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IMF 외환위기를 돌아보며 [특별기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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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IMF 외환위기를 돌아보며 [특별기고]
  • 조찬옥 (사) 민주화추진협의회 사무총장 
  • 승인 2023.12.24 19:1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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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오늘·시사ON·시사온=조찬옥 (사) 민주화추진협의회 사무총장]

항공 업계가 2분기 비수기에도 불구하고 ‘흑자 방어’에 성공했다. 오는 3분기부터는 연휴 효과와 중국 단체 관광객의 허용으로 한층 거세진 성장세가 기대된다. ⓒ 픽사베이
1997년 한국은 전대미문의 경제위기가 회사부도, 정리해고된 바 있다. ⓒ 픽사베이

1997년 한국은 전대미문의 경제위기가 회사부도, 정리해고, 캉드쉬 총재, 주가폭락, 25%의 고금리, 아파트값 폭락 등 현상만 알지 원인에 대해선 관심 있게 보지 못했다.  러면서 한국은 IMF가 제공키로 한 570억 달러 정책금융 프로그램 조건을 수용할 수밖에 없었다. 

그 내용은 아래와 같은 조건의 굴욕을 받아드릴 수밖에 없었다.

1) GDP 1%의 경상수지 흑자.  
2) 물가 5%.  
3) 경제성장율 3%.  
4) 환율과 금리의 신축적 운용과 긴축정책.
5) GDP 1.5% 세출 삭감과 VAT 과세범위 확대의 재정긴축.
6) 5개 지방은행과 22개 종합금융회사 폐쇄 등 금융구조조
    정과 통합감독 기구설치.
7) 수입 승인제 폐지 등 무역자유화와 외국인 주식 보유한도
     50% 확대 등 자본 자유화 확대.
8) 기업의 투명성 재고와 부채비율 축소.
9) 노동시장 유연성 재고.

이상으로 IMF는 대외환경과 대내환경에 대한 책임 내용을 간략하게 요약했는데 굴욕적이었지만 IMF의 요구사항을 지키지 않을 수 없었다. 한마디로 한국은 고금리 정책을 유지하고. 긴축재정을 펼치며. 기업을 매각하고. 노동 유연성을 강화하는 정책을 강요한 것이다.

쉽게 말하자면 한국정부가 그동안 재정을 효율적으로 운영하지 못했고. 은행도 무분별하게 대출을 해주었기 때문에 문제가 생긴 것이니 정부는 씀씀이를 줄이고(긴축재정). 시중에 풀린돈을 회수하며(고금리 정책)급한 불부터 꺼야하니 기업을 매각하여 빚을 갚고(국내 유수기업 매각)기업도 건강한 재무 상태로 돌아가라는 것이다.

한국이 외환위기의 원인으로 IMF에서 지목한 문제는 다음과 같았다.

1) 기업부실. 금융부실의 원인이 누적이 되어 위기 초래의 근본적인 이유였다.
금융위기의 발생은 연초부터 누적된 기업부실이 금융권에 떠 넘겨지면서 근본적인 요인으로 한계 기업을 부도처리 하지 않고 금융기관 부실처리를 지연시킨 것이 사태의 원인으로 작용하였다.

2) 외환 수급의 불균형이다
환율급등은 금융기관과 기업의 연쇄도산 우려와 외환 수급 불균형에 기인했고 일부 종금사들이 해외에서 단기로 차입한 자금이 신인도 하락으로 더 이상 연장되지 않은 것이 사태의 악화를 가속화 시켰다.

3) 금융자산과 외국으로부터 차입한 부채 상환의 기간불일치 현상이다.
해외에서 끌어들인 단기자본으로 장기시설 투자에 나서거나 금리차를 노려 제3국의 중장기 금융상품에 재투자하는 경우가 많았다.
한국은 대규모 외국자본을 통제하거나 재분배할 거시경제정책을 수행하지 못하였다.

4) 노동정책의 정치화이다.
당시 한국의 노동법은 과거에 우리나라 현실과 발전 경로를 무시하고 매우 미래지향적인 내용으로 구성되어 더욱 노동시장이 경직화 되어있는 현실이었다.
5) 한국의 경제주체들의 사고방식이 시장마인드가 부족하여 기업을 이윤추구 존재로 인정하면서도 기업의 사회적 책임 내지 도덕성을 지나치게 강조하는 경향이었다.
IMF 사태의 가장 근원적인 원인을 제공한 것은 재벌인데 재벌의 대표적인 특징은 대주주 중심의 기업지배 구조였다.

한국의 기업들은 많은 기업들을 거느리는 것 자체에 큰 가치를 두어 재벌의 위상에 손상을 입히지 않기 위해 외부금융을 통해 이를 잔존시키는 경우가 허다하였고 이것이 금융위기의 근본적 원인이 되기도 하였다. 당시 한국의 실정은 매우 절박하였고. IMF와의 합의가 1주일도 지나지 않았는데도 시장은 악화되어 가고 있었다.

IMF 실무진이 조사해보니 12월초 한국은행의 가용 외환보유액은 60억 달러에 지나지 않았다.
얼마 전까지 한국은행 총재인 이경식은 뉴욕과 워싱턴에 가서 미국 투자자들에게 외환보유액이 300억 달러나 있고 최악의 위기는 지나갔다고 말을 했는데 며칠 사이에 아닌 것이 드러나게 되었다.

한국 정부는 서로의 통계 방법이 달라서 그렇게 되었다고 변명했지만 외국 투자자들은 그렇게 믿지 않았고 한국은 거짓말을 하고 있다는 사실이 국제사회에 알려져 신용도에 금이가게 되었다. IMF가 500억 달러 이상의 구제금융을 지원하기로 약속했지만 그 지원 프로그램으로 한국을 모라토리엄의 위기에서 구해내기는 역부족이라 하였다. 한국의 재무부는 두가지 방법을 선택하여 준비하고 있었다.

그 하나는 모라토리엄 상황까지 가는 것이고. 또 다른 하나는 1980년대 있었던 중남미식 상환방식이었다.

그래서 한국정부 관리들은 1980년대의 사례를 들춰보며 만일의 사태를 준비하고 있었다.
당시 한국의 채권은 국제시장에서 정크본드 수준으로 떨어진 급박한 상태였다. 당시 김기환 순환대사도 워싱턴을 방문해 로레스 서머스 부장관에게 호소하였다.

1997년 11월 말에 문제의 해결사인 휴버트 나이스가 이끄는 IMF 경제학자 팀이 신속히 서울로 몰려왔다. 그들의 임무는 한국의 경제적 기초와 안정성을 신속하게 회복한다는 명목으로 멕시코 스타일의 구제금융을 협상하는 것이었다. 이것은 중요한 판례가 될 것이다. 가난한 제3세계와 동유럽에나 일상적으로 사용되던 IMF의 쓰라린 경제적 처방이 선진적인 산업경제에 처음으로 적용될 예정이었기 때문이었다.

이로써 간신히 국가부도 사태는 면했지만 IMF는 우리나라에 경제구조조정을 요구하였다. 기업들이 무너지고 은행들이 도산했다. 수많은 주식들이 휴지조각이 되었고 일자리를 잃고 가족들에게 알리지 못해 양복을 입은채 산으로 갔다가 퇴근하는 가장들의 등산 출 퇴근 현상이 언론에 보도되기도 하였다. 국민들은 달러가 없어 국가가 부도날 수도 있다는 것에 충격을 받고 이때 대한제국기의 국체보상운동처럼 금모으기 운동이 벌어졌다.

금은 곧 달러처럼 사용할 수 있으니 장농속에 잠자고 있던 금을 모아 나라의 빛을 갚아나가자는 것이었다. 이렇게 확산된 외채 상환 금모으기 운동은 1998년 1월부터 KBS 방송국의 금모으기 캠페인이 시작되면서 전 국민이 보상과 헌납의 방식으로 금을 모으기 시작했다. 결혼반지와 아이들 돌반지가 나왔고 운동선수들은 자신이 수상한 금메달을 내놓기도 하였으며 김수환 추기경은 금으로된 자신의 십자가를 내놓기도 하였다.

부모의 등에 업혀온 코 흘리게 어린이부터 백발의 어르신까지 금을 내놓기 위해 줄을 길게 서서 기다렸던 인원이 전국적으로 350만명이 금모으기에 동참해 227톤이라는 어마어마한 금이 순식간에 모여 나라빚을 갚는데 사용되었고 국민들이 자발적으로 가지고 있던 금붙이를 내놓는 장면은 해외 언론이 앞 다퉈 보도할 정도로 전 세계에서 유례가 없는 사건이었다.

국민들의 피땀 흘린 노력으로 2001년 8월 23일 IMF 차입금 전액을 3년 앞서 모두 완납하게 되어 IMF 관리체제에서 벗어나게 되었다. 외환위기는 경제를 비롯해 우리나라 전 분야에 커다란 영향을 미치고 은행들은 정부나 정치권의 압력에 따른 관치금융으로으로 부터 벗어나 독자경영이 이뤄졌다.

외환위기의 원인이 과도한 빚을 통한 투자라는 것을 기업들은 뼈저리게 느끼게 되었고 그래서 기업들은 투자에 신중해지기 시작하였다. IMF의 사태는 엄청난 성장통을 격으면서 한국에는 많은 변화가 일어났다. 시장경제 원리에 충실해야 한다는 신자유주의 체제가 이식되기도 하였다. 과거 기업들이 정치권력과 유착되어 사업 인허가와 금융 특혜 등을 통해 쉽게 몸집을 크게 불리던 관행과 무사안일주의가 타파되었다.

대기업들의 독점방지를 위해 공정거래위원회와 금융감독위원회가 출범하는 등 재벌개혁이 본격화되기도 하였으며 무엇보다도 정부의 외환 등 금융시장 정보공개와 관련 과거 팽배했던 비밀주의도 시라졌고 한국경제 상황에 대한 외부의 신뢰성이 높아지기도 하였다. 

IMF의 위기에서 벗어나기까지 3년 동안 그 요구사항을 충실히 이행하여 한국의 경제는 다시 돌이킬 수 없는 변화를 겪게 된 것이다. 


※ 외부 필진의 기고는 본지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조찬옥은…

故김대중 전 대통령 사단인 동교동계 소속으로 현재는 사단법인 민주화추진협의회 사무총장을 역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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