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대 총선, YS계 박진·박재호·김태호 단 세명뿐…‘격세지감’ [옛날신문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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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대 총선, YS계 박진·박재호·김태호 단 세명뿐…‘격세지감’ [옛날신문보기] 
  • 윤진석 기자
  • 승인 2024.04.06 11:5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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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S 사람들이 갖는 정치적 의미 크지만 세월 지나 현실정치인 줄어
YS 정신 계승‧발전할 청년 정치 배출되는 방향으로 전환 기대 

[시사오늘·시사ON·시사온=윤진석 기자]
 

국민의힘 박진 서대문을 후보가 22대 총선 유세장에서 지지를 호소하고 있다. ⓒ시사오늘 권희정 기자
국민의힘 박진 서대문을 후보가 22대 총선 유세장에서 지지를 호소하고 있다. ⓒ시사오늘 권희정 기자

 

박진 서대문을 후보(국민의힘)

“이번 총선에서 기필코 승리해 꽉 막힌 서대문의 새로운 변화와 발전을 위해 혼신의 힘을 다할 것이다. 22대 국회에서도 故김영삼 대통령의 "변화와 개혁"의 정신을 계승해 민심을 받들고 국민을 통합하는 정치를 실천하겠다. 수도 서울의 5선 의원으로서 국회에서 정치를 혁신하고 글로벌 중추국가 대한민국의 국익 수호와 번영을 위해 앞장서겠다.”
-<시사오늘>에 보낸 문자메시지 중 

더불어민주당 박재호 부산 남구 후보가 22대 총선 유세장에서 지지를 호소하고 있다. ⓒ박재호 페이스북 갈무리
더불어민주당 박재호 부산 남구 후보가 22대 총선 유세장에서 지지를 호소하고 있다. ⓒ박재호 페이스북 갈무리

 

박재호 부산남구 후보(더불어민주당)

“국민의 고통에 무관심한  무능 윤석열 정권 심판을 위해 부산 남구 주민과 함께 반드시 이기겠습니다.”
-<시사오늘>에 보낸 문자메시지 중 

국민의힘 김태호 경남양산을 후보가 22대 총선 유세장에서 지지를 호소하고 있다. ⓒ연합뉴스
국민의힘 김태호 경남양산을 후보가 22대 총선 유세장에서 지지를 호소하고 있다. ⓒ연합뉴스

 

김태호 경남양산을 후보(국민의힘)

“시민들 불편과 고충을 들을 때면 무슨 일이 있어도 이것만큼은 꼭 해결해야지 굳게 마음먹었고, 제 가슴속 수첩에 꼬박꼬박 적어뒀습니다. 양산에 힘 있는 변화를 시민이 행복한 변화를 만들겠습니다.”
- 페이스북 게시글 중

 

이상은 5일부터 시작되는 사전투표를 앞두고 세 후보들의 각오를 담아본 것이다. 

왜 이들 세 후보일까. 

당이 모두 똑같은 것도 아니다. 그렇지만 22대 총선에 출마하는 이들 세 명은 정치적 뿌리 면에서 공통점이 있다. 

故김영삼(YS) 전 대통령 계파인 상도동계 사람들이라는 점이다. 

4선에 외교통일부 장관을 역임한 박진 후보는 문민정부에서 대통령비서실 홍보비서관과 대통령 통역관, 해외공보비서관, 정무기획비서관 등을 지냈다.

재선에 국민체육진흥공단 이사장을 지낸 박재호 후보는 YS 최측근 서석재 의원 비서관으로 정계 입문한 후 14대 대선캠프 활동을 거쳐 문민정부 당시 대통령비서실 인사재무비서관 등을 역임했다. 

3선에 경남도지사를 재임한 김태호 후보는 YS 최측근 김동영 의원 비서관으로 정치를 시작해 YS가 신한국당 총재일 당시 여의도연구소 정책실장을 맡았다. 

상도동계 사람들 중에서는 이들만 22대 총선 본선에 올라 분투 중에 있다.  

지난 총선인 21대 때만 해도 서청원, 이인제, 이성헌, 이원복, 김영춘 등 못해도 10명 가까이 출마자에 이름을 올렸지만 이번엔 세 명뿐인 것이다. 

 

한때 60여 명 대거 출전 


YS계 총선 대거 진출로 관심을 모았던 때는 1996년 4월 11일은 15대 총선이었을 것으로 짐작된다. 당시 60여 명이 총선에 나갈 채비를 하고 있다는 보도도 전해지고 있다.ⓒ시사오늘(그래픽=정세연)
YS계 총선 대거 진출로 관심을 모았던 때는 1996년 4월 11일은 15대 총선이었을 것으로 짐작된다. 당시 60여 명이 총선에 나갈 채비를 하고 있다는 보도도 전해지고 있다.ⓒ시사오늘(그래픽=정세연)

과거는 어땠을까. 

1970~80년대를 제외하더라도 문민정부 때만 해도 YS계는 대거 총선에 출격한 바 있다. 

1996년 4월 11일은 15대 총선일이다.

당시 60여 명이 총선에 나갈 채비를 하고 있다는 보도도 전해지고 있다. 

 

“가신인 비서출신 중 김덕룡(서울 서초을), 박종웅(부산 사하을) 의원 등은 이미 원내에 진출해 있고 서석재‧박관용‧김무성‧홍인길 씨는 당선이 확실한 부산에서 공천을 받았거나 받을 예정으로 안다. 상도동 비서의 2세대인 김영춘(서울 광진갑)‧이성헌(서대문갑) 씨도 공천이 확정됐다. 새롭게 편입된 측근으로서 홍재형(청주상당)‧한이헌(부산) 씨 등이 포함됐다. 이밖에 상도동 사단의 핵심으로 분류될 수 있는 당료 출신과 측근인사 중 현역으로 활동 중인 20여 명을 제외하고도 30~40명가량이 공천을 받았거나 공천예정자로 꼽히고 있다.”
-1996년 1월 15일 <경향신문> 기사 중   


DJ계 가신그룹에서는 권노갑‧한화갑‧이협‧최재승‧이석현‧김경재 등 15명 정도가 15대 총선에 나섰다. 

JP(김종필) 쪽은 장일‧김용채‧정석모‧김용환 등에 불과했다. 

YS계는 60여 명이나 됐다고 하니 상대적으로 그 수가 확실히 많음이 가늠된다. 

그럴 수밖에 없다고도 보인다. 

문민정부 후반기였다. 한때 90%에 육박하던 YS 지지율도 집권 후반기 들어와 침체 국면이었다. 친위부대들이 대거 움직이기 시작했다. YS가 정국을 안정적으로 운영하려면 힘이 필요했다. 전위부대인 상도동계가 출마 채비를 차리고 집결한 이유였다. 

신한국당은 이에 더해 현역은 대폭 물갈이하는 대신 중도층에 어필될만한 신인들을 대거 공천했다. YS 사람 중에서는 김무성 당시 청와대 비서관 등이 총선 신인으로 첫 등장했으며 외부에서는 손학규‧이재오‧김문수‧홍준표 등이 영입돼 외연 확장에 기여했다. 

 

권력의 핵이었던 ‘때’


총선은 YS가 직접 챙겼다. 대통령이 당 총재를 겸임할 수가 있던 시기다. YS는 6‧27 지방선거에 패배하면서 위기감을 느끼고 있었다. 일찌감치 “총선을 직접 챙기겠다”고 해오던  차였다. 
 

대통령이 당 총재를 겸임할 수가 있던 시기, YS가 총선을 집적 챙겼다는 보도가 나오고 있다.ⓒ네이버뉴스라이브러리 갈무리
대통령이 당 총재를 겸임할 수가 있던 시기, YS가 총선을 집적 챙겼다는 보도가 나오고 있다.ⓒ네이버뉴스라이브러리 갈무리

 

“신한국당 총재인 김영삼 대통령은 8일 오전 신한국당 중앙선거대책위 발족 후 처음으로 이회창 선대위 의장으로부터 보고를 받았다. 회동 내용은 발표되지 않았지만 김 대통령이 그동안 지구당 개편 대회 참석 등을 통해 현장 분위기를 어느 정도 감지한 이 의장과 총선 대책을 논의했을 것임은 분명하다. (중략) 김 대통령은 인터폰을 통해 수시로 이원정 정무수석비서관을 호출, 선거 준비 상황 등에 대해 물어보고 선거 관련 지시를 내린다. 그리고 전국구 후보 인선도 직접 챙기면서 과거의 논공행상 계파 안배식 공천과는 달리 총선 승리에 보탬이 되는 쪽으로 구상 중인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1996년 3월 9일 <동아일보> 기사 중   

 

결과는 성공적이었다. 

처음으로 보수당이 서울에서 의석수 1위를 차지했다. 개표 직후 전체 139석을 얻었다. 무소속 의원들이 결합하면서 149석까지 확대됐다. 

선거가 끝나면서 새로운 이슈가 부상했다. YS 적자 경쟁에 관심이 모아졌다. 직계 그룹 중심으로 어떻게 권력이 재편될지에 이목이 쏠렸다. 
 

“총선 결과 김영삼 대통령의 정국 장악력이 한층 강화된 가운데서도 민주계 중진들 사이에 YS 적자 쟁탈전의 시동이 사실상 걸렸다. 총선 이후 정국에서 민주계 대표성을 다툴 인물로는 최형우‧김덕룡‧서석재 등 3인방을 우선적으로 꼽을 수 있다. 현 정권 출범 이후 결속력이 급격히 떨어진 민주계이 재결집을 위해 징발된 성격이 짙은 상도동 집사장 홍인길 전 청와대 총무수석과 박관용 전 비서실장도 또 다른 차원의 역할이 예상된다. 

(중략) 이번 총선 결과 민주계 중진 중 가장 부각된 인물은 김덕룡 의원이다. 지난해 지방선거 참패 직후 집권당 사무총장직에서 물러나야 했던 김 의원은 4.11 총선으로 비상의 기회를 잡았다. 그는 현 정권 출범 이후 부단히 외쳐온 새인물론이 비로소 제대로 검증을 받았다고 자평한다.”
-1996년 4월 15일 <경향신문> 기사 중 


15대 대선까지 1년 8개월 정도 남은 때였던 만큼 정권재창출을 위한 세 대결이 본격화되기도 했다. YS계와 민정계 간 경쟁의 막이 오른 것이다. 옛날신문을 보면 계파별 총선 성적에 따라 힘의 균형에도 변화가 찾아왔음이 가늠되고 있다. 
 

“15대 원내인사 중심으로 볼 때 이번 총선은 당내 중진들 간의 세 분포에 큰 변화를 가져왔다. 구여권 출신과 대구 경북지역에 폭넓은 세를 형성하고 있는 김윤환 대표위원과 가까운 의원은 25명 정도다. 그러나 김 대표는 경북에서 1당의 위치를 고수했으면서도 자신과 가까웠던 이자헌‧김기배‧김영광‧박명근‧황윤기‧김길홍‧유돈우 의원 등이 낙선, 세력이 크게 위축된 상태다. 

이에 비해 민주계 중진들은 비교적 약진세를 보였다. 최형우 의원은 울산 지역 일부에서 고전하기는 했지만 부산에서 압승, 기세를 올렸다. 또 다른 지역에서도 자신과 가까운 의원들이 선전, 일단 안정적 입지 확보에 성공한 것으로 평가된다. 김덕룡 의원도 다소간 약진했다고 볼 수 있다. 그동안 현역 열세를 면치 못했던 김 의원계는 이번 총선에서 상당수의 금배지를 건졌다.”
- 1996년 4월 14일 <동아일보> 기사 중 

 

YS계에서 정신 계승하는 정치인 배출로


오인환 전 장관은 YS와 민주대장정을 함께한 최형우(오른쪽)·김덕룡 민주계 인사들이 볼 때 김현철에 대한 시각은 또 달랐을 것이라고 가늠하고 있다.ⓒ시사오늘
YS와 민주대장정을 함께한 최형우(오른쪽)·김덕룡은 YS 동지들이자 문민정부 당시 유력 대선주자들로 존재감을 과시해온 바 있다. ⓒ시사오늘

실제 총선에서 약진했다고 평가 받는 ‘최형우‧김덕룡’은 이후 대권그룹 9룡의 유력주자로 떠오르며 존재감을 과시한 바 있다. 

어쨌거나 위세를 떨치던 때에 비춰 오늘날 그 수가 크게 줄어든 상황이 더욱 대조적이다. 

격세지감을 느낄만하다. 

민주화의 최대 주역 YS의 역사적 가치를 되짚어오며, 그동안 선거 때마다 YS 사람들의 출격 상황을 훑어왔던 <시사오늘>이 볼 때는 또 다른 의미로 아쉬운 일이기도 하다. 

YS계 사람들이 갖는 의미는 단순히 정치적 권력집단의 계파를 뛰어넘은 역사적 상징성이 더 크게 자리 잡고 있기 때문이다. 

정세운 정치평론가는 관련해 “YS계 사람들이 전통적인 면에서 의미가 있는 것은 대한민국 헌정사에 총부리가 아닌 정치적 결합체와 사상을 가진 사람들이 규합해 첫 대통령을 만든 세력이었다는 데 있다”며 “YS 정신을 이어받은 세력이 이제는 수십 년이 흘러 점점 사라지고 있다는 현실이 새삼 크게 느껴진다. 요즘 <서울의봄> 이후 하나회 청산을 다루려는 움직임 등 YS 재조명 움직임이 커지고 있는 상황에서 더욱 그렇다”고 말했다.

이어 “비록 세월이 지나 YS와 직접적으로 관계된 정치세력들의 현실 정치나 선거 진입은 보기 어려워졌지만, 앞으로는 YS 정신을 잇는 새로운 정치적 후예들이 많이 나와 줬으면 좋겠다”며 “그런 점에서 YS 정신 계승을 표방하며 총선에 도전했던 YS 손자 김인규 전 대통령실행정관의 낙천이 한편으로는 아쉽다”고 부연했다. 

정 평론가는 “어쨌거나 최근 YS 차남 김현철 김영삼대통령기념재단 이사장 등을 중심으로 YS정신을 계승하고 발전시킬 청년정치 아카데미 등이 추진될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반가운 일”이라며 “그런 과정을 통해서라도 YS 후예들이 많이 배출됐으면 좋겠다”고 기대했다. 

담당업무 : 정치부 기자입니다.
좌우명 : 꿈은 자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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