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형마트 의무휴업…우리 아기 분유는 어떻게 하나요? [정진호의 에세이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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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형마트 의무휴업…우리 아기 분유는 어떻게 하나요? [정진호의 에세이뉴스]
  • 정진호 기자
  • 승인 2023.04.05 16:2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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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오늘·시사ON·시사온= 정진호 기자]

대형마트 의무휴업으로 인해 아찔한 경험을 한 부모들이 적지 않다. ⓒ시사오늘 김유종
대형마트 의무휴업으로 인해 아찔한 경험을 한 부모들이 적지 않다. ⓒ시사오늘 김유종

3월의 어느 평범한 일요일 새벽이었습니다. 배가 고프다고 울어대는 아기를 위해 부엌으로 향했습니다. 분유를 타서 아기에게 먹이고, 다시 재운 다음 새 분유통을 꺼내기 위해 찬장을 열었습니다.

그 순간, 심장이 내려앉고 등에선 식은땀이 흘렀습니다. 아뿔싸! 찬장은 비어 있었습니다. 그제야 ‘토요일엔 분유를 사둬야겠다’고 다짐했던 기억이 났습니다. 이래저래 일이 바빠 미뤘는데, 정작 토요일에 급한 일이 생겨 마트에 들르지 못한 게 화근이었습니다.

그래도 이때까진 괜찮았습니다. 아직 네댓 번 먹을 분유는 남아 있었기 때문입니다. 아기의 수유 시간을 고려하면, 저녁이 되기 전에만 분유를 사오면 될 일이었습니다. 늦어도 11시면 마트도 문을 열 테니까요.

하지만 마트 앞에 다다랐을 때, 뭔가 잘못돼가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날은 두 번째 일요일. 마트 휴무일이었던 겁니다. 심장박동이 빨라지고 손이 떨리기 시작했습니다. 지금 이 시간에도 아기는 맘마를 먹고 있을 텐데, 분유가 떨어졌다니!

급히 인터넷에 검색을 해봤더니, ○○○마트는 의무휴업일이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됐습니다. 다행이다 싶어 곧바로 차를 돌려 그곳으로 향했습니다. 헐레벌떡 뛰어 들어가 분유 코너를 찾았습니다. 그러나 좀처럼 눈에 띄지 않았습니다.

‘어떤 상황에서도 침착함을 잃지 말라고 배웠는데 이런 한심한….’ 자책하면서 직원에게 분유 코너 위치를 여쭤봤습니다. 그랬더니 청천벽력 같은 답변이 돌아왔습니다. “여기 분유 안 팔아요.”

아니 이게 무슨 말씀이죠? 마트에 분유가 없다니? 믿기지가 않아 다시 여쭤봤지만 돌아오는 답은 같았습니다. “분유 없어요.” 이제 선택의 여지는 없었습니다. 온 동네를 돌아다니면서 분유 파는 곳을 수소문하는 수밖에.

생각보다 전통시장이 없는 지역이 많고, 전통시장에서 구하기 어려운 물품도 많다. ⓒ연합뉴스
생각보다 전통시장이 없는 지역이 많고, 전통시장에서 구하기 어려운 물품도 많다. ⓒ연합뉴스

가장 먼저 동네에 있는 작은 마트에 갔습니다. 분유 코너를 찾기 전에 미리 카운터에서 물었습니다. “분유 있나요?” 아니나 다를까. “저희는 분유 안 갖다 놔요. 요즘 찾는 사람이 없어서….”

옆 마트도, 옆옆 마트도 마찬가지였습니다. 혹시나 해서 편의점에도 들렀지만 사정은 다르지 않았습니다. 이래서 될 일이 아니다 싶어 인터넷을 뒤졌더니, 차로 한 시간 거리에 ‘두 번째 일요일에 쉬지 않는 대형마트’가 있다는 걸 알게 됐습니다.

왕복 두 시간. 하지만 중요한 건 그게 아니었습니다. 일요일에 분유를 구할 수 있다는 사실. 이미 분유만 구할 수 있다면 비행기 타고 제주도에도 갈 수 있을 만큼 간절한 상태였습니다. 그렇게 휴일을 다 날리고 나서야 ‘분유 구하기 대모험’은 막을 내렸습니다.

대체 왜 이런 일이 있었던 걸까요. 물론 가장 큰 이유는 개인의 불찰입니다. 미리 사다놨으면 겪을 필요가 없었던 일이니까요. 하지만 육아를 하다 보면, 오늘이 며칠인지 무슨 요일인지 잊어버리는 경우가 다반사입니다. 그만큼 정신이 없습니다. 아기가 둘 이상이면 부모는 거의 제정신이 아니라고 보시면 됩니다.

이런 상황에서 실수 없이 모든 준비를 완료하는 건 불가능합니다. 그 누구라도 분유가 떨어질 때, 우유병이 소독되지 않은 때, 손수건이 없는 때를 맞게 됩니다. 모든 책임을 개인에게 돌리는 건 불합리하다는 뜻입니다.

오히려 먼저 지적하고 싶은 건 디테일하지 못한 국가 정책입니다. 2012년 유통산업발전법이 개정되면서 특별자치시장·시장·군수·구청장은 매달 이틀을 의무휴업일로 지정해야 했는데요. 이 법의 목적이 마트 대신 전통시장을 방문하게 하려는 것인 만큼, 대부분 지역이 일률적으로 둘째 넷째 일요일을 의무휴업일로 지정하고 있습니다.

일요일이 되면 이른바 ‘맘카페’에는 애타게 분유 파는 곳을 수소문하는 글이 올라오곤 한다. ⓒ시사오늘
일요일이 되면 이른바 ‘맘카페’에는 애타게 분유 파는 곳을 수소문하는 글이 올라오곤 한다. ⓒ시사오늘

그런데 우리나라에는 생각보다 근처에 전통시장이 없는 지역이 많습니다. 전통시장에 가더라도 아기 분유를 구할 수 있는 상점은 극히 드물고요. 이러니 한 번만 깜빡하더라도 분유를 구하기 위해 휴일 전체를 날려야 하는 경험을 하게 됩니다. 실제로 아기 엄마들이 모여 있는 커뮤니티에는 일요일에 분유가 떨어져 진땀을 흘렸다는 경험담이 심심찮게 올라오곤 합니다.

대형마트 의무휴업이 꼭 필요한 규제였는지, 전통시장 활성화에 도움이 됐는지는 본 기사에서 판단할 영역이 아닙니다. 하지만 이 정책을 입안하는 과정에서 전통시장이 근처에 없는 사람들이 불편을 겪지는 않을지, 혹시나 대형마트에서만 구할 수 있고 전통시장에서는 구할 수 없는 품목들이 없는지 하는 고민은 부족했던 게 분명해 보입니다.

대형마트 의무휴업을 폐지하자고 주장하는 게 아닙니다. 거시적으로 봐서 꼭 필요하다면 규제를 할 수도 있습니다. 다만 아기 분유처럼 꼭 필요하지만 전통시장에서는 구하기 어려운 품목들은 조금 더 신경 써서 정책을 만들었으면 하는 아쉬움은 남습니다.

가령 의무휴업 대상이 아닌 상점에서는 반드시 분유를 구비하도록 하고, 그로 인한 손실은 정부에서 보조하도록 하는 정도의 대비책을 마련했다면 어땠을까요. 그리 큰 예산이 필요하지는 않으면서도 부모들이 발을 동동 굴러야 하는 상황은 피할 수 있지 않았을까요. 아이 많이 낳으라고 하기 전에, 그 정도 신경부터 썼어야 하는 것 아닐까요.

담당업무 : 국회 및 국민의힘 출입합니다.
좌우명 : 인생 짧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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