도 변화 등은 이 같은 통합당의 태생적 특성과 무관하지 않다.

김종인 비상대책위원장이 광주 국립 5·18 민주묘지를 찾아 무릎을 꿇고 사죄한 것은 그래서 상징적이다. 박정희-전두환-노태우와 정치적·심정적으로 공유하는 부분이 많은 극우보수 세력은 5·18에 대한 진심 어린 사과가 불가능하다. 5·18에 대한 사과는 자신들의 정치적 기반을 포기하는 것이나 다름없는 까닭이다.

‘5·18 관련 망언’들이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직후에 몰려 있는 것은 그 방증이다. 박 전 대통령 탄핵을 기점으로 중도보수는 바른정당에 모였고, 극우보수가 헤게모니를 잡게 된 자유한국당에서는 당원들의 마음을 잡기 위한 ‘5·18 흠집내기’가 유행처럼 번져나갔다. 즉, 5·18에 대한 인식은 극우보수가 당의 주류가 됐다는 신호였던 셈이다.

반면 민주화 투사였던 YS를 중심으로 한 중도보수 세력은 5·18에 호의적일 수밖에 없었다. 애초에 YS 본인부터가 대통령 자리에 오른 후 5·18을 기념일로 제정하고 민주묘지와 기념공원을 조성했으며, 유죄판결 시민에 대한 전과기록 말소 계획 등을 담은 ‘5·18 특별담화’를 발표했던 인물이기 때문이다.

이렇게 보면, 김 위원장이 광주를 찾아 5·18에 대한 사죄 발언을 한 것은 통합당의 ‘주류 교체’를 의미하는 것일 수 있다. 박 전 대통령 탄핵 당시부터 전문가들이 주장했던 ‘친박(親朴) 청산’ 작업이 완료되고, 중도층에 어필할 수 있는 중도보수가 전면에 등장했다는 사실을 알리는 상징적 사건이라는 이야기다.

실제로 당내에서는 김 위원장의 행보에 대한 호평이 잇따랐다. 우선 장제원 의원은 19일 자신의 페이스북에서 “반드시 해야 할 일을 한 것”이라며 “너무도 당연한 일을 하는 것이 왜 이토록 힘들었던 것인지, 반드시 해야 할 일을 하는 것이 왜 이토록 오래 걸려야 했는지 돌아봐야 한다”고 했다.

조수진 의원도 같은 날 페이스북을 통해 “역시 김종인답다고 생각한다. 80이 넘는 노정객이 무릎을 꿇는데 백 마디 말이 무슨 필요가 있을까”라며 “잘못된 과거사에 대한 철저한 반성은 ‘국민 대통합’의 씨앗이 될 것”이라고 밝혔다. 5·18이 ‘폭동’이라던 작년 초와는 완전히 다른 분위기다.

중도보수가 다시 통합당의 주류로 올라섰다면, 더불어민주당 쪽으로 기울어졌던 정치 지형에도 변화가 올 가능성이 높다. 보수는 2016년 이후 치러진 네 차례 전국단위 선거(제20대 총선·제19대 대선·제7회 지방선거·제21대 총선)에서 강성보수를 간판으로 내세웠다가 역사상 처음으로 4연패를 당했다.

반대로 역대 선거에서 중도보수 후보가 전면에 등장했을 경우 진보는 고전을 면치 못하는 경향이 있었다. 김 위원장의 5·18 망언 관련 사과가 정말 헤게모니의 이동을 의미하는 것이라면, 내년 서울·부산시장 보궐선거와 2022년 대선은 지난 네 차례 선거와 전혀 다른 구도로 진행될 공산이 크다. 김 위원장의 광주행이 갖는 의미가 결코 작지 않은 이유다.

담당업무 : 국회 및 미래통합당 출입합니다.
좌우명 : 인생 짧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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