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정 같은 소리? 계속해야 한다 [황선용의 In & Ou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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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정 같은 소리? 계속해야 한다 [황선용의 In & Out]
  • 황선용 APEC 기후센터 경영지원실장
  • 승인 2023.08.04 13:5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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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오늘·시사ON·시사온=황선용 APEC 기후센터 경영지원실장)

열정의 사전적 의미로는 ‘어떤 일에 열렬한 애정을 가지고 열중하는 마음’이다.ⓒ픽사베이
열정의 사전적 의미로는 ‘어떤 일에 열렬한 애정을 가지고 열중하는 마음’이다.ⓒ픽사베이

 

2015년에 개봉한 영화 ‘열정 같은 소리하고 있네’의 소개 글을 보면 이런 구절이 있다. 
 

‘전쟁터 같은 사회생활에서 살아남기 위한 수습사원 도라희의 극한분투기!!! 오늘도 탈탈 털린 당신에게 바칩니다!’


이 영화는 계란으로 바위치기, 카르텔에 막혀 포기할 수밖에 없는 상황들, 출세를 위해서는 어쩔 수 없는 프로세스 등등 사회 초년생들에게 자신과 대면하는 모든 불협화음이나 불의를 탄핵하기보다는, 자포자기식으로 위에서 하라는 대로 하면 무탈하게 원하는 곳까지 근접할 수 있다는 가장 빠르고 합리적인 선택지로서의 상황을 유도하고 만들어가는 가운데서 벌어지는 수습기자 도라히의 극복 또는 타협을 위한 고군분투기를 다룬 영화다.

영화 속 이야기이기는 하지만 이는 엄연히 영화 밖 현실에서도 존재하는 일들이다. 비단 사회 초년생들에게만 벌어지는 일은 아니라는 얘기다. 열정의 사전적 의미로는 ‘어떤 일에 열렬한 애정을 가지고 열중하는 마음’이라고 한다. 즉 자신이 하고 있는 일을 대하는 정도의 차이를 의미하는 것으로 그것에 대해 열심인 사람들 두고 ‘열정적인 사람’이라고 말을 한다.

아무리 열정을 쏟아붓고 열정을 드러내어 내 자신의 한계, 그리고 자신이 속한 조직의 임계점을 극복하고 싶어도 그것이 제대로 되지 않는 것이 누구나 수긍할 수밖에 없을 정도로 관행화되었다. 그런 것들의 원인으로는 편 가르기, 카르텔, 복지부동 등등으로 이미 다양한 단어와 형태로서 설명이 가능하다. 

아무리 열정을 쏟아 부어도 소용없는 상황들이 예상되거나 현실이 될지라도 그 열정마저도 놔버리면 좀비와 다를 바가 없다. 흔히 나이 먹으면 타성에 젖는다고 말한다. 타성에 젖는 게 나쁜 것만은 아니지만 타성이라는 것은 결국 나이 먹고 쓸모없는 존재들이 부리는 용심 즉, 심술과 같은 뜻으로 비하하는 말이다.

열정은 변화를 인식하게 만드는 힘이 있으며, 열정은 내재돼 있는 자신의 새로운 가능성을 수면 위로 끌어올리는 묘한 심리적 카타르시스를 느끼게 해준다. 비록 열정을 담은 당면 현안이 무산되거나 원치 않는 다른 식의 결론에 도달하더라도 밑지지 않고 남는 장사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내가 국회에 처음 들어왔던 2004년. 노인복지청을 만들자는 주제하에 법안도 준비하고 법안을 위한 토론회를 개최하라는 미션을 받았다. 지금은 다른 명칭으로 바뀌었지만 그때는 헌정기념관으로서 회의장 내 1층과 2층 좌석까지 합쳐서 거의 300석 가까이 되는 회의시설이 있었다. 법안이야 입안과정을 거쳐서 의안과에 제출하면 그만이었는데, 문제는 토론회였다. 도와주는 보좌진도 없이 오로지 내가 다 안고, 들고, 이고 뛰어다니면서 준비해야 했다.

토론회 날짜를 잡고, 초대돼 토론할 전문가까지 내가 일일이 연락하고 스케줄 조정까지 마쳤다. 이제 남은 것은 과연 300석 가까이 되는 그 회의장을 어떻게 채울 것인가였다. 지역구 주민들을 불러 앉히는 촌극은 벌이기 싫었기 때문에 나는 미리 제작된 토론회 포스터를 둘둘 말아서 가방에 넣고 어깨에 둘러메고 휴일 오후에 여의도에 가까운 마포구노인회관을 찾아갔다. 많은 노인들이 나와서 여럿 강좌를 듣거나 삼삼오오 모여서 얘기를 나누고 있었다. 나는 그 노인분들 중에서도 리더 역할을 할 것 같은 한 분을 발견하고 이래저래 설명을 하고 포스터를 노인회관 곳곳에 붙여도 된다는 승낙을 얻어냈다.

그리고 영등포, 강서구까지 연이어 방문해서 똑같은 과정을 거쳤다. 마지막으로 탑골공원과 바로 인접해 있는 종묘공원을 찾아 벤치 곳곳에 포스터를 붙였다. 이게 뭐냐고 물어보는 노인분들에게는 모두 설명을 해줬으며, 그렇지 않은 상황에서는 누가 볼 새라 얼른 붙이고 다른 지점으로 이동했다. 대한노인회까지 찾아가 도움을 요청했었다.

이때가 8월 이맘때 쯤 되었는데, 무척 더웠다. 앞에서 말했듯이 이때까지는 그 열정이라는 것이 나를 삼복더위에도 무거운 포스터를 들고 이런 일들을 할 수 있게 해줬던 것은 분명하다. 드디어 토론회 당일이 됐다. 토론회 시간이 다가올수록 참석이 예정되었던 인사들 외에는 헌정기념관 부근에는 한산함만이 가득했다.

그런데 토론회 시작 30여 분을 앞둔 1시 30분 경, 아주 신기한 장면과 맞닥뜨릴 수 있었다. 공공근로를 하시는 것으로 보이는 노란색 조끼를 입은 노인들 수십여 명이 단체로 시야에 들어왔으며, 삼삼오오 모여서 헌정기념관으로 오시는 분들이 상당히 많아졌다. 그 모습은 마치 경로잔치에 모여드는 어르신들을 보는 것과 같았다는 표현을 써도 전혀 이상하지 않았다.

그 많은 노인분들 중 내가 아는 분들은 한 명도 없었다. 딱 한 명 기억에 남는 분이라면 마포구노인회관에서 포스터를 부착하도록 승낙해 줬던 그분밖에는 없었다. 예상치 못한 노인분들의 입장으로 전 좌석 매진이라는 흥행을 이뤘고, 이에 토론자들도 신이 나서 열정적으로 토론을 했으며 기자들도 한 줄이라도 더 달아주기 위해 이것저것 물어오기 시작했다.
 

전국 시도단위 노인회 지회에 공문을 돌려 노인복지청 신설을 위한 전국 단위 노인 서명운동을 전개해 132만 명의 서명을 받은 서명부를 국회에 제출한 것은 전무후무한 기록이다.ⓒ황선용
전국 시도단위 노인회 지회에 공문을 돌려 노인복지청 신설을 위한 전국 단위 노인 서명운동을 전개해 132만 명의 서명을 받은 서명부를 국회에 제출한 것은 전무후무한 기록이다.ⓒ홍문표 의원 블로그

이 흥행이 시발이 되었던 것인지, 이후 대한노인회가 직접 발 벗고 나서서 전국 시도단위 노인회 지회에 공문을 돌려 노인복지청 신설을 위한 전국 단위 노인 서명운동을 전개해 132만 명의 서명을 받은 서명부를 국회에 제출 할 수 있게 됐다. 132만 명 서명부의 국회제출은 전무후무한 기록이 됐다. 비록 2023년 현재까지 노인복지청이라는 정부조직이 만들어지지는 않았지만, 여전히 살아있는 이슈로서 선거 때마다 등장하는 단골 공약은 되었다.

작은 책임이 열정으로 전개돼 나비효과를 통해 전국적인 서명 운동으로까지 확산됐던 이때. 나는 분명히 열정 하나는 넘치고 또 넘쳤던 것이 분명하다. 지금도 열정을 가지고 있다고 말은 하지만 그때 그 당시의 나만큼의 열정은 아닌 것은 확실하다. 그러나 고기도 먹어본 놈이 먹는다고 열정이라는 고기를 먹어본 나는 기회가 되면 그것으로서 역할을 할 상황이 도래하면 내면에 잠자고 있는 그 열정이라는 놈을 당장이라도 활화산의 굉음을 내는 분출용암처럼 드러낼 자신이 있다.

자신의 가능성을 확인한 사람은 쉽게 열정을 포기하거나 놔버리지 않는다. 그래서 한 번쯤은 그 열정이라는 놈의 얼굴을 보고 가린 것이 없는 민낯까지 확인해 볼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결국 열정같은 소리는 계속해야 한다는 말이다.

 

※ 외부 필진의 기고는 본지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서울과기대 토목공학과를 졸업하고 국방대학원 안보정책학과 석사과정을 수료했다. 이북오도청 (이북오도위원회) 동화연구소 연구원과 상명대학교 산학협력단 초빙연구원을 역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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