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5열과 비주류 [황선용의 In & Ou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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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열과 비주류 [황선용의 In & Out]
  • 황선용 APEC 기후센터 경영지원실장
  • 승인 2023.07.13 15:55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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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오늘·시사ON·시사온=황선용 APEC 기후센터 경영지원실장)

반역자, 스파이, 간첩, 프락치 등을 제5열이라고 봐도 된다. 지금의 대한민국에서는 ‘비주류’라는 이름으로 재해석 되고 있다ⓒ픽사베이
반역자, 스파이, 간첩, 프락치 등을 제5열이라고 봐도 된다. 지금의 대한민국에서는 ‘비주류’라는 이름으로 재해석 되고 있다ⓒ픽사베이

1989년 김성종 작가의 원작 소설인 <제5열>을 드라마로 방영한 적이 있다. 국내 첩보물인데, Z라는 범죄 집단, 이른바 한국정부 내의 제5열 세력이 적들과 내통하여 한국정부를 전복시킨다는 계획을 세우고, 다른 한편에서는 이를 저지하기 위한 이들의 고곤분투를 적나라하게 극으로 드러냈던 추리물이자 스릴러물이다. 여기서 제5열이 무엇인지 궁금한 분들이 있을 것이다.

제5열이란 스페인 내전 당시 파시스트 반란군 소속으로 마드리드 공략 작전을 지휘했던 에밀리오 몰라 비달 장군이 병력을 이끌고 정부군을 향해 진격하면서 ‘자신이 직접 지휘하는 4방향의 병력들이 있으며 정부군 내에서도 자신들의 공세에 협조하는 5번째 열이 있다’는 말을 한 적이 있는데, 이것이 제5열이라는 개념의 첫 등장이다.

당초 스페인어로는 ‘Quinta Columna(퀸타 콜룸나)’로서 그 뜻은 ‘5번째 열’이다. 1936년 뉴욕타임즈의 윌리엄카르니(William Carney) 기자에 의해서 제5열(fifth column)로 번역이 되었고, 대문호인 헤밍웨이가 fifth column이라는 표현을 자신의 단편집 <제5열과 첫 번째 마흔아홉 개의 단편들/The Fifth Column and the First Forty-Nine Stories, 1938>의 제목으로 사용하면서 제5열은 더 명확한 사전적 의미를 갖게 된다.

즉 적군에 존재하는 아군 협조자, 또는 아군(조직) 내부에 존재하는 반역자, 스파이, 간첩 등등의 뜻을 내포하는 단어로서의 의미를 갖기 시작했다. 한국의 군사정부 시절 대학가에 학생들을 포섭해 정보원으로 심어두고 학원가의 소식을 수집해서 정보기관에 알려주는 일을 했던 프락치 또한 학생조직의 입장에서 보면 제5열이라고 봐도 된다. 그리고 적국의 정보를 수집하는데 도움을 주는 적국 내의 조력자인 휴민트 또한 적국으로서는 제5열로 간주한다.

그러나 제5열의 개념은 시간이 지나고 국제적인 정세, 그리고 그러한 조직을 필요로 하는 당사자들의 인식의 변화에 따라 다양한 모습으로, 새로운 의미로 재탄생 되곤 한다. 국가전복이니 국제평화니 하는 거대한 틀 안에서의 제5열은 이미 냉전시대의 카르텔로서 그 효용가치를 다했다고 보이며 21세기를 살고 있는 지금의 대한민국에서의 제5열은 아마도 ‘비주류’라는 이름으로 그 존재가 재탄생되고, 의미가 재해석 되고 있다고 본다.

어느 조직이나 주류와 비주류가 있듯이, 능력과 실력을 갖추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주류가 되지 못하고 조직을 리드하는 자리에 서지 못하는 이들이 있다. 출세를 위한 줄을 잘 서지 못했거나, 지역과 학벌에 의해 패 갈림을 당했거나, 의도치 않은 언행 등의 설화로 낙인 되어 좀처럼 주류의 틈바구니 속으로 진입하지 못하는 이들. 그들이 바로 21세기 대한민국 내의 새로운 제5열이 아닐까.

조선의 제19대 왕 숙종은 어느 한쪽으로 권력이 집중되지 않도록 하려는 의도는 아니었겠지만 재임기간 동안 총 세 번의 환국을 일으켜 정국의 주도권을 각 파당들이 주고받도록 했다. ‘환국(換局)은 시국이나 정국이 바뀌었다는 의미’로 주도권을 쥔 세력이 교체됨을 의미한다. 한마디로 환국이라 함은 정권교체를 말하는 것이다. 숙종은 국가를 운영함에 있어서 어느 특정 계파가 좌지우지 하는 것이 국익에 이롭지 않다는 지론으로 이처럼 다른 사건들을 통해 환국까지 연결 지어(엮어) 일으킨 정치의 달인이었다.

그렇다고 해서 숙종의 환국이 비주류들에게 맹목적으로 집권 기회를 주기 위한 것은 아니었다. 앞에서 언급했지만 능력과 실력을 갖추었으나 주류에 들지 못하는 세력들에게 국정의 책임을 맡긴 것으로서 분명한 것은 무능함에도 불구하고 집권의 치(治)를 행사하게 하지는 않았다.

한때는 비주류라고 하는 것이 특정 주류 계층의 부조리와 그들의 부조화스러운 행위에 맞서 의로운 길을 외롭게 가는 의인들의 모습으로 보여 지기도 했지만 시대가 변하고, 특히 어느 한 집단에 요구되는 필수사항만 따르면 그 흐름 속에 편승해서 자리 하나 정도 얻어먹을 수 있는 사회구조가 아니라는 점, 그리고 인물 개개인 별로 요구되는 캐리어와 스펙이 제각각이 되어가는 상황에서 비주류가 정의로움의 완장이 될 수는 없는 시대인 것은 분명하다.

결국 21세기 대한민국에서의 비주류는 주류가 되지 못한 자들일 뿐이지 주류에 맞서는 정의로운 자들은 아닌 것이다. 그러나 아직까지도 주류의 부조리와 부조화를 감시하면서 의로운 편에 선 척 하는 이들이 적지 않은 것 또한 사실로서 이는 굉장히 시대착오적인 모습이 아닐 수 없다.

제5열이 되었든, 비주류가 되었든 간에 스스로 쟁취하고자 하는 권력의지와 본인에게 태생적으로 또는 인위적으로 주어진 장막을 걷어낼 시도조차 하지 못하는 자들은, 비주류가 아닌 비류(非類)에 지나지 않는다. 특히 직장 내에서 스스로를 높은 위치에 올려놓고자 하는 의지와 노력조차 보이지 않고 케이지 안에 갇혀있는 것과 같은 마음만을 갖고 있는 이들은 심각하게 자신의 미래를 고민해봐야 한다.


※ 외부 필진의 기고는 본지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서울과기대 토목공학과를 졸업하고 국방대학원 안보정책학과 석사과정을 수료했다. 이북오도청 (이북오도위원회) 동화연구소 연구원과 상명대학교 산학협력단 초빙연구원을 역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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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의도놩자 2023-07-13 17:49:11
생각하게 되는 글이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