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권의 책⑤> 노병구 “민주화 투쟁의 역사는 김영삼과 박정희의 싸움”
스크롤 이동 상태바
<두 권의 책⑤> 노병구 “민주화 투쟁의 역사는 김영삼과 박정희의 싸움”
  • 정광식 기자
  • 승인 2012.05.16 14:14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노 전 민주동지회장의 평가… ˝박정희는 헌법을 무시하고 쿠데타를 일으킨 장본인”

[시사오늘·시사ON·시사온=정광식 기자]

노병구 전 민주동지회장은 자유당 때부터 정치에 발을 들여놓은 정치계의 산증인이다. 노 전 회장은 ‘진산계’로 본격적인 정치를 시작한 이래 ‘고흥문계’를 거쳐 ‘상도동계’로 활약한 정치인이다.

그는 최근 <증보판 김영삼과 박정희>를 발간했다. 2007년에는 <만세를 위하여 새벽을 열다>, 2010년에는 <김영삼과 박정희>란 책을 썼다. 

노 전 회장은 1931년생이다. 우리나이로 82세다. 적지 않은 나이에도 불구하구 다량의 책을 발간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와의 인터뷰는 4월 10일 서울 중구에 있는 한 음식점에서 시작됐다

“목숨 걸고 문민정부를 세운 인물이 YS"

-최근 <증보판 김영삼과 박정희>를 출간했는데 박정희에 대한 평가를 해주시지요.

 
“보릿고개를 없앤 것도 가난을 물리친 것도 문화수준이 높은 국민이 한 것입니다. 박정희는 민주정부가 출범한지 불과 9개월 만에 전방의 진지를 버리고 총부리를 거꾸로 돌려 서울로 진격해온 사람입니다.

이유는 부패와 무능한 민주당 정권으로는 나라의 안보가 지킬 수 없다는 것이었지만 정권욕에 불타는 정치군인들이 작당해 헌법을 무시하고, 하극상(下剋上)의 쿠데타를 일으킨 것뿐입니다. 쿠데타 후 성과에 급급한 나머지 민주당 정권이 세워둔 경제개발 5개년 계획안을 빼앗아 자기가 만든 것처럼 위장도 했구요.”

-그래도 박정희가 없었다면 이만큼의 경제발전을 이루기 어려웠다는 평가가 있는데요.

“당시 민주당에는 경제계획을 세울 만큼 경제 전문가도 많았고 실행능력도 있어서 박정희가 반란을 일으키지 않았다면, 정치도 경제도 선진 민주국가로 도약했을 것입니다. 역사에 가정은 없지만, 1960년에 시작한 한일회담도 총력외교로 민족의 자존심을 세워 가면서 더 나은 조건으로 타결했을 것입니다.

경제건설도 빨리 시작되고 더 빠르게 진행 돼 선진국가로 도약했을 겁니다. 물론 보릿고개는 더 빨리 없어졌을 것이고, 박정희의 불법정권 유지를 위해 뿌린 엄청난 부정한 지출도 없었을 것입니다.

그 돈 만큼 더 많은 투자를 하고, 독재의 억압 없이 순리로 명랑한 나라가 됐을 것이고 참으로 아쉽고 안타까울 뿐입니다. 박정희는‘선무당이 사람 잡는다"고 오히려 국민의 고통과 나라발전에 후퇴를 가져왔을 뿐인데도 박정희가 제일이라고 합니다.

물질만 강조하고 문화가 없다보니 졸부만 양성해 가끔 그들이 국제적인 망신도 시키고 경제의 정상발전도 가로 막는 겁니다.”

ⓒ권희정 기자.

-그렇다면 김영삼(YS)에 대한 생각은 어떻습니까?

“김영삼은 약관 25세에 국회의원이 돼 3선개헌으로 영구집권을 꿈꾸던 이승만에게 ‘3선개헌은 안된다’고 충언을 했고, 그 후 박정희의 군사독재 32년 동안 줄기차게 목숨을 걸고 끊임없이 투쟁해 군정을 끝내고 문민정부를 세운 인물입니다.”

-문민정부의 대표적 업적은 무엇이 있을까요?

“부도덕의 산실인 안가와 대통령 집무실의 대형금고 철거, 하나회 해체, 금융실명제, 공직자 재산공개, 지방자치 부활 등 민주주의의 토대를 만드는 일을 했습니다. 이에 대한 평가가 반드시 있어야 한다고 봅니다.”

“민산 해체로 인해 YS 저평가”

ⓒ권희정 기자.
필자는 이 대목에서 노 전 회장에게 ‘YS가 너무 저평가 돼 있다’고 묻자, 그는 그 이유를 ‘민주산악회(민산) 해체’ 때문이라고 말했다.

“정치는 세력화입니다. 민산은 전국 단위 조직으로 시도?지부가 있었습니다. 회원만 약 200만 명이었습니다. 이들이 김영삼 대통령을 만드는데 중추적 역학을 했습니다. 그런데 YS가 대통령이 되고 나서 해체 명령을 내렸습니다. 정치개혁을 위해 자신의 손발을 잘라내는 엄격함이었습니다. 하지만 이 때문에 YS를 옹호해줄 세력이 없어진 겁니다. 너무나 안타깝습니다.”

-최근 노태우 전 대통령이 자신의 자서전을 통해 ‘YS에게 3000억 원을 줬다’고 서술했는데요.

“노태우가 ‘14대 대통령 선거 당시 3000억 원을 만들어 줬다’고 하고 ‘1993년 2월 25일 날 청와대 대통령실 금고에 100억 원 이상을 넣어두라고 해 놓고 나왔다’고 썼어요.

‘통치자금’을 후임자에게 전해주려고 기다렸으나 대통령에 당선된 김영삼이 청와대에  들어오지 않아서 그냥 놓고 나왔다고 합디다.

노태우가 주었다는 3000억 원의 기원은 어디입니까?

박정희는 돈으로 독재정권 안보를 위해 정부에서 수주하는 모든 공사, 외국차관, 은행특별융자 알선을 독점하고 일정금액을 세금 걷는 것처럼 받아들이고, 그 외에 재벌기업으로부터 부당한 많은 돈을 가로채 그 돈으로 소속정당은 물론, 많은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고 복종을 강요하면서 수십 년 동안 공작정치를 해왔습니다. 노태우가 주었다는 3000억 원도 그런 돈인 것입니다.”

-그렇다면 노태우가 거짓말을 하고 있는 겁니까.

“실체는 잘 모르겠지만, 노태우의 주장은 앞뒤가 맞지 않아요. 당 총재인 노태우가 준 돈은 박정희로부터 수십 년 동안 내려온 전례(前例)대로 대통령 선거자금으로 당에 준 돈이겠지요. 김영삼 개인에게 준 돈이 아닙니다.

3당 합당 당시 민자당 계파 비율을 보면 노태우 60% 김종필 15% 도합 75%가 과거 공화당 계열이었습니다. 이들이 민자당을 장악하고 있었고 김영삼은 25%의 열세였습니다.

대선자금은 그들에 의해서 모두 공조직의 선거운동에 자금으로 쓰였을 것입니다. 김영삼이 밉다고 공(公)과 사(私)의 구별 없이 혼동하면 안 되는 것이지요.”

-만약 다시 태어나신다면 무엇을 하고 싶으십니까?

“원래 목사가 되고 싶었습니다. 제대 후에 복학해 서울공업고등하교를 졸업하고 원래는 한국 신학대학교에 가서 목회자가 되려고 했으나, 당시 신길동 성결교회 김성추 담임 목사가 ‘한국 신학대학교는 자유주의  신학의 이단’이라며 총회신학교나 서울신학대학이 아니면 추천서를 써줄 수 없다고 했습니다. 어쩔 수 없이 1차 대학의 지원 기회마저 놓치고 2차인 중앙대학교 법정대학 법학과에 입학하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정치를 시작하게 된 겁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