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청민심 긴급 여론조사①>변죽 울리는 충청도 민심
스크롤 이동 상태바
<충청민심 긴급 여론조사①>변죽 울리는 충청도 민심
  • 김병묵 기자
  • 승인 2014.07.16 13:49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JP 은퇴 후 후계자 없어…예측불허
대통령 만드는 중원의 '킹메이커'

(시사오늘, 시사ON, 시사온=김병묵 기자)

선거가 열릴 때면 정치권은 충청을 주목하기 시작했다. 영남과 호남의 팽팽한 줄다리기에서 충청권이 누구의 손을 들어 주느냐에 따라 선거의 향방이 달라졌기 때문이다.

정가의 ‘캐스팅보트’,‘선거 승패의 풍향계’와 같은 수식어가 따라붙었다. 선거가 다가오면 충청권의 선택이 궁금해졌다.

그러나 충청권의 민심은 예측을 허락하지 않았다. 섣부른 예측이 뒤집히는 일은 허다했고, 의외의 결과로 신선한 충격을 던지기도 했다. <시사오늘>은 변화무쌍한 충청권의 민심사(民心史)를 되짚어봤다.

JP의 등장과 자민련, 충청을 이끌다

한국 정치는 기본적으로 양강 구도로 이뤄져 왔다. 해방 후 공산당과의 대립이 있었고 군부정권이 들어선 이후에는 군부와 반군부의 구조였다. 제3세력이 존재해도 그 기반은 지역에 있지 않았다. 이합집산을 통해 결국은 정리되곤 했다.

그런데 김종필(JP) 전 자유민주연합(자민련) 총재라는 걸출한 정치인이 등장한다. 충남 부여 태생으로 공화당 계열, 군부 출신의 정치인인 그는 충청도를 기반으로 한 세 번째 정치세력 자민련을 탄생시킨다. 충청의 민심은 JP의 등장 이후 정계 은퇴까지 그와 함께하게 된다.

자민련은 3당 합당을 통해 민자당에 머물던 JP가 1995년 2월 탈당하고 3월 창당한 정당이다. 그리고 몇 달 뒤 열린 제1회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 JP는 “경상도 사람들은 충청도 사람들을 핫바지라고 한다. 아무렇게나 대접해도 소견도 없고 오기도 없어 그런 것”이라며 이른바 ‘핫바지론’을 꺼내들어 충청권의 지역감정을 자극한다.

‘핫바지론’으로 불붙은 충청 민심은 자민련을 향한다. 지방선거에서 광역단체장 4곳, 기초단체장 23곳을 휩쓴 자민련은 충청도를 대표하는 정당으로 자리매김했다. 여세를 몰아 자민련은 이듬해 15대 총선에서도 충청을 기반으로 돌풍을 일으켰다.

 

▲ 김종필 자민련 전 총재 ⓒ뉴시스

후계자가 없는 JP, 변죽만 울리는 충청

“그 양반(JP)이 후계자를 키우지 않았지유. 몇몇 인물들이 있긴 한데 아무래도 아직 그만치는(그만큼은)안 되는 것 같어”

충남 공주 태생이라는 한 택시기사의 말이다. 실제로 JP 이후 충청권엔 ‘맹주’라 부를 만한 인물이 부재했다. 심대평 전 충남지사, 이회창 전 자유선진당 대표, 새누리당 이인제 의원 등이 충청권 유력 인사로 손꼽히긴 했지만 그 누구도 ‘포스트 JP'에는 도달하지 못했다.

‘나중에 충청도가 대권을 잡기 위해’ 영호남을 도와주는 시대는 막을 내린 것처럼 보였다. 충청도 출신 대권주자란 말은 오랫동안 잊혀졌다. 충청 민심은 변죽만 울리며 그때 그때 내키는 대로 표를 던졌다. 다른 지역에 비해 다선(多選)의원이 탄생하기가 어려웠다.

충청도를 기반으로 한 정치세력도 사라졌다. 자민련은 2004년 치러진 17대 총선에서 정당지지율 2.8%를 얻는 데 그쳤다. 비례대표 1번이었던 JP는 10선에 실패하며 정계를 은퇴했다. 그렇게 막을 내린 자민련의 맥은 국민중심당과 그 후신이라 할 수 있는 자유선진당이 이었다.

충청 민심은 18대 총선에서 심대평과 이회창이 손잡은 자유선진당을 선택했다. 자유선진당은 14석, 비레대표 4석을 차지하며 원내 제3당이 됐지만 재보선과 19대 총선에서 대패하며 급격히 위축됐다. 마지막 충청도 정당이라 할 수 있는 자유선진당은 18대 대선을 앞두고 새누리당과 합당했다.

충청의 간판 정치인도, 지역을 대표하던 정당도 사라졌다. 충청도의 민심은 다시 요동치기 시작했다. 원래도 여야 중 어디를 선택할지 알 수 없었던 충청이다. 이제 지역별로 선호도가 달라지고 충청권 내 전국시대(戰國時代)에 돌입했다.

그런데 2013년부터 이상한 기류가 흐르기 시작했다. 이른바 ‘충청대망론’이 다시 떠오르기 시작한 것이다. 차기 대선에 충청권 주자를 밀자는 이야기가 곳곳에서 시나브로 퍼져나갔다. ‘인구가 늘어났으니 의석을 더 달라’며 목소리도 커졌다. 충청의 적자(嫡子)라 불리는 정치인들은 몸을 일으키기 시작했다.

지난 6월 치러진 제6회 지방선거에서 충청 민심은 또다시 새로운 얼굴을 드러냈다. 충남·북과 대전, 세종까지 충청권 4곳 광역단체장을 새정치민주연합이 싹쓸이한 것이다.

현 야권에서 충청을 대표하는 인사인 안희정 충남지사의 무난한 승리를 비롯해, 열세로 보이던 대전서 권선택 시장이 여론조사를 비웃으며 판을 뒤집었다. 이시종 충북지사는 선거 7전7승의 기염을 토하며 재선했고 세종에선 이춘희 시장이 예상 밖의 큰표 차로 이겼다. 직전에 치러진 대선에서 새누리당 박근혜 후보를 향해 53.7%나 되는 지지율을 보냈던 충청권이다.

또다시 변화무쌍하게 움직였다. 충청 민심에 다시 눈길이 갈 수밖에 없는 이유다.

▲ (왼쪽부터) 변웅전 전 자유선진당 대표, 이회창 전 자유선진당 대표, 심대평 전 충남지사, 새누리당 이인제 의원 ⓒ뉴시스

대통령 선거, 충청에 물어보시라

충청권은 대선의 주인공은 아니었다. 그럼에도 누구보다 강력한 힘을 가진 조연으로서 대선의 결과를 좌우했다. 패권을 잡고 있는 영남도 충청을 잃으면 패했다. 단독으로는 힘이 부치는 호남은 충청과 연대해야만 영남에게 대항할 수 있었다.

1992년 14대 대선에서 충청권은 김영삼(YS) 후보를 지지한다. 충청권에서 36.2%를 득표한 YS는 대통령이 됐다. 당시 JP는 삼당합당을 통해 YS의 민자당에 있었다. 1997년 15대 대선은 김대중(DJ)후보와
JP가 'DJP'연합을 구성했다. 충청권은 DJ에게 백만 표가 넘는 표(40.3%)를 던져 그를 당선시킨다. 또한 2002년 대선에서 노무현 후보는 충청도에서 절반 이상의 지지(51.8%)를 얻으며 승리한다.

17대 대선에서도 충청도는 이명박 후보에게 85만여 표를 몰아주며 대통령을 만들었다. 다만 충남에선 연고가 있던 무소속 이회창 후보가 1위를 한다. (충청 전체에서 이회창 후보는 66만 표를 획득, 2위였다.) 18대 대선에서도 50% 이상이 박근혜 후보를 지지했다. 어김없이 대통령이 됐다. 14~18대 대선 내내 충청도가 지지한 후보는 이겨왔다.

 

담당업무 : 게임·공기업 / 국회 정무위원회
좌우명 : 행동하라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