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산, 삼봉(三峰)이 그곳에 오르고 싶었던 이유처럼 [황선용의 In & Ou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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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산, 삼봉(三峰)이 그곳에 오르고 싶었던 이유처럼 [황선용의 In & Out]
  • 황선용 APEC 기후센터 경영지원실장
  • 승인 2023.06.29 16:4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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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오늘·시사ON·시사온=황선용 APEC 기후센터 경영지원실장)

북한산을 좋아했던 조선시대 위인이 있는데 바로 삼봉 정도전이다. 역사서의 기록으로 볼 때 삼봉은 북한산의 세 개의 봉에서 따왔다는 게 거의 정설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연합뉴스
북한산을 좋아했던 조선시대 위인이 있는데 바로 삼봉 정도전이다. 역사서의 기록으로 볼 때 삼봉은 북한산의 세 개의 봉에서 따왔다는 게 거의 정설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연합뉴스

언제부터인지 주말이면 배낭을 짊어지고 산에 오르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집 앞에 위치한 낮은 산봉우리부터 시작했던 것 같다. 그렇게 산에 오르다 보니 좋은 점이 아주 많았다. 어디서나 하는 얘기이고 듣는 얘기이지만 건강해지고 있다는 느낌이 체험적으로 느껴졌다.

그러던 중 북한산을 찾았다. 와이프와 주말, 또는 쉬는 날 가볍게 찾기에 적당한 거리였고 날 좋고 바람 좋은 날 찾는 북한산의 매력에 절로 빠져들고 있었다. 정확하게 알지는 못하지만 북한산에 몇 개의 봉(봉우리)가 있을까 찾아봤다. 백과사전, 국립공원 홈페이지, 심지어 구글(Google)에게도 물어봤다.

23개 또는 24개라는 곳도 있었고, 등산을 자주하는 매니아들 사이에서는 본인 스스로 찾은 곳까지 새로운 봉우리로 삼아 무려 40개에 이른다고 주장하는 내용까지 봤다. 내가 확인 한 것은 24개의 봉우리다. 이지형 <헬스조선> 취재본부장이 쓴 2021년도 3월 기사 ‘[아무튼, 북한산] 23개의 봉우리… 그 현란한 네이밍’를 보면 이 본부장 자신도 확신하지는 못했지만 봉우리의 수를 23개라고 기록했다.

나와 와이프는 매주 올라갈 봉우리를 정해 놓고 난이도에 따라서 준비물들을 달리해서 북한산으로 갔다. 지금까지 올라간 봉우리는 백운대, 원효봉, 문수봉, 의상봉, 비봉, 사모바위, 용혈봉, 향로봉, 족두리봉, 노적봉, 나한봉, 나월봉, 증취봉 정도 된다. 북한산 봉우리의 절반 이상은 오른 것 같다. 

이 중에서 서울의 전경을 아주 멋스럽게 볼 수 있는 곳을 꼽으라면 문수봉(727m)을 들 수 있다. 백운대(836.5m) 다음으로 높은 봉으로써 비록 봉우리 정상 면이 넓지가 않아 편하게 앉아서 쉴 수 있는 공간의 여유는 부족하지만 높이 오른 새가 된 기분으로 지평선 끝에 걸린 서울의 끝자락까지 볼 수 있다.

그리고 싸가지고 간 도시락을 까먹기 좋은 곳은 향로봉을 들 수 있다. 향로봉 정상 면 옆에는 널따란 평상을 설치한 것 같은 넓은 바위 면이 있는데 갈 때마다 등산객들의 자리 경쟁이 치열하다. 그곳에 자리를 깔고 앉아 도시락과 컵라면, 그리고 보온병에 담아간 따뜻한 물로 믹스커피 한잔 마시면 세상 부러울 것이 없을 정도다.

등산다운 등산을 느끼기 좋은 곳은 아무래도 의상봉이다. 의상봉은 북한산입구 초입 부근에서 바로 올라갈 수 있는데 진입 구간 몇백 미터를 지나면 바로 급경사 구간으로 정상까지의 길이 대부분 로우프를 잡고 올라갈 정도로 난코스다. 그러나 올라갈 때의 뻐근함은 문수봉과 마찬가지로 눈앞에 보여지는 찬란한 풍경에 금방 녹아내린다. 의상봉을 따라 이어진 능선을 오르내리며 가다 보면 용출봉과 용혈봉, 그리고 증취봉을 만날 수 있는데 이 구간도 쉽지는 않다.

마지막으로 접근하기 쉽지 않은 곳은 비봉이다. 비봉 정상에는 신라 진흥왕의 북한산순수비 모조비가 세워져 있는데, 둥근 바위 정상에 자리한 순수비를 보기 위해서 올라가는 그 바윗길은 겁 좀 먹을 줄 아는 사람에게는 가볍게 올라갈 수 없는 구간이다. 그러나 막상 난구간을 헤치고 정상에 다다르면 가슴 속에서 분출되는 감격의 기운을 느낄 수 있다. 순수비에서 순수(巡狩)라 함은 ‘임금이 나라 안을 두루 살피며 돌아다니던 일’을 뜻하는 것으로 진흥왕순수비는 결국 진흥왕이 순수 중 북한산에 들른 기념으로 세운 비석이다.

이렇게 북한산의 여러 봉들을 올랐지만 북한산을 마주하고 북한산의 전경을 가까이 느낄 수 있는 또 다른 곳이 있는데, 바로 북한산 맞은편에 위치한 흥국사가 있는 노고산이다. 노고산은 백패킹의 성지이다. 그곳의 정상을 가면 평평한 면이 대략 200여 평 정도의 크기로 조성이 되어 있는데 올라갈 때마다 백패커들이 진지를 구축하고 있거나 이미 백패킹을 즐기고 있는 사람들이 제법 많다. 노고산 정상에서 바로 보이는 북한산의 전경을 보는 재미도 쏠쏠하다.

복잡한 주변의 상황들이 있을 때 잠시나마 그것들을 잊고자 북한산을 자주 찾았다. 그리고 정상에 올라 마음속으로 속상하거나 답답하거나 했던 일들을 다 털어버리고 내려왔다. 북한산은 나의 넋두리, 하소연, 푸념들을 다 받아주는 것 같았다. 나만 그렇겠는가? 이제는 북한산에 불만을 털어버리는 것이 아닌 등산 그 자체가 좋아서 찾는다. 무더운 한여름에 오히려 산속이 시원하다는 것을 알게 된 이후로부터 여름 산행이 가져다주는 청량감이 늘 기대되곤 했다.

북한산을 좋아했던 조선시대 위인이 있는데 바로 정도전이다. 조선 개국의 일등공신이자 신권정치를 주창(主唱)했던 삼봉 정도전은 북한산에 자주 올라갔으며 심지어 그의 호가 삼봉인 이유가 북한산의 삼봉, 즉 백운대, 만경봉, 인수봉에서 따왔다는 설도 있다. 그러나 정도전의 고향이 충북 단양이고 단양에 도담삼봉이 있는 탓에 정도전의 삼봉은 북한산의 삼봉이 아니라 도담삼봉의 삼봉에서 유래된 것으로 봐야한다는 학설도 있기는 하다.

그러나 정도전이 삼각산(북한산의 옛 지명) 삼봉에 올라 송악산을 바라보며 벗이 오기를 기다렸다는 역사서의 기록으로 볼 때 삼봉은 북한산의 세 개의 봉에서 따왔다는 게 거의 정설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정도전을 비유할 수는 없지만, 북한산은 누군가에게는 극기(克己)의 시험대로서, 또 누군가에게는 치유(治癒)의 수단으로서 위안이 되었던 것은 분명하다. 아마 정도전에게는 혁명(革命)으로서 다가왔을지도 모르지만 말이다.

나는 앞으로도 북한산을 자주 오를 계획이다. 처음에는 그냥 가는 것에 만족하며 바쁜 걸음을 재촉했다면 다시 가고 또다시 갈 때는 흙 한 줌, 나무 한 그루 등등 모든 것들을 눈에 담아 언제고 지칠 때 마음속에서 빼내어 자강(自彊)을 위한 위로를 삼기 위해서라도 자주 갈 것이다. 

 

※ 외부 필진의 기고는 본지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황선용은…

서울과기대 토목공학과를 졸업하고 국방대학원 안보정책학과 석사과정을 수료했다. 이북오도청 (이북오도위원회) 동화연구소 연구원과 상명대학교 산학협력단 초빙연구원을 역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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