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지민의 시사 법률>유책주의 채택한 대법원과 상반되는 판결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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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지민의 시사 법률>유책주의 채택한 대법원과 상반되는 판결일까?
  • 양지민 변호사
  • 승인 2015.11.09 14:0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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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핀 '유책 배우자'의 이혼청구 인정

(시사오늘, 시사ON, 시사온=양지민 변호사)

2015년 9월 대법원은 “혼인생활의 파탄에 주된 책임이 있는 배우자는 그 파탄을 사유로 이혼을 청구할 수 없는 것이 원칙”이라며 유책주의의 손을 들어줬다.

대법원은 재판상 이혼원인에 관한 민법 제840조는 원칙적으로 유책주의를 채택하고 있는 것으로 해석해 왔는데, 이런 해석을 이번에도 유지한 것이다.

그래서 우리 법원은 일반적으로 민법 제840조 제1호 내지 제5호의 이혼사유가 있는 것으로 인정되는 경우라도 그러한 이혼사유를 일으킨 배우자보다도 상대방 배우자에게 혼인파탄의 주된 책임이 있는 경우에는 그 상대방 배우자는 그러한 이혼사유를 들어 이혼청구를 할 수 없다고 보고 있다.

즉, 바람을 피운 남편은 아무리 부인에게 민법 제840조 제1호 내지 제5호의 이혼사유가 있더라도 이혼청구가 불가능하다는 의미이다.

그런데 2015년 11월 이러한 대법원 판결과는 상반돼 보이는 서울가정법원 판결이 등장했다. 바람을 피운 남편의 이혼청구를 법원이 받아들인 것이다.

하지만 그 내용을 좀 더 들여다보면, 대법원 판결과 상반된다기 보다는 대법원 판결에서 인정하는 유책주의의 예외에 해당하는 사건이었기 때문에 이혼청구를 받아들인 것으로 해석하는 것이 옳다.

대법원은 1) 상대방 배우자도 혼인을 계속할 의사가 없어 일방의 의사에 의한 이혼 내지 축출이혼의 염려가 없는 경우, 2) 이혼을 청구하는 배우자의 유책성을 상쇄할 정도로 상대방 배우자 및 자녀에 대한 보호와 배려가 이루어진 경우, 3) 세월의 경과에 따라 혼인파탄 당시 현저했던 유책배우자의 유책성과 상대방 배우자가 받은 정신적 고통이 점차 약화되어 쌍방의 책임의 경중을 엄밀히 따지는 것이 더 이상 무의미할 정도가 된 경우 등과 같이 혼인생활의 파탄에 대한 유책성이 이혼청구를 배척해야 할 정도로 남아 있지 않은 특별한 사정이 있는 경우에는 예외적으로 유책배우자의 이혼청구를 허용해 왔다.

그리고 이번 2015. 11. 나온 서울가정법원 판결은 이러한 예외에 해당하는 사건이었던 것이다.

이번 가정법원 판결의 경우, 부인이 이혼을 거부하고 있지만 경제적인 여유가 있어 축출이혼 가능성이 없고, 남편이 세 자녀의 교육비와 전세자금 등 수억 원을 부담해 왔으며, 25년이 넘는 별거 생활 동안 혼인의 실체가 사라지며 혼인생활의 파탄에 대한 유책성이 무의미해진 사건이었다.

이와 같이 유책주의의 예외로 인정하는 경우를 폭넓게 해석할수록 대법원이 유책주의를 고수할 가능성은 높다. 예외로 포섭돼 법과 현실 사이의 빈틈이 어느 정도 채워질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혼인이 파탄에 이르러 이미 오랜 기간 혼인생활의 실체가 사라진 상태에서 유책주의의 예외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무조건적으로 유책 배우자의 이혼청구를 받아들이지 않는 유책주의가 과연 합리적인 해석인지에 대해서는 여전히 의문이 남는다.

지속적으로 이러한 유사사건은 상고심에 오르게 될 텐데, 과연 다음 사건에서는 대법원이 유책주의가 아닌 파탄주의를 채택할 수 있을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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