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철현의 사람과 법>공판중심주의적 법정심리절차에도 이런 문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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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철현의 사람과 법>공판중심주의적 법정심리절차에도 이런 문제가
  • 안철현 변호사
  • 승인 2014.09.18 17: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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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오늘, 시사ON, 시사온=안철현 변호사)

2007년 형사소송법에 공판중심주의적 법정심리절차를 도입했다.  이와 같은 제도를 도입한 배경에는 형사절차에서 일부 존재하는 자백위주의 범죄수사와 조서중심의 재판관행으로 인하여 피고인이 검사와 대등한 소송주체로서의 법적 지위를 보장받지 못한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피고인이 적정한 방어권을 행사하는데 상당한 한계가 있어 이러한 문제점을 해결하기 위하여 공판절차의 운영을 개선할 필요가 있었다. 여기서 공판기일 전에 쟁점정리 및 입증계획을 수립할 수 있도록 하는 공판준비절차 제도를 도입했다. 그렇게 함으로써 심리를 효율적으로 운영할 수 있도록 했다.  그리고 심리에 2일 이상이 필요한 경우에는 부득이한 사정이 없는 한 매일 계속하여 공판정을 개정하도록 함으로써 집중심리가 가능하도록 했다.  이렇게 보면 매우 바람직한 제도라 볼 수도 있다.

그런데, 여기에도 함정이 있다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  재판을 시작하고 증거 조사하는 과정에서 피고인이나 변호인이 무죄를 주장하기 위해 검사가 제출한 증거를 부동의 하는 경우 수사기록은 그대로 검사의 손에 남게 되고, 판사는 공판기일이 종결될 때까지 기록도 보지 않은 상태에서 공소장만으로 재판을 진행하게 된다.  그러다 보니 판사는 공판기일이 종결되고 판결을 선고하기 직전에야 수사기록을 읽어보게 된다.  따라서 재판과정에서 증인신문이나 피고인신문을 할 때에도 실체에 대해 전혀 모르는 상태에서 신문에 임하다 보니 판사의 소송지휘원이 무력화되기 시작한다.

이와 같이 판사의 적절한 소송지휘가 이루어지지 않다보니 재판지연이라는 문제 즉, 우리의 헌법이 보장하는 피고인이 신속하게 재판받을 권리가 훼손되기 시작한다는 점이 문제다.  검사나 변호인의 불필요한 증인신청 등이 남발된다.  공판중심주의가 강화되기 전에는 판사들이 공판기일 전에 수사기록을 읽어보고 재판을 함으로써 불필요한 증인신청 등을 제재할 수 있어 신속한 재판이 어느 정도는 가능했다. 

그런데 지금은 검사는 검사대로 공소유지를 위해 이런 저런 증거를 신청하고, 변호인은 변호인 나름대로 무죄를 입증하기 위해 이런 저런 증거를 마구 신청하는데도 판사는 사건의 실체에 대해 모르는 상태에서 재판을 진행하다 보니 검사와 변호인에게 끌려 다니는 모양새를 나타낸다.  그 결과 재판부의 인력이나 공판검사의 수요는 늘어날 수밖에 없다.  그래서 서울중앙지검만 하더라도 공판검사가 예전보다 늘어났고, 판사들은 재판 일정이 늘어나 고생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물론 피고인 입장에서는 무조건 재판을 신속하게 끝내는 것이 능사는 아니다.  그런데 실제 재판을 하다보면 판사들 대부분은 검사에게는 너그럽게 그러나 피고인에게는 가혹하다.  심지어는 검사가 유죄를 입증하기 위해 제출한 증거가 부족할 때에는 판사가 갑자기 검사로 돌변하는 경우도 자주 본다.  판사가 적극적으로 나서서 직권으로 이런 저런 증거를 수집하기 시작하고, 검사가 새로운 증거를 찾지 못하면 아무리 재판이 늘어지더라도 언제까지고 기회를 준다. 

그러나 피고인이나 변호인은 판사로부터 “다음기일까지 증인이 출석하지 않으면 공판을 종결하겠다”, “다음기일까지 증거를 제출하지 않으면 공판을 종결하겠다”는 이야기를 자주 듣게 된다.  그렇지 않아도 수사단계에서 일방적으로 당한 피고인은 법원에서도 당하는 꼴이다. 

수사단계에서든 법원 재판단계에서든 무기는 평등해야 한다.  그리고 공판중심주의적 법정심리절차가 자백위주의 범죄수사와 조서중심의 재판관행을 없애고, 피고인에게 적정한 방어권을 행사하도록 하자는 것이 그 취지임에도 현실에서의 운영은 거기에 못 미친다.

아무리 좋은 제도와 법이 있어도 이를 집행하는 기관이 그 취지를 잊어버리고, 편의주의적으로 운영한다면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판사가 공판 종결 전까지 기록을 못 보게 하는 것이 예단을 없애기 위한 것으로 알았더니 더 큰 문제점을 남기고 있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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